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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이야기(나는 왜 가나안 성도인가)

신약의 사본들

by 까마귀마을 2023. 7. 12.

신약의 사본들

구약성경과 마찬가지로 신약성경도 AD 2~14세기 사이에 쓰여진 사본들만 남겨져 있을뿐 그 원전이 남아 있지는 않다. 마찬가지로 수많은 사본들 역시 내용이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현재 초기 번역본에 대한 사본들도 약 1만개 이상 보존되어 있고 교부들의 인용문도 수천에 달하고 있다.

따라서 부분이든 전체든 신약이 수록된 헬라어(그리스어) 사본은 대략 5,000여개 이상 현존 하고있다. 나일강의 갈대인 파피루스에 기록한 파피루스 사본은 단편적인 파편들 뿐이지만 신약 전체의 40%가량을 포함한다. 반 이상이 AD 4세기경의 것들이고 그중 가장 오래된 파피루스 사본 하나는 AD 125-140년 경에 쓰여진 것으로 여겨지는 요한복음 18장 31-33절이 다른 한편에는 37-38절이 기록된 파편 조각이다. 현존하는 파피루스는 파편은 모두 이집트에서 발견 되었는데 사본마다 차이가 극심하기 때문에 AD 2~4세기 동안 이집트에서는 지배적인 신약의 원전의 본문 유형이 없었음을 나타내 준다.

 

성경의 필사본들은 만드는 방법에는 흔히 두 가지 방식이 있었다. 하나는 한 개인이 한 자 한 자 옮겨 써서 만드는 법인데 헬라어의 알파벳에는 유사한 글자들이 여럿 있어서 아주 성실한 사람일지라도 종종 혼동을 일으켜서 잘못 옮겨 쓰는 일이 생기곤 하였고 더구나 초기 필사본에서는 띄어쓰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필사할 때 여러 가지 종류의 과오를 일으켰다. 또 한가지 방법은 한 사람은 읽어 주고 여러 사람들이 동시에 받아쓰기하는 방식으로 단번에 많은 사본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필사자들이 그 문서내용에 대한 지식이 없을 때 자연히 잘못 듣고 잘못 쓰게 되는 경우가 많으며, 특히 글자는 다르지만 발음이 같은 경우에는더  많은 착오가 생기게 된다

 

신약의 사본에는 대자사본(大字寫本)과 소자사본(小字寫本)이 있다.

9세기 이전의 신약 사본은 헬라어(그리스어) 대정자(大正字,대문자)를 단어와 단어 사이의 띄어쓰기도 없이 연속적으로 기록했다. 9세기 무렵부터 현재의 헬라어 성경체와 같은 초자체(草字體,소문자)로 단어와 단어 사이도 띄어서 기록하고 구두점도 생겨나게 된다.

전자에 속하는 대자사본으로는  바티칸사본 , 시나이사본 , 알렉산드리아사본 에프레임사본이 있고, 후자에 속하는 소자사본은 대개 8세기 이후의 것으로 현재 2300여본 이상이 있다. 사본을 읽는 데는 후자인 소자사본이 더 쉬우나, 연대가 후대의 것이고 정정 가필 등이 많아 원본을 회복해 보려는 本文批評 (본문비평 : 문학이나 역사 등의 기초적 연구에서,  내용에 관하여 여러 가지 연구서가 있는 경우 서로 다른 부분을 비판하고 연구하여 정본(正本) 정하는 일)에는 대자사본이 보다 유효하다.

 

성경 사본 형성 과정에 있어서, 대개의 경우는 필사자가 자신이 믿고 있는 신앙이나 교리를 설명을 더하여 붙이거나 의견을 목록으로 만들어 따로 첨부 하거나 해서 사본자체가 점점 길어지고 늘어나는 것이 상례(常例)였다. 그래서 앞서 언급했듯이 본문 비평의 가장 초보적 원칙은 문서의 양이 많은 것일수록 후대에 변조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교리에 맞지 않으면 삭제하는 경우도 있기도 하지만, 그럴 경우에는 삭제 보다는 내용을 변조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성경 사본의 재료로는 무엇보다도 파피루스(papyrus)를 들 수 있다. 파피루스는 이집트의 나일강() 연안에 자라는 갈대의 일종인 다년초 식물이다. 이 갈대 줄기를 말려서 재료로 한 파피루스는 BC 11세기부터 문서기록에 사용되었고, BC 2세기 말경부터는 점점 송아지 가죽이나 양가죽이 이에 대용되게 되었다. (두산세계대백과EnCyber 성서의 사본과 번역본)

현존하는 5,000여개 이상의 헬라어 사본중에서 파피루스 사본은 98(대부분 파편조각들), 대문자 사본 300(가죽종이), 소문자 사본 2.800여개 이며 다른언어, 즉 라틴어, 아람어, 시리아어, 곱트어등을 합치면 25.000종의 사본이 있다. 오늘까지 존재하는 사본 중에서 신약 27서 전체를 보전하고 있는 판본은 50종에 불과하다.

 

각각의 신약의 사본역시 구약의 사본과 마찬가지로 내용이 같은 것이 거의 없는데, 구약의 경우 서기관들이 필사할 때의 오류와는 양상이 다르다. 영지주의는 물론 수많은 종파로  갈려져 극심한 혼잡을 이루었던 초대교회 시절, 자신들의 교리에 맞춰 내용을 추가하거나 변조하는 경우가 허다했던 것이다

 신약의 문서적 날조라는 문제에 대해 쮜리히의 로버트 케일 박사의 논문집 '현대인의 종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같은 대목을 고친 두명의 수정자들은 각기 정 반대의 뜻으로 돌려 놓는 수도 있다. 이것은 그가 속한 교파의 독단적 교리, 즉 도그마 해석에 따라서 생긴 의도적 변개다. 어쨋든 산발적인 교정에 의해서 그리고 보다 많은 계획적인 교정에 의해 도저히 손댈수 없을 정도의 텍스트에 혼란이 일게 되었던 것이라 하겠다....(중략)....대부분의 신자들은 성경이 애당초부터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존재 했다고 단정하고 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성경에 들어 있는 내용들이 옛날부터 존재했었다는 식으로 고지식 하게 믿고 있다. 그들은 모르고 있다. 초기 기독교인들이 2백년 동안에 걸쳐 구약성경 이외에는 성경을 갖고 있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서 대개가 알아보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또 구약의 중요한 부분이 기독교 초기에는 아직 정리되지 못했었다는 사실(예수가 설교의 바탕으로 삼고 있던 이사야서도 3편이상의 이사야서가 합쳐졌으며 기원전 2,3세기 경에야  마무리 되었다고 하는 견해가 학계에서는 지배적이다.)에 대해서도 모르고 있다."

 

신약의 본문비평에 사용되는 사본들을 살펴보자.

(1) 시나이 사본 (Codex Sinaiticus)

1884년 시나이산의 성 캐더린 수도원에서 독일신학자 티셴도르프ConstatinvonTischendorf에 의해 발견된 AD 4세기경의 사본이다. 첫 번째로 발견된 것은 구약성경에 속하는 43매의 박피지(薄皮紙), 작센 후작 프레데릭 아우구스투스에게 바쳐졌기 때문에 프레데릭아우구스투스 사본이라고 하며이것은 라이프치히 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후에 티셴도르프가 수도원을 3차로 방문 했을때 구약성경의 150장과 신약성경 부분 148장을 발견하여 러시아 황제에게 헌상 했다. 이 자료는 페테르부르크 왕실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었다가 러시아 혁명 후인 1933년 영국에 10만 파운드에 팔아 넘겨 지금은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시나이 사본은 구약의 상당 부분과 신약의 정경(正經) 전부와 바나바 서신 및 허마의 목자와 같은 약간의 외경(外經)이 들어 있는 것으로, 1881년의 영어성경 개정판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이 시나이 사본에는 수정된 곳이 무려 16천 군데나 된다. 이것은 저자들로 보여지는 7명의 교정자들 손에 의한 것들로 세번 수정되고 네번째의 원전에 의해 바꿔진 대목도 허다하다히브리어 사전을 저술해낸 일류 전문가 프리 드리히데리츄는 시나이 사본인 이 원전 속에서 3천 군데나 베낄때 잘못 쓴 대목을 지적하고 있다.

이 사본에서 마가복음은 16 8절에서 끝나고, 요한복음 7 52~8 11절의 간음한 여자의 기사요한복음 5 4, 8 1~11절은 내용이 없으며 마태복음 16 2~3, 로마서 16 24, 마가복음 16 9~20요한일서 5 7, 사도행전 8 37절 등과 많은 내용들이 없으며 외경까지도 정경으로 담고 있다(내용들이 없다는 것은 해당구절이 후대에 추가기록된 내용이라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2) 바티칸 사본 (Codex Vaticanus)

AD 330~340년에 기록된 것으로 여겨지는 사본으로 1457 바티칸 도서관에 등록되었으며 10과 1/2X10인치나 되는 큰 사이즈의 필사본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그러나 바티칸사본Codex Vaticanus)은 구약에서 창세기 1 1~46 28, 시편 105 26~137장 6, 사무엘상 열왕기상 느헤미야의 부분들이 없고, 신약에서는 히브리서 9 14절 이후, 디모데 -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그리고 요한계시록이 모두 없다.

 

(3) 알렉산드리아사본CodexAlexandreia)

5세기초에 기록되었고 1627년 당시 알렉산드리아의 대주교였던 루카리스에 의해 영국왕 찰스 1세에게 헌정되었다. 원래는 외경을 포함한 헬라어 성경 전체를 담고 있었으나 현재는 구약의 일부가 파손되었고 신약도 일부가 빠져 있다. 구약은 2, 신약은 3명에 의해 필사된 것으로 추정되며 대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4) 기타사본들

이 외에도 중요한 사본들로 에프라임사본 5세기초, 베자 사본(5, 6세기)등이 있다.

AD 4세기부터 10, 11세기의 언셜체( 정사각형의 로마체와 달리 펜을 한번 잡은 자세로 계속 써내려갈 수 있기 때문에 자연히 필경자들 사이에서 애용 되어온 필체)사본은 대부분은 단편(파편)들이지만, 그 고대성 때문에 과거 신약 성경 본문 연구에 가장 중요한 자료로 여겨졌다.

소자사본(小字寫本)들은 초서체로 쓰여진 9세기에서 17.8세기의 것들이다. 모두 2,500여 개가 넘는 사본이 남아 있지만 역시 대부분 단편들이다. 이밖에도 매일 매일의 예배 중에 읽혀지던, 신약 성경에서 발췌된 글을 수록한 독서 성구집등도 신약의 원문을 복원해 내는 중요한 비교문헌중에 하나이다.

 

(5) 기타 역본들

AD 1000년경 이전에 헬라어 성경에서 직접 번역된 라틴어, 시리아어, 아르메니아어, 고대 슬라브어고대 그루지아어 역본들도 신약 성경 본문연구의 중요한 자료들이다. 어떤 경우에는 구약성경이 이미 사용되고 있기도 했고 구약의 완역이나 부분역에 이어 신약의 번역이 이루어졌다.

콥트어Coptic)는 고대 이집트어의 가장 후기 형태인데 3세기경에 처음으로 한 방언으로 신약이 번역되었고 4세기 후에는 거의 모든 성경이 이 방언으로 번역 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콥트어 역본 대부분은 12~14세기경의 것으로 3세기의 것과는 다른 방언으로 기록되어 있다.

곱트어(GOTHIC) 역본은 번역자가 알려진 가장 오래된 것으로 번역자가 알파벳을 만들어 번역한 것으로 알려진 몇 개의 역본 중 하나이다. 4세기 중엽 울필라스가 만든 역본의 일부가 전해지고 5,6세기 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아그렌테우스(Argenteous )()역본은 보라색 양피지에 은색 잉크를 사용한 호화판 사본으로 고트어 역본 중 가장 완전하게 남아있다.

아르메니아어 (ARMENIAN)역본은 예배시에 시리아어가 사용되고 있는 것에 반대해서 5세기초 성경과 전례서의 번역이 시작되었고 현재 남아 있는 것은 5~8세기에 원래의 역본을 개정한 것으로 추정된다전반적으로 이 역본은 어법의 아름다움과 번역의 정확성이 매우 탁월하여 역본 중의 여왕이라 불린다이 외에도 시리아어, 그루지아어, 이디오피아어, 아랍어 역본 들이 전해지고 있다.

 

(6) 교부들의 인용구

많은 교부(敎父)들이 글을 쓰면서 자기들이 볼 수 있었거나, 흔히 들을 수 있었던 신약의 내용을 인용한 것들이 있다. 비록 짤막한 인용일지라도 그들의 인용은 본문 비평가들이 원본을 찾아가는 과정에 도움을 줄수 있다. 그러나 교부들은 자기가 가진 사본을 자기의 글에 인용하면서 실수로 잘못 인용할 수도 있고 고의로 수정하는 일도 있었다.

 

(7) 모들렌 파피루스의 진위공방

한편 1901년 이집트 룩소에서 발견된 모들렌 파피루스Magdalenpapyrus : P64)라는 세조각의 파피루스가 있다.(  마태복음 26장 7절에서 33절 일부를 담고 있는 양면 기록으로 두루마리가 아닌  파피루스 사본임, 아래 사진 참조) 이 작은 파편은 1953 2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감정 되었으나 1994년 c p티데( 이스라엘 출신의 파피루스 학자, 고전문학자,) 라는 사람이 AD 66년의 것이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이 작가의 주장에 따르면 모들렌 파피루스는 2() 형식으로 제작되어 있는데 2~3세기의 파피루스 사본은 모두 1단 형식이고, 2단형식은 구약성경의 사본에서 자주 발견되는 형태이기 때문에 1세기의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AD 5세기 경의 알렉산드리아Alexandrinus사본도 각 페이지 마다 2()으로 나뉘어져 있고 한 단에는 46~52행의 글이 담겨 있다. 그렇다면 알렉산드리아 사본도 1세기의 유물이 될수 있을까?

 

또한 티데는 2~4세기에 사용된 언셜체와 글씨체가 약간 다르다며 이 사본이 AD66년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1세기의 그리스나 로마에서는 붓 또는 두터운 펜을 사용해 흘려쓰는 러스틱(rustic)체가 유행했다나머지 그의 주장도 일고의 가치도 없는 궤변들 이다. 글자 몇개 밖에 나오지 않은 작은 파편을 가지고 마사다 요새에서 발굴된 문서와 비교하거나, 일부의 글자가 붙어 있는 것을 가지고 쿰란의 사해사본과 비교한다.

필자가 이 사본의 사진을 아무리 들여다 봐도 글자가 붙어 있다는 것을 느낄수 없었다. 신약의 사본이 두루마리 사본과 달리 대부분 양면을 기록한 코덱스 사본이라는 점을 감안해서 필자가 확인한 사진이 한쪽면 뿐 이었다고 해도, 그 한쪽면에 붙어 있는 글자는 보이지 않는다. E T의 글자 끝부분이 아주 살짝 겹친 것이 하나 있었는데 너무 미미해서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다른 글자는 확실하게 전부 떨어져 있었다.

 

그외에도 c p티데는 예수의 동생 야고보가 유대교의 산헤드린에 의해 처형되자 그 때부터 초대교회 교인들이 예수를 가르켜 노미나사크라(신격을 부여한 예수의 호칭)라고 불렀다고 주장하면서 모들렌 파피루스의 사본에 기록되어 있는 노미나사크라라는 글자와 비교하고 있다. 그러나 야고보가 처형되자 그 때부터 초대교회 교인들이 예수를 그렇게 불렀다는것은 어디에서 근거를 찾는지 모르겠다.(초대교회는 유대교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을 의도로 예수를 신격화한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으나 야고보 처형이후 부터  노미나사크라라고 불렀다는 주장)  야고보가 산헤드린에 끌려온 것은 요세푸스의 저서에 나오지만(물론 요세푸스의 저작물은 위조 가능성이 있다) 초대교회 교인들이 그 용어를 사용했다는 것은 어디에 근거 한 것일까?

또한 그의 말에 따르면 모들렌 파피루스는 너무 작은 파편이라서 방사성 동위원소도 할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최근에 발견된 유다복음서도 방사성 동위원소를 이용해 AD 220~340년쯤의 것으로 판명했는데 왜 과학적인 검증을 피하는 것일까? 그리고 중요한것은 cp티데의 이러한 주장이 신학계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옮겨온 글 일부 보완)

 

                                               이집트 룩소에서 발견된 3조각의 모들렌 파피루스 사본 사진

 

​*세조각의 파피루스 파편은 마태복음 26장을 담고 있는 양면 기록으로 두루마리가 아닌 파피루스 사본임. 2단형식으로 기록되어있다. 1953년, 2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감정되었으나 1994년, c p티데(이스라엘 출신의 파피루스 학자)에 의해 AD66년으로 재 감정 되었다.

*기독교에서 모들렌 파피루스 사본이 주후 66년에 쓰여졌다는 c p 티데의 주장을 주목하는 이유는 예수의 생애와 복음서 저술 시기의 간극으로 인해 복음서의 많은 부분이 변개되고 조작되었다는 주장이 항상 있어왔다. 그러나 모들렌 파피루스 사본이 주후 66년에 쓰여진 것이 맞다면 예수의 사망이후 30년 이라는 아주 짧은 시기에 복음서 사본이 제작되어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 배포되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고 이는 기독교 신앙과 복음서의 저술시기및 내용의 진실과 기독교 역사의 간격을 좀 더 좁힐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될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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