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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이 있는 한시

소군원(昭君怨)매화(梅花)

by 까마귀마을 2024. 1. 18.

소군원(昭君怨)매화(梅花)

 

道是花來春未(도시화래춘미) 꽃 피었다는데 봄은 아직 오지 않았고,

道是雪來香異(도시설래향이) 눈 내렸다 하는데 (눈에는 없는)그 향기가 유별나다.

竹外一枝斜(죽외일지사) 대울타리 밖 비스듬히 뻗은 가지,

野人家(야인가) 어느시골집.

 

冷落竹籬茅舍(냉락죽리모사)  적막하고 저 쓸쓸한 대울타리 초가집도

富貴玉堂瓊謝(부귀옥당경사)  으리으리 부잣집의 아름다운 정자에도

兩地不同裁(량지부동재) 심은 장소는 서로 다를지라도

一般開(일반개)  꽃이 피는 건 매한가지.

                      ----- 정역(鄭域)----

 

註.

道是(도시) : 라고 말하다.

花來(화래) : 꽃피는 계절이 왔다.

冷落(냉낙) : 쓸쓸하다.

茅舍(모사) : 띠나 이엉 따위로 지붕을 이은 집.

瓊謝(경사) : 아름다운 옥으로 장식된 정자 (瓊 : 옥)(謝 : 정자)

 

매화를 예찬한 漢詩는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수많은 문객들이 시로 노래로 남겼다.

이 시는 남송(南宋) 초엽의 鄭域(정역)의 저작으로 되어있지만 정역은 생졸연대도 불확실하고  행적이 불분명 하다. 다만 위의 시 한 구절로 오래도록 이름을 남겼다. 위의 시는 宋대를 대표하는 운문 장르인 사(詞)로  원래 노래의 가사로 출발한 것이라 곡조의 이름인 사패(詞牌 : 詞 곡조의 명칭)를 제목으로 쓴다. 사패는 원 곡조의 이름이라 새롭게 작사한 사의 내용과는 전혀 무관한 경우가 많다. 소군원(昭君怨)은 송사(宋詞)의 곡조명으로 이 작품의 사패는 한나라 때 흉노로 시집간 궁녀 왕소군의 원망을 의미하지만 사의 내용은 왕소군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 사는 매화를 노래한 것인데, 재미있게도 사패도 매화와 아무런 관련이 없고 작품 전체에 매화라는 단어가  아예 나오지 않는다.

왕소군은 중국 역사상 4대 미인으로 꼽히는 인물로 한나라 원제의 후궁이었다. 훗날 흉노의 호한야(呼韓耶) 선우에게 화친을 목적으로 시집 보내진 비극성으로 인해 당나라 시인인 이태백과 백거이, 송나라 시인 왕안석과 구양수 등에 의해 시로 창작되는 등 중국 문학 소재로 널리 애용되었다. 왕소군의 원래 이름은 장(嬙)이고, 자는 소군(昭君)이며, 아명은 호월(皓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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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에 대한 시인의 찬사가 나지막하게 이어진다. 

애써 과장하지도 도드라진 특징을 과시하는 법도 없이 조곤조곤 매화의 미덕을 보여준다. 

봄이 오기도 전에 홀로 추위를 뚫고 의연히 꽃 피우는 건 범접하지 못할 저만의 끈기 때문일 테다. 

온 세상 눈 가득 내린 듯 하얀 천지에 아련히 퍼져나오는 유별난 향기, 

아, 매화였구나. 

그제야 비로소 눈에 띌 만큼 그 개화는 실로 겸손하다. 

그 꽃, 그 향기가 시골집 댓가지 위에 새록새록 피어난다. 

뽐내지도 자만하지도 않는 가만가만한 고절(孤節)을 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뿐이랴. 빈부귀천을 구분하지 않는 저 너그러운 맘씨는 설중군자(雪中君子)의 고아한 기품으로 읽어야겠다.(글 : 김환기(金煥基, 1913-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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