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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이 있는 한시

윤선도의 무궁화(木槿)

by 까마귀마을 2024. 4. 17.

                                              木槿(목근)

 

甲日花無乙日輝 (갑일화무을일휘) 오늘 핀 꽃이 내일까지 빛나지 않는 것은

一花羞向兩朝暉 (일화수향양조휘) 한 꽃으로 두 해님을 보기가 부끄러워서다.

葵傾日日如馮道 (규경일일여풍도) 해바라기는 풍도처럼 날마다 기우나니

誰辨千秋似是非 (수변천추사시비) 천추의 옳고 그름을 뉘있어 분별하리.

                                ------윤선도-----

註.

兩朝(양조) : 두 해빛

葵(규) : 해바라기.

傾(경) : 기울다

馮道(풍도) : 중국 정치가후당(後唐) ‧후진(後晋) ‧() ‧후한(後漢) ‧후주(後周) 재상. 난세(乱世) 5() 8() 11() 재상으로 모셨기 때문에 후세에 절조가 없는 것으로 비판 받았다. ( 口是禍之門이라는 시를 지은 인물이다)

 

무궁화는 하루만 피는 꽃이다.

한 송의 꽃이 하나의 해를 맞이하고 떨어지는 꽃이다.

하나의 꽃으로 해를 두 개나 맞이할 수 없어서 고개를 들지 않는 절개의 꽃이다.

꽃의 향기가 안으로 스며들어 남을 현혹하지 않고 화려하지도 않아 겉으로 가장하려 하지 않는 꽃이다.

정절과 순결 그리고 은근과 끈기를 담아 우리 민족의 정서를 잘 드러낸 꽃이다.

 

고산 윤선도가 지은 무궁화라는 한시이다.

무궁화는 이른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진다. 다진 꽃이 다음날 아침에 보면 어느새 나무 가득 다시 활짝 피어있다. 그래서 피고 지고 또 피는 그 은근과 끈기의 정신을 기려서 우리나라에서는 이 꽃을 무궁화, 즉 '다함이 없는 꽃'이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리고 나라꽃으로 정해 아끼고 사랑해 왔다. 오늘 피어 오늘 지니 하나의 꽃으로 피어 두 햇님을 보지 않는다는 절개를 뜻하기도 한다.

동요에도 "무궁 무궁 무궁화, 무궁화는 우리 꽃, 피고 지고 또 피어 무궁화라네."라고 노래한 것이 있다.

그런데 중국 사람들은 우리가 나라 꽃으로 사랑하는 이 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꽃이 하루도 못 가서 땅에 떨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꽃 이름도 무궁화라 하지 않고,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는 꽃' 또는 꽃의 화려함이 하루 밖에 못 간다고 '하룻화꽃', 이라고 낮춰서 불렀다. 가진것도 없이 뽐내는 소인배를 가리키는 뜻으로도 쓰였다.

윤선도는 무궁화를 '일일화(一日花)라고 불렀는데, 이 말도 하루밖에 못 가는 꽃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하루밖에 못 가는 꽃에 대한 윤선도의 생각은 중국 사람과 아주 다르다. 무궁화는 오늘 피었다가 오늘 진다. 하나의 꽃으로 두 해님에게 인사하는 것이 부끄럽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을 바꾸고 보니까, 무궁화는 이랬다 저랬다 하는 꽃이 아니라 참으로 순수하고 충직한 마음을 지닌 꽃이 되었다. 다른 꽃들은 오늘 핀 꽃으로 내일도 모레도 글피도 새로 떠오르는 해님에게 인사한다. 시들어 가는 줄도 모르고 새 해님 앞에 자태를 뽐내는 꽃들은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그렇지만 무궁화는 다르다.

윤선도는 옛말에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다고 했다.

효종 임금을 위해 평생 충성을 바쳤다. 조정에서는 그를 간신배라고 비방하고 헐뜯었다. 그는 평생 20년 가까이 귀양살이를 했다. 

 

한편 윤선도가 무궁화를 하루살이 꽃이라고 하여 매우 부정적인 눈으로 보며 날마다 다른 꽃을 피워 지조 없는 사이비라고 해석 하였다는 아주 다른 시각으로 보는 글이 있어 올려 봅니다.
고산유고(孤山遺稿)에는 제목이 하루살이 꽃을 노래함(詠一日花)’으로 되었고, 거기에 이하 기장( 機張 )에 配(이배)된 후에 지은 것이다. 무오년.(以下移配機張後 戊午)”이라고 주를 달았다. 이 시는 무궁화를 하루살이 꽃이라고 하여 매우 부정적인 눈으로 읊고 있다. 기구는 날마다 다른 꽃이 피는 무궁화의 생태다. 첫날 핀 꽃은 지고 다음날에는 다른 꽃이 핀다고 하였다. 일관성 없이 변한다는 의미로 보고 있다. 승구는 무궁화나무의 지조 없음이다. 한 나무의 꽃이 두 날에 피는 것은 마치 두 조정에 충성하는 지조 없는 신하와 같아서 부끄러운 짓이라고 하였다. 전구는 고사 인물을 끌어와 비유하였다. 풍도(馮道, 882954)는 당나라 말에서부터 오대(五代)의 다섯 왕조를 거치면서 뛰어난 현실적 정치로 재상을 지닌 사람인데, 무궁화가 날마다 다른 꽃을 피워 풍도의 지조 없음과 같다고 했다. 결구는 무궁화가 사이비라는 말이다. 누가 이렇게 날이 바뀜에도 다른 꽃을 피워가며 해에게 향하는 꽃과 일편단심 하나의 꽃으로 일관하는 꽃의 지조를 가려낼 수 있겠는가고 탄식하였다. 다시 말해 무궁화는 날마다 다른 꽃을 피워 한 마음으로 해를 바라보는 것 같지만 이는 오로지 한 조정에 충성하는 진정한 충신과는 다른 모습이라는 것이다. 자신은 이와 달리 한 조정에 변함없이 충성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낸 것이라 하겠다. (출처윤선도, 오준, 신익성, 정백창의 한시)

 

 윤선도(尹善道,1587,선조201670,현종11)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자는 약이(約而)이고 호는 고산(孤山)이며 본관은 해남이다

1616년 이이첨의 전횡을 상소했다가 경원(慶源)에 유배, 기장으로 옮겼다가, 1623년 인조반정 후 석방되었다

1628(인조6)에 문과 초시에 장원하여 봉림대군을 가르쳤다. 1632년 호조정랑, 사복시첨정, 한성부 서윤을 역임하고, 이듬해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예조정랑, 시강원 문학을 지냈으며, 소현세자를 불리하게 한다는 모함을 받고 성산(星山)현감으로 좌천되었다가 파직되었다

1637년 보길도에 은거하다가, 병자호란에 왕을 호종하지 않았다 하여 영덕에 유배되고 이듬해 풀려났다. 1652(효종3) 동부승지, 예조참의가 되어 원두표(元斗杓)의 전횡을 논하다가 서인의 중상으로 사직했다. 1657년 첨지중추부사, 이듬해 공조참의, 1659년 효종이 죽자, 자의대비(慈懿大妃)의 복상을 3년으로 하자고 주장하다가 송시열의 기년설에 밀려 삼수(三水)에 유배되었다. 1665(현종6) 광양으로 이배되었다가, 1667년에 풀려났다.

 윤선도는 보길도의 경치를 보고 반해 부용동(芙蓉洞)이라 이름하고 여생을 마칠 곳으로 삼았다.
1638년 인조의 부름에 응하지 않은 죄로 영덕(盈德)으로 유배를 당해 다음해 풀려났다.
보길도로 돌아와 정자를 짓고 시(詩)·가(歌)·무(舞)를 즐기며 살았으며, 효종이 즉위한 이래 여러 차례 부름이 있었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무민거(無憫居)·정성당(靜成堂) 등 집을 짓고, 정자를 증축하며, 큰 못을 파는 등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면서 제자들을 가르쳤다.
1659년 효종이 승하하자 산릉(山陵)문제와 조대비복제(趙大妃服制)문제가 대두되었다.
남인파인 윤선도는 송시열, 송준길 등 노론파에 맞서 상소로써 항쟁했으나 과격하다고 하여 삼수(三水)로 유배를 당했다.
1667년(현종 9) 그의 나이 81세에 이르러 겨우 석방된 뒤 여생을 한적히 보내다가 1671년(현종 12) 낙서재(樂書齋)에서 세상을 마쳤다.
그는 성품이 강직하고 시비를 가림에 타협이 없어 자주 유배를 당했다. 한편 그는 음악을 좋아하는 풍류인이기도 했다.
특히 그가 남긴 시조 75수는 국문학사상 시조의 최고봉이라 일컬어진다. 그의 시문집으로는 정조 15년에 왕의 특명으로 발간된 고산유고가 있다.
이 시문집의 하별집(下別集)에 시조 및 단가 75수가 산중신곡 (山中新曲) 18수, 산중속신곡 (山中續新曲)2수, 기타 6수, 어부사시사 (漁父四時詞)40수, 몽천요( 夢天謠)5수, 우후요( 雨後謠)1수 순서로 실려 전한다.
산중신곡18수 가운데 오우가는 물·돌·소나무·대나무·달을 읊은 시조로 널리 애송되었다.
어부서사시는 효종 때 부용동에 들어가 은거할 무렵에 지은 것으로, 봄·여름·가을·겨울을 각각 10수씩 읊었다.
그의 시조는 시조의 일반적 주제인 자연과의 화합을 주제로 담았다. 우리말을 쉽고 간소하며 자연스럽게 구사하여 한국어의 예술적 가치를 발현 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숙종 때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헌(忠憲)이다.

 

무궁화(無窮花)는 아욱목 아욱과에 속하는 낙엽 활엽수 관목으로,  木槿(목근), 근화(槿花), 목근화(木槿花), 순화(舜花), 화노(花奴), 훈화초(薰華草)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꽃말은 그 이름처럼 무궁(다함이 없음)이다. 7월에 피어서 10월까지 약 100일 동안 계속하여 화려한 꽃을 피운다. 홑꽃은 이른 새벽에 피고 저녁에는 시들어서 날마다 신선한 새 꽃을 보여준다. 꽃말도 이런 특징에서 나온 것이다. 

인도-중국 서남부가 원산지이나 오래 전부터 한반도와 만주 등에 폭넓게 분포하여 민가를 중심으로 다양한 목적으로 널리 재배하였다. 대한민국에서는 관습상(사실상, de facto) 국화로, 예로부터 한국과 한민족을 상징하는 꽃 가운데 하나로 여겨져 왔으며 현대에는 각종 국가적인 상징물에서 무궁화를 사용하고 있다.

꽃은 제법 큰 편이며  꽃잎은 흰색 내지는 분홍색을 띄며 5장이 잔처럼 벌어진다. 가운데 붉은 테(일명 단심)가 있고 거기서 노란 수술이 솟아있는 것이 특징이다. 보편적으로 흰 꽃이 유명하지만, 본래 무궁화는 붉은 빛이 도는 꽃이고 오늘날의 흰 무궁화는 한국에서 개량된 것이라 한다. 구조로 따지면 양성 완전화이다.

 

배달계, 백단심계, 적단심계, 청단심계, 자단심계, 아사달계 총 6가지 종류의 무궁화가 있으며 색에 따라 구분한다. 그러나, 관리를 소홀히 하면 벌레가 생기기 쉬우며, 벌레가 생긴 꽃은 매우 흉해지기 때문에 꼼꼼한 관리가 필요하다. 꽃이 질 때는 꽃잎이 무슨 꽃봉오리 열리기 전마냥 완전히 오므라들면서 꽃송이(Cluster)째로 땅에 떨어지는 식으로 진다. 이는 무궁화가 동백꽃처럼 꽃부리가 꽃과 통으로 붙어있어서 꽃이 질 때면 다른 꽃처럼 꽃잎이 하나하나 지거나 말라가는게 아니라, 완전히 오므라든 형태에서 꽃부리와 함께 가지에서 뚝 떨어지는 식으로 지게 된다. 그래서 무궁화 꽃나무 주변이 떨어진 꽃으로 인해 지저분해 지기도 하다.

꽃과 잎이 차나 약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흰 무궁화는 설사와 구토 등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사실, 진딧물 같은 벌레가 많이 모인다는 것도 꽃에 영양분이 많다는 증거다. 허브차의 일종으로 서양에서는 매우 대중적이다. 국내 시판되는 허브차 중에서 블렌딩된 차 중에서 붉게 우러나는 차는 구성성분을 보면 십중팔구 히비스커스다.

 

내한성(耐寒性)을 지닌 식물이기는 하지만, 기온이 영하 20도 미만으로 떨어지는 북부지방에서는 잘 자라지 못한다고 한다. 또한 실생의 어린묘목은 추위에 약해서 노지월동이 어려우므로 실내재배 등 방한대책이 필요하다. 부용, 접시꽃, 로젤등 Hibiscus속 식물들의 꽃 형태가 비슷해서 그런지 서로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또한 Hibiscus속 식물은 대부분 열대, 아열대 지방 식물이 많지만 유독 무궁화는 난대 온대지방이 서식지이다. (백과 참조)

 



고산(孤山) 윤선도의 한글 시조 五友歌(오우가)

 

내 버디 몃치나 하니 水石(수석)과 松竹(송죽)이라
東山(동산)의 달 오르니 긔 더옥 반갑고야
두어라 이 다삿 밧긔 또 더하야 머엇하리.

<水>
구룸빗치 조타 하나 검기랄 자로 한다
바람 소래 맑다 하나 그칠 적이 하노매라
조코도 그츨 뉘 업기난 믈뿐인가 하노라

<石>
고즌 므스 일로 퓌며셔 쉬이 디고
플은 어이 하야 프르난 닷 누르나니
아마도 변티 아닐산 바회뿐인가 하노라

<松>
더우면 곳 피고 치우면 닙 디거 
솔아 너난 얻디 눈서리랄 모라난다
九泉(구천)의 불희 고단 줄을 글로 하야 아노라.

<竹>
나모도 아닌 거시 플도 아닌 거시
곳기난 뉘 시기며 속은 어이 뷔연난다
뎌러코 四時(사시)예 프르니 그를 됴하 하노라.

<月>
쟈근 거시 노피 떠서 만물을 다 비취니
밤듕의 光明(공명)이 너만하니 또 잇나냐
보고도 말 아니 하니 내 벋인가 하노라.

현대어 풀이
나의 벗이 몇인가 헤아려 보니 물과 돌, 소나무와 대나무로다.
게다가 동쪽 산에 달이 밝게 떠오르니 그 더욱 반가운 일이로구나.
그만 두자, 이 다섯 밖에 다른 것이 더 있은들 무엇하겠는가?

구름의 빛깔이 아름답다고는 하지만 검기를 자주 한다.
바람 소리가 맑게 들리지만 그칠 때가 많도다.
깨끗하고도 그칠 적이 없는 것은 물뿐인가 하노라.

꽃은 무슨 까닭에 피자마자 져버리고,
풀은 또 어찌하여 푸르러지자 곧 누른 빛을 띠는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바위뿐인가 하노라.

따뜻해지면 꽃이 피고, 추우면 나뭇잎은 떨어지는데,
소나무여, 너는 어찌하여 눈과 서리에도 변함이 없는가?
그것으로 미루어 깊은 땅 속까지 뿌리가 곧게 뻗쳐 있음을 알겠노라.

나무도 아니고 풀도 아닌 것이
곧게 자라기는 누가 그리 시켰으며, 또 속은 어이하여 비어 있는가?
저리하고도 네 계절에 늘 푸르니 나는 그것을 좋아하노라.

작은 것이 높이 떠서 온 세상을 다 바추니
한밤중에 광명이 너보다 더한 것이 또 있겠느냐?
보고도 말을 하지 않으니 나의 벗인가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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