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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취미 생활/한문서예

水至淸則無魚 人至察則無徒 ( 수지청즉무어 인지찰즉무도)

by 까마귀마을 2023. 8. 20.

 

水至淸則無魚(수지청즉무어)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없고

人至察則無徒(인지찰즉무도) 사람이 너무 살피면 무리가 없다.

 

家語 水至淸則無魚 人至察則無徒 (가어 수지청즉무어 인지찰즉무도)

가어(家語)에 이르되 "물이 지극히 맑으면 고기가 없고, 사람이 지극히 살피면 친구가 없느니라."

 

*공자가어(孔子家語) : 논어에 포함되지 않은 공자의 유문(遺聞)과 일사(逸事)를 모은 책으로 10권으로 되어 있다.공자 문하의 제자들이 지은 것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계의 연구에 의하면 후대의 인물인 왕숙이 <좌전> <맹자> 등, 이미 알려진 여러 책에서 공자에 관한 일화와 언행을 모아 공안국(공자의 11세손)의 이름을 빌어 편찬한 위작으로 보고있다.(왕숙 : 후한 삼국시대 위나라 대신이자 사마이의 아들인 사마소의 장인, 삼국을 통일하고 진나라를 세운 사마염이 왕숙의 외손자)

 

 

예로부터 지나치게 맑은 물에는 고기가 살 수 없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완벽하게 보이려고 애쓰지 마세요.

어딘가 조금 부족한 사람은 나머지를 채워주려는 벗들이 많지만 결점 하나 없이 완벽해 보이는 사람에겐 함께 하려는 동지보다 시기하거나 질투하는 적이 더 많을수 있다. 우리는 너무 완벽한 사람보다 어딘가에 부족한 듯이 빈틈이 있는 사람에게 인간미와 매력을 느낀다고 한다. 즉 틈이 있어야 된다는 얘기이다.그 틈으로 사람들이 찾아오고 그들이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틈’이란 사전적으로 보면 ‘벌어져 사이가 난 자리(간극)이기도 하지만 어떤 행동을 할 만한 기회나 겨를, 모여 있는 사람의 속’을 말하기도 한다.주요 쓰임은 틈새, 빈틈, 문틈, 물샐틈, 틈바구니, 틈틈이... 등이 많이 쓰인다. 어떻게 생각하면 틈은 허점으로 생각되기 쉽다. 틈이 많은 사람은 뭔가 많이 부족하고 어리석게 보인다.

왜냐하면 완벽하지 않고 미숙하고 뭔가 가 허점이 보이고 손해가 나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로는 ‘틈’은 허점이 아니라 ‘여유가 될수있다.

인간관계에서도 다른 사람이 들어 갈 수가 있는 빈틈이 있어야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물리적 틈새가 아닌 제3의 공간인 틈새가 존재할 때에 관계 형성은 좋아진다.

내 마음에 빈틈을 내고, 나 자신의 빈틈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들의 빈틈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틈이 없는 100점짜리 인간보다는 조금은 빈틈이 있고 여유가 있어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는 그런 사람이 성공의 문에 더 가까이 서 있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水至淸則無魚 人至察則無徒의 출처

한서(漢書)를 편찬한 반고(班固)의 동생 반초(班超)는 집안 살림이 넉넉하지 못해 관가의 문서를 베껴 주거나 남의 서적을 필사해 주고 번 돈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어느 날, 반초는 관청에서 문서를 베껴 쓰는 일을 하다가 문득 붓을 던져 버리고 탄식했다. “대장부로서 이렇다 할 뜻과 방략이 없다면  마땅히 부개자(傅介子)와 장건(張騫)을 본받아 이역(異域)에서 공을 세워 봉후(封侯)의 자리를 얻어야지, 어찌 붓과 벼루 사이에서 오래 지낼 수 있겠는가.”

그 후 반초는 군관으로 발탁되어 흉노와 싸워 크게 이겼고, 서역에 출사해서는 무려 31년 동안이나 머물면서 흉노의 지배를  받던 서역 국가들을 정복하고, 50여 개의 나라들과 관계를 개선하는 등, 한(漢)나라의 세력을 확장하는 데 공을 세웠다. 

그는 그 공으로 화제(和帝) 때인 영원(永元) 3년(91)에 고차(庫車, 신강위구르자치구)에 설치되었던 서역도호부(西域都護府)의 도호(都護)가 되었다. 도호의 직책은 한나라에 복속을 맹세한 서역의 50여 나라를 감독하여 이반을 방지하는 것이었다.

그의 집안도 화려하여 아버지 班彪(반표)를 이어 형 班固(반고)는역사서 漢書(한서)를 지었고, 누이 班昭(반소)는 여류시인으로 유명하다

 

영원 14년(102), 반초가 소임을 다하고 귀국하자 후임 도호로 임명된 임상(任尙)이 부임 인사차 찾아와서 물었다.

 “임무는 무겁고 생각은 얕습니다. 가르침을 주십시오.”

반초는 자신은 이미 늙고 지혜도 쇠했다고 겸양을 한 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변방 밖의 관리들은 본래 효순한 사람들이 아니고 모두 죄를 지어 변방으로 나간 자들이네. 그리고 오랑캐들은 새나 짐승의 마음을  가진 자들이라 다스리기가 어렵다네. 자네는 성격이 너무 엄격하고  조급한 것 같아. 물이 너무 맑으면 큰 물고기는 살지 않는 법이고, 정사도 너무 엄하게 살피면 아랫사람과 화합할 수가 없다네. 그러니 너무 세상일에 얽매이지 말고 작은 과실에 관대하고 대범하게 다스리도록 하게나.”

 

 (塞外吏士, 本非孝子順孫, 皆以罪過徙補邊屯. 而蠻夷懷鳥獸之心, 難養易敗. 今君性嚴急, 水淸無大魚, 察政不得下和. 宜蕩佚簡易, 寬小過, 總大綱而已.)

 

임상은 주변 사람들에게 말했다. 

“무슨 대단한 계책이 나오리라 생각했는데 고작 평범한 말뿐이라니.” 

임상이 부임한 지 5년 후인 안제(安帝) 때(107년) 서역 50여 나라는 모두 한나라를 이반하였고, 서역도호부도 폐지되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후한서(後漢書) 반초전(班超傳)에 나온다.

‘수청무대어’는 ‘수청무어(水淸無魚)’ 혹은 ‘수지청즉무어(水至淸則無魚)’라고도 하는데, 이는 대대례기(大戴禮記) 자장문입궁(子張問入宮)에서  찾아볼 수 있다.

 

*傅介子(부개자)

중국 한(漢) 나라 소제(昭帝) 때의 무신. 준마감(駿馬監)이 되어 대완국(大宛國)에 사신(使臣)으로 다녀왔었고, 한 나라 사신을 공격해 오던 누란국(樓蘭國)의 왕을 죽이고 돌아와서 의양후(義陽侯)에 봉해짐.

*張騫(장건)

중국 전한(前漢) 때의 외교가(?~B.C.114). 자는 자문(子文). 인도 통로를 개척하고, 서역 정보를 가져와 동서의 교통과 문화 교류의 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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