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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취미 생활/한문서예

烏衣巷(오의항)

by 까마귀마을 2023. 7. 12.

 

 

 烏衣巷(오의항) 검은 옷을 입은 마을

 

朱雀橋邊野草花(주작교변야초화) 주작교 언저리에 온갖 들꽃 피었는데

烏衣巷口夕陽斜(오의항구석양사) 오의항 입구에는 석양이 비껴 있네

舊時王謝堂前燕(구시왕사당전연) 그 옛날 왕도(王導)와 사안(謝安)의 집에 드나들던 제비들

飛入尋常百姓家(비입심상백성가) 이제는 백성의 집에 예사로이  날아드네

                      ------劉禹錫----


註.

烏(오) : 까마귀. 검다. (까마귀는 몸 전체가 검은색이기 때문에 눈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하여 까마귀는 새이면서도 눈을 표시하지 않는 새가 되었다. 새 조(鳥)자에서 한 획만 뺀 것이다.)

烏衣巷(오의항) : 검은 옷을 입는 동네. 동진의 수도였던 金陵(금릉)에 있는 마을로 江蘇省江寧縣(강소성 강녕현) 남쪽에 있다.  東晉(진) 나라 때 王導(왕도)와 謝安(사안) 등 귀족들이 살았던 호족들의 주택 밀집지역 이었다. 王導(왕도)와 謝安(사안) 두집 사람들이 늘 검은 옷을 입었기 때문에 烏衣巷(오의항)으로 불리었다는 설이있고 삼국시대 오나라 군대가 이곳에 주둔 했는데 이 병사들이 모두 검은 옷을 입었기 때문에  烏衣巷 이라는 이름이 생겨 났다고도 한다. 오의항은 말하자면 理想鄕(이상향)과 같은 곳이라 할 수 있다. 白居易(백거이, 白樂天백낙천)가 읊은 ‘朱陳村(주진촌)’도  이와 비슷하니, 주진촌은 강소성 徐州(서주)에 있으며 주씨와 진씨의 두 성씨만이 살면서 세상과는 통하지 않고 대대로 서로 혼인하며 살아가는데, 武陵桃源(무릉도원)처럼 깊숙하고  평화로운 마을이라는 것이다.

巷(항) : 골목.

朱雀橋(주작교) : 六朝시대 (오, 東晉, 송, 제, 양, 陳,)도성 이었던 금릉의 남문 밖에 있는 다리.

花(화) : 피어나다 (동사로 쓰임)

尋常百姓(심상백성) : 평민, 일반백성.

 

826년 유우석은 허저우자사(和州刺史, 지금의 안후이성 허현(安徽省和县)로 있다가 낙양에 돌아가는 길에 금릉(지금의 난징)을 지나며 옛일을 추억하는 시 5편을 썼고 전체의 이름을 金陵五题(금릉오제)라 붙였다, 5편의 시 두번째 시가 衣巷(오의항)이다, 세월의 무상함을 읊은 유우석의 회고시 중에서 최고의 명품으로 꼽히는 시다.( 금릉오제 5편의 詩는 아래 별도로 올립니다)

후한() 멸망 이후 () 통일까지 지금 난징(南京) 도읍한 여섯 왕조 六朝 (()· 동진()· ()· ()· ()· () )시대 도읍으로 삼았던 金陵( 금릉 : 南京의 옛이름)은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듯한 권력의 중심이었고 풍요로운 도시였다. 화무십일홍이라 했든가? 왕후장상이 몰려살던 대궐같은 집들은 세월속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奇花瑤草(기화요초)가 다투어 자태를 뽐내던 주작교 주변에는 잡초만 우거져 있고 高臺廣室(고대광실)이 즐비하던 오의항에는 해가 기울어 더욱 쓸쓸하다. 그 옛날 세도가의 집에서 살던 제비들이 오늘날에는 무지렁이 백성들 집에도 예사롭게 날아든다. 귀족들의 시대는 가고 만 백성들을 위하는 시대가 왔음을 제비를 통해 암시한다. 

시인은 상전벽해의 엄청난 변화에 대한 무상함을  감탄하고 있지만 역사는 끊임없이 한 방향으로 발전한다. 일시적인 반동이 있을지라도 민초들이  주인이 되는 세상으로 ....

 

금릉오제에 관해서는 古今詩話(고금시화)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한 번은 원진(元稹)‧ 유우석(劉禹錫)‧ 위초객(韋楚客) 세 사람이 백거이(白居易)의 집에 모여 이야기를 하다가 금릉회고(金陵懷古)를 언급하였고, 이에 이를 시제(詩題)로 정하여 시를 짓게 되었다. 짧은 시간에 유우석이 시를 다 쓰자 백거이가 말하기를 “네 사람이 흑룡을 찾아 나섰는데 그대가 먼저 구슬을 얻었으니, 나머지 비늘과 물고기들은 어디에 쓰겠는가?” 

하니, 나머지 사람들이 시 짓기를 그만두었다. 유우석의 금릉오제가 여의주를 얻은 작품이 되었고, 다른 사람들 작품은 다만 비늘 한 개, 발톱 하나를 얻었을 뿐이라는 말이다. 이것이 훗날 문단의 가화(佳話)가 되었다.

 

오의항 시는 암시법을 사용하였는바, 경어(景語)이면서 또한 정어(情語)이기도 하여 의미상 쌍관(雙關)을 이룬다. 앞의 두 구는 대구(對句)이면서 제목을 드러내었다. 오의항 근처 주작교는 동진시대(東晉時代) 왕도‧사안 두 거족(巨族)이 거주하던 곳으로, 당시에는 번화한 지역이었지만 오래지 않아 지금처럼 몰락해버렸다. 그리고 보이는 것은 ‘野草花(야초화)’와 ‘夕陽斜(석양사)’뿐이다. 뒤의 두 구는 예전의 왕도‧사안의 집 앞을 날던 제비가 지금은 평범한 백성의 집으로 날아 들어가는 것을 썼는데, 이는 왕도‧사안의 집안 자제들이 지금은 몰락하여 일반 백성이 되었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중의적인 의미가 담고 있다

 

* 왕도(王导) : 동진 정치가, 서예가. 자는 무홍(茂弘), 개국공신(開国元勋). 동진이 중흥하게 만든 유명한 대신중의 으뜸이 되는 사람이다. 서예를 잘했는데 특히 행초를 제일 잘 썼다. 여러 난을 평정하고 선후로 황제 몇분을 모셔 자리에 올라가게 했다.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유명한 서예가 왕희지(王羲之)가 이 집안 사람이다

* 사안(谢安) : 동진의 재상. 자는 안석. 행서를 잘 썼음. 환온의 사마가 되어, 효무제 때에 전진의 부견이 쳐들어오자, 총수가 되어 이를 비수에서 쳐부숨. 시호는 문정.

 

* 유우석(劉禹锡)

(772~842, 70세). 당나라 문학가, 철학가. 자는 몽득(梦得). 낙양 사람. 환관과 번진할거 세력을 반대해 낭주사마(朗州司馬)로 좌천되었다가 다시 연주자사(连州刺史)가 되었다. 후에 배도(裴度)의 유력한 추천으로 태자빈객(太子宾客, 황태자를 보필하는 동궁 소속의 관원)이 되었고 세상 사람들은 그를 劉宾客이라 불렀다.

중국 중당(中唐)의 시인으로 백거이의 장년 이후 시를 알아주고 격려하는 소올 메이트였고, 백거이는 젊은 날의 절친 원진이 작고한 후 유우석과 함께 시를 읊조리고 술잔을  기울이며  세월을 보냈는데, 백거이가 늘그막의 세 가지 소원을 노래한 시를 보면 태평한 세상, 건강한 신체, 유우석과 자주 만나는 것이라고 하였으며, 젊은 날 정원 연간의 정치 혁신운동에 참여하였다가 개혁이 실패로 끝나면서  23년간 장강 이남으로 좌천되어 오지를 떠돌아다녔고, 불우한 인생이 작품을 더욱 단련시켜 백거이와 함께 ‘유백(劉白)’으로 병칭되었으며, 민가의 창작기법을 배워서 애틋하고 순박한 감정을 자연스럽고 정치하게 표현하였고, 깊은 뜻을 기탁하여 당시 사회의 부조리를 우회적으로 고발한 우언시 역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고 있으며, 작품으로는 지방관으로 있으면서 농민의 생활 감정을 노래한 “죽지사(竹枝詞)”, 그외 누실명(陋室銘) 시문집으로 “유몽득문집(劉夢得文集)(30권)” “외집(外集)(10권)” 등이 있습니다.

 

金陵五題

其一首.               

                           石頭城(석두성)

山圍故國周遭在(산위고국주조재) 산은 금릉 감싸 예 그대로인데

潮打空城寂莫回(조타공성적막회) 물결만 허물어진 성을 치고 적막 더하네

淮水東邊舊時月(회수동변구시월) 회수 동쪽 예전 달이 떠올라

夜深還過女牆來(야심환과여장래) 깊은 밤 성가퀴 넘는구나

石頭城(석두성):남경 서쪽 청량산 일대 삼국시대 오나라가 성을 쌓음

故國(금릉) : 지금의 남경

其二首.            

                         烏衣巷(오의항)

朱雀橋邊野草花(주작교변야초화) 주작교에 들풀 무성하고

烏衣巷口夕陽斜(오의항구석양사) 오의항에 석양 내리네

舊時王謝堂前燕(구시왕사당전연) 예전 왕도.사안의 집에 날던 제비

飛入尋常百姓家(비입심상백성가) 이젠 뭇사람 집에 날아드네

朱雀桥(주작교):육조시대 금릉 즉 남경에 세운 다리임.

烏衣巷(오의항):지금의 강소성(江蘇省) 남경시(南京市) 진회하(秦淮河) 남쪽에 있고 주작교가 있다.

王謝(왕사) : 왕도(王導).사안(谢安): 육조(六朝 : 東吳, 東晉, 宋, 濟, 梁, 陳)시대의 대표적인 귀족 정치인이다.

其三首.                   

                              台城(대성)

台城六代競豪華 (대성육대경호화) 대성은 육조시대 호화로움 다투고

結綺臨春事最奢 (결기임춘사최사) 결기루 임춘각 사치를 다했지만

萬戶千門成野草 (만호천문성야초) 수 많은 집들 함께 풀밭이 되었네

只緣一曲後庭花 (지연일곡후정화) 망국의 노래 한소절 남기고

台城(대성):육조시대 금성 禁城으로 황제의 집무실

結綺臨春(결기임춘): 결기루와 임춘각 진陳나라 후주(진숙보)가 세운 누각으로 호화로움

後庭花(후정화) : 원명 옥수후정화玉树后庭花로 남조 진 陳후제가 지은 곡으로 나라 망치는 노래라 평한다

其四首.

                             生公講堂(생공강당)

生公說法鬼神聽 (생공설법귀신청) 생공의 설법은 귀신도 듣나니

身後空堂夜不扃 (신후공당야불경) 죽은 뒤엔 비어 밤에도 문 닫지 않네

高坐寂寥塵漠漠 (고좌적료진막막) 높은 자리 먼지 쌓여 쓸쓸한데

一方明月可中庭 (일방명월가중정) 달빛 한 쪽 뜨락 비추누나

生公講堂(생공강당) : 生公은 동진의 고승 축도생의 존칭 강당은 설법하던 곳.남경의 불교유적. 처음 설법할 때 듣는 이 없고 돌덩이가 듣고선 감동해서 고개를 숙였다고함.

生公說法 頑石點頭라는 속담이 있다

其五首.

                              江令宅(강령택)

南朝詞臣北朝客 (남조사신북조객) 남조의 문학 신하 북조의 나그네여

歸來唯見秦淮碧(귀래유견진회벽) 돌아와 멍하니 푸른 진회하 바라보네

池台竹樹三畝餘(지대죽수삼무여) 못가 누대에 대나무 세 이랑 남짓 남아

至今人道江家宅 (지금인도강가택) 지금 사람들 강씨집이라 하네

江令(강령) : 陳代진대의亡國宰相 망국재상 江總강총을 말함. 진의 후주와 정사는 돌보지 않고 매일 연회만 즐기다 나라가 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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