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경전 구약성경 역대상에 들어있는 "야베스의 기도"를 한글서예 꽃뜰 이미경의 궁체 흐림체로 쓰다.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소서 "
----구약 역대상 4장 10절 중에서---
기독교 교인 이라면 한번쯤 들어 봤거나 성경으로 읽어본 적이 있는 야베스의 기도이다. 구약성경 역대상 4장 10절에 있는 구절로 주일이나 공적 예배시 예배가 시작될때 묵상 기도문으로 많이 봉독되기도 하며 때로는 세속적인 복을 구하는 설교용으로 자주 인용되는 구절이다.
구약의 역대상은 단권의 역사서 였는데 bc 150년경 상, 하 두권으로 구분 되었으며 저자는 미상이다.에스라가 기록하였다 는 설이 있지만 확실한 근거가 없다. 저작연대는 주전 500년경으로 추정되며 바벨론 포로에서 풀려난 유대인을 대상으로 기록 되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각 시대의 말씀들 또는 각 시대의 사건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역대상에서는 1장에서 9장까지 아담의 자손들의 족보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계보가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그 중심 부분 4장에 유다 자손을 말하다가 끝맺음도 하지 않고 다른 족보를 말하기 전에 뜬금없이 야베스를 말하고 있다.
이는 야베스가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 그만큼 특별했다는 의미 이지만 성경의 기록 만으로는 정확히 알수는 없다. 단지 유다 자손을 말하다가 야베스에 대한 말을 짧게 9. 10절에 삽입하여 기록 한것으로 보아 야베스가 유다 자손중 존재가 특별하거나 중요한 인물 이었을 것으로 여겨지며 야베스가 살았던 시기는 족보에 나와 있는 인물들에 대한 연대를 측정해 보면 대체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던 시기의 인물이라고 성경학자들은 추측하고 있다.
성서에서 인물을 기록할때는 동명이인을 구분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누구의 아들 누구라 기록 한다, 하지만 야베스에 대해서는 야베스를 낳은 부모가 누군인지, 야베스가 누구를 낳았는지 그의 후손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다. 성서 속의 족보는 장자를 중심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야베스의 조상은 차자(次子) 이었거나 막내이었을 것이라 여겨지며 야베스의 부모나 조상이 누구 인가를 말하지 않은 것은 그의 부모나 조상이 성서에 기록될 만큼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고 야베스의 아들이나 후손도 성서에 기록될 정도로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라 추측 할 뿐이다.
역대상 4장 9-10절에 기록된 성경구절을 옮겨보면,
9.절 : 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 그 어미가 이름하여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10.절 :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데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것을 허락하셨더라.
위의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9절에 야베스에 대한 언급은 그의 어머니가 그를 수고로이 낳았다고 하여 ‘야베스’라고 이름짓고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10절에 야베스의 기도라고 일컫는 위의 구절 "원컨데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소서" 가 들어있고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 하였더라 기록하고있다.
이를 바꾸어 말하면 야베스는 하나님의 존귀한 자 이기에 그의 기도가 응답 되었다는 의미다, 그러나 야베스가 그의 형제보다 어떤 능력이나 믿음, 행동이 달라 하나님의 존귀한자가 되었는지는 설명이 없다. 하나님의 존귀한자는 우리의 믿음이나 행위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의 의지이며 하나님의 고유 주권이라는 것을 본문을 통해 확인 할수 있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알고있는 얘기이다, 카인은 농부이기에 정성껏 키운 햇곡식과 과일을, 아벨은 목동이기에 기르는 가축중에서 처음 난것을 야훼에게 제물로 받쳤지만 야훼는 아벨의 제물만 기쁘게 받았다. 곡식이나 과일, 그리고 가축 모두가 하나님이 맺고 기른것인데 왜 카인의 곡식과 과일은 홀대 받고 흠향(歆饗)되지 못하였을까? 과연 하나님의 공정(公正)은 무엇일까?
지금 이 시간에도 수도 없는 많은 목회자들, 성도들이 야베스 처럼 복을 구하고, 일신의 평안을 비는 기도가 곳곳에서 여러 모양으로 드려지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세속적인 기복(祈福)이 실려 있는 야베스의 기도를 가끔 외우며 조용히 기도 할때가 있다. 그러나 야베스가 지경을 넓혀 달라고 야훼 하나님께 도우심을 요청하고 있는 시기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던 시기임을 볼때 세상적인 복을 비는 기도가 아니라 아직 정복하지 못한 가나안 땅에 대한 야훼 하나님의 도움과 지경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겪는 근심과 환난을 제거해달라는 국가적이며 민족을 위한 기도이지 야베스 개인의 세상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는 사실도 알아야 할 것이다.
기도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하느님께 드려지는, 하느님과 소통하는 기도는 먼저 의(義)로워야 하고 인간의 영이 물질계의 속박으로부터 풀려나 더 큰 발현(發現)을 이룰 수 있는 수단이어야 하며 무엇을 달라고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가진 것의 감사(感謝)와 한편으로는 나 자신과의 약속이고 나 자신에 대한 선언이자 다짐이다. 기도는 하느님을 변화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변하는 것이다, 내가 할수있는 노력과 절제를 끊임없이 계속하여 나와의 약속을 지키겠다는 각고의 노력과 의지의 표현이지만 내힘, 내 능력으로 감당할수 없는 영역은 하느님의 은총에 맡길 뿐이다.
위 본문의 야베스의 기도는 야베스 자신의 세속적인 욕심이나 소망을 비는 기도도 아닐뿐 아니라 예수님이 가르친 기도도 예수님이 원하는 기도도 아니다, 단지 기복주의자들이 악용하고 있을 뿐이다. 언제 예수님이 의식주를 걱정하고 일신의 안녕과 세상의 부, 명예, 권력을 구한적이 있나? 불의(不義)한 재판관에게 억울한 원한을 풀어 달라 울며 불며 매달린 과부처럼 우리도 울고 불며 간절히 기도 하면 그 기도를 하느님이 들어준다고 걸핏하면 설교로 듣게된다. 마치 어린아이가 울면서 부모에게 떼를 쓰면 부모가 다 들어 준다는 듯이, 정말 애걸 복걸 구걸하며 기도한다고 그 기도가 다 응답 받고 소망이 이루어 질까?
정작 울며 불며 매달린 과부의 청원은 불의한 재판에 대한 억울함이지 세속적인 욕망이나 욕심은 아니다. 그러나 때로는 이런 기도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을 덜어주고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기도 한다는 것을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하느님이 택한 존귀한 자도 아니고 지금은 교회에도 나가지 않는다. 설사 내 기도가 하늘에 닿지 않는다 해도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과 함께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하며 평안과 위안을 삼고 있다.
나무위키에 의하면
야베스(Jabez)는 역대기에 등장하는 한 남성이다. 유다국왕의 조상으로 이야기되지만 혈통에 분명히 언급되어 있지는 않다. 그의 어머니가 그의 이름을 야베스로 지었는데 그 의미는 "그가 슬프게 한다"는 것으로, 정확한 출생적 기원은 불분명하다. 야베스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주의 은혜에 힘입어 새로운 영토를 정복한 것이다.
야베스에 대한 본문 설명은 간단하지만 일부 타르굼(아람어로 기록된 구약성경) 사람들은 야베스가 십보라의 레위 자손을 위한 종교 기관도 세웠다고 자세히 설명한다. "그 이름을 야베스라 하니 이는 그가 그 회의에서 31명의 제자로 구성된 학교를 세웠음이더라. 이는 그들의 찬송가에서 그들의 음성이 나팔 같았기 때문이요, 시마팀은 그들이 들음에 그들의 얼굴을 들었기 때문이요, 즉 그들이 기도할 때, 수가딤은 그들이 예언의 영에 의해 가려졌기 때문이더라.”
아랍어와 페르시아어에서는 야베스를 야비스(Yabis) 또는 야비즈(Yabiz,)로 음역한다. 그러나 시리아어와 아랍어 번역은 히브리어 [내 눈]과 동족인 ainei 또는 "aina"의 실질적으로 다른 음역을 사용한다. 야베스는 역대상 2:55에도 언급되어 있는데, 이는 지명으로 언급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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