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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이 있는 한시

早春(조춘) 雪竹

by 까마귀마을 2024. 3. 4.

조춘(早春) 이른 봄

春雨梨花白 (춘우이화백)  봄비 내리자 배꽃이 하얗고

東風柳色黃 (동풍유색황)  봄바람 불자 버들개지 노랗네

誰家吹玉笛 (수가취옥적)  옥피리를 누가 부는가

搖揚落梅香 (요양락매향)  매화향기 흩날리누나.

                  ----雪竹----

註.

吹玉笛 ...落梅香 ; 피리 곡조에 매화향이 흩날리다. 진(晉)나라 때 환이(桓伊)가 적(笛)을 잘 불어 낙매화곡(落梅花曲)을 지었다 한다.  이백(李白)의 시 與史郞中欽 聽黃鶴樓上 吹笛(여사랑중흠 청황학루상 취적). "史郞 中欽에게 바치며, 황학루 위의 피리소리를 듣다"의 3-4구의 “황학루 위에서 옥적을 부니 오월 강성(江城)에 매화가 떨어지는구나."(黃鶴樓上吹玉笛  江城五月落梅花)에서 차운 한것으로 여겨진다.

설죽의 원래 이름은 알현(閼玄)이며 생몰연대(生歿年代)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조선조 1500~1600년대의 봉화 유곡(닭실) 사림파의 일원이었던 안동 권씨 충재(冲齋) 권벌(權橃) 가문의 여종이었다. 여종의 신분이었음에도 천부적인 재능으로 많은 시를 남긴 여류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재색(才色)까지 겸비를 했고 자호(自號)를 취죽(翠竹)이라고 하고 설창(雪窓) 월련(月蓮) 취선(翠仙) 등의 호(號)를 사용했다고 한다. 호(號)에서 묻어나는 품세(稟勢)가 보통이 아니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 대청마루 벽을 사이에 두고 시문(詩文) 공부 하는 소리를 몰래 듣고 글을 깨우쳐서 작시(作詩)를 하였다고 하니, 설죽(雪竹)의 시재(詩才)는 타고난 것 같다.

사대부가 여인들도 언문이라 불렸던 한글 이외에 진서(眞書)라고 불렸던 한자를 배우기는 쉽지 않은 시대였다.

비슷한 시기 명문 반가(班家) 출신인 허난설헌이 오빠들에게 학문을 배운 것도 이례적이라고 전해지는 판국에 여종 출신의 설죽이 어떻게 한시를 지을 정도의 학문을 배울 수 있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자신의 딸에게도 한문을 가르치지 않는데 여종 출신에게 배우게 했을 리가 만무하다. 그만큼 그녀는 영특했던 것이다.

우리나라 역대 여류시인이 남긴 작품을 통산하면 대략 200여명이 2천여 수의 한시를 남겼다 한다. 그 중 설죽이 166수를 남겼으니 조선조 규방문학의 대표인 허난설헌이나 기생문학의 상징인 황진이와 비견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여류 시인이라 칭할 만하다. 더욱이 여성들의 사회활동이 극히 제한적이고 심지어 양반가의 여성에게조차 글을 가르치지 않았던 조선시대에 미천한 노비의 신분으로 글을 익히기도 쉽지 않은데 시문에 뛰어난 재주를 보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설죽도 나이를 먹으니 한 남성에게 의탁해야 했다. 여종 출신의 여류 시인은 누구에게 의탁해야 하는가? 설죽은 양반가의 이 되는 길을 택했다. 수촌(水村) 임방(任埅)이 지은 수촌만록(水村漫錄)에는 설죽이 성석전(成石田) 성로(成輅)에게 몸을 의탁하는 과정이 묘사되어 있다.

성로가 봉화 유곡의 정자에 도착하자 사대부들이 모였다. 이때 설죽도 자리를 함께 했다성석전(成石田)이 그녀를 친해보려고 희롱하자  당시 좌객들이 모두 말하기를 “네가 성석전의 생전 만사를 지어 눈물을 흘리게 한다면 천침(薦枕)하게 해주리라” 라고 했다. 설죽은 즉석에서 만시를  지었다고 한다. 성석전은 한양 서호정(西湖亭)의 주인이기 때문에 ‘서호(西湖)’ 두 글자로 운자를 내었는데 그녀가 지은 만시에 모두들 슬퍼 눈물을 흘렸으며 그녀의 시명(詩名)이 드디어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설죽이 성로의 호 서호정(西湖亭)을 따서 지은 만시.

 

寂寞西湖鎖草堂 (적막서호쇄초당 서호정 초당 문은 닫혀서 적막한데

春臺無主碧桃香 (춘대무주벽도향)  주인 잃은 봄 누각에 벽도향만 흐르네.

靑山何處埋豪骨 (청산하처매호골)  청산 어느 곳에 호걸의 뼈 묻으셨는지

唯有江流不語長 (유유강류불어장)  오직 강물만 말없이 흘러가네.

 

두보나 이태백이 울고 갈 정도로 잘 구성된 시(詩)다.

 

설죽(雪竹)은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았다. 15세 때 권벌 주인댁 노비(奴婢)와 짝을 지어 주려고 하자 가출(家出)을 하여 보름 만에 돌아왔다고 한다. 이후에는 시청비(侍廳婢)가 되었다가 양반가(兩班家)의 첩(妾)으로 10년을 살다가 사별(死別)하고 나서는 선비들과 만나는 기생(妓生)의 삶을 산다. 설죽(雪竹)은 16세 무렵 성석전(成石田)과 인연을 맺어 10년간 한양(漢陽)에서 거주(居住)하다가 20년간 지방의 관기(官妓)로 살았다. 46세에 재상가의 첩으로 들어가 생을 마치고 석천정사(石川精舍) 부근에 묻혔을 것이라고 추측(推測)이다. 오늘은 시청비(侍廳婢) 설죽(雪竹)의 한시(漢詩) 시정(詩情) 속을 반추(反芻)해 보았다. 사람은 가도 그가 남긴 시향(詩香)은 남아 있다.

 

설죽의 시는 그녀의 생애를 증명할 유일한 증거인 셈이다. 그녀의 시는 안동 권 씨 문헌 가운데 당시 유곡삼절(酉谷三絶)로 불렸던 원유(遠遊) 권상원(權尙遠, 1571~ ?)의 시문집인 백운자시고(白雲子詩稿)의 말미에  총 166수가 수록되어 있다 이 외에도 조선시대 유명 문인들의 일화와 비평을 담은 홍만종의 시화총림(詩話叢林)과 임방의 수촌만록(水村漫錄)에도 언급되었던 것으로 보아 당시 설죽은 널리 알려졌으며 작품 또한 매우 뛰어난 것으로 정평을 받았음을 증빙해주고 있다. 그녀의 행적을 살필 수 있는 유일한 자료는 백운자시고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 내용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취선(翠仙)은 일명 월연(月蓮)으로 석천(石泉) 선조의 시청비(侍廳婢)이다. 재주가 영리하고 뛰어났다. 매번 대청과 벽 사이에서 몰래 글 읽는 소리를 듣고 그 글의 뜻을 이해하며 급기야 글을 짓고 시를 잘하여 당시 사람들이 강성비(康成婢)라고 불렀다. 권상원은 안동 권씨로 호는 백운(白雲)이며 진사시에 합격한 이후 벼슬에 나가지 않고 향리에서 생활하다 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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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죽의 시

 

빈녀(貧女) - 가난한 여인

貧女上織機 (빈녀상직기) 가난한 여인이 베틀에 앉아

終日織不多 (종일직불다) 종일 베를 짜지만 많지 않네.

飢來手無力 (기래수무력) 배는 고파오고 손에 힘없는데

何以能擲梭 (하이능척사) 어떻게 북을 놀릴 수 있겠나.

 

錦帷(금유) 단 장막

錦帷秉却掩重門(금유병각엄중문) : 비단 장막 잡아 걸고 중문도 닫으니

白苧衫襟見淚痕(백저삼금견루흔) : 모시 적삼 소매에 눈물 흔적 보이네

玉勒金鞍何處在(옥륵금안하처재) : 옥 굴레 금 안장 임은 어디 계신가

三更殘淚不堪聞(삼경잔루불감문) : 삼경에 흐르는 눈물 감당할 수 없네

 

寄季弟雲仙(기계제운선) 아우 운선에게

幾年流落幾沾裳(기년유락기첨상) 몇 년을 떠돌며 몇 번이나 치마를 눈물로 적셨나

鶴髮雙親在故鄕(학발쌍친재고향) 늙으신 부모님은 고향에 계시네

一夜霜風驚鴈陣(일야상풍경안진) 하룻밤 서리 바람에 기러기 떼 놀라

天涯聲斷不成行(천애성단불성행) 하늘가에 소리 끊기니 대오를 이루지 못하네.

 

寄七松堂(기칠송당) 칠송(七松)에게 준 시

綵鳳離巢去(채봉이소거) 고운 봉황이 둥지를 떠나

哀鳴各散飛(애명각산비) 슬피 울며 제각기 흩어져 날아가네

寒山南浦月(한산남포월) 차가운 산과 남포에 달 오르면

相億夢依依(상억몽의의) 서로 생각하며 꿈에서도 그리워하네

 

寄七松(기칠송) 칠송(七松)에게

重屛寂寂掩羅幃(중병적적엄나위 ) 적막 속에 비단 장막 드리웠는데
但惜餘香在舊衣(단석여향재구의) 네 남긴 옷에 향기만 남았구나
自分平生歌舞樂(자분평생가무락) 평생토록 노래하며 춤추리라고 생각만 했지
不知今日別離悲(부지금일별리비) 오늘처럼 이별 아픔 있을 줄이야

※ 칠송의 이름은 운선(雲仙)이며 설죽의 막내동생이다.

 

郞君去後(낭군거후) 낭군이 떠난 후

郎君去後音塵絶(랑군거후음진절) : 낭군님 가신 뒤에 소식마저 끊겼으니

獨宿靑樓芳草節(독숙청루벙초절) : 아름다운 봄날 청루에서 홀로 잠든다오

燭盡紗窓無限啼(촉진사창무한제) : 촛불 꺼진 깁창가에서 한없이 울부짓다

杜鵑叫落梨花月(두견규락이화월) : 두견새 부르짓음 끊기니 배꽃에 달이 비치오.

 

得縷字韻(득루자운) 자 운으로 지은 시

西風日夕起(서풍일석기) : 저녁은 서풍이 불고

落葉飛疎雨(락엽비소우) : 성긴 비로 낙엽이 흩날리네

空簾寂無人(공렴적무인) : 빈 주렴 속 인적은 없고

寶鴨香一縷(보압향일루) : 향로에 실연기만 피어 오르네.

 

백마강회고(白馬江懷古) 마강에서

晩泊皐蘭寺(만박고란사) : 저물녁 고란사에 머무르니

西風獨倚樓(서풍독의루) : 서풍이 불어와 홀로 누대에 기대네

龍亡江萬古(용망강만고) : 용은 간데 없지만 강은 만고에 흐르고

花落月千秋(화락월천추) : 꽃은 떨어져도 달은 천추를 비추네.

 

奉酬東陽大監韻(봉수동양대감운) 동양 대감에게 받들어 올린 시

公子挑詩興(공자도시흥) : 대감은 시흥을 돋우고

風流逸氣多(풍류일기다) : 풍류와 숨은 기운이 많아요

高吟不覺醉(고음불각취) : 높이 읊으니 취하는 줄도 모르는데

落月半簾斜(낙월반렴사) : 지는 달 반이 주렴에 걸려있어요.

 

奉和成石田(봉화성석전) 석전을 사모하는 마음을 담은 시

蠶嶺烟霞主(잠령연하주) 잠령은 연하의 주인이고

石田詩主人(석전시주인) 석전은 시의 주인이네

相逢不覺醉(상봉불각취) 서로 만나 취하는 줄도 모르는데

月墮楊花津(월타양화진) 양화진엔 달이 지네.

 

分得鷺字(분득로자) 로 자를 써서 지은 시

綠林起西風(록림기서풍) : 푸른 숲은 서풍이 일고

晴沙飛白鷺(청사비백로) : 맑은 백사장에 백로가 날아요

煙波欸乃聲(연파애내성) : 안개 낀 강에 노 젖는 소리 들리고

十里靑山暮(십리청산모) : 십 리 푸른 산에는 해가 저무네요.

 

西湖億成石田(서호억성석전) 서호에서 석전과 함께하였던 것을기억하며

十年閑伴石田遊(십연한반석전유) 십년동안 석전과 한가로이 벗하여 놀며

楊子江頭醉幾留(양자강두취기류) 양자강 머리에서 취하여 몇 번이나 머물렀던가

今日獨尋人去後(금일독심인거후) 임 떠난 뒤 오늘 홀로 찾아오니

白蘋香滿舊汀洲(백빈향만구정주) 옛 물가엔 마름꽃 향기만 가득하네.

 

雨後次尹上舍韻(우후차윤상사운) 비온 뒤 윤상사(尹上舍)에게 차운한 시

草綠江南細雨收(초록강남세우수) 초록빛 강남에 가랑비 그치고

漁舟唱晩白鷗洲(어주창만백구주) 늦은 때 백구섬에 어부의 노래 소리 들리네

春波不動春天闊(춘파부동춘천활) 봄 물결 일지 않고 봄 하늘 드넓은데

冠岳山光碧欲流(관악산광벽욕류) 관악산 빛 푸르러 흐르려고 하네.

 

會罷草堂偶得碧字韻(회파초당우득벽자운)초당에서 모임을 파하고 우연히 벽 자 운으로 시를 짓다

山空地轉幽(산공지전유) : 빈 산에 사는 곳 으슥한데

月落波無迹(월락파무적) : 달은 지고 물결은 흔적이 없소

客散小茅堂(객산소모당) : 객이 흩어진 작은 띠집은

寒窓燈影碧(한창등영벽) : 차가운 창에 등불 그림자만 푸르오

 

病憶山家(병억산가)

江南秋雨正淒淒(강남추우정처처) 강남의 가을비 쓸쓸히 내리고

臥病天涯無限啼(와병천애무한제) 하늘 멀리 병든 몸 눈물만 나와요
家在福州歸未得(가재복주귀미득) 안동에 제 집 있어도 가질 못하고
夢魂長落石泉西(몽혼장락석천서) 꿈길에나 석천 서쪽엘 가려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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