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雨後(춘우후) : 봄비 내린 후
昨夜一霎雨(작야일삽우) 어젯밤 한 차례 가랑비가 내렸으니
天意蘇群物(천의소군물) 하늘이 만물을 소생케 하려는 것이라.
何物最先知(하물최선지) 어느 것이 가장 먼저 그 뜻을 알랴했더니
虛庭草爭出(허정초쟁출) 빈 뜨락에 봄 풀들이 앞다투어 나는구나.
------孟郊-----
註.
霎(삽): 가랑비. ‘霎霎’은 빗소리를 나타낸다.(一霎雨가 一散雨(일산우)로 된 본도 있다)
대동강 얼음이 녹는다는 우수가 지난지도 며칠.
밤 사이 비가 내린다.
소리도 없이 내리는 가는비는 대지를 적시고 겨우내 잠들어 있는 만물을 깨우려 하지만.
아직 바람은 차고 들녁은 황량하다.
그러나 한켠에는 매화가 피고 봄빛이 닿는 양지바른 빈 뜨락에는 연두색 봄풀이 살며시 얼굴을 내밀며 돋아나고 있다.
봄아!
찬 바람에 얼굴이 시려도 내 너를 기다리며 봄 마중 나간다.
맹교(孟郊 :751~814)
당조(唐朝)의 시인으로 자는 동야(東野), 호주(湖州 )무강(武康: 지금의 저쟝성(浙江省) 덕청德淸) 사람이며 맹호연(孟浩然)의 손자이다. 현존하는 시가가 5백여 편인데 단편인 오언고시로는 많지만 율시는 한 편도 없다. 대표작으로는 유자음(遊子吟: 나그네의 노래)을 꼽는다. 어려서 가정이 빈한하여 여러 곳을 주유했고 과거에도 여러 차례 응시했으나 급제하지 못하다가 마흔여섯(일설에는 45세) 늦은 나이에 비로소 진사가 되었다. 정원(貞元 17년 801) 율양위가 되었는데 일보다는 시 짓는 데 열중하여 감봉을 당하기도 했다. 한유(韓愈)는 그런 맹교를 일러 ‘산한율양위酸寒溧陽尉(군색한 율양위)’라고 불렀다고 한다. 맹교가 세상을 뜨자 오랜 벗인 장적(張籍)이 정요선생(貞曜先生)이라는 사시(私諡: 학덕이 높은 선비이기는 하나 지위가 없어서 나라에서 시호(詩號)를 내리지 않을 때, 일가친척이나 고향 사람 또는 제자들이 지어 주던 시호. )를 지어주었다. 한유의 복고주의에 동조하여 작품도 악부나 고시가 많았는데 외면적인 고풍 속에 예리하고 창의적 감정과 사상을 담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소식(蘇軾)이 ‘교한도수(郊寒島瘦 : 맹교는 춥고 가도는 여위었다))’라고 말한 이후, 평론가들이 맹교와 가도(賈島)를 병칭하여 고음시인(苦吟詩人) ( 苦吟 : 고심하여 시가(詩歌)를 지음 )의 대표로 불렀다. 맹동야시집(孟東野詩集) 10권을 남겼다.
孟郊의 대표작이라는 遊子吟 (유자음)을 아래 올립니다.
遊子吟 (유자음) 나그네의 노래
慈母手中線(자모수중선 ) 자애로운 어머님 손에 들린 실은,
遊子身上衣(유자신상의 ) 길 떠날 아들 몸에 걸칠 옷이라네.
臨行密密縫(임행밀밀봉) 떠나기 전에 꼼꼼히 꿰매시며
意恐遲遲歸(의공지지귀) 자식이 더디 돌아올까 걱정이시네.
誰言寸草心(수언촌초심) 뉘라서 말하리오 한 치 풀 같은 마음이
報得三春暉(보득삼춘휘) 석달 봄빛 같은 어머님 사랑 보답하기 어렵네.
註.
遊子(유자) : '길 나선 사람'의 뜻.
吟(음) : 읊음. 遊子吟은 '나그네의 노래'와 같은 뜻. 길 나선 나그네가 어머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부른 노래이다.
密密(밀밀) : 촘촘한 모양. 꼼꼼한 모양.
縫(봉) : 꿰매다.
誰言(수언) : 뉘가 말하리오 (難將으로 되어있는 본도 있음)
寸草(촌초) : 한 치 되는 풀, 微力한 자식에 비유했음.
三春(삼춘) : 맹춘(孟春)·중춘(仲春)·계춘(季春)의 봄 3개월.
暉(휘) : 햇빛.
遊子吟은 맹교가 늦은 나이에 과거에 합격하고 율양현위로 부임했을 때 지은 작품으로 시인 자신이 “어머니를 율수에서 맞이하면서 지었다"라고 주석을 달고 있다. 율양(溧陽)은 지금의 강소성(江蘇省) 의흥현(宜興縣) 서쪽의 지명이다. 먼 길 떠나는 아들의 옷을 깁는 어머니의 모습으로 자식을 향한 모든 어머니의 가없는 사랑을 노래한 이 작품은 천고의 명편으로 회자되고 있다. 마지막의 3.4구에서 촌춘초(寸春草)와 삼춘휘(三春暉)란 구절을 통하여 한치되는 봄풀을 삼춘의 긴 봄빛에 비유하며 모자의 은정(恩情)을 절묘하게 읊고 있다.
같은 제목으로 된 조선초기 문신인 춘당(春堂) 변중량(卞仲良)의詩 遊子吟 (떠도는 이의 노래)도 같이 올립니다.
遊子吟(유자음) 떠도는 이의 노래
遊子久未返(유자구미반) 객지에 떠도는 자식 돌아가지 못하니
弊盡慈母衣(폐진자모의) 어머니 주신 옷도 다 헤어져 버렸구나.
故山苦遼邈(고산고료막) 고향은 아득하고 멀어 마음 아파
何時賦言歸(하시부언귀) 어느 때에나 고향 돌아갈 노래 지어보나.
人生不滿百(인생불만백) 인생은 백 년도 되지 못하니
惜此西日暉(석차서일휘) 오늘 서편으로 지는 햇빛을 아까와하노라.
집 멀리 떠나 여태 돌아가지 못하고
어머니께서 해주신 옷이 다 해졌네.
고향 산으로부터 아득히 멀리 있어
겨레에게 돌아갈 날이 어느 때일지
인생은 백 년도 채우지 못하는데
이 석양빛이 못내 애처롭구나.
위 시는 조선 초기 문사인 춘당(春堂) 변중량(卞仲良·1345~1398)의 ‘길 떠난 자식이 어머니를 그리며 읊다(遊子吟·유자음)’로, 그의 문집인 ‘춘당유고(春堂遺稿)’에 있다.
멀리 있어 고향의 어머니를 모시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노래하였다. 넷째 구의 ‘언귀(言歸)’는 ‘시경(詩經)’ 소아 ‘황조(黃鳥)’의 “언선언귀(言旋言歸) 복아방족(復我邦族)”에서 가져왔다. 즉 “곧바로 돌아가서 우리 겨레에게 돌아가련다”는 뜻이다.
변중량은 고향을 떠나 너무 멀리 와 있음을 밝힌다. 그는 1394년(태조 3) 전중경(殿中卿)으로 있을 때 병조정랑 이회 등과 함께, 정권·병권이 조준 정도전 남은 등에게 다 맡겨진 것은 옳지 못하다는 말을 했다가 파직돼 영해(寧海)로 유배되었으나 곧 복직됐다. 이 무렵 명나라에서 외교문서에 쓰인 글자를 문제 삼아 책임자들을 보낼 것을 요구하자 그는 동행하기를 자진했다. 변중량은 고향을 떠나 천리 먼 곳에서 위 시를 지었다. 인생은 백년을 살지 못하건만 어쩌다 어머니가 지어주신 옷이 다 해졌을 정도로 오래 떨어져 있어야 되는지 서쪽으로 넘어가는 석양을 보며 어머니와 고향을 그리워하는 애달픈 詩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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