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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취미 생활/한문서예

覆水不返盆 落花不返枝

by 까마귀마을 2023. 7. 8.

 

 
覆水不返盆(복수불반분)
落花不返枝(낙화불반지)
엎질러진 물은 다시 그릇에 담을 수 없고
떨어진 꽃잎은 다시 가지로  되돌아  갈수 없다.

覆水不返盆의 유래는 강태공과 그의 부인 馬씨의 일화로 원래 부부관계가 한번 깨어지면 회복하기 힘들다는 뜻으로 "습유기"에 나오는 말이다. 이 후 그 뜻이 확대되어 더 이상 바로잡기가 어렵거나 만회 할수 없는 상황을 이르는 말로 쓰여지고 있다.
覆水不返盆(복수불반분)은 落花不返枝(낙화불반지 : 떨어진 꽃잎은 가지로 되돌릴 수 없다)와 대구로 쓰게 되면 그 뜻이 더 명확해진다.
비슷한 뜻으로 이백의 오언 詩, "代別情人"에 覆水不可收 行雲難重尋 (복수불가수 행운난중심 : 엎지른 물은 다시 거둘 수 없고, 가버린 구름 거듭 찾기 어렵다)이란 구절이 있다. 이백이 지은 代別情人의 詩에 실려있는 覆水不可收 行雲難重尋. 이 구절이 최근에는 조선 선조때의 우홍적이 지은 老人頭上雪 春風吹不消 (노인두상설 춘풍취불소)연구와 결합하여 늙은이가 지나간 젊음을 그리워하고 아쉬워하며 다시 돌아올수 없는 청춘을 탄식하는 詩로 인용되어 세간에 회자 되기도 했다.

 
流水不復回(유수불복회)  흘러간 물은 돌아오기 어렵고
行雲難再尋(행운난재심) 떠도는 구름은 다시 보기 어렵다    
老人頭上雪(노인두상설)  늙은이의 머리 위의 흰눈은      
春風吹不消(춘풍취불소)  봄바람이 불어와도 녹지를 않네.
 
* 老人頭上雪 春風吹不消의 두 구절은 조선 선조때 우홍적(禹弘績)이  7살때 지은 詩로 어느날 어떤 노인이  老(늙을 로)자와 春(봄 춘)자를 주며 聯句(연구)로 시를 하나 지어 보라고 하니, 우홍적은 즉석에서
"늙은이 머리 위에 내린 흰 눈은  봄바람 불어와도 녹지를 않네(老人頭上雪,春風來不消)."라고 지었다 한다.
여러 사람들이 모두 기특하게 여겼는데, 식자는 그가 요절할 것임을 은연중에 알았다고 한다.
이후 친구 정상의(鄭象義)가 영숭전(永崇殿) 참봉(參奉)이 되어 기도(箕都)에 부임할 때, 우홍적이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주었다. ( 箕都(기도), 西都(서도)는 평양의 별칭이다, 사명대사의 시중 제목이 過西都(과서도), 再過箕都(재과기도)가 있다, 이는 모두 평양을 지나다이다.)
정건(鄭虔)같은 재주로 이름난 지 삼십 년
가을바람에 필마로 서관(西關)을 향하네.
패강에 가득한 시름 상의(象義)를 범하는데
흰구름 천 리, 한남산(漢南山)이여.

*정건(鄭虔) : 당대(唐代)의 산수(山水) 명화가. 미관말직의 신분으로 두보(杜甫)와 우정을 나눈 사이로서, 당 현종(唐玄宗)으로부터 시(詩),서(書),화(畵)의 삼절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 서관(西關) : 황해도와 평안도를 통틀어 이르는 말.

* 한남산(漢南山) : 서울의 남산

아무도 이 시의 뜻을 아는 사람이 없었는데, 평양에 도착한지 오래지 않아 그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으니 당시에 시참으로 여겼다.( 詩讖 (시참) :특별한 생각 없이 지은 시가 신기하게도 뒷일과 꼭 맞는 것) 우홍적은 진사로 장원급제 했지만 부모를 위해 난리에 죽어서 당시 사람들이 매우 애석하게 여겼다. 이 이야기는 <삼강행실三綱行實>에 실려 있다.

 

*습유기(拾遺記)는 
중국 동진의 왕가가 지은 책으로, 총 10권 220편으로 되어 있다. 주울 습(拾), 전할 유(遺), 기록할 기(記)로 풀어보면 습유기는 주워서 전하는 기록이라는 뜻이다. 즉, 중국에 숨겨진 여러 가지 전설을 모아서 만들어진 지괴서(志怪書)이다. 원래 삼황오제에서부터 서진(西晉) 말, 석호(石虎)의 이야기까지 쓰여졌다. 하지만, 원본은 없어졌고, 현재 한위총서(漢魏叢書)에 수록되어 있는 내용은 양(梁)나라 소기(蕭綺)가 다시 편찬한 결과물이다. 깨끗한 문장을 많이 사용했지만, 내용은 기괴하고 음란한 이야기가 많다. 여기 나온 이야기들은 모두가 사실은 아니라고 전해진다.

 
覆水不返盆의 유래
주(周)나라 시조인 무왕의 아버지 서백, 창이 사냥을 나가기 전에 점을 쳤더니 " 얻는 것은 용도 이무기도 아니며 호랑이도 곰도 아니다, 패왕의 보좌를 얻게 될것이다"는 점괘가 나왔다. 서백은 사냥을 나갔다가 渭水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는 80세의 초라한 노인을 만나게 되는데 이 노인을 스승으로 삼고 太公望 (태공망 : 태공이 오랫동안 바랐던 사람이라는 뜻) 이라 칭했다.
이 노인이 주나라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을 도와 은(殷)나라 주왕(紂王)을 몰아내는데 큰공을 세우게 되고 후에 齊나라의 시조왕이 된 태공망(太公望) 여상(呂尙)으로 궁팔십 달팔십(窮八十達八十 : 80살을 기점으로 그 전까지는 궁하게 지내다가 그 이후로 팔자가 펴이게 되었다는 뜻) 이라는 고사를 남긴 주인공이자 낚시꾼(釣人)의 대명사가 된 강태공이다. 
강태공은 원래의 성이 여(呂)씨이고 이름은 상(尙)인데, 강태공이라 불리게 된 것은 어머니쪽 성이 강씨이고 첫아들을 태공이라 불렀기 때문에 붙혀진 이름이다. 그 당시에는 자식들이 어머니의 성을 따라 소속이나 신분을 밝히는 풍습이 있었는데, 쉽게 말하자면 강태공은 강씨 어머니의 첫째 아들이라는 뜻이다.
 
강태공이 아직 벼슬하지 아니하였을 때다. 그의 아내 마씨(馬氏)는 남편이 학문에만 열중하고 가정을 돌보지 않는데 반발하여 집을 나가 버렸다.
그 뒤 강태공이 문왕에게 등용되어 공을 세우고 제나라 왕이 되자 마씨가 강태공 앞에 다시 나타나 거두어 줄 것을 청했다. 그러자 그는 물 한 동이를 길어오게 하여 마씨에게 그 물을 땅에 쏟게 한 뒤 다시 담아 보라고 했다. 물론 마씨는 담지 못했다. 이에 강태공이 말하기를 "그대는 이별했다가 다시 결합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는 없노라" 
若能離更合 覆水定難水(약능이경합 복수정난수)고 했다. 마씨를 다시 아내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이다. "엎질러진 물은 다시 그릇에 담을 수 없다"는 말은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비슷한 얘기가 한(漢) 무제 때 승상을 지낸 주매신(朱買臣)의 인생 역정에서도 모습을 드러낸다. 대기만성(大器晩成)형의 입지전적 인물의 상징과도 같은 매신이 입신하기 전, 그러니까 40대 때의 일이다.
매신은 땔감을 해 내다 팔아 겨우 입에 풀칠을 하는 정도의 궁핍한 삶을 살았다. 그러면서도 책 읽기를 좋아해 비가 와서 곡식 멍석이 빗물에 둥둥 떠다니는데도 깨닫지 못했다고 한다. 독서삼매에 빠져 그랬는지, 집안 일에 무관심해서 오불관언(吾不關焉 : 나는 상관하지 아니함)으로 일관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런 남편과 사는 아내는 오죽했으랴. 사서에는 그의 아내가 이런 꼴을 참다못해 집을 나가버리는 '악역'으로 등장한다. 나이 마흔 넷이 부족해 오십이 되면 출세할테니 조금만 더 참아달라는 말에 아내는 더 이상은 이렇게 살수없다고 절망하며 남편의 곁을 떠났으리라 여겨진다.
훗날 엄조(嚴助)라는 사람이 매신을 무제(武帝)에게 추천하여 중대부(中大夫)로 임명되었고 나중에 회계(會稽)의 태수로 승진하였다. 매신이 태수(太守)로 부임하는 길에 고향인 오현(吳縣)을 지나게 되었다. 관리들이 그를 영접하기 위해 주민을 동원해 길을 쓸게 했다. 거기에 재혼해 이미 다른 사람의 부인이 되어 버린 그의 아내도 끼어 있었다.
신임 태수가 매신임을 알게 된 순간 그의 아내가 얼마나 놀라고 당황 했으리라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아내가 매신을 찾아와 용서를 구하며 다시 거두어줄 것을 청했다. 그러자 매신은 물 한 동이를 가져오게 해 수레 앞에 쏟은 뒤 그 물을 다시 동이에 담을 수 있다면 재결합하겠다고 말했다. 엎질러진 물을 어찌 담을 수 있단 말인가. 부끄러움과 자책으로 괴로워하던 그의 아내는 그 길로 목을 매고 말았다 한다.
 
비슷한 뜻으로 쓰이는 성어들로는
복배지수(覆杯之水) : ‘엎질러진 물'이라는 뜻이다. 
복수불수(覆水不收)와 복수난수(覆水難收)는 한 번 벌인 일은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또는 한 번 헤어진 부부나 친구는 다시 결합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이발지시(已發之矢)는 이미 쏜 화살이라는 뜻이다.

 

이백의 詩 
代別情人(대별정인) – 대신하여 사랑하는 사람 이별 읊으며


清水本不動 (청수본부동) 맑은 물은 본래 움직이지 않고
桃花發岸傍 (도화발안방) 복사꽃은 언덕 낭떠러지에 피었네
桃花弄水色 (도화롱수색) 복사꽃 물빛에 장난치고
波蕩搖春光 (파탕요춘광) 물결 움직여 봄빛 흔드네
我悅子容豔 (아열자용염) 나는 그대 얼굴 고와 기쁘고
子傾我文章 (자경아문장) 그대 내 문장에 마음 기울이네
風吹綠琴去 (풍취록금거) 바람불어 綠綺琴소리 실어가고
曲度紫鴛鴦 (곡도자원앙) 곡조는 보라빛 鴛鴦이네。
昔作一水魚 (석작일수어) 예전에 한 물에 사는 물고기였는데,
今成兩枝鳥 (금성량지조) 이제는 다른 가지 위 새 되었네
哀哀長雞鳴 (애애장계명) 몹시 슬픈데 길게 닭 울고,
夜夜達五曉 (야야달오효) 밤마다 새벽 오경에 이르네。
起折相思樹 (기절상사수) 일어나 相思樹 가지 꺾어,
歸贈知寸心 (귀증지촌심) 돌아와 주며 작은 뜻 알리네。
覆水不可收 (복수불가수) 엎지른 물 거둘 수 없고
行雲難重尋 (행운난중심) 가버린 구름 거듭 찾기 어렵네。
天涯有度鳥 (천애유도조) 하늘 끝 지나는 새 있으니,
莫絕瑤華音 (막절요화음) 옥같이 아름다운 소식 끊기지 말기를。
                    -----李白----

相思樹 : 운주 수창현 서구성에 청릉대가 있는데, 戰國時代(BC480~BC222) 宋나라 宋康王이 韓憑(=韓朋)을 시켜 축조하였다. 宋康王은 韓朋의 아내 何氏를 탐하여 韓朋에게 青陵台를 지으라 하고 何氏를 취하자 韓朋이 죽게 되고, 何氏도 遺書를 남기고 自決한다. 宋康王은 두 사람의 무덤을 따로 썼는데, 각각의 무덤에서 자란 나무가 서로 엉키어 相思樹가 되었고, 또 그 나무에 韓朋鳥라는 원앙 같은 새가 있어, 늘 그 나무에 깃들어, 아침저녁으로 슬피 울어 사람들이 이 새를 韓朋夫婦의 영혼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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