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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이 있는 한시

述懷(술회)

by 까마귀마을 2024. 4. 28.

                                      述懷(술회) 마음속을 말함.

不欲憶君自憶君 (불욕억군자억군) 임 생각 떨치려도 생각은 절로 나고

問君何事每相分 (문군하사매상분) 임에게 묻노니 무슨 일로 늘 떨어져 있나요?

​莫言靈鵲能傳喜 (막언영작능전희) 영험한 까치가 기쁜 소식 전한다 말하지 마오.

幾度虛驚到夕嚑 (기도허경도석훈) 몇 번이나 헛되이 놀라 저녁때에 이르렀다오.

                        -----반아당(半啞堂) 박죽서(朴竹西)----

 

註.

억군(憶君) : 임을 생각하다.

하사(何事) :무슨 일. 또는 어떠한 일. 어째서. 왜.

상분(相分) : 불교 사분(四分)의 하나. 사물을 인식할 때에 주관적인 마음에 떠오르는 객관의 형상으로, 사분 중의 첫 번째 단계이다. 

영작(靈鵲) : 영특한 까치.

기도(幾度) : 몇 번.

허경(虛驚) : 괜히 놀람.

도석(到夕) :  저녁때가 되다.

석훈(夕曛) : 해가 진 뒤에 어스레하게 남는 빛.

 

이 시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 여류 시인이었던 반아당(半啞堂) 박죽서(朴竹西)의 심사(心思)가 잘 드러난 걸작이다. 여인으로서 사랑하는 님을 기다리다 하루해를 다 보내는 심정을 풀어놓은 것이다. 남성 위주의 조선 사회에서 독 안에 갇힌 딱한 처지를 여류시인의 작품에서 많이 만날수 있다. 곧 남편이나 임을 그리는 정한이 작품 곳곳에 깊숙하게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일부다처제를 허용했던 사회에서 규방의 원한을 절절한 시상으로  대리만족 했을 것이다.

 

임 생각 떨치려 해도 생각은 절로 나고 

그대에게 묻노니 어찌하여 늘 떨어져 있어야 하는가. 

영특한 까치가 기쁜 소식 전한다 말하지 마오 

몇번이나 헛되이 놀라 저녁때에 이르렀다오.

 

박죽서(朴竹西)는 박종언(朴宗彦)의 서녀(庶女)로 원주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아버지로부터 소학(小學), 경사(經史), 고시(古詩)를 배웠는데, 대부분을 암송하였다고 한다. 생몰년대와 정확한 본명은 알 수 없고, 몸이 병약하여 병마와 싸우다가 30세 전후에 죽은 여류 시인으로 다만 호가 죽서(竹西), 반아당(半啞堂)으로 알려졌다. 반아(半啞)란 반벙어리를 나타내는 말로 여성이고, 더구나 서녀라서 세상에서 할 말도 못 하고 살아가야 하는 자기의 숙명을 자조적인 아호로 표현한 것 같다. 서녀 출신으로서 영월부사(府使) 서기보(徐箕輔)의 소실이 되어 한양으로 이거(移居) 해서 살았다. 원주 출신의 친구이며 동시대 의주부윤(義州府尹) 김덕희(金德喜)의 소실(小室)인 김금원(金錦園)이 주축이 되어 만든 삼호정시사(三湖亭詩社)에서 같이 활동하며 많은 시를 남겼다. 당시 참여 멤버를 보면, 좌참찬을 지낸 연천(淵泉) 김이양(金履陽)의 소실인 운초(雲楚) 김부용(金芙蓉), 이조참판 화사(花史) 이정신(李鼎臣)의 소실인 김경산(金瓊山), 주천 홍태수의 소실이며 김금원의 동생인 김경춘(金瓊春), 기생 금홍(錦紅), 죽향(竹香) 등이다.

 

* 조선 여류시인들의 살롱 삼호정

조선시대의 천재 여류시인 이였던 허난설헌과 이옥봉, 그녀들의 생과 최후는 너무도 가련하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들의 불행은 사회적 문제라기보다는 단지 남편을 잘못 만난 탓이다. 허난설헌의 남편 김성립은 아내의 글재주를 마뜩지 않아했으며 버거워 시기하였던 바, 기방을 즐기며 밖으로 나돌았다. 이옥봉의 경우는 남편 조원과의 혼인조건이 옥봉의 절필(絶筆)이었다고 하는 바, 더는 말할 것도 없다. 반면 자유롭게 시사(詩社, 시모임)를 가지며 자유롭게 웃고 즐기다 간 여인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마포 삼호정에서 모였던 '삼호정시사(三湖亭詩社)'를 들 수 있겠는데, 주요 멤버는 김금원(金錦園=김금앵), 김운초(金雲楚=김부용), 김경산(金瓊山), 박죽서(朴竹西), 김경춘(金瓊春), 금홍(錦紅), 죽향(竹香) 등이다.

이들은 김금원의 남편 김덕희(金德熙)가 세운 삼호정(三湖亭)에 모여 저희들끼리, 때로는 시문을 즐기는 선비들(홍한주·신위·서유영 등)과 함께 시를 짓고 술을 마시며 놀았다. 그녀들은 모두 시와 술은 한가락하는 사람들이었니 그들의 신원을 축약하면 이렇다.

 

금원 : 병부시랑 김덕희의 소실

운초 : 연천 김이양의 소실(기녀 때 만난 친구)

경산 : 화사 이정신의 소실 (이웃사촌)

죽서 : 송호 서기보의 소실 (고향 친구)

경춘 : 주천 홍태수의 소실 (금원의 동생)

 

그중 이 모임을 만든 김금원에 대해 말하면, ​1817년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난 금원은 어려서부터 병약했으나 영리했고, 특히 문재가 뛰어났다. 그리고 자유분방하였으니 그는 14살에 부모의 허락을 받아내 남장(男裝)을 하고 여행길을 떠나 금강산과 관동팔경을 유람하였다. 금원은 특히 시문에 재주를 보였으니 시를 읊으면 훨훨 날았다. 그는 자유로움을 택해 원주 기생이 되었으며(그녀의 어미도 기생이었다) 이후 의주부윤 김덕희의 소실이 되었다. 그는 자신의 문우(文友)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친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시를 주고받는 이가 4명 있다. 그중 한 명은 운초다. 시를 짓는 재주가 뛰어나 그를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 어떤 이는 이틀 밤씩 묵고 간다. 다른 한 명은 이웃 친구 경산이다. 박식하고 시낭송(吟詠)에 뛰어나다. 또 한 명은 같은 고향 사람 박죽서다. 머리가 얼마나 좋은지 들은 걸 잊어먹지 않고,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안다. 마지막은 내 동생 경춘이다. 총명하고 지혜롭고 정숙할 뿐 아니라 경서와 사서에 달통했다."

금원은 남편을 졸라 여행을 즐기었으니 그가 쓴 팔도여행기 <호동서락기(湖東西洛記)>에서는 남자도 못해낸 걸 자신이 해냈다는 자긍심을 피력하기도 했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사롱 문화를 연 그야말로 신여성으로, 훗날 헌종 임금으로부터 세상에 문명(文名)을 떨쳤다 하여 '규수 사마자장(司馬子長)'이라는 칭호를 받기도 했다.(조선 여류시인들의 살롱 삼호정 :: 아하스페르츠의 단상 (tistory.com)

 
 

 

박죽서(朴竹西, 생몰연대 미상) : 본관이 반남(潘南) 박(朴)씨로 호가 죽서(竹西) 또는 반아당(半啞堂)이다. 죽서는 자신의 서재 명칭이며 반아당은 반벙어리라는 의미의 겸칭이다. 조선의 개국공신으로 태종의 1,2차 왕자의 난 공신인 박은(朴訔)의 후손 사인(士人) 박종언(朴宗彦)의 서녀이다. 영월부사(府使) 서기보(徐箕輔 1785-1870)의 소실이 되었다. 서기보의 재종 형인 서돈보(徐惇輔)의 죽서시집(竹西詩集) 서(序)에 의하면, 죽서는 어려서부터 영오(英悟)하여 아버지가 강습하는 것을 곁에서 들은 대로 암송하여 빠뜨림이 없었고, 자라서는 책을 좋아하여 소학· 경사·옛 작가의 시문을 바느질과 함께 익혔다고 한다. 중국의 한유(韓愈)와 소동파(蘇東坡)의 영향을 받았다. 일생동안 병약했던 탓으로 시풍(詩風)이 감상적이다. 서시집은 권두에 돈보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작자의 친구인 여류시인 금원의 발문이 있다. 모두 166수의 시가 실려 있다. 작품은 매우 서정적이며 님을 애타게 기다리는 여심과 기다리다 지친 규원(閨怨)을 나타내는 내용이 많다. 그가 죽자 남편이 유고를 모으고 채록해 죽서시집을 펴냈다. 그 발문을 김금원이 맡아 다음과 같이 썼다.

 

"아아, 이 시집은 죽서가 지은 것이다. 책을 대하니 살아 있는 사람을 보는 것 같다. 초롱초롱한 눈매와 붉은 뺨이 책장에 어린다. 아, 그와의 맺어짐이여. 죽서를 아는 자들은 그의 재주와 지혜가 규중에 이름난 것을 알지만, 그가 고요히 살며 자연을 즐기는 정취가 있었음은 오직 나만이 안다. 올바른 눈을 가진 자가 그의 시를 읽는다면, 또한 내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다음 생애에 죽서와 함께 남자로 태어나 형제로서, 혹은 친구로서 시를 창화(唱和)하며 책상을 함께 하고 살 수 있을지.....죽서시집(竹西詩集)은 국립중앙도서관,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아래 죽서의 대표 시 몇수를 올립니다.

 

 

春鳥(춘조) 

窓外彼啼鳥 (창외피제조) 

何山宿更來 (하산숙갱래) 

應識山中事 (응식산중사)

杜鵑開未開 (두견개미개)

 

봄의 새에게

창밖에 우는 저 새야

어느 산에서 자고 이제야 왔느냐 

응당 산중의 일을 네가 알려니

두견화는 아직 안 피었드냐?

 

이시는 죽서가 10세에 지었다고 한다.

창밖에 와서 우는 산새에게 산중에 진달래가 피었냐고 물어보는 내용이다.

아주 간단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소녀다운 섬세한 시정이 곱게 묻어나는 시이다.

집안에서만 지내야 하는 병약한 아녀자로서 진달래 피는 봄이 왔지만 꽃구경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꽃 이야기를 나눌 사람도 곁에 없어 홀로 쓸쓸히 봄을 맞이한다.

창밖에 와서 지저귀는 새에게 말을 걸고, 답답한 심정을 하소연 해본다.

"새야 너는 이산 저산 마음대로 훨훨 날아다닐 수 있으니 산중의 일도 잘 알고 있겠구나. 진달래 꽃 아직 안 피었드냐?

 

晩春(만춘)

落花天氣似新秋 (화락천기사신추)

夜靜銀河淡欲流 (야정은하담욕류)

却恨此身不如雁 (각한차신부여안)

年年未得到原州 (년년미득도원주)

 

늦봄

꽃이 지는 봄은 첫 가을과 같네

밤이 되니 은하수도 맑게 흐르네

한 많은 몸은 기러기만도 못한 신세

해마다 임이 계신 곳에 가지 못하고 있네

 

​지은이는 초겨울을 연상하는 봄의 한기를 맛보며 자기의 딱한 처지로 시심의 눈을 돌린다. 

한 많은 이 몸은 기러기만도 못한 신세라고 한탄하면서, 해가 바뀌지만 임이 계신 원주로는 가지 못하고 있다는 시상을 떠올리고 있다. 

원주는 임이 계신 곳이라기 보다는 친정 부모님이 계신 곳 곧 고향으로 보는 것이 더 좋겠다. 

시인은 꽃이 피었다가 떨어지는 애절한 봄은 마치 첫가을과도 같았었는데,  소소한 밤이 되고 보니 은하수도 맑게 흐르고 있다는 시상을 펼친다.  시상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떨어지는 꽃과 은하수가 잔잔하고 곱게 흐르는 모습의 표현은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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