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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이야기(나는 왜 가나안 성도인가)

신은 찬양 받을 필요가 없다

by 까마귀마을 2023. 8. 12.

종교의 근본주의는 싸우고 투쟁하며 파괴하고 소외한다.

이것은 창조주의 뜻이 아니다. (기독교 믿음을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과 다른 종교나 교리에 대해 항상 싸우려 하며, 투쟁하고, 이기고, 파괴하려 한다. 그들의 교리나 믿음을 거스른다는 이유로, 약자인 딸이나 여동생을 잔인하게 참수하거나 돌로 쳐죽이는 이슬람 근본주의와 본질은 똑같다 칼로 죽이는 것과 말로 죽이는 차이만 있을 뿐)

 

종교는 그저 가슴을 열게 하는 것이어야지, 교리나 믿음에 집착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신은 엄청난 시간이 걸릴지라도 모든 사람을 구원할 것이다. (많은 윤회를 거듭하게 해서라도)

결코 당신의 믿음에 의지하지 말라.

당신이 당신의 믿음이나 관념에 의지한다면 당신의 마음은 닫히고, 어두워질 것이다.

당신은 반대자들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단지 또 다른 반대자가 될 것이다.

당신이 자신의 믿음과 관념에 집착 할 수록 당신은 열심당원이 될 것이며 또 다른 적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적들 주위로 당신의 신앙을 구축할 것이고 신의 적이 당신의 적이라고 생각하며 당신이 좋아하지 않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적으로 몰 것이다.(무슬림 근본주의자와 똑같이)

 

신은 이런 것들을 이해한다.

왜냐하면 당신은 분리(에고)속에서 살고 있으며 당신이 따르도록 신이 당신 내면에 심어놓은 타고난 신성을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신은 자신의 관념과 다른 사람들의 관념, 나라와 문화와 종교, 사람들 사이에서 합의된 생각에 의존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 더할나위 없이 눈이(영안이) 멀게 된다.

그렇게 당신은 관념이라는 당신의 작은 감옥일수 밖에 없는 당신의 관념 밖을 내다볼 수 없으며, 그 믿음을 아주 열렬히 옹호하려는 경향이 있다.

당신은 밖을 내다볼 수 없으며 감옥에 갇혀있다.

그것은 마음의 감옥이며 확고한 믿음의 감옥이다.

당신은 실제로 새로운 그 무엇도 배울 수 없다. (닫혀진 아집과 고집스런 믿음외에는 아무것도 없으며, 이런 믿음은 부질없고 맹목적인 것이다)

 

당신은 단지 자신이 진실이라고 믿고 고수하는 것을 보강하려고 할 뿐이다. (자기 믿음과 고집을 더욱 강하게 하려 할 뿐이다)

그러나  신의 목적과 참된 진리의 목적은 당신을 믿음 너머로 데려가는 것이다.

당신은 당신의 믿음을 넘어서야 한다.

믿음의 차원에서는 당신은 창조주를 결코 이해할 수 없으며, 신이 세상에서 일하는 방식도 알 수 없고, 신과 당신의 관계도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신이 누구이고 무엇인지를  결코 당신은 이해할 수 없다.

 

믿음은 매우 제한적이다.

믿음은 매우 이기적이다.

믿음은 주위를 둘러싼 문화와 종교에 매우 조건화 된다.

믿음은 결코 어떤 큰 현실을 담을 수 없으며 당신이 왜 여기 왔고, 누가 당신을 보냈는지, 당신이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 당신 삶에 대한 본질적인 진실도 담을 수 없다.

이것이 믿음의 본질이다.

 

신은 인간의 믿음이나 인간의 종교에 얽매이지 않으신다. 신은 당신이 믿는 것을 확인해주려는 것도 아니다.

당신 내면에서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깊은 체험으로 가는 문을 열려고 하신다. (종교와 에고를 초월하는 신성의)

조건화된 믿음의 감옥 안에서 굳게 닫힌 마인드 라면 믿음과 신앙을 훌쩍 초월해 버리는 더 크고 참된 실재나 영의 신비를 맛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신이 당신에게 준 큰 현존=신성=참나의 큰 지성을 각성하고 따르는 것이야말로 세상에서 봉사와 헌신을 통해 당신이 신과 결합하는 방법이다.

이것만이 참된 종교이다.

 

이런 이웃(인류)사랑의 봉사와 헌신이 없다면 신을 숭배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런 봉사가 없다면, 모스크나 교회에서, 절에서 엎드려 절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신은 숭배가 필요하지 않다.

신은 인간(당신)과 다르다.

신은 불안정하지 않다.

신은 찬양받을 필요가 없다.

이런 점에서 신은 인간과 다르다.

 

사람들은 구원과 축복이라는 특별혜택과 특별 사면을 받기 위해 신을 이용하려고 하며 자신들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믿음을 이용하여 이러한 것들을 얻으려고 한다.

하지만 이 세상을 감독하는 고급령(천사) 그룹은 종교적 신앙이나 믿음 따위에 감동받거나 움직이지 않는다.

 

종교는 정부에 이용되고 종교 권력 추구에 이용되며 신도들과 사람들을 지배하고 억압하는데 이용된다.(바리새인과 서기관, 삯꾼과 신학자의)

종교는 역사를 통틀어 전쟁의 기치이자 예속의 기치로써 이용되었다.(기치[旗幟] : 어떤 목적을 위하여 내세우는 사상이나 강령)

 

종교인들은 신을 그들이 원하는 대로 만들었고(왜곡하고) 그들이 믿는 대로 만들었다.(조작했다)

인간을 닮은 신, 인간의 성향을 지닌 하나님으로 만들었다.

분리와 전쟁을 좋아하는 신, 독재자인 신, 비극적인 신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신은 인내심이 있으니, 당신은 인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신은 관대하니, 당신은 관대해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신은 세계 모든 종교의 원천이니, 당신은 모든 종교를 존중해야 하고 그 종교의 가치와 공헌을 알 수 있도록 모든 종교에 대해 알아야 한다.

신은 사람들의 내면에서 바깥으로 사람들을 통해 일하면서, 세상에서 움직인다.

그러므로 당신은 다른 사람들 안에 신의 움직임이 있는지, 귀 기울어야 한다.

 

 

글 : 근본주의(종교의) 위험성에 대해 --마샬 비안 서머즈

(미국 작가이자 영적 교사이다. 그는 수많은 책과 팟 캐스트를 저술했으며, 1992년에 설립 된 비영리 단체인 새 메시지 협회의 설립자이다. 이 협회는 그의 책과 가르침을 지원하고 제공하고 있다.)

 

 

당신은 마음이 아니다

 

당신은 당신의 마음이 아니다.
당신은 당신의 이성이 아니다.
당신의 본질은 당신의 생각이 아니다.
당신은 당신의 믿음이 아니며,
당신의 생각이나 기억도 아니고,
당신의 갈등이 아니다.
당신은 자신이 동일시하는 그런 것들이 아니다.

인간 본질의 신비는
이성의 영역 너머에 존재하며,
물질 몸의 현실 너머에 존재한다.
하지만 당신은 지금 이 몸 안에 살고 있다.
이성은 당신이 이 세상을 헤쳐나가고
여기에 참여하도록 도우려고 있다.
이성은 놀라운 소통의 도구이다.
또한 섬세하고, 심오하며, 제대로 연마되면,
놀라운 일들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종교 속에 있는 학생들은
자신의 진짜 본성, 깊은 본성과
자신의 마음이 만든 것의 차이를 깨닫고
자신의 진짜 본성, 깊은 본성과
자신의 믿음 체계 사이의 차이점을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
이때 마음이 만든 것이
얼마나 교리적이든 체계적이든,
아니면 무질서하든, 그것은 상관없다.

기독교나 천주교나 불교인들을 포함한
모든 종교인들은 자신이 마음 표면에 살며,
자신의 진짜 본성이 갖는 깊이와 신비,
참된 힘과 능력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당신은
영성을 믿음이나 믿음 체계로 생각할 것이며,
영적인 발전과 상승을 교리나 신념의 강화나
믿음의 강화로 생각할 것이다.
물론 믿음은 정부와 각양 종교 기관들에 의해
엄청나게 조종된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본질이 자신의 마음이 아니라는 것을
아직 모르므로,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자신이며,
자신의 현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이 가정, 이 집착을 깰 수만 있으면,
내면의 삶으로 들어가는
하늘 문 전체가 열리기 시작한다.
이 내면의 문이 열리면
당신은 자신에게 큰 본성이 있음을 알게 된다.
당신의 생각과 관념 너머에
더 깊은 본성(I AM)이 있음을
곧바로 체험할 것이다.

이삼십 분 동안 고요히 앉아 있어보라.
방해받지 않을 수 있는 장소에서, 그리고
에고에 속한 모든 생각들을 내려놓으라.
모든 걱정. 근심, 분노, 바램까지도 내려놓으라.
믿음. 고정관념. 모든 느낌들도
떠 오르는 족족 다 내려놓으라.
명상수련이나 기 수련의 방법이라도 좋다.
그러면 당신안에 있는 하나님이
당신에게 매우 분명해질 것이다.
단번에 깨닫고 체험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한 두달 시일이 걸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2009년 10월 29일
미국 콜로라도 보울더에서, 신의 메신저 --마샬 비안 서머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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