夏日卽事(하일즉사) 여름날에 읊다
簾幕深深樹影廻(염막심심수영회) : 주렴장막 깊은 곳에 나무그늘 돌아들고
幽人睡熟鼾聲雷(유인수숙한성뢰) : 은자는 잠이 깊어 우레 같이 코를 고네
日斜庭院無人到(일사정원무인도) : 날 저문 뜨락에는 찾아온 이 하나 없고
唯有風扉自闔開(유유풍비자합개) : 바람만 저 혼자서 사립문을 여닫네.
輕衫小簟臥風欞(경삼소점와풍령) : 홑 적삼에 대자리 바람부는 난간에 누웠는데
夢斷啼鶯三兩聲(몽단제앵삼양성) : 꾀꼬리 두세 마디 곤한 꿈을 깨우네
密葉翳花春後在(밀엽예화춘후재) : 무성한 잎에 가린 꽃은 봄 지나도 남아있고
薄雲漏日雨中明(박운루일우중명) : 엷은 구름 사이 햇살 빗속에도 밝네
-------李奎報(이규보)------
註.
卽事 (즉사) : 눈앞의 사물을 즉흥으로 읊는 일.
簾幕(염막) : 발과 장막(帳幕)을 아울러 이르는 말.
鼾(한) : 코를 골다.
扉(비) : 가지 따위로 엮어 만든 대문짝
輕衫(경삼): 가벼운 적삼. 홑적삼.(衫) 적삼 삼,
小簟 (소점) : 대로 엮어 만든 작은 자리. 작은 삿자리.
欞(령) ; 난간, 완자 창살
三兩聲(삼량성) ; 두세 마디 소리
薄雲(박운) : 엷게 낀 구름.
벼슬에서 물러나 여유롭고 한가로이 살아가는 隱者(은자)의 초여름 한 때를 읊다.
참으로 계절의 순서는 엄정하기도 하다. 엊그제 꽃 지는 봄의 끝자리를 아쉬워하였는데, 어느덧 날씨는 더위가 기승인 한 여름.
나무그늘 우거진 시원한 사랑채 대청마루에 깔깔한 모시적삼 차림으로 돗자리 깔고 누워 코를 골며 잠들었다.
가끔 씩 불어오는 산들 바람이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닫혀있는 사립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네. 더운 한낮에 낮잠을 즐기다가 저녁때가 되어서야 꾀꼬리 우는 소리에 잠이 깨어 밖을 내다보니 우거진 녹음 속에 늦봄의 꽃들이 아직 지지 않고 엷은 구름 사이를 뚫고 새어 나오는 햇살은 지나는 빗발 속에 밝기도 하다.
어느 여름 대낮의 풍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 잘 묘사된 시이다. 찌는 더위 속에서도 마음의 여유야말로 무더운 여름을 이기는 슬기가 아닐까요 , ( 동문선 권20에는 ‘하일(夏日)’이라는 제목으로 둘째 수만 실려 있다)
李奎報(이규보) (1168~1241)
고려중기의 대표적 문장가로서,‘사종(詞宗)’이라 일컬어지는 이가 바로 백운거사 이규보이다. 본관은 여주, 자는 춘경, 호는 백운거사. 시호가 문순공이다.
22세 때 사마시에 응시하려던 중, 꿈에 규성(奎星) 즉 이십팔 수 중 하나로 문운(文運)을 주관하는 별이 나타나 이서(異瑞, 길조)를 보(報)하여 장원 급제한 뒤부터 이름을 규보라 고쳤다. 글을 잘 지어 9세 때 이미 기동(奇童)이라 이름이 나 있었다. 이규보는 술을 좋아하여 사마시에 3차례나 떨어졌다.
그가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백운소설에 “당나라 백낙천(白樂天)과는 음주와 광음영병(狂吟詠病)이 천생 같아 낙천을 스승으로 삼는다.” 라고 쓸 정도로 시주(詩酒)를 즐겼다. 또 시와 술 외에 거문고를 즐겨 스스로를 삼혹호(三酷好)선생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고려 중기 그 엄혹했던 무신집권시대를 산 대표적 문신으로, 여진, 거란, 몽고등 북방 이 민족의 계속되는 침탈에 우리민족 고유의 정신을 문학으로 정화시키고, 민족역사 정립에 힘 기울인 대 문장가이다. 그의 문집(동국이상국집)에 2.000수 이상의 시를 남겼고 수록된 서사시“동명왕편”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커다란 역사적 자부심과 문학작품으로 남아 우리 모두의 자긍심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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