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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취미 생활/한문서예

鹿柴(녹채)

by 까마귀마을 2023. 5. 26.

 

 

                              녹채(鹿柴) 
空山不見人(공산불견인)  텅빈 산에 사람은 보이지 않고
但聞人語響(단문인어향)  어디선가 말소리만 들려오는데
返景入深林(반경입심림)  한줄기 저녁 햇살이 숲속 깊숙히 들어와
復照青苔上(부조청태상)  파란 이끼 위를 다시 비추네.

                       ----왕유(王維)----


註.

鹿柴(녹채):원래 뜻은 사슴을 가둬놓고 키우는 울타리지만 여기서는 왕유가 말년에 은거한 망천장 별장 인근의 지명.

響(향) : 울리다.

返(반) : 돌이킬.
返景(반경):경(景)은 영(影)과 같다. 해질녘 반사되어 되비치는 태양빛을 말한다.

苔(태) : 이끼.
*柴(채)는 땔나무(섶)를 뜻할때는 '시'라 읽고 울타리를 말할때는 '채'라 읽는다. 鹿柴는 직역하면 사슴 울타리지만 왕유가 말년을 보낸 지명이라 한다. 鹿柴를 '녹시' 로 번역한 제목의 詩도 일부 검색되기도 함.

 

빈 산에 우연히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오자 빈산의 그윽하고 깊은 적막이 더 두드러진다. 사람의 말소리가 잠시 적막을 깨뜨리며 울려오지만 이 짧은 순간이 지나고 나면 빈산은 또 모든 소리가 사라지는 적막에 잠긴다.  해질녘의 석양이 깊은 숲속에 비치니 빈산의 깊은 어둠을 더 두드러지게 한다. 한 가닥 비스듬히 비친 햇빛이 잠시 어둠을 없애지만 해가 지고 나면 빈산은 다시 숲속 깊은 그림자 속으로 들어간다. 어둠을 비춘 석양빛이 오히려 어둠을 더 두드러지게 만든다.

이 시는 겨우 20자에 불과하지만 소리(聲)가 있고 색(色)이 있고 경치(景)와 감정(情)이 있다. 유명한 시인이자 화가인 동시에 음악가인 시인은 색채와 소리에 대해 남달리 특별한 감수성이 있다. 그는 감정과 경치의 관계에 대해 깊은 체험이 있고 여기에 자연현상에 대한 세밀한 관찰과 자연의 이치에 대해 깊은 깨달음이 더해진다.

녹채(鹿柴)를 선시(禪詩)의 일품(一品)으로 평가하는 것은 그(왕유)의 생애가 돈독한 불심(佛心)으로 선수행(禪修行)의 정신(精神)을 잃지 않고 살아왔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후인들은 흔히 이 시를 가리켜 도연명(陶淵明)의 詩 飮酒의  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 (채국동리하 유연견남산) “동쪽 울타리 아래에서 국화를 따다 물끄러미 남산을 바라보네"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고들 한다. 두 사람 모두 경건한 수련인이자 두 시 모두 극히 뛰어난 극품(極品)이니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왕유(王維 700~761)

왕유(王維)는 중국 당나라 시기의 화가이자 시인이다. 불교 경전에 등장하는 거사(居士)인 유마힐(維摩詰)에 연유해서 자를 마힐이라 했다. 

9살 때 이미 시를 썼을 만큼 일찍부터 시문으로 유명했으나 음률에도 자세하고 비파도 잘하는 다재다능한 사람이었다. 왕유의 조부는 음률을 관장하는 관직을 역임했고, 장남이었던 왕유는 어릴 때 부친을 여의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동생들과 함께 청빈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왕유의 동생은 당 대종(代宗, 재위 762~779) 조의 재상 왕진(王縉)이다.

개원(開元) 19년(731년) 진사(進士)에 합격해 태악승(太樂丞)이 되었다. 이후 여러 개의 관직을 역임했으나, 안록산(安祿山)의 난 때 포로가 되어 협박을 받고 할 수 없이 출사(出仕)했다. 반란이 평정된 뒤 문책을 받았지만, 동생 왕진의 조력과 반란군 진중에서 지은 천자를 그리는 시가 인정받아 가볍게 처벌되었다. 당 숙종(肅宗, 재위 756~762)을 섬겨 상서우승(尙書右承)에까지 이르러 왕우승(王右丞)이라 불렸다.

젊었을 때부터 도심지를 피해 불교에 경도하는 생활을 보냈다. 이와 같은 생활 태도가 후세, 북송대의 소식(蘇軾)이 말하는 “시중화, 화중시”(詩中畫, 畫中詩 시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   의 이상을 뜻하는 문인화의 시조로 헤아리게 된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북송 말기에 전해온 왕유의 산수화는 세밀한 선묘에 의한 청록산수였던 것 같고 원대 이후의 남종화와는 다르다. 명대에 동기창에 의해 남종화(南宗畫)의 시조로 일컬어지게 되었다. 저서에 ‘왕우승집’(王右丞集) 28권 등이 현존하며 五行絶句를 잘 지었다 한다, 그림에서도 일가를 이루었다. 32살 때 부인(아내)을 사별한 뒤 재혼하지 않고 ‘망천장’(輞川莊)을 지어 30여년을 홀로 세상사와 떨어져 살면서 시심(詩心)을 불심(佛心)으로 승화시키며 살아왔다.

王維의 五行絶句로 된 詩

 

木蘭柴 (목란시)

秋山斂餘照 (추산렴여조)  가을 산 남은 빛을 거둬들이고

飛鳥逐前侶 (비조축전려)  날던 새들도 짝을 지어 돌아가네

彩翠時分明 (채취시분명)  푸른 햇살에 빛나던 산 빛마저도

夕嵐無處所 (석람무처소)  가을 저녁 어스름에 사라지는구나

辛夷塢 (신이오)

木末芙蓉花 (목말부용화)  나무 끝에 연꽃

山中發紅萼 (산중발홍악)  산 속에 붉게 피었네

澗戶寂無人 (간호적무인)  개울 옆 인적 없는 집에

紛紛開且落 (분분개차락)  어지러이 피었다 지네

鳥鳴澗 (조명간)

人閒桂花落 (인한계화락)  사람 한적한데 계수나무화 떨어지고

夜靜春山空 (야정춘산공)  밤은 고요하고 봄 산은 텅 비어 있네

月出驚山鳥 (월출경산조)  달 떠오르니 산새 놀라

時鳴春澗中 (시명춘간중)  봄 시내에서 간간이 지저귀는구나

竹里館 (죽리관)

​獨坐幽篁裏 (독좌유황리)  대숲에 홀로 앉아

彈琴復長嘯 (탄금복장소)  거문고 뜯고 길게 소리내어 시를 읊네

深林人不知 (심림인부지)  깊은 숲 사람들 알지 못하니

明月來相照 (명월래상조)  밝은 달이 와 서로 비추고 있네

過香積寺 (과향적사)

不知香積寺 부지향적사)   알지도 못하고 향적사 찾아가다

數里入雲峯 (수리입운봉)  구름 깊은 곳에 들었네

古木無人逕 (고목무인경)  고목 속으로 길은 사라졌는데

深山何處鐘 (심산하처종)  어디선가 종소리 들려 오네

泉聲煙危石 (천성연위석)  개울물은 괴이한 돌부리에 울리고

日色冷靑松 (일색랭청송)  햇빛은 소나무에 차갑게 빛나고 있네

薄暮空潭曲 (박모공담곡)  해질녘 고요한 연못가에 앉아

安禪制毒龍 (안선제독룡)  禪定에 들어 번뇌를 잠재우리

淸溪 (청계)

淸冬見遠山 (청동견원산)  맑은 겨울날 먼 산 바라보니

積雪凝蒼翠 (적설응창취)  쌓인 눈에 푸른빛이 어렸어라

皓然出東琳 (호연출동림)  나 호연히 동림을 나왔으니

發我遺世意 (발아유세의)  세속에 뜻을 두지 않네

 

送別 (송별)

山中相送罷  (산중상송파)  산중에서 그대를 보내며 홀로 손을 흔들제

日暮掩柴  (일모엄시비)  해 저물어 사립문 닫았다

春草明年綠 (춘초녀년록)   봄풀은 해마다 푸르건만

王孫歸不歸 (왕손귀불귀)  한번 간 친구는 돌아오지 않네

 

相思 (상사)
紅豆生南國( 홍두생남국)  남국에 나는 홍두나무는

春來發幾枝( 춘래발기지)  봄이 오면 몇가지 핀다

願君多采擷 (원군다채힐)  원컨대 그대 많이 따서 가져라

此物最相思 (차물최상사)   이물건 가장 생각하는 정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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