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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이 있는 한시

陶山月夜詠梅(도산월야영매)

by 까마귀마을 2024. 2. 2.

도산월야영매(陶山月夜詠梅)​ 도산에서 달밤에 매화를 읊다

 

獨倚山窓夜色寒(독의산창야색한) 홀로 창가에 기대니 밤 기운이 차가운데

梅梢月上正團團(매초월상정단단) 매화나무 가지 끝에 둥근 달이 떠오르네

不須更喚微風至(불수갱환미풍지) 부르지 않아도 구태여 산들바람 불어오니

自有淸香滿院間(자유청향만원간) 맑은 향기 저절로 집안에 가득 하다.

                                     -------이황(李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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梢(초): 나뭇가지의 끝.

正團團(정단단) : 보름달의 온전히 둥근 모습.

不須(불수) : 꼭 ~할 필요는 없다.

更(갱) : 다시. (으로 읽으면 고치다, 바꾸다)

喚(환) : 부르다, 외치다.

 

주자(朱子) 사후 주자학의 제 일인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퇴계 이황.

그는 특히 매화를 좋아하여 남긴 매화 시만 100여수에 이른다.

시절은 어느듯 삼동을 보내고 곧 입춘을 앞둔 2월, 봄을 재촉하는 비마저 살며시 내려 산천은 포근하고 촉촉하다.

긴 겨울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고 수줍은듯 고결하게 꽃망울 터트리며 퍼져나가는 그윽한 매향을 음미하며 퇴계선생의 6 首로 된 陶山月夜詠梅(도산월야영매)중 1.3首의 시상을 새겨봅니다. (나머지 首는 아래에 별도 올립니다).

기구(起句)에서 시인은 홀로 밤늦게 일어나 창을 여니 밤기운이 차다며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이어 승구(承句)에서는 매화나무 가지 사이로 둥실둥실 떠오른 둥근달을 마주한다. 고요한 정적 속에 교교한 달빛이 활짝 핀 매화에 내려앉아 만들어 내는 형상과 분위기가 몽환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전구(轉句)에서는 청하지 않았는데도 때마침 산들바람까지 불어온다고 했다. 마지막 결구(結句)에서 시인은 산들바람을 타고 매화의 향기가 온 뜰과 집안 구석구석까지 가득하다고 묘사했다. 달밤 매화 핀 산창의 정경을 상큼한 한 폭의 수채화로 그려내고 있으며 달빛 아래 매화꽃 주변을 서성였더니 매화향기가 옷에 가득, 달 그림자는 몸에 가득 배었다는 시상이 고결하면서도 산뜻하다.

시인은 낙향하여 오랜 시간 수 많은 매화 시를 짓고 매화와 함께 대화를 나누며 유유자적 고고한 삶을 살다가 마지막 세상을 떠날 때 사랑했던 여인 두향이가 준 매화분, 애지중지 한 그 매화분을 오래도록 바라보다 '저 매화에 물을 주라"는 유언을 남기고 숨졌다고 전해진다.

 

步躡中庭月趁人(보섭중정월진인) 뜰을 거니니 달이 사람 따라오고

梅邊行趫幾回巡(매변행교기회순) 매화꽃 언저리를 몇 번이나 배회했네

夜深坐久渾忘起(야심좌구혼망기) 밤 깊도록 오래 앉아 일어남을 잊었더니

香滿衣巾影滿身(향만의건영만신) 매화향 옷에 가득 달그림자는 몸에 가득

 

퇴계 이황은 1501년 경북 안동에서 좌찬성 이식(李埴)의 7남 1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자는 경호(景浩), 호는 퇴계(退溪), 시호는 문순(文純)이다.

생후 7개월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생모 박 씨 밑에서 총명한 자질을 키워갔다. 열두 살에 숙부 이우(李堣) 에게 『논어』를 배웠고, 스무 살을 전후하여 『주역』 공부에 몰두해 건강을 해쳐서 그 후 병을 많이 앓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한다. 스물일곱 살 인 1527년(중종 22) 향시에서 초시에 합격하고 성균관에 들어갔으며 다음 해에 진사회시에 합격했다. 서른세 살 때 재차 성균관에 들어가 김인후와 교유하고, 이듬해 문과에 급제하고 승정원부정자가 되면서 벼슬길에 올라 홍문관 수찬을 거쳐 사가독서의 은택을 받았다. 중종 말년에 조정이 어지러워지자  산림에 은퇴할 결심을 하고, 마흔세 살 때인 1543년 성균관사성으로 승진하자 성묘를 핑계 삼아 사가를 청해 고향으로 돌아갔다. 을사사화 후 병약함을 이유로 모든 관직에서 사퇴하고, 1546년(명종 1) 고향인 토계에서 독서에 전념하는 구도 생활에 들어갔다. 이때 토계를 퇴계(退溪)로 개칭하고 자신의 아호로 삼았다. 그 뒤 자주 임관의 명을 받았지만 부패하고 문란한 중앙 관계를 멀리하고 싶어서 외직을 지망하여 1548년 단양군수가 되었다. 그러나 곧 형이 충청도 관찰사로 임명되자 상피를 청하여 경상도 풍기 군수로 전임하였다.

풍기군수 재임 중 주세붕이 창설한 백운동서원에 편액·서적·학전을 하사할 것을 조정에 청원하여 조선조 사액서원의 시초가 된 소수서원(紹修書院)을 세웠다. 일 년 후 풍기군수를 퇴임하고 어지러운 정계를 피해 퇴계의 서쪽에 한서암을 지어 다시금 구도 생활을 하다 1552년 성균관대사성의 명을 받고 취임하였다. 1556년 홍문관부제학, 1558년 공조참판에 임명되었으나 여러 차례 고사하였으니 이런 일이 20여 회에 이르렀다.

예순이던 1560년 도산서당을 짓고 7년간 서당에 기거하면서 독서·수양·저술에 전념하는 한편 많은 제자들을 훈도하였다. 명종은 여러 차례 예를 갖추어 출사를 요청하였으며 자헌대부 · 공조판서· 대제학이라는 현직에 임명하였으나 퇴계는 그때마다 고사하고 고향을 떠나지 않았다. 선조 즉위 후 의정부우찬성에 임명하며 간절히 초빙하였지만 퇴계는 사퇴했다. 그 뒤에도 여러 차례의 돈독한 소명을 물리치기 어려워 마침내 예순여덟의 노령에 대제학·지경연의 중임을 맡고, 선조에게 「무진육조소(戊辰六條疏)」를 올렸다. 선조는 이 소를 천고의 격언, 당금의 급무로서 한 순간도 잊지 않을 것을 맹약했다 한다. 그 뒤 퇴계는 노환 때문에 여러 차례 사직을 청원하면서 선조에게 『성학십도(聖學十圖)』를 저술하여 바쳤다. 1569년(선조 2) 이조판서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고향에 돌아가겠다고 간청해 마침내 허락을 받았다. 환향 후 학구에 전심하였으나 병이 악화하여 1570년 11월 8일 아침, 평소에 사랑하던 매화분에  물을 주게 하고, 침상을 정돈시킨 후, 일으켜 달라 해 단정히 앉은 자세로 운명하셨다. 선조는 3일간 정사를 폐하여 애도하고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영의정 겸 경연.홍문관.예문관.춘추관.관삼감영사를 추증했다. 장사는 영의정의 예에 의하여 집행되었으나, 산소에는 유계(遺誡)대로 소자연석에 "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라 새긴 묘비만 세워졌다.

퇴계 선생에게는 많은 일화들이 전한다. 그중에는 단양 군수시절 기생 두향과의 사랑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다. 나이 마흔여덟 되든 해, 퇴계는 단양군수로 부임했다. 거기서 두향이라는 관기를 알게 되었는데, 유달리 시와 매화를 좋아했던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서로 뜻이 통하여 사랑하게 된다. 그런데 퇴계의 형인 이해가 관찰사로 오게 되면서 상피제도에 의해

퇴계는 부임 10달 만에 풍기군수로 전근하게 되고, 정이 들대로 든 두 사람은 생이별의 아픔을 나누며 마지막 밤을 보낸다. 불은 껐으나 워낙 달이 밝아 문을 통해 들어오는 달빛으로 방안은 초롱을 밝힌 듯 훤하였다. 두향은 투명한 달빛 아래에서 붓에 먹을 듬뿍 묻힌 다음 종이 위에 이별시 한 수를 쓰기 시작했다.

 

찬 자리 팔베개에 어느 잠 하마오리 (轉輾寒衾夜不眠)

무심히 거울 드니 얼굴만 야윗고야 (鏡中憔悴只堪憐)

서로의 이별은 서럽고 괴로워라 (何須相別何須苦)

백년을 못 사는 인생 이별 더욱 서러워라(從古人生來百年).

 

퇴계가 떠나던 날 두향은 매화화분을 건네주며 자신처럼 생각해 달라고 했고 퇴계도 흔쾌히 수락했다. 새로운 군수가 오자 두향은 수령을 찾아가 자신은 퇴계밖에는 사랑할 수 없음으로 기생 명부에서 빼달라고 간청했고 감동한 군수는 허락했다. 두향은 퇴계와 함께 자주 갔었던 구담봉 앞 강선대가 잘 보이는 곳에 초막을 짓고 퇴계만 생각하며 살았다. 퇴계 또한 두향이 준 화분을 어디든지 가지고 다니며 애지중지했다. 그리고 퇴계는 “저 매화화분에 물을 주라.”는 유언을 남기고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두향은 퇴계의 임종 소식을 듣자 “내가 죽거든 강선대 옆 거북바위에 묻어다오, 거긴 내가 선생과 함께 자주 인생을 논하던 곳이다.” 라는 유언을 남기고 강선대에 올라가 거문고로 초혼가를 탄 후 뛰어내려 자결했다.

매년 5월이면 단양에서는 두향제를 개최하여 두 사람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기리고 있다.

https://blog.naver.com/mdwct2015/222717615919

 

 

도산월야영매(陶山月夜詠梅)​의 나머지 5首

 

2首

山夜寥寥萬境空(산야요요만경공) 산속 밤은 적막하여 온 세상이 텅 빈 듯

白梅凉月伴仙翁(백매량월반선옹) 흰 매화 차가운 달이 신선과 짝 이뤘네

箇中唯有前灘響(개중유유전탄향) 오직 들리는 건 앞 여울 물 흐르는 소리

揚似爲商抑似宮(양사위상억사궁) 높을 때는 商음이고 낮을 때는 宮음일세

3首

步躡中庭月趁人(보섭중정월진인) 뜰을 거니니 달이 사람 따라오고

梅邊行趫幾回巡(매변행교기회순) 매화꽃 언저리를 몇 번이나 배회했네

夜深坐久渾忘起(야심좌구혼망기) 밤 깊도록 오래 앉아 일어남을 잊었더니

香滿衣巾影滿身(향만의건영만신) 매화향 옷에 가득 달그림자는 몸에 가득

4首

晩發梅兄更識眞(만발매형갱식진) 늦게 핀 매화의 참뜻을 새삼 알겠네

故應知我怯寒辰(고응지아겁한진) 내가 추위를 겁내는 줄 알아서이지

可憐此夜宜蘇病(가련차야의소병) 가련하다 이 밤 병이 낫는다면

能作終宵對月人(능작종소애월인) 밤새도록 능히 달을 대하련만

5首

往歲行歸喜裛香(왕세행귀희읍향) 몇 해 전엔 돌아와 즐거이 향기에 푹 빠졌고

去年病起又尋芳(거년병기우심방) 지난해엔 병에서 일어나 또 꽃을 찾았지

如今忽把西湖勝(여금홀파서호승) 지금 와서 문득 서호의 절경을 가지고

博取東華軟土忙(박취동화연토망) 우리네 부드러운 땅의 바쁜 일과 바꿀 손가

6首

老艮歸來感晦翁(노간귀래감회옹) 노간(老艮)이 쓴 매화시에 주자가 감동하여

託梅三復歎羞同(탁모삼부탄수동) 수동(羞同)이란 글귀로 세 번이나 감탄했는데

一杯勸汝今何得(일배권여금하득) 너에게 한 잔 술을 주고 싶지만 할 수 없어

千載相思淚點胸(천재상사루점흉) 천 년 그리움에 눈물만 가슴을 적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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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출처 : 이종구 - 이황선생의 시 도산... : 카카오스토리 (kakao.com)

 

매화 

꽃이 필 무렵에 부는 바람을 화신풍(花信風)이라 하는데. 소한(小寒)부터 곡우(穀雨)까지 120일 동안에 닷새에 한 번씩 모두 24번의 꽃 바람이 분다고 하여 이십사번화신풍(二十四番花信風)이라 부릅니다. 24번의 꽃 바람 중에 가장 먼저 부는 바람이 소한(小寒)에 부는 매화풍입니다.
봄 꽃은 잎보다 먼저 핍니다. 매화나무나 벚나무는 잎보다 꽃이 먼저 핍니다. 목련도 개나리도 진달래도 꽃이 먼저 핍니다. 겨울에 지친 사람들을 위무하느라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부터 성급하게 보여줍니다. 그 중에서도 매화는 꽃이 피는 순서, 춘서(春序)의 으뜸입니다.

투춘체(偸春體) 라는 한시체(漢詩體)가 있습니다.
투춘(偸春)이란 매화가 봄 기운을 훔쳐서 봄이 오기도 전에 꽃을 피운다는 뜻입니다.
봄이 온다는 사실을 행여 복숭아나무와 오얏나무가 먼저 알까 봐 매화는 눈 속에서 북쪽 가지에 서둘러 핍니다.
옛부터 소인묵객(騷人墨客)들은 추운 겨울과 같은 간난신고(艱難辛苦)의 시간을 이겨내는 소나무(松), 대나무(竹), 매화나무(梅)를 세한삼우(歲寒三友)라 하여 선비의 꺾이지 않는 고매(高邁)한 기개(氣槪)의 표상으로 삼았습니다.

매화는 별칭도 많습니다. 조매(早梅), 한매(寒梅), 동매(冬梅), 설중매(雪中梅), 청우(淸友), 청객(淸客), 매선(梅仙), 꽃 중에 가장 먼저 핀다하여 화형(花兄), 화괴(花魁)등으로도 불립니다.
이밖에 뜰에 심는 매화는 지매(地梅)라 하고, 매실(梅室)이나 서재(書齋)에 심는 매화는 분매(盆梅)라 합니다. 분매 중에서도 초록색 꽃받침에 하얀 꽃(白梅)을 피운 녹악매(綠咢梅)를 으뜸으로 칩니다. 구부러진 줄기에 푸른 이끼가 끼고 비늘 같은 껍질이 생긴 고매(古梅) 또는 노매(老梅)는 꽃피지 않은 나무 자체로 꽃이나 향에 진 배 없는 매력을 발산합니다. 고목에 새 가지 돋아 꽃을 피우니 회춘(回春)의 상징으로 여겨 나이가 들수록 매화를 좋아합니다.

아무래도 매화의 압권은 엄혹한 겨울 한 복판에서 피어나는 설중매일 것입니다. 눈으로 하얗게 얼어붙은 세상 한 모퉁이에서 숨은 듯 드문드문 피어나는 매화를 보고 사람들은 새 봄의 희망을 발견하고 기뻐했을 것입니다. (옮겨온 글)

 

* 현대의 시인들의 매화예찬

 

홍매화 

눈 내리고 내려 쌓여

소백산 자락 덮어도

매화 한송이 그 속에서 핀다

나뭇가지 얼고 또 얼어

외로움으로 반질반질해져도

꽃봉오리 솟는다

어이하랴 덮어버릴 수 없는

꽃 같은 그대 그리움

그대 만날 수 있는 날 아득히 멀고

폭설은 퍼붓는 데

숨길 수 없는 숨길 수없는

가슴속 홍매화 한송이.

 ----도종환---

 

홍매화

손자 아이의 새끼손가락 손톱보다
더 작은 꽃들.
뭐가 그리도 급한지
싹보다도 먼저 피어
붉은 핑크빛의 작은 꽃으로
고개를 들고 봄을 알립니다.
눈 속에 핀 매화나무가 설중매(雪中梅).
열녀의 붉은 마음이
땅속뿌리에서 올라와 온몸을 물들였으니
여리고 여린 꽃들도
추위를 이겨 냅니다.
입춘(立春)의 길목에서
아스라한 매화의 향기가 기다려질 때에
옛 선비처럼
홍매화의 향기를
화선지(畵宣紙)에 담아 두렵니다.
     ----박도진----

 

매화 앞에서 

보이지 않기에 더욱 깊은 땅속의 어둠

뿌리에서 줄기와 가지 꽃잎에 이르기까지

먼 길을 걸어온 어여쁜 봄이

마침내 여기 앉아 있네

 

뼛속 깊이 춥다고 신음하며

죽어가는 이가

마지막으로 보고 싶어 하던

희디흰 봄 햇살도 꽃잎 속에 접혀 있네

 

해마다 첫사랑의 애틋함으로

제일 먼저 매화 끝에 피어나는 나의 봄

눈 속에 묻어 두었던 이별의 슬픔도

문득 새가 되어 날아오르네

꽃나무 앞에 서면

갈 곳 없는 바람도 따스하여라

 

살아갈수록 겨울은 길고

봄이 짧더라도 열심히 살 거란다

그래 알고 있어 편하게만 살 순 없지

매화도 내게 그렇게 말했단다

눈이 맑은 소꿉동무에게

오늘은 향기 나는 편지를 쓸까

 

매화는 기어이

보드라운 꽃술처럼 숨겨두려던

눈물 한 방울 내 가슴에 떨어뜨리네

             ----- 이해인----

 

매화

퇴계 선생 임종하신 방 한구석에

매화분 하나 놓여 있다

매화분에 물 주거라

퇴계 선생 돌아가실 때 남기신 마지막 말씀

소중히 받들기 위해

매화분에 매화는 피어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는데

나는 통장의 돈 찾아라

한마디 남기고 죽을까봐 두려워라

오늘도 낙동강 건너 지구에는

한창 매화꽃이 피고 있다

새들은 꽃나무 아래 쭈그리고 앉은 나를 보고

죽더라도 겨울 흰 눈 속에 핀

매화 향기에 가서 죽으라고 자꾸 속삭이는데

도산서원 매화나무 가지에 앉은 새들은

어디에 가서 죽는가.

               -----  정호승-----

 

매화를 찾아서 

구름떼처럼 모인 사람들만 보고 돌아온다

광양 매화밭으로 매화를 보러 갔다가

매화는 덜 피어 보지 못하고

그래도 섬진상 거슬러 올라오는 밤차는 좋아

산허리와 들판에 묻은 달빛에 취해 조는데

차 안을 가득 메우는 짙은 매화향기 있어

둘러보니 차 안에는 반쯤 잠든 사람들뿐

살면서 사람들이 만드는 소음과 악취가

꿈과 달빛에 섞여 때로 만개한 매화보다도

더 짙은 향내가 되기도 하는 건지

내년 봄에 다시 한번 매화 찾아 나섰다가

매화는 그만두고 밤차나 타고 올라올까

           ----- 신경림----

 

매화꽃이 필 때면 

청매화가 필 때면

마음이 설레어서

아침길에도 가보고

달빛에도 홀로 사 서성입니다

 

청매화 핀 야산 언덕에

홀로 앉아 술잔을 들고

멀리 밤기차가 지나가는 걸 바라보면

아, 그리운 사람들은 왜 멀리 있는지

꽃샘바람에 청매화 향기는

나를 못살게 못살게 흔들고

그대가 그리워서 얼굴을 묻고

하르르 떨어지는 꽃잎처럼

그냥 이대로 죽고만 싶습니다

          ----- 박노해----

 

매화꽃 

뜰에 매화꽃이 탐스럽게 피었다

옛날의 시인들이

매화꽃 시를 많이 읊었으니

나도 한 편 끌까 합니다

 

하얀 꽃송이가 하도 매력이 있어

보기만 하여서는 안 되겠기에

매화꽃과 친구가 되고 싶구나!

 

지금은 92년 4월 30일인데

봄을 매화꽃 혼자서

만끽하고 있는가 싶구나!

 

한들한들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이

천사와도 같구나!

오래 꽃피어서 나를 달래다오

            ---- 천상병----

 

섬진강 매화꽃을 보셨는지요

매화꽃 꽃 이파리들이

하얀 눈송이처럼 푸른 강물에 날리는

섬진강을 보셨는지요

푸른 강물 하얀 모래밭

날선 푸른 댓잎이 사운대는

섬진강가에 서럽게 서보셨는지요

해 저문 섬진상가에 서서

지는 꽃 피는 꽃을 다 보셨는지요

산에 피어 산이 환하고

강물에 져서 강물이 서러운

섬진강 매화꽃을 보셨는지요

사랑도 그렇게 와서

그렇게 지는지

출렁이는 섬진강가에서 서서 당신도

매화꽃 꽃잎처럼 물 깊이

울어는 보았는지요

푸른 댓잎에 베인

당신의 사랑을 가져가는

흐르는 섬진강 물에

서럽게 울어는 보았는지요

      ----- 김용택----

 

홍매화 

청순하고 사려가 깊은 봄하늘

밀폐된 공간 속 터져 나온 팝콘들

수줍어 생글생글 핏빛 생리통

통도사 경내 어깨 넘어

고운 한복 차려입고 하늘 향해 웃어라

 

너를 보려던 내 눈자위마저 붉어라

네 언저리에 내 마음 넣어볼까

받아줄래? 아님 돌아설까?

꿀벌처럼 머리 처박고 빨고 싶어라

새색시 고운눈매로 법문을 외우노라

 

흐르는 목탁소리에 귀가 번쩍

청춘도 시작이여

사랑도 시작이라

지나던 산새한마리 풍경소리에 깜짝

아아! 봄이 왔구나

 

곱디고운 너의 속살 냇가에 누워

흘러서 흘러서 내게 올려나!

슬리퍼 벗겨져 맨 발 되어

돌부리에 걸려 붉은 피가 흘러도

널 배웅하리라

             ----- 유일화----

 

매화 

매화에 봄 사랑이 알큰하게 펴난다

알큰한 그 숨결로 남은 눈을 녹이며

더 더는 못 견디어 하늘에 뺨을 부빈다

 

시악씨야 하늘도 님도 네가 더 그립단다

매화보다 더 알큰히 한 번 나와 보아라

 

매화 향기에서는 가신 님 그린 내음새

매화 향기에서는 오는 님 그린 내음새

갔다가 오시는 님 더욱 그린 내음새

 

시악씨야 하늘도 님도 네가 더 그립단다

매화보다 더 알큰히 한 번 나와 보아라

                ------ 서정주-----

 

매화예찬 

초봄에 피어나 고결한 기상을 자랑하는

휘파람새의 아름답고도 슬픈 전설이 깃든

 

시인 묵객들 단골 작품소재였던 매화나무

양지 녘 따스해진 햇살아래 찬바람 견디며

 

추운 날씨에도 곧은 절개로 꽃을 피워내는

불의에 굴하지 않는 선비정신의 표상 화목

 

흰 꽃이 피는 흰 매화 분홍 꽃 피는 분홍매화

봄소식을 알려주고 있는 장미과의 낙엽소교목

 

상처가 나고 굽어져 고사한 줄기 몸에 지닌 채

새로운 싹을 틔워 고난역경 극복한 그윽한 향기

                 ----- 손병흠----

 

매화가 피면 

봄소식 전 하는

앙상한 가지에 품위 있고 아름다운

순백의 속살을 들어내는

사랑스러운 매화

 

그리움으로 기다림

그 설렘으로 깊이 심취되어

매화의 감미로운 사랑 이야기를

수줍은 듯 엿듣고 싶다

 

옛 선비들이 좋아하던

고결하고 밝은 마음을 지닌

어느 꽃보다도 꽃향기가 일품인

명성어린 매화

 

사랑하며 그리는 나

하얀 향기 마음에 스미는

매화가 피면

영영 네 곁을 떠나지 않으리

          ----- 김덕성-----

 

정든 세월에게 

홍매화 꽃망울 달기 시작하는데 싸락눈이 내렸다

나는 이제 너의 상처를 감싸주지 않을 거야

너 아픈 동안, 얼마나 고통스럽냐고

너 아프면 나도 아프다고

백지 위에다 쓰지 않을 거야

매화나무는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채

나뭇가지 속이 뜨거워져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너를 위하여 내가 흘릴 눈물이 있다고

말하지 않을 거야 쿨룩쿨룩, 기침을 하며

싸락눈이 봄날을 건너가고 있었다

          ----- 안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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