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思( 가을상념)
洛陽城裏見秋風(낙양성리현추풍) 낙양성에 가을바람 이니
欲作家書意萬重(욕작가서의만중) 집으로 보내는 편지를 쓰려고 붓을 잡으매 할말이 너무 많구나
復恐悤悤說不盡(부공총총설부진) 바삐 쓰느라 빠뜨린 사연은 없는지
行人臨發又開封(행인임발우개봉) 길 떠나는 사람(편지 전달하는 사람)이 출발하기에 앞서 다시 한번 봉한 것을 열어보네
----- 張籍(장적) 출전 : 張司業詩集(장사업시집)----
註.
현(見) : 나타나다.
가서(家書) : 집으로 보내는 편지.
만중(萬重) : 몇 겹이나 겹침,
공(恐) : 염려가 됨.
총총(悤悤) : 바삐 서두는 모양,
부진( 不盡) :끝나거나 다하지 않음
설부진( 說不盡) : 말을 다하지 못하다.
임발(臨發) : 출발할 때가 되어서, 출발 직전.
중국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어 잘 알려진 시다.
시인은 고향에 가족을 남겨 놓은 채 혼자 낙양에 올라와서 벼슬살이를 하고 있었는가 보다.
지금은 여행을 떠나는 것이 즐겁고 마음 설레는 경우가 많지만, 시인이 살던 시절은 전혀 달랐다. 집 떠나는 일은 늘 고생길 이었고, 스스로 떠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귀양길이 아니면 다른 임지의 수령으로 임명 받아 떠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향을 오래 떠나 있다는 것은 시름과 실망이 따를 수 밖에 없는 일이다. 더구나 전화는 고사하고 우편제도도 확립되기 전이었으니 고향집의 식구나 친구들과의 연락은 생각조차 하기 어려웠던 때였다.그런 상황에서 누군가 장안으로 또는 고향으로 가는 사람을 만나 집에 소식을 전할 수 있다는 건 매우 반가운 기회였을 것이다.
가을이 되어 낙양성의 스산한 가을 바람이 불어오니 불현듯 고향과 가족이 떠올랐다, 고향이 그립고 가족들이 보고 싶다. 客愁(객수)가 밀려든다. 집에 편지라도 보내야 겠다. 나이 드신 부모님은 건강하신지, 아이들은 잘 크고 있는지, 농사는 잘 됐는지, 생각은 만 갈래이고 할 말은 많기도 하다.오래 쌓아둔 마음의 소리가 거침없이 술술 쏟아질 법하건만 막상 붓을 드니 겹겹이 떠오르는 상념 때문에 갈피를 잡을 수 없다. 행여 빠트린 말이 없을까 싶어 인편이 떠나기 직전까지도 안절부절못하고 허둥대다. 인편 떠날 즈음 다시 열어 본다 이는 고향에 대한 지극한 그리움 때문이리라. 허나 세상에 할 말 다 하고 부치는 편지가 어디 있던가. 영원히 미완의 소리요, 미완의 마음으로 봉할 수밖에 없는 것을....
요즘은 편지 쓸 일이 없지만 얼마전만 해도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이나 친구의 소식을 묻는 방법은 편지 밖에 없었다. 편지를 주고 받은 사람들은 다 경험해 보았겠지만 혹시 빠뜨린 사연은 없는지 봉투에 봉한 편지도 꺼내어 다시 읽어보고 하였던 기억이 있으리라. 그리고 편지 말미에 "이만 총총"이라는 말로 맺기도 한다, 여기서 이만 총총이란 위 詩의 세번째 구절 復恐悤悤說不盡(부공총총설부진)에서 연유하였다 한다.
위의 시 3·4구는 판소리 춘향가에도 인용되어 우리에게는 낯설지 않은 구절이다.
어사 신분을 감춘채 남루하게 변장한 차림으로 남원을 찾은 이몽룡이 춘향의 서신을 갖고 한양으로 가던 방자더러 편지를 보여달래며 방자를 설득하는 장면에서다
이도령이 ‘옛글에 이르기를 부공총총설부진(復恐悤悤說不盡)하여 행인임발우개봉(行人臨發又開封)이라 하였으니 잠깐 보고 돌려주겠노라’고 하자,
변장한 이도령을 몰라본 방자가 ‘이 자가 몰골은 흉악해도 문자 속은 기특하다’며 편지를 건넸던 것이다.
이도령이 인용할 정도로 이 시는 조선에서도 지명도가 높았고, 또 방자가 그 뜻을 금방 알아들을 만큼 평이한 구어체로 되어있는 것이 특이하다.
이 시는 생활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과 상정(常情)을 소재로 썼는데, 사람마다 말하고 싶었으나 분명하게 말 하지 못한 마음속의 이야기를 대신하여 잘 나타내고 있다. 송나라의 유명한 정치가요 문인인 왕안석(王安石)은 장적의 시를 평가하여 “보기에는 평범한 것 같으나 기발하게 특출하고(看似尋常最奇崛), 쉽게 이루어진 것 같으나 도리어 艱難辛苦(간난신고)를 거친 것이다.(成如容易却艱辛)”하였다.
장적(張籍: 66?∼830) 당나라, 자는 문창(文昌), 안휘성 사람이다. 799년 진사과에 급제하였으며, 한유의 추천으로 國子博士(국자박사)가 되었다. 벼슬이 國子司業(국자사업)에 이르렀다. 그래서 세간에서는 장사업(張司業)이라 부른다. 그 당시의 한유, 맹교, 왕건 등 명사들과 교류하였다.
* 秋思란 제목으로 지어진 漢詩들
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秋思.
秋思(추사) --白居易(백거이)--
夕照紅於燒(석조홍어소), 석양은 타오르는 불보다 붉게 비치고
晴空碧勝藍(청공벽승람). 맑게 갠 하늘은 쪽빛보다 푸르네.
獸形雲不一(수형운부일), 동물 모양 구름은 하나 같지 않고
弓勢月初三(궁세월초삼). 초사흘 달은 활처럼 굽었네.
雁思來天北(안사래천북), 기러기는 북쪽 하늘에서 오니 고향을 생각하게 하고
砧愁滿水南(침수만수남). 물가의 다듬이 소리는 시름이 남쪽에 가득하네.
蕭條秋氣味(소조추기미), 쓸쓸한 이 가을의 맛을
未老已深諳(미로이심암). 늙기도 전에 이미 알아버렸네.
조선선조시대 시인 김효일의 秋思.
원나라 마치원의 秋思.
당나라 시인 유우석의 秋思.
秋思(추사) 가을 생각 --유우석--
自古逢秋悲寂寥 (자고봉추비적료) 예부터 가을은 슬프고 쓸쓸하다지만
我言秋日勝春朝 (아언추일승춘조) 나는 가을날이 봄보다 좋아.
晴空一鶴排雲上 (청공일학배운상) 걷히는 구름을 헤치며 맑은 하늘로 오르는 한 마리 학
便引詩情到碧霄 (편인시정도벽소) 내 시정도 학을 따라 하늘 높이 이른다네.
조선의 여류시인 이옥봉의 秋思.
秋思(추사)가을의 정서 --李玉峯(이옥봉)---
霜落眞珠樹[상락진주수] : 서리가 내린 나무는 진주 같고
關城盡一秋[관성진일추] : 관성에는 하나의 가을이 다하네.
心情金輦下[심정금련하] : 마음은 참으로 금련에서 내리니
形役海天頭[형역해천두] : 몸은 바다위 하늘 근처에 줄서네.
不制傷時淚[부제상시루] : 근심할 때의 눈물 누르지 못하고
難堪去國愁[난감거국수] : 고향 버린 시름 견디기 어렵구나.
同將望北極[동장망북극] : 함께 지키며 먼 북쪽 바라보니
江山有高樓[강산유고루] : 강과 산에 높은 누각이 있구나.
조선시대 문신 유성룡의 秋思.
秋思(추사)가을 생각 ---柳成龍(유성룡)---
端居意不適(단거의불적) 하릴없이 들어앉아 마음은 편치 않고
遠思在關河(원사재관하) 생각은 두고 온 고향산천에 있네
風雨夜來集(풍우야래집) 간밤에 비바람이 몰아쳤으니
滿庭黃葉多(만정황엽다) 고향 뜨락에는 낙엽이 온통 깔렸겠지
懷人旣輾轉(회인기전전) 이리 뒤척 저리 뒤척 그 사람 보고 싶고
况復抱沈痾(황부포침아) 게다가 고질병마저 얻었으니 어찌할꼬
百慮坐纏繞(백려좌전요) 이리 얽히고 저리 설킨 온갖 생각에
心事日蹉跎(심사일차타) 시름시름 날마다 세월만 보내누나
조선의 여류시인 이매창의 秋思.
秋思(추사)--이매창(李梅窓)--
昨夜淸霜雁叫秋(작야청상안규추)어젯밤 찬 서리내려 가을 날씨에 기러기가 울어대니
擣衣征婦焉登樓(도의정부언등루)님의 옷 다듬질하던 아낙네는 누대에 올랐어라
天涯尺素無緣見(천애척소무연견)하늘 끝까지 가신 님은 편지 한 장도 없으니
獨倚危欄暗結愁(독의위난암결수)높다란 난간에 홀로 기대인 채 남모를 시름 그지없어
病中秋思(병중추사) 가을에 병들어--이매창(李梅窓).--
空閨養拙病餘身(공규양졸병여신) : 빈 방에 외로운 병던 이몸
長任飢寒四十年(장임기한사십년) : 외롭고 굶주린 인생 사십년이로다
借問人生能幾許(차문인생능기허) : 묻거니 인생살이 몇 년인가
胸懷無日不沾巾(흉회무일불첨건) : 수건 마를날 없는 마음 속 회포여
조선시대 문관 양사언의 秋思
추사(秋思) ---양사언(楊士彦)---
高煙生曠野(고연생광야) 넓은 들판에 높이 연기 피어오르고
殘日下平蕪(잔일하평무) 지는 해 수평선 아래로 지는구나
爲問南來雁(위문남래안) 남으로 날아온 기러기에게 묻노니
家書寄我無(가서기아무) 혹 나에게 부쳐온 집 편지는 없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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