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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취미 생활/한문서예

卜算子, 詠梅 (복산자, 영매)

by 까마귀마을 2024. 2. 18.

 

 

중국 문학사에 매화(梅花)를 예찬하거나 읊은 시(詩)나 사(詞)는 헤아릴수 없을 정도로  많다.

매화시 중 최고봉 중의 하나로 꼽히는 시가 바로 육유(陸遊의) 복산자(卜算子) 영매(詠梅)라는 송사(頌詞)라고 한.

설한을 업신 여기며 피어나는 봄의 전령 매화를 통하여 선비의 고결한 우국충정을 오롯이 담아낸 육유의 이 시는 후일 모택동(毛澤東)이 그 글의 의미를 뒤집어 동일한 제목의 시를  反意를 담아 지음으로 더욱 유명 해진다. 아래 육유의 영매  모택동이 지었다는 영매 를 올립니다.

육유의 卜算子, 詠梅 (복산자, 영매)

 

驛外斷橋邊 (역외단교변) 역참(驛站) 바깥, 끊어진 다리 옆에

寂寞開無主 (적막개무주) 주인도 없이 외롭게 피어있네

已是黃昏獨自愁 (기시황혼독자수) 날은 이미 어두워 스스로 혼자 처량한데

更着風和雨 (경착풍화우) 다시 비바람까지 들이치누나

無意苦爭春 (무의고쟁춘) 힘들게 다른 봄꽃들과 잘났다고 싸울 생각이 없으니

一任群芳妬 (일임군방투) 다른 꽃들이 시샘을 하건 말건

零落成泥輾作塵 (영락성니전작진) 말라 떨어지고, 진흙이 되고, 또 먼지가 되어 구르더라도

只有香如故 (지유향여고) 기만은 그대로 남아있으리

이 사(詞)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대체로는 남송(南宋)이 요(遼)에 밀려 남쪽으로 도망친 후 육유는 외적을 몰아낼 것을 주장하였으나, 당시의 집권층은 남쪽 절반이라도 가진 것에 만족하고 있었고, 그에 대한 작가의 불만과 스스로는 고고한 뜻을 꺾지 않겠다는 의지를 잘 표현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육유의 평생소원은 바로 북상해서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는 복국(複國)이었다. 하지만 당시 남송은 재상 진회(秦檜)가 전권을 잡고 있던 상황이라 도처에서 모두들 육유를  공격했다. 陸游는 옛 선비의 기개(氣槪)를 견지한 宋시대 문인으로 자(字)는 무관(務觀)이고 호(號)는 방옹(放翁)이며, 지금의 절강성(浙江省) 사람이다.

금(金)나라가 북송(北宋)을 침략하여 온 나라가 난리에 휩쓸렸을 때, 그의 가족도 피난을 떠났던 1125년에 출생하였다. 28살이던 1153년에 서울인 임안(臨安)에 가서 과거(科擧)에 응시하여 장원급제를 하였지만 당시 관료의 농간으로 벼슬길에 오르지 못했다. 이후 34세에 복주의 지방관리를 시작으로 여러 지방관을 전전하였다. 그는 기회 있을때 마다 줄기차게 金나라 북벌(北伐)을 주창하였다. 그의 불굴의 기상과 강인한 투쟁의식은 그의 수많은 우국시를 통해 끊임없이 표출되었으며, 그 헌신성과 진정성으로 인해 오늘날까지 중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우국시인(憂國詩人)으로 추앙받고 있다. 아울러 전후로 도합 일만 수에 달하는 시를 남기고 있어 중국 최다작가(最多作家)로서의 명성 또한 지니고 있다. 당시 실권을 쥔 화전파(和戰派)의 눈 밖에 나 파직되는 등 고초(苦楚)를 겪었다. 陸游는 800년 전 중국 사회에서 매우 드문 85세라는 초장수(超長壽)를 누렸지만, 죽을 때까지 北伐의 염원은 이루지 못했으니 그 운명의 처량함은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모택동의 卜算子, 詠梅 (복산자, 영매)

 

風雨送春歸 (풍우송춘귀) 비바람은 봄을 떠나 보내었지만, 

飛雪迎春到 (비설영춘도) 휘날리는 흰눈은 곧 봄이 옴을 반기네.

已是懸崖百丈氷 (이시현애백장빙) 이미 백길 높은 언덕에 얼음은 꽁꽁 얼어있지만

猶有花枝俏 (유유화지초) 유독 너의 꽃 가지는 어여쁘게 피었구나.

俏也不爭春, (초야부쟁춘) 어여뻐도 봄을 시샘하지 않고

只把春來報 (지파춘래보) 단지 봄이 왔다는 걸 알리고 싶을 뿐

待到山花爛漫時, (대도산화란만시) 바야흐로 만 산에 봄꽃이 만발할 때에

她在叢中笑 (타재총중소) 매화는 그 가운데 웃고 있으리라.

 

註.

卜算子(복산자) : 송대(宋代)의 사패명(詞牌名)으로 시의 내용과는 관련이 없다, 詞牌(사패)는 사(詞)의 곡조(曲調)를 말함.

詠梅(영매) : 매화를 노래하다.

懸崖(현애): 낭떠러지. 절벽

俏(): 닮다. 어여쁘다

爛漫(난만): 빛깔이 선명하고 아름답다.

她(저/): 아가씨(저). 그녀(여성의 3인칭). 매화를 가르킨다.

비바람은 온갖 꽃 낙화 시키며 봄을 밀어 내었지만,

흩날리는 흰눈을 봄은 반긴다.

백장의 얼음 절벽에 핀,

매화 꽃가지가 예쁘다.

예쁘나 봄을 다투지 아니하고,

다만 봄이 왔음을 알릴뿐.

산꽃이 흐드러지게 필때에,

그녀는 웃고 있으리라.

 

비바람에 온갖꽃 낙화하니 마땅히 봄도 따라 간다는 것이요, 날리는 눈이 봄을 맞는다 함은 대개 봄꽃은 혹한의 겨울 추위를 이겨내어야 만이 꽃을 피울 수 있음을 말함이다.

모진 추위를 업수이 여기며 피어난 꽃이 더욱 아름답듯이 설한을 이기고 백화가 흐드러지게 필때면 매화 너는 살며시 웃을수 있으리라. 이미 백길 벼랑이 얼음에 덮혔어도 오히려 가지 끝에 꽃을 피웠다는 건 고난의 대장정에서 태평 세상으로 이어지는 길을 개척한 선각자의 출현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선각자는 봄을 다투지 않고 단지 봄을 알리는 역할을 할 뿐이라고 노래하고 있다.

문인(文人) 육유가 매화를 읊으면서 스스로 소극적으로 대응한 것에 비하여, 혁명가(革命家 )모택동은 매화를 선각자(先覺者)로 생각하고 있다. 지금은 홀로 피어 봄이 온 것을 알리고 있지만 곧 봄이 오는 것처럼 혁명도 완수하게 될 것이고, 온 천지에 꽃들이 다 피었을 때, 매화는 그 한가운데 웃고 서 있을 것이리라. 

육유가 매화와 다른 꽃과의 차별화에 중점을 두고,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면, 모택동은 결국 매화의 목적은 다른 꽃들을 다 피게 함으로써 진정한 봄이 오도록 선도하는데 있지, 다른 꽃들과 떨어져서 고고하게 사는데 있지 않다는 의미라고 읊고 있다.

"모택동" 오늘의 중국을 세운 그 모택동을 말한다. 중국 대륙을 통일하고 공산당을 창건하여 중국을 통치하고, 문화 대혁명을 일으켜 중국의 오랜 전통을 단절하고 무수한 유적을 훼손하며 자신의 권력을 강화한 독재자로, 파괴자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지만 毛澤東은 일생동안 많은 詩(시)와 詞(사)를 지은 시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본인이 직접 교정을 보아  정식으로 출판한 것은 그리 많지 않아 1957년에서 1963년 12월까지 5차례에 걸처 37首를 발표 하였고 1976년에 다시 2首를 더하여 도합 39首가 전부이다. 위의 시 咏梅(영매)는 그가 아끼는10首의 詞(사)중에 하나라고 한다.

 

입춘이 지나고 나면 매화는 어김없이 꽃망울을 터트린다.

입춘은 24절기의 으뜸으로 봄이 옴을 상징하지만 또 한 해의 시작을 의미 하기도 한다.

우리의 선조들은 왜 2월 초면 아직은 겨울이 한창 위세를 부릴때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을 정했을까? 꽃이 피는 삼월에 정하지 아니하고 ...

춘래불사춘 이라는 말이 생겨 난것만 보아도 알수 있듯이 입춘이라 하지만 아직 봄이 오려면 겨울 끝자락의 차가운 북풍을   한참을 견더 내어야 봄이온다. 추운 겨울에 입춘을 정한것은 봄을 기다리는 기다림을 입춘이라는 절기를 통해 미리 봄을 느껴보는 조상들의 지혜가 아닌가 여겨진다. 그러나 입춘이 지나면 얼어있는 산천 곳곳에서 봄의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하니 이 또한 자연의 신비이고 옛 사람들의 오랜 경험에 의한 지혜인가 보다.

2월은 추위가 한창 이지만 입춘이 지나고 나면 대지에는 차례대로 봄을 알리는 세 가지 징후가 나타나는데.

동풍이 얼어붙은 땅을 녹이는 ‘東風解凍(동풍해동)’

겨울잠 자는 동물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蟄蟲始振(칩충시진)’

물고기들이 올라와 얼음을 지고 있는 ‘魚陟負氷(어척부빙)'이라 한다.

 

* 제19회 한, 중 서화 문화교류전 에서 작가: 陳爲森(진위삼)이 쓴 毛澤東詞,卜算子,咏梅(모택동사, 복산사, 영매)의 서예 행 초서 작품

 

제19회 한, 중 서화문화교류전 출품작 작가: 陳爲森(진위삼)-日照市书法家协会监事会副主席(일조시 서법가협회 감사회 부주석)낙관 : 毛澤東詞卜算子,咏梅(모택동사복산사, 영매) 歲在壬寅仲夏陳爲森書(세재임인중하진위삼서) 모택동의 사 '복산자,영매'를 임인년 음력 5월에 진위삼이 쓰다. *복산자(卜算子)는 사패(詞牌-사의 곡조 명칭)의 이름이다. 중하(仲夏)는 음력 5월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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