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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이 있는 한시

竹枝詞(죽지사)

by 까마귀마을 2023. 7. 18.
竹枝詞(죽지사)
 

楊柳靑靑江水平(양류청청강수평) 수양버들 푸르고 강물은 잔잔한데

聞郞江上唱歌聲(문랑강상창가성) 강 위에서 부르는 님의 노래 듣노라

東邊日頭西邊雨(동변일두서변우) 동쪽은 해가 쨍쨍 서쪽은 비가 내리니

道是無晴却有晴(도시무청각유청) 이런 날을 흐리다 하리오 개었다 하리까.

                       ---- 劉禹錫----

註.

道是(도시) : 말하자면...이다


竹枝詞는 樂府詩(악부시 : 한시() 형식으로 인정, 풍속 읊은 으로 글귀 장단 있다) 竹枝란 원래 촉땅, 파유(巴歈 : 巴’는 파군(巴郡) 즉 현재의 중경(重慶 )일대를 가리키고, 歈는 민가(民歌)를 가리킨다.) 지방 일대에 유포된 民歌의 일종으로 동정호나 무협 (巫峽 : 장강長江에 있는 삼협三峽 중 하나) 등 사천성 동쪽 일대에 민간에 떠도는 민요를 말한다.

죽지가 지역의 민요 제목이 된 이유는 옛날 순(舜)임금이 남방을 순수하다가 창오야(蒼梧野)에서 세상을 떠나자 두 부인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이 대나무에 피눈물을 흘리며 서러워하다가 마침내 상수(湘水)에 빠져 죽었다.

이 후 지역민들은 두 여인을 상수의 신(神)으로 받들어 상군(湘君) 혹은 상부인(湘夫人)이라고 일컫고, 이 지역에서 나는 대나무에 그들의 피눈물 흔적을 상징하는 무늬가 있다고 하여 소상반죽(瀟湘斑竹)이라고 하였다. 당시의 동정호 일대에 처량하고 원망 어린 노래가 생겨났는데 이 노래를 상부인의 사정을 기념하는 것이라 하여 죽지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죽지사로 명해진 유우석의 詩는 우석이 동갑인 백거이와 더불어 개혁정치를 펼치다 실패하고 기주자사로 좌천된 적이 있는데 그는 이 지방의 민요를 듣고 흥을 느껴 민요를 채록해 9수의 연작시로 엮고  작품형식으로 재정비하여  제목을 竹枝詞라 불렀다, 이후 죽지사란 제목의 그의 시 두 편이 추가로 발견돼 총 11편이 전해온다. 유우석이 기주자사(夔州刺史)로 있던 장경(長慶) 2년(822)에 굴원(屈原)의 구가(九歌)를 통해 익힌 詩歌를 현지의 민가에 채용하여 쓴 작품으로 전고의 사용을 줄이고 생기 있는 언어를 사용하여 민가적 색채가 진하게 배인 작품이다.

위에 소개한 죽지사는 11수중의 10번째의 首로 이 詩歌는 愛情詩로 유명해서 중국에서 인기가 높은 노래다. 죽지사 시 11首는 이 지역에서 불리는 민요풍의 노래를 모방하여 유우석이 7언 절구로 지은 시로 그 형식, 즉 옷은 7언 절구이지만 그 내용, 즉 몸은 민요라 하겠다. 가령 판소리 춘향전을 듣고 감동한 어떤 양반이 자신이 평소 익숙한 한시로 그 판소리를 옮겼다고 하면 형식은 시이지만 그 실제 내용은 판소리인 것과 같다. 죽지사는 민요이다 보니 기본적으로 남녀의 사랑을 주제로 한 것이 많고 또 풍토나 명승 이런 것을 주로 주제로 삼고있다. 

이후 소식(蘇軾) 황정견(黃庭堅) 양만리(楊萬里) 범성대(范成大) 왕사정(王士禎) 등  많은 문인들이 같은 이름의 작품을 썼다. 말하자면 유우석에 의해 발굴되고 후대의 많은 문객들에 의해 가공되고 창제된 형식이라 할수있다.

청대의 문인이며 화가인 鄭燮(정섭)이 지은  竹枝詞를 보면 비천하고 가난하지만 낭군을 기다리는 소박하고 애틋한 소녀의 정이 아름답게 표현된 애정시이다.

鄭燮의 竹枝詞

湓江江口是奴家(분강강구시노가)  분강의 강어귀에 소녀의 집 있아오니

郎若閑時來吃茶(낭약한시래흘다)  낭군께서 한가하시면 차한잔 하러 오세요

黃土蓄墻茅蓋屋(황토축장모개옥) 진흙으로 담을 쌓고 띠로 이은 집이지만

門前一樹紫荊花(문전일수자형화) 문 앞에는 자형화가 한그루가 활짝 피어 있답니다.(紫荊花 :박태기나무의 꽃. 화목한 형제애를 비유하는 말로도 쓰인다)

(鄭燮 : 자는 극유, 호는 판교. 장쑤 성(江蘇省)양저우(揚州) 사람이다. 이른바 '양주8괴'(양주에서 활동한 8명의 화가)의 한 사람이다. 1736년 44세의 나이로 진사가 되었으며, 산둥(山東) 범현·유현의 지사를 역임한 뒤 1752년 관직에서 물러났다. 평민으로 이루어진  양주8괴 가운데서는 경력이 다양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난·대나무 그림에 특히 뛰어났는데 풍격은 맑은 기운이 넘쳐 흐르지만 강렬한 개성 표현은 결여되어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죽지사는 고려 말부터 부분적으로 실험되었다. 이제현이 유우석의 죽지사를 근거로 소악부를 지었다. 성현(成俔)이 죽지사 10수를 지어 허백당풍아록(虛白堂風雅錄)에 수록하였으며 허난설헌(許蘭雪軒)을 비롯한 여러 문인들의 작품 속에서도 이런 종류의 작품이 간헐적으로 발견된다.

헌난설현의 竹枝詞

家住江陵積石磯 (가주강릉적석기) 우리집은 강릉땅 돌 쌓은 강가에 있어

門前流水浣羅衣 (문전유수완라의) 문 앞 흐르는 물에 비단옷 빨지요

朝來閑繫木蘭棹 (조래한계목란도) 아침이면 한가로이 목란배 매어 놓고

貪看鴛鴦相伴飛 (탐간원앙상반비) 짝지어 나는 원앙새 부럽게 바라보네.

 

조선 후기에 와서 서얼 출신 신유한(申維翰)은 통신사로 일본에 갔을 때에 보고 들은 풍물을 회고하여 일동죽지사(日東竹枝詞) 34수를 지었고, 역관 출신인 조수삼(趙秀三)은 방여승략(方輿勝略)을 보고 82개국의 풍물을 작품화하여 외이죽지사(外夷竹枝詞) 133수를 지었으며.  김해에서 24년 간의 유배생활을 한 이학규(李學逵)는 김해의 풍물과 토속을 읊은 「금관죽지사(金官竹枝詞)」 30수를 지었다. 

개화파의 인물인 이유원(李裕元)은 청나라 때의 직공도(職貢圖)를 보고 30개국의 풍물을 작품화하여 이역죽지사(異域竹枝詞) 30수를 지었다.  한말의 서리 출신인 최영년(崔永年)은 사화(史話)와 민간 풍물(風物)을 다양하게 작품화하여 560수에 달하는 장편의 해동죽지사(海東竹枝詞)를 지었다.

 

위의 시 유우석의 죽지사는 초여름 풍경을 배경으로 봉절 지역의 기후와 여인의 애정 심리를 복합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동정호나 무협일대에는 안개가 자주 끼어 해가 났다가 금방 비가 오고 또 금방 구름이 걷히는 등 날씨가 변화무쌍하다. 남자에 대한 젊은 여인의 내면 심리가 복잡 미묘하여 맑다가 흐리는 하루에도 몇번씩 변하는 날씨에 비유하여 님의 노래를 듣는 여인의 심리와  결합하여 나타내고 있다. 이런 시는 그 지방에서 직접 듣거나 불러 보면 정말 각별하지 않을까?

특히 맑다는 의미의 ‘청(晴)’과 애정을 뜻하는 ‘정(情)’이 중국어로 동음 qíng인 것을 이용하고 있는 것은, 그 앞에 굳이 ‘무(無)’ 자를 통해 작자의 의도가 드러난다. 정(情)으로 읽게 되면 “마음이 없다고 해야 할지 있다고 해야 할지”라는 뜻이 되는데, 이것 역시 노래 부르는 남자가 나에게 마음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의 의미도 되고, 그 남자에 대해 여인이 ‘마음이 없다고 해야 할지 있다고 해야 할지’ 의 의미도 되어, 아주 풍부하고 미묘한 의미가 생겨난다.

이런 면에서 이 詩는 한문으로 된 시를 우리말로 옮기기도 어렵고 한시를 이해하는데 한계를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단어상 느껴지는 일차적 의미 보다는 발음을 이용하여 복합적인 의미와 미묘한 맛을 전달하는 것이 이 시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본래 널리 지속적으로 불리는 민요는 여러 사람의 공감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전달하는 내용이 확실하고 그 소재가 마음에 와 닿아야 하며 가락도 구성진 것이 많다. 유우석이 지은 이 시는 지방의 시가를 아주 세련되게 하면서도 그 詩歌가 지니고 있는 고유한 특질은 그대로 잘 옮겨왔음을 볼수있다.

 

*굴원의 구가(九歌)는 모두 11편으로 되어 있으며, 내용과 형식에서 중국 남방 지역의 무속적 분위기를 흠씬 느끼게 하는 전형적인 무가(巫歌)이다. 우선 구가는 영매(靈媒)인 무가 등장하여 동황태일(東皇太一), 운중군(雲中君), 상군(湘君), 상부인(湘夫人), 대사명(大司命), 소사명(小司命), 동군(東君), 하백(河伯), 산귀(山鬼)의 아홉 신을 불러내서 제사를 지내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무가 신을 불러내는 초혼(招魂)의 과정이 마치 남녀가 연애하는 듯한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어 매우 낭만적이다. , 남신을 부를 때에는 여자 무당이, 여신을 부를 때에는 남자 무당이 상대를 즐겁게 하여 강림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아래 죽지사 11수를 전부 올립니다, (죽지사 11首중 10, 11수는 유우석이 따로 지은 2수를 첨가한 것임.)

 

竹枝詞并(죽지사병인) 죽지사서문과 함께

 四方之歌, 異音而同樂, 歲正月, 余來建平, 里中兒聯歌竹枝, 吹短笛, 擊鼓以赴節. (사방지가, 이음이동악, 세정월, 여래건평, 이중아연가죽지, 취단적, 격고이부절).

도처의 노래들이 소리는 달라도 모두가 같은 음악인데 이 해 정월에 내가 건평에 왔을 때 마을 아이들이 대나무 피리를 불고 북을 두드리듯 부절로 박자를 맞추며 죽지란 노래를 연창하고 있었다.

 

歌者揚袂睢舞, 以曲多爲賢. 聆其音, 中黃鐘之羽, 其卒章激訐如吳聲, 雖傖儜不可分, 而含思宛轉, 有淇濮之艶.(가자양몌수무, 이곡다위현. 영기음, 중황종지우, 기졸장격알여오성, 수창녕불가분, 이함사완전, 유기복지염.)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은 펄럭이는 소매를 바라보며 춤을 추는데 노래를 많이 부르는 사람이 노래를 잘하는 사람인 듯했다.

소리를 들어보니 아악 중의 우성처럼 격앙되는 데가 있었는데 노랫말이 낭랑한 것이 오나라 소리를 닮기는 했지만 오와 초의 소리를 분간할 수 없었고 구성진 소리를 내는 데서는 기복 지방의 연가와 같은 소리도 있었다.

 

昔屈原居湘沅間, 其民迎神, 詞多鄙陋, 乃爲作九歌, 到於今荊楚鼓舞之.(석굴원거상원간, 기민영신, 사다비루, 내위작구가, 도어금형초고무지.)

옛날에 굴원이 상수와 원수 사이에서 지낼 때 그곳 사람들이 영신굿을 하면서 부르는 천박한 소리를 듣고 구가를 지었는데 형초의 사람들이 지금도 그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있었다.

 

故余亦作竹枝詞九篇, 俾善歌者颺之, 附於末, 後之聆巴歈, 知變風之自焉. (고여역작죽지사구편, 비선가자양지, 부어말, 후지령파유, 지변풍지자언.)

그래서 내가 새로 죽지사 아홉 편을 지어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을 시켜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게 하고 구가의 뒤에 덧붙여 나중에 파군 사람들이 노래를 부를 때 변풍의 유래를 알 수 있게 하였다.

 
註.

歲正月(세정월): 장경長慶 2년(822) 정월을 가리킨다. 유우석은 장경 원년 겨울에 기주자사(夔州刺史)로 부임했다.

建平(건평): 지명. 삼국시대 때 오나라가 군郡으로 설치했으며 수나라 때 무산현(巫山縣)이 되었다.

睢(수): 올려다보는 것을 가리킨다.

激訐(격알): 소리가 맑고 듣기 좋은 것을 가리킨다.

淇濮(기복): 주周나라 때 위衛나라에 있던 기수(淇水)와 복수(濮水0를 가리킨다. ‘淇濮之艶’이란 시경(詩經)에서 말하는 정위지음(鄭衛之音) 즉 남녀간에 사랑을 노래한 연가를 가리키는데, 파투(巴渝) 지역의 민가 역시 남녀의 애정을 노래한 것이 많은 것을 뜻한다.

俾(비): ‘使’와 같다.

巴歈(파유): ‘巴’는 파군(巴郡), 즉 현재의 중경重慶 일대를 가리키고, ‘歈’는 민가(民歌)를 가리킨다.

變風(변풍): 세상이 어지러울 때 바르고 차분한 노래들이 사라지고 그와는 다른 노래들이 불리는 것을 가리킨다. 모시서毛詩序에서 ‘至於王道衰, 禮義廢, 政敎失, 國異政, 家殊俗, 而變風變雅作矣'(왕도정치가 쇠하고 예의가 버려지고 정치와 종교가 오염되고 제후국들이 저마다의 정치를 내세우고 집집마다 풍속이 달라지는 변풍(變風) 변아(變雅)의 기풍이 생겨났다).라고 했다.

 
其一

白帝城頭春草生 (백제성두춘초생) 백제성 성벽 위에 봄 풀 생기고

白鹽山下蜀江淸 (백염산하촉강청) 백염산 아래 촉강은 맑기도 해라

南人上來歌一曲 (남인상래가일곡) 남쪽사람은 올라와 노래 부르는데

北人莫上動鄕情 (북인막상동향정) 북쪽사람은 산 밑에서 고향 그리네

 

註.

白帝城(백제성): 성 이름. 중경시重慶市 봉절현奉節縣 동쪽 백제산白帝山 위에 있다. 성 밑에 구당협瞿塘峽의 입구인 기문夔門이 있다. 동한東漢 초에 공손술公孫述이 성을 쌓았는데 공손술이 자호를 백제白帝론 쓴 까닭에 성 이름이 되었다. 삼국시대에 촉한의 유비劉備가 오나라 육손陸遜에게 패한 후 이곳에 머물다가 성 안의 영안궁永安宮에서 세상을 떴다.

動情(동정): 감정이 격동하다

鄕情(향정): 고향에 대한 감정

 
其二

山桃紅花滿上頭 (산도홍화만상두) 산복숭아 뷹은 꽃 산마루에 가득하고

蜀江春水拍山流 (촉강춘수박산류) 촉강의 맑은 봄물 산을 치며 흘러가는데

花紅易衰似郞意 (화홍이쇠사랑의) 쉬 시드는 붉은 꽃 님의 마음 같고

水流無限似儂愁 (수류무한사농수) 쉬지 않고 흐르는 물 내 시름을 닮았네

 

拍(박): 물결이 치는 모양

儂(농): 나(고대의 시문에서 자주 사용)

 
 
其三

江上朱樓新雨晴 (강상주루신우청) 강 위에 붉은 누각 오던 비 개고

瀼西春水縠文生 (양서춘수곡문생) 양수 서쪽 봄 물결 무늬 고아라

橋東橋西好楊柳 (교동교서호양류) 다리 동서 양쪽에 버들 한창인데

人來人去昌歌行 (인래인거창가행) 오가는 사람들 노래하며 길 떠나네

 
註.

瀼西(양서): 지명(지금의 중경시重慶市 보절현奉節縣 양수瀼水 서쪽 기슭). 육유陸游의 《입촉기入蜀記》에 ‘土人謂山間之流通江者曰瀼云(이 지방 사람들은 산간에서 흐르는 물이 강으로 통하는 물을 양瀼이라고 한다’라고 적고 있다.

縠文(곡문): 물결이 만들어내는 무늬

 
 
其四

日出三竿春霧消 (일출삼간춘무소) 해 뜨고 한참 지나 봄 안개 걷히고

江頭蜀客駐蘭橈 (강두촉객주란요) 강에는 촉으로 가는 사람 실은 배가 서있네

凭寄狂夫書一紙 (빙기광부서일지) 이름 없는 지아비에게 짧은 편지 써 보내며

家住成都萬里橋 (가주성도만리교) 청두의 만리교 옆 우리 집 알려줬네

 
註.

日出三竿(일출삼간): 해가 뜬 뒤 한참 지난 시간을 가리킴.

蘭橈(란요): 작은 배의 미칭美稱이다. 이때의 ‘난蘭’은 목란수木蘭樹를 가리키는데 두란杜蘭, 임란林蘭이라고도 쓴다. 고시에서는 항상 난주蘭舟, 난장蘭槳, 난요蘭橈 등을 쓰는데 모두가 일종의 미칭일 뿐 반드시 목란목을 사용했다는 뜻은 아니다.

萬里橋(만리교): 만리교. 청두成都의 성 남쪽에 있다. 촉한蜀漢의 비위費褘가 사신이 되어 오吳나라로 갈 때 이 다리에서 ‘萬里之行, 始于此橋(만 리 길이 이 다리에서 시작된다).’고 한 데서 이름이 생겼다고 전한다.

 
 
其五

兩岸山花似雪開 (양안산화사설개) 양쪽 기슭 산꽃은 눈이 열린 듯하고

家家春酒滿銀杯 (가가춘주만은배) 집집마다 봄 술은 은잔에 가득하네

昭君坊中多女伴 (소군방중다녀반) 왕소군 난 마을은 짝할 여인 많은데

永安宮外踏靑來 (영안궁외답청래) 영안궁 밖으로 산보하러 나온다네

 
註.

坊(방): 골목. 시가. 점포.

女伴(여반): 여자반려자. 여자친구.

永安宮(영안궁): 백제성 안에 있는 궁 이름.

踏靑(답청): 청명절(음력 3월의 절기) 전후에 교외로 나가 산보하는 것(靑=靑草)

 

其六

城西門前灩澦堆 (성서문전염여퇴) 봉절성 성문 앞에 염여퇴가 있는데

年年波浪不能摧 (연년파랑불능최) 해마다 물결 맞고도 무너지지 않네

懊惱人心不如石 (오뇌인심불여석) 번뇌 많은 사람 마음 돌 같지 않아서

少時東去復西來 (소시동거부서래) 어려서는 동쪽서쪽 오락가락했다네

 

註.

灩澦(염여): 장강長江 구당협瞿塘峽 입구의 위험한 여울로 스촨성四川省 봉절현奉節縣 동쪽에 있다. 원래는 강 안쪽에 큰 바위가 있었는데 1958년에 항해로를 정비하면서 폭파했다. 음여퇴淫澦堆, 유예퇴猶豫堆, 영무석英武石, 연와석燕窩石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렸던 곳이다.

懊惱(오뇌): 번뇌. 맘에 걸리다.

城西門(성서문): 봉절성奉節城 서문

 
 
其七

瞿塘嘈嘈十二灘 (구당조조십이탄) 구당협에 시끄러운 열두 여울 있어서

人言道路古來難 (인언도로고래난) 사람들 예부터 어려운 길이라 하던 곳

長恨人心不如水 (장한인심불여수) 한이 오랜 사람 맘은 물과 같지 않아서

等閑平地起波瀾 (등한평지기파란) 공연히 평지에 풍파를 일으키네

 
註.

瞿塘(구당): 장강長江에 있는 삼협三峽 중 하나인 구당협

嘈嘈(조조): 떠들썩하다. 시끌벅적하다.

等閑(등한): 공연히. 까닭 없이.
 
 
其八

巫峽蒼蒼烟雨時 (무협창창연우시) 망망한 무협에 안개비 내릴 때

淸猿啼在最高枝 (청원제재최고지) 가장 높은 가지에서 원숭이 우네

個裏愁人腸自斷 (개리수인장자단) 이 중에 시름겨워 애가 닳는 이

由來不是此聲悲 (유래불시차성비) 그게 어디 원숭이 울음 때문이리

 
註.

巫峽(무협): 장강長江에 있는 삼협三峽 중 하나

蒼蒼(창창): 광활하다. 망망하다.

淸猿(청원): 원숭이. 우는 소리가 처량(처청淒淸)하여 생긴 이름이다.

 
 
其九

山上層層桃李花 (산상층층도리화) 산에는 층층이 복사꽃과 오얏꽃 피고

雲間烟火是人家 (운간연화시인가) 구름 사이로 연기 올라 사람 사는 곳

銀釧金釵來負水 (은천금차래부수) 여인은 우물에서 물 길어 지고 오고

長刀短笠去燒畬 (장도단립거소사) 남정네는 산으로 가 불 질러 밭 일구네

 

註.

銀釧金釵(은천금차): 은팔찌와 금비녀, 즉 여인의 장식물.

負水(부수): 물을 긷다.

長刀短笠(장도단립): 긴 칼과 짧은 삿갓, 즉 남정네들에게 필요한 것을 가리킨다.
 
 
其十

楊柳靑靑江水平 (양류청청강수평) 버들은 푸르고 강물은 잔잔한데

聞郞江上唱歌聲 (문랑강상창가성) 강가에서 그대의 노랫소리 듣네

東邊日頭西邊雨 (동별일두서변우) 동쪽에 해 뜬 채로 서쪽에 비 내리지만

道是無晴卻有晴 (도시무청각유청) 이런 날을 흐리다 하리오 개었다 하리까.

 
 
其十一

楚水巴山江雨多 (초수파산강우다) 초 땅과 파 땅에는 비가 많이 내리고

巴人能唱本鄕歌 (파인능창본향가) 파인들은 능숙하게 고향 노래 부르네

今朝北客思歸去 (금조북객사귀거) 북에서 온 길손 아침부터 돌아갈 생각이라

回入紇那披綠羅 (회입흘나피녹라) 돌궐로 돌아가면 푸른 망토 걸치겠지

 
註.

紇(흘): 회흘, 즉 돌궐을 가리킴.

羅(나): 망토(= 피견披肩)

 

 

유우석劉禹錫 [772~842]

당조(唐朝)의 저명한 시인이다. 소주(蘇州) 가흥(嘉興 지금의 저쟝성(浙江省)에 속함) 사람이고 자는 몽득(夢得)이다. 선조가 북방에서 왔으며 스스로 중산(中山:지금의 허베이성(河北省) 정주시定州市) 출신이라 했다. 정원(貞元) 9년(793)에 유종원(柳宗元)과 함께 진사가 되었다. 백거이는 그를 시호(詩豪)라고 칭했으며, 태자빈객(太子賓客)을 지낸 까닭에 사람들이 유빈객(劉賓客)이라고 불렀다. 만년에 검교예부상서, 비서감 등의 빈 직함을 가진 적도 있어서 비서유상서(秘書劉尙書)라고도 불렀다. 유작으로 누실명(陋室銘)죽지사(竹枝詞)가 특히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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