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居秋溟(산거추명) 산골에서 가을저녁
空山新雨後 (공산신우후) 낙엽 진 산에 다시 비 내리자
天氣晩來秋 (천기만래추) 가을 기운 가득하다
明月松間照 (명월송간조) 밝은 달빛 솔밭 사이로 밝게 비치고,
淸泉石上流 (청천석상류) 맑은 샘물은 바위 위로 흐르네
竹喧歸浣女 (죽훤귀완녀) 떠들석하며 빨래하던 아낙네들 대숲 길로 돌아가자
蓮動下漁舟 (연동하어주) 조업을 마친 고기잡이배 애꿎은 연잎만 흔들며 가네.
隨意春放歇 (수의춘방헐) 봄은 꽃을 놓아주었지만
王孫自可留 (왕손자가류) 나는야 산중에 오래도록 머물리라.
-----王維(왕유)----
註.
山居(산거) : 산속에 살다. 여기서는 작가가 은거한 망천 별장을 의미.
秋暝(추명) : 가을 저녁,
竹喧(죽훤) : 대나무 숲사이에서 떠들석한 소리가 나다.(喧은 떠들썩한 모양)
浣女(완녀) : 빨래하는 여인,
漁舟(어주) : 어선, 낚시하는 작은배
隨意(수의) : 어느새. 어느듯, (계절이 바뀌어)
歇(헐) : 없다, 다하다.
春芳(춘방) : 봄날의 풀, 향기로운 풀.
春芳歇(춘방헐) : 봄날 꽃이 떨어져 흩어지다
王孫(왕손) : 뜻은 귀족의 자녀를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남자의 美稱으로 풍류군자나 은일 자적하는 왕유 자신을 뜻한다.
隨意春放歇 王孫自可留 : 아름다운 봄 경치가 사라지더라도 가을 풍경 역시 아름다워 왕손 공자가 돌아가지 않고 산속에 오래 머문다는 의미로서 楚辭(초사) 招隱士(초은사)에 왕손이여 돌아오라 산속에서 오래 머물수 없음이여 ( 王孫兮歸來 山中兮不可以久留)라는 구절을 역 인용한 것으로 보임.
半官半隱의 생활을 하던 왕유는 47세에 장안 근교의 輞川(망천)에 별장을 매입하여 본격적인 은거생활에 들어간다. 이 詩는 망천 생활의 초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 작품은 산속 생활의 아름다움을 표현하였는데, 막 비가 그친 뒤 가을 산의 閒靜(한정)을 그림을 그리듯 담아내고 있다. 산속의 그윽한 정경뿐만 아니라, 산속의 정겨운 인물들을 묘사함으로써 자연과 혼연일체가 되어 사는 한적한 모습을 입체적으로 표현하였다.
갓 내린 비가 씻은 맑은 가을 어스름 저녁..
달은 이미 솔밭 사이를 밝게 비추고,
맑은 샘물은 돌 위로 졸졸 소리를 내며 흐른다.
그런데 갑자기 대숲이 버석거리는 걸 보니.
아하 앞 냇가에서 빨래를 하던 아낙네들이 집으로 돌아가네.
무성한 연잎들이 연이어 움직이는 걸 보니 고깃배도 작업을 마치고 돌아가는 가 보다.
봄날같은 꽃 향기는 없더라도. 나는 이곳에 오래도록 머무르리라....
늦가을 비온 후의 망천 별장 풍경의 청명함을 노래한 이 詩는 마치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듯 하다.
오언률시로 된 왕유의 산거추명은 수 만자의 한자(漢字) 중에서 적합한 한 자(字) 한 자(字)를 골라서 바둑판에 돌을 놓듯 그려가는, 글자 한자 한자에 많은 뜻을 내포한 한시(漢詩)가 가진 독특함이 잘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한폭의 아름다운 그림같은 시를 지을수 있음은 성당(盛唐)의 대표적인 시인이었던 왕 유가 또한 실제로 중국 문인화(文人畵)의 초석을 놓은 화가이기도 하였다는 사실을 알면 잘 이해가 간다, 이 시는 함축성이 강하여 강(江)을 읊은 한강임범(漢江臨泛)과 더불어 산(山)을 읊은 왕유의 명작으로 꼽힌다. (옮겨온 글 일부 보완정리)
漢江臨泛(한강임범)은 아래 올립니다.
漢江臨泛(한강임범), (한강에 배 띄우고)
楚塞三湘接(초새삼상접) 초나라 변방 땅은 三湘과 닿아있고,
荊門九派通(형문구파통) 형문산엔 아홉 가닥 강물이 이어 진다네.
江流天地外(강류천지외) 강물은 천지 밖으로 흘러가는데,
山色有無中(산색유무중) 산색은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郡邑浮前浦(군읍부전포) 고을들은 앞 강가에 떠 있고,
波瀾動遠空(파란동원공) 작고 큰 물결이 먼 하늘까지 일렁이네.
襄陽好風日(양양호풍일) 양양 땅의 풍광이 좋은 날,
留醉與山翁(유취여산옹) 양양의 옛 노인 山簡(산간)과 함께 머물며 취하고 싶구나.
註.
泛(범) : 뛰우다.
漢江(한강) : 한강(漢江) 또는 한수이 강(漢水)은 창 강의 지류로 총 길이는 1532km이다. 발원지는 산시 성 한중 시 닝창 현이다. 후베이 성을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가로질러 흘러 성도 우한에서 창 강과 합류한다. 합류하는 강은 우한 시를 우창(창 강 남안), 한커우(창 강과 한수이의 북안), 한양(창 강과 한수이 사이)의 세 부분으로 나눈다. 중국의 왕조인 한나라와 도시 한중, 중국의 다수 민족인 한족이 이 강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楚塞(초새) : 초나라 변방의 험한 곳을 말한다. 춘추전국(春秋戰國)시대 한수(漢水) 일대 지방이 초나라에 속해 있었다.
三湘(삼상) : 현재 호남성(湖南省) 상수(湘水)의 총칭이다. 삼상(三湘)은 원상(沅湘)· 소상(瀟湘)· 자상(資湘)을 합쳐 말한 것이다.(湘이 江으로 된 본도 있다)
荊門(형문) : 山 이름. 현재 호북성(湖北省) 의도현(宜都縣) 서북(西北)에 있다. 한강(漢江) 남안(南岸)이 형문산(荊門山)이며 북안(北岸)의 호아산(虎牙山)과 마주하고 있다.
九派(구파) : 장강(長江)이 지나는 지류가 많음을 말하는 것으로 실제 숫자가 아니다. 장강(長江)은 심양(潯陽)에서부터 나뉘어 구강(九江)이 된다. 九는 많다는 뜻
山色有無中(산색유무중) : 먼 곳에 보이는 산 빛이 홀연히 나타났다 홀연히 사라졌다 하면서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다는 표현이다.
浮前浦(부전포) : 浦(포)는 漢水의 물가를 가리킨다. 멀리 강가의 고을들이 물가에 떠서 움직이는 듯하다는 말이다.
襄陽好風日(양양호풍일) : ‘日’이 ‘月’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襄陽(양양)은 현재 호북성(湖北省) 북부에 있는 도시로 한수(漢水) 상류 지역이다. 현재는 강 건너 번성(樊城)과 합쳐져 양번(襄樊)이라 한다. 風日(풍일)은 풍광(風光)과 같은 말이다.
山翁(산옹) : 翁이 公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山翁(산옹)은 진(晉)나라의 산간(山簡)을 가리킨다.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이었던 산도(山濤)의 아들로 정남장군(征南將軍)이 되어 양양(襄陽)을 지켰다. 술을 좋아해 항상 양양(襄陽)의 호족(豪族) 습씨(習氏)의 아름다운 정원에서 잔치를 열고 술을 마셨다는 기록이 晉書(진서)에 보인다.
* 제목이 漢江臨眺(한강임조)로 된 본도 있지만 臨眺(임조)는 높은곳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는 모습을 뜻하는데 이 詩의 내용으로 보아 제목으로는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이 있음.
* 왕유(王維, 699?∼761?)
9세에 이미 시(詩)를 지었으며, 서(書)와 음률(音律)에도 재주가 뛰어났다. 21세때 진사시험에 급제 하였으며 나중에 尙書右丞(상서우승)의 자리에 올랐다.
그의 시는 산수, 자연의 청아한 정취를 詩로 지었으며 작품중 수작(秀作)이 많은데, 특히 남전(藍田)의 별장 망천장(輞川莊)에서 지어진 일련의 詩들이 유명하다.
맹호연(孟浩然) 위응물(韋應物) 유종원(柳宗元)과 함께 왕맹위유 (王孟韋柳)로 병칭되어 당대 자연시인의 대표로 일컬어진다.
또 그는 독실한 불교신자인 어머니 영향으로 경건한 불교도 이기도 했다, 세인들은 그를 詩佛이라 불렀으며 그의 시 속에는 불교 영향을 받은 불교적 사상이나 색체를 쉽게 볼 수 있는 것도 왕유 詩의 특색이다. 순정, 고결한 성격의 소유자로, 탁세(濁世)를 멀리하고 자연을 즐기는 그의 삶은 남송 문인화의 시조로 받들어지는 원인이 되었다. 유작으로는 왕우승집(28권)이 있다.
그림은 산수화에 뛰어나 수묵(水墨)을 주체로 산수화를 발전시킨 최초의 화가이다. 금벽휘영화(金碧輝映畵: 아교풀에 갠 금가루와 石靑을 재료로 빤짝이며 비치게 그리는 그림)에도 손을 대고 있어 화풍 또한 다양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후세에 그는 신화적인 성인으로 추앙 받아 그의 실체가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이는 그가 뛰어난 재능의 화가인 동시에 위대한 시인이었기 때문인것 같다.
소동파(蘇東坡)는 왕유의 시를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 (詩中有花, 花中有詩)"고 평하였다.
왕유가 그린 그림으로 당시 장안(長安)에 있는 건축의 장벽산수화(牆壁山水畵)나 창주도(滄州圖) 망천도(輞川圖)등이 알려져 있었으나 그중에서도 특히 輞川圖(망천도)가 유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확실하게 전해지는 유품은 없고 후에 제작된 모사품으로 대강의 구도를 짐작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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