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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이야기(나는 왜 가나안 성도인가)

야훼는 사랑의 하나님인가?

by 까마귀마을 2023. 11. 11.

한때 열심의 신자로, 내가 믿는 기독교를 알기 위해 구약은 물론 성경전체를 여러번 읽었고 기독교 교리의 핵심이 되는 신구약의 개별성서 부분을 수도 없이 반복하여 읽었지만 고어체로 된 번역과  이상하게 나열된 글자의 구성및  장황하고 반복되는 구절들, 서로 일치하지 않은 교리, 일치하지 않은 연대, 일치하지 않은 사건의 기록, 읽기를 질리게 하는 방대한 분량 때문인지 읽어도 무엇을 읽었는지의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과 혼란이  항상 있었지만 이 글을 읽고는 야훼를 유일신으로 믿는 종교들이 왜 폭력적이고 배타적 인지에 대해서는 조금은 알수있는 좋은글 이라 브런취에서 옮겨왔습니다.

참고로 이스라엘인들은 그들의 신을 왜 야훼라 하는지 뜻이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야훼는 유대교 뿐만 아니라 기독교, 이스람교의 유일신을 지칭하여 부르는 명칭이지만 모음 없이 자음만 표기하던 고대 본문에서는 알파벳으로 YHWH만 표기했을 뿐 원래의 발음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야훼의 뜻은 존재하는 모든 것을 존재케 한다 (Yahweh-Asher-Yahweh)는 것이 가장 정확한 뜻이라고 성경학자들은 말한다. 한글성경은 스스로 있는자로 번역 하였다.

구약에 의하면 모세에게 나타나 자신의 이름이 야훼라고 알려주고 이 이름으로 자기를 부르라고 계시했다. 그러나 모세가 속했던 레위 지파는 '야훼'라는 이름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모세의 어머니 이름이 '요게벳'인데, 이것은 '야훼'라는 이름의 바탕으로 지어진 이름이기 때문이다.

가장 오래된 성서 문헌에서 야훼는 일반적으로 날씨와 전쟁신, 땅을 비옥하게 하고 이스라엘의 적들에 대항하여 하늘의 군대를 이끄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당시 이스라엘민족이 다신교를 믿었고 엘, 아세라, 바알을 비롯한 다양한 가나안 신들과 여신들과 함께 그를 숭배했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후기에 엘과 야훼가 융합되어 엘 샤다이와 같은 엘과 관련된 별명이 야훼에게만 적용되게 되었으며,바알과 아세라와 같은 다른 신들과 여신들이 야훼에 흡수되었다고 보고있다

유대인들은 바벨론 유수이후 BC 3세기 부터는 야훼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유대교가 그리스·로마에서 개종자들을 얻어 보편종교가 되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다른 모든 신들에 대해 보편적인 주권을 갖고 있음을 과시하기 위해 신이라는  뜻을 지닌 명사 엘로힘 및 아도나이(Adonai: 나의 주님)라는 낱말을 야훼 대신 사용하게 되었는데 이는 야훼는 너무 거룩하고 신성시 되어  발언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간주했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이후 그리스도교 신학자들은 여호와라는 이름을 사용했지만, 19~20세기 성서학자들은 다시 야훼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유대교의 신인 야훼가 전쟁의 신이라는 사실은 잘 안 알려져 있다. 유대교의 경전인 구약에는 만군의 야훼라는 표현이 무수히 나온다. 곧 유대교의 신이 유대인 군대의 총사령관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군대의 야훼라는 의미의 야훼 쯔바옷(יהוה צבאות)은 유대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표현이다. 곧 신이 자기들의 총사령관이 되어 적과 맞서 싸우는 데 앞장을 서 줄 것이라는 유대인들의 믿음에서 나온 말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과거 이민족과의 싸움에서 신을 믿고 무자비하게 ‘적’을 몰살시키곤 하였다. 이 싸움에서 여자와 아이라고 봐주는 법도 없었다. 지금 팔레스타인 국민을 대상으로 저지르는 살육도 유대교의 신앙에서는 그래서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과거 유대인 조상이 했던 그대로 지금 적을 살육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다만 그것이 현대 문명국가들이 지지하는 인본주의, 인도주의에 안 맞을 뿐이다.

 

어쩌다가 유대인은 이런 호전적인 야훼를 자기들의 신으로 모시게 되었을까? 그 답을 찾는 데에는 모세가 유대인을 끌고 들어온 이른바 젖과 꿀이 흐른다는 가나안 땅의 지정학적 위치를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가나안 땅은 구약에서 묘사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절대 아니었다. 그리고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나일강 지역 사이의 가교 지역이 되어 두 지역의 강대국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외세에 휩쓸리는 형편없는 곳이었다. 그 지역을 차지한 유대인의 운명도 이런 외세에 철저히 좌우되었다. 유대인이 자랑하던 다윗 왕국도 솔로몬의 실정으로 남북으로 갈라지고 북쪽인 이스라엘 왕국은 BC 8세기에 아시리아에 정복되어 사라졌다. 남쪽의 유다 왕국도 결국 BC 586년 바빌론에 점령 당하고 유대인은 포로로 끌려가 노예 생활을 했다. 그다음에는 페르시아, 그리스, 셀레우코스, 로마 제국의 지배를 차례대로 받았다. 그리고 기원후 70년과 77년 반란을 일으켰다가 제압당하여 2천 년 가까운 디아스포라의 삶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1948년이 돼서야 영국과 미국의 도움으로 다시 가나안 땅에 들어가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이제 70년 남짓 동안 버텨오고 있다.

 

사실 유대인은 기원후 70년부터 유럽과 아프리카 중동 지역에 흩어져 살면서 이민족과 피가 많이 섞였다. 그래서 지금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유대인의 피가 과연 얼마나 순수한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DNA 검사를 해보면 확실해지겠지만 그들의 자존심으로 허락할 리가 없으니 그냥 유대인으로 간주해 버릴 수밖에 없다. 나라가 없음에도 유대인들이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고리대금업과 금융, 무역을 주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세 때까지 유럽에서는 기독교에서 금기시하는 돈을 만지는 일을 꺼려서 모두 어차피 죄인인 유대인에게 맡겨 버렸다. 그 당시 유럽인들 가운데 누구도 자본주의가 오늘날처럼 번성하리라고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대가 바뀌자, 수백 년 동안 돈을 굴리는 노하우를 축적한 유대인이 자본주의 시대에 물 만난 고기가 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음지가 양지가 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어도 유대인들의 신앙은 여전히 변함없이 야훼를 유일신으로 섬기는 유대교다. 그리고 유대교에서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법이 없다. 그러나 원수를 미워하라는 말도 없다. 신약성경에 보면 예수가 다음과 같이 한 말이 나온다.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43~48)

 

이 구절만 보면 마치 유대인이 원수를 미워하는 종족인 것처럼 들린다. 그런 계율을 예수가 혁파하여 유대인의 미움을 사게 된 것으로까지 해석된다. 그러나 유대교의 경전인 구약 어느 구석에도 원수를 미워하라는 말은 안 나온다. 그런데 예수가 이런 말을 한 데는 곡절이 있을 터. 다시 말해서 성경에는 안 나오지만, 그 당시 유대인들의 태도가 그 모양이었다는 말이다. 원수가 되면 몇 배로 갚아주는 심보가 있는 것이 바로 유대인이었으니 말이다. 그 근거는 바로 <신명기>에 나오는 ‘눈에는 눈’으로 갚으라는 유대교 계율이다. 그리고 구약에 보면 유대인의 신이자 왕인 야훼가 주동하여 대량 살해하는 장면이 수없이 많이 나온다. 다음은 그 일부다.

 

엘리사는 하나님의 도움으로 자기 대머리를 조롱했다는 이유로 곰 두 마리를 보내 42명의 어린이를 죽였다.(열왕기하 2,22~23) 아비멜렉은 자기 형제 69명을 돌 위에서 죽였다.(사사기 9,50) 에돔 사람 도엑은 제사장 85명과 남자, 여자, 어린이, 젖먹이, 소, 당나귀, 양을 모두 칼로 죽였다.(사무엘상 22,18~19) 엘리야는 야훼의 도움으로 102명을 불태워 죽였다.(열왕기하 1,10~12). 다윗은 포피로 첫 번째 아내를 사기 위해 블레셋(팔레스타인) 사람 200명을 죽였다.(사무엘상 18,25~27) 아비새가 창으로 300명을 죽였다.(사무엘하 23,18, 역대상 11,20) 다윗의 지휘관들은 창으로 300명(대상 11,11) 또는 800명(삼하 23,8)을 죽였다. 엘리야는 기도대회에서 종교지도자 450명을 죽였다.(열왕기상 18,22~40) 삼갈은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600명을 죽였다.(사사기 3,31) 삼손은 당나귀 턱뼈로 1,000명을 죽였다.(사사기 15,14~15)

 

여기에 더해 유딧은 미인계를 동원하여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칼로 잘라버리고 유대인의 영웅이 된다. 물론 이 이야기는 비록 <구약성서>의 <유딧기>에 당당히 실릴 정도로 유명한 유대교의 역사지만 허구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그럼에도 성경에나 실린 이유는 당연히 유대교와 유대인의 ‘영웅’이기 때문이다. 유대인과 유대교를 위해 음모를 꾸며 살인을 저질러도 영웅이 되는 종교가 바로 유대교인 것이다.

 

이 외에도 구약에는 살육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이러한 살육이 바로 유대교의 신인 야훼의 도움으로 야훼의 뜻으로 자행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야훼는 군대의 주인, 곧 유대인 군대의 총사령관이 된 것이다. 이러한 정신은 지금도 유효하다. 그리고 복수, 더 나아가 유대인의 이익을 위한 침략과 살육은 신의 뜻인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유대인은 팔레스타인이 공격했다는 것을 명분으로 팔레스타인 사람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살육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세계 언론은 유대인을 비난하는 것을 매우 꺼린다. 여기에는 단지 나치 히틀러 시대의 유대인 학살의 기억 때문만이 아니다. 유대 자본이 지배하는 신자유주의 경제 제도 탓이 크다. 얼마 전에 하버드 대학교 학생회에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국민에 대한 무자비한 살육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자 유대인 집단은 그들의 취업을 들먹이며 불이익을 줄 것이라고 협박했다. 그러자 그 성명을 취소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것이 유대인의 참 얼굴이다.

 

사실 유대교에서는 지옥이 없다. 그리고 기독교 교리의 핵심인 원죄라는 개념도 없다. 또한 부활이나 내세에 대한 교리도 없다. 그저 지금 여기에서 지상 왕국을 건설하는 것이 유대교의 궁극 목표다. 그래서 여기 지금 유대인들의 삶을 방해하는 요소는 모조리 야훼 신의 뜻을 거스르는 일로 척결의 대상이 된다. 그것이 팔레스타인의 병원이든, 난민 수용소이든 임신한 여자든 방금 태어난 아이든 상관없다. 유대인의 지상에서의 행복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이든 신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 된다. 그래서 현대의 인본주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어처구니없는 복수극과 참극이 유대교에서는 당연한 일이 된다. 세계가 멸망해도 유대인만 살아남으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유대인만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는? 야훼 신이 선택한 유일한 인종이기 때문이다. 야훼는 오로지 유대인의 생존만을 위해 존재하는 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그런 유대교에서 나온 기독교는 역설적으로 유대교와 유대인을 박해하는 종교가 되었다. 그래서 2천 년 가까이 유대인들은 유럽에서 핍박을 받아온 것이다. 그런 유대인이 1948년 기독교 국가인 영국과 미국의 도움으로 다시 나라를 세웠다. 헤롯의 유다 왕국이 멸망한 지 거의 2천 년 만에 다시 유대인의 나라가 건설된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의 역사를 보면 나라가 반드시 망했다. 이제 언제쯤 유대인들의 나라가 망할지 지켜볼 일이다. 유대교의 시각에서는 유대인들이 그들의 신인 야훼의 뜻을 거스르고 타락할 때 바로 나라가 망했다. 그런데 지금과 같이 이민족을 살육하는 것은 야훼의 뜻이니 아직 이스라엘이 망하려면 한참 남은 것 같다. 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살육조차 신의 뜻인 유대교가 살아남는 방법을 이해하려면 아직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러나 유대교의 신인 야훼가 유대인 군대의 총사령관으로 머물고 있는 한 이러한 역사의 질곡은 영원할 것으로 보인다. 야훼는 오로지 유대인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번성하기만 바라는 신이니 말이다. 기독교에서는 이런 야훼가 모든 인류를 사랑하는 유일신이라고 해석해 내고 있지만 신학적으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유대인의 민족 신을 억지로 기독교의 보편적 사랑의 신으로 만들어 낸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예수가 유대인이었고 예수가 믿은 신이 야훼였기 때문이다. 전쟁의 신을 평화의 신으로 해석해 내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다. 그리고 야훼를 평화의 신으로 보편적 사랑의 신으로 해석했음에도 유럽의 기독교 역사는 유대 왕국과 다름없는 살육의 역사였다. 기독교의 이름으로 이교도를 죽인 것도 모자라 개신교와 가톨릭이 같은 신의 이름으로 서로를 살육했다. 그리고 신대륙을 정복하는 과정에서도 기독교의 이름으로 수억 명을 살육했다. 이런 의미에서 유대교나 기독교가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

 

결국 종교적 광기는 인간을 비인간적 존재로 만든다는 것을 바로 유대교와 기독교가 역사를 통해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종교가 사라진다고 이런 광기도 사라질까? 아니다. 인간의 근원적인 폭력성은 특정 종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베르나르 앙리 레비가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에서 갈파한 대로 기독교를 근간으로 한 봉건주의와 제국주의를 물리친 공산주의마저 야만적이었다는 사실은 사실 인류의 장래를 어둡게만 만든다. 그 어떤 종교나 이데올로기도 궁극적으로는 인류의 살육을 목표로 삼는다는 진실 앞에서 절망밖에는 할 것이 없다. 앙리 레비가 말한 대로 ‘권력 없는 사회는 없고 남용 없는 권력은 없다.’ 그래서 인간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지난 20만 년 동안 권력을 추구했고 그 권력으로 결국 다른 인종만이 아니라 인류 자신의 멸종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전쟁, 질병, 환경 파괴, 경제적 파탄은 모두 바로 그 지혜롭고도 지혜롭다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작품이다. 이제 그 인류를 기다리는 것은 결국 멸종이다. 그래서 지금 가자 지구에서 벌어지는 살육이 바로 인류 전체의 미래 모습으로 보이는 것이다. 유대인과 유대교를 살리자고 나머지 인종과 종교를 살육하는 방법밖에 모르는 유대인이 어리석어 보이지만 그것이 또한 모든 인류의 모습 아닌가? 유대인과 유대교만 살아남는 곳이 과연 지상 천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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