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야희우(春夜喜雨) 밤에 내리는 반가운 봄비
好雨知時節 (호우지시절) 좋은 비는 때를 알아서
當春乃發生 (당춘내발생) 올해도 봄이 되니 어김없이 오누나
隨風潛入夜 (수풍잠입야) 야밤에 바람과 함께 내리는 비는
潤物細無聲 (윤물세무성) 소리도 없이 촉촉히 만물을 적시네
野徑雲俱黑 (야경운구흑) 구름 덮인 들길은 칠흑처럼 어두운데
江船火燭明(강선화촉명) 강가 고깃배엔 불이 환히 밝다.
曉看紅濕處(효간홍습처) 새벽녘 붉게 젖은 곳이 어딘가 바라보니
花重錦官城 (화중금관성) 금관성에 꽃이 활짝 피었네.
註.
隨(수); 따르다.
徑(경); 지름길, 길.
俱(구); 함께, 모두, 전부.
曉(효); 새벽.
錦官城(금관성); 지금의 사천성 성도(成都). 지방 특산물인 비단을 관리하는 관리를 둔데서 유래한 말이며 줄여서 錦城(금성) 이라고도 한다.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가 세운 촉나라의 수도였던 곳이다.
어느듯 세월은 입춘이 지나고 봄이오는 길목에 섰습니다.
두보선생이 노래하듯 밤에 내리는 반가운 봄비는 소리없이 조용히 내려 산천을 적시고 잠들어 있는 나무가지를 깨워 꽃을 피우고 움을 튀우겠죠! 이 맘때면 서예를 하거나 한시에 관심있는 분들이면 한번쯤 읊거나 떠오르는 두보의 오언율시 " 춘야희우"를 행서체로 써 보았습니다. 저의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귀한님들 봄을 맞아 늘 행복하고 건강하시길 빕니다.
전란으로 떠돌던 당나라의 두보 선생(杜甫, 712~770)이 가족과 함께 오랜만에 사천성 성도(成都) 초당에서 한가롭게 지내던 시절에 지은 오언율시(五言律詩)다. 두보의 인생 중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라고 할 수 있다.
좋은 비는 때를 알고 내린다! 듣기만 해도 좋은 말이다.
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 비.. 이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 일인가? 때를 맞혀 필요할 때 촉촉히 내려주는 좋은 비 바로 好雨이며 서우(瑞雨)인 것이니 자연과 인간 모두에게 고마운 은혜로운 비인 것이다.
비라고 해서 다 같은 비가 아니다. 비의 종류는 다양하다. 가뭄 끝에 비가 내리면 모든 사람들이 좋아한다. 이 반가운 비를 나타내는 말이 '단비'다. 두보는 봄밤에 내린 단비를 특유의 섬세한 감각으로 '희우'라고 표현했다. 희우와 비슷한 뜻을 가진 것으로 호우(好雨), 감우(甘雨) 등이 있다. 당시 두보는 스스로 농사를 지어 먹거리를 해결했다. 초목이 돋아나고 파종(播種)을 하는 봄철에 내린 단비는 그래서 두보에게 더욱 특별한 의미가 됐었을 것이다. '때 맞춰 내리는 비라는' 뜻의 '급시우'(及時雨)도 단비라 할 수 있다. '급시우'는 수호전(水滸傳) 양산박(梁山泊) 108 호걸의 두령인 송강(宋江)의 별칭이기도 하다. 도움이 절실히 필요할 때 딱 등장하는 인물이 송강이었기 때문이다
두보가 난리를 피해 잠시 성도에 머무르던 곳을 '두보초당'이라 했고 그곳에서 그는 농사를 지으며 지냈다 한다. "春夜喜雨" 지난 겨울이 가물어 걱정하던 와중에 밤사이 내린 봄비에 마른 땅이 해갈을 하니 초목은 윤택하여지고 마음 역시 반가움과 고마움으로 가득 차오름을 잔잔하고 정겹게 묘사하고 있다.
"단비는 시절을 알아차려 봄이 되니 내리네.
바람 따라 살그머니 밤에 들어와 만물을 적시되 가늘어 소리도 없구나.
들길은 구름이 낮게 깔려 어둡고 강 위에 뜬 배만 불빛 비치네.
새벽에 붉게 물든 곳을 보니 금관성에 꽃들이 활짝 피었네."
두보의 고향은 지금의 하남성 鞏義(공의)市(중국 발음 궁이)의 南瑤灣村(남요만촌)에 위치한 두보고리(杜甫故里)다. 하남성 성도인 鄭州(정주; 중국 발음 정저우)에서 중국 여러 왕조의 수도였던 洛陽(낙양; 중국 발음 뤄양) 사이에 있으며, 섬서성을 발원지로 섬서성, 하남성을 흘러 공의에서 황하로 흘러 들어가는 洛水가 공의를 지난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두보의 고향은 백거이의 고향에서 가깝다.
두보는 25살 때인 736년 낙양에서 시행한 과거에 응시하지만 낙방하고는 권문세족의 집을 드나들며 벼슬을 구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744년 양귀비의 미움을 사 장안에서 쫓겨난 李白이 당시 山東의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낙양에 들렀다. 이미 유명 인사였던 이백이 벼슬도 없고 유명하지도 않은 두보를 어떻게 만났는지 모르지만, 실의에 빠져 있던 두 사람은 금세 친해져 하남성과 산동성의 여러 곳을 같이 여행했다고 한다.
詩仙과 詩聖이 같이 여행을 다녔다니, 매일 밤이 요샛말로 ‘詩 Battle’이 아니었을지 모르겠다. 아니 두 사람 다 술을 좋아했으니 ‘술 Battle’이었을까? 두보의 고향 鞏義(공의)에 두보의 기념관이 있다. 이 기념관에는 젊은 두보와 이백이 나란히 손잡고 서 있는 동상도 있다. 위 여행 기간에 맺은 두 사람의 우정을 기념하기 위한 동상이리라.
이백과 헤어진 두보는 746년 당나라 수도인 長安으로 가서 과거에 응시하지만 또 낙방한다. 왜 文才가 그렇게 뛰어난 두보가 과거마다 낙방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장안에서 생활고에 허덕이며 살아가던 두보는 755년에야 과거를 거치지 않고 미관말직이라도 얻게 되어 벼슬길에 나서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안록산의 난이 일어나면서 그의 인생은 다시 한번 꼬이게 된다.
안록산의 난 중에 반군에 체포되었다가 탈출하는 험난한 과정을 거쳐 장안을 회복한 새 황제 肅宗(숙종) 때 46세의 나이에 역시 낮은 벼슬을 얻었다. 하지만 곧 숙종의 눈 밖에 나서 그마저도 유지하지 못하고 지방직으로 나갔다가 결국엔 사직한 후, 759년 절도사 엄무(嚴武)의 도움으로 成都에 정착한다. 성도에 평화롭게 살며 나름대로 행복하게 지내던 4년간 두보는 무려 240여 수의 시를 지었으며, ‘춘야희우’도 바로 이때 지은 詩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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