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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진짜 무서운 것들 세가지

by 까마귀마을 2022. 12. 11.

1. ‘매일 조금씩, 하루도 빠짐없이’ 의 무서운 힘

 

지난달 초 (제 수준에) 아주 어려운 원서 읽기에 도전을 했어요

막연히 연말이 가기 전까지 두달 정도면 끝낼 수 있을거란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너무 어렵고 힘들어서 몇 페이지 못 읽고 왜 시작했지 ㅠㅠ 하는 후회를 했어요

며칠이 지났는데 진도가 안 나가서 내년에도 끝내기 어렵겠다 싶던차에 82에서 하루 10페이지 읽기 독서모임 댓글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계산해보니 더도 말고 하루 10페이지만 읽으면 올해가 가기 전에 끝나겠더라고요

어제 끝냈습니다 !!

생각보다 빨리 끝났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이거 무서운거구나..하는 생각이었어요

까마득한 ‘몇백페이지’가 아닌 ‘달랑 5장’은 체감 정도가 하늘과 땅 차이였고 가벼워진 부담이 멀리 갈 수 있게 한거죠

순간 고교시절 일이 떠올랐어요

고등학교 체력장 때 윗몸일으키기를 지지리도 못했던 저를 안타깝게 여기신 체육 선생님이 제안을 하나 하셨어요

오늘부터 하루에 한개씩만 더 하라고, 오늘 윗몸일으키기 한번, 내일 두번, 모레 세번…

한번은 얼마든지 할 수 있었던 터라 그날 한번, 다음날 두번, 그다음날 세번,… 그렇게 하니 정말 60일째 되는날 60개 했어요 ㅎㅎ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 가랑비에 옷젖는거 다 아는 얘기인데 어제 끝마친 책읽기가 유난히 망치로 머리를 때리듯 강하게 저를 흔드네요

매일, 하루하루가 얼마나 중요한 시간이고 수많은 기회들이 숨겨져있는 날들인지 새롭게 와닿아서 무섭게 느껴져요

어제와 오늘의 차이는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어제와 100일 후의 차이는 엄청난..

 

 
2. 살고 죽는 건 1초, 호흡 한번의 차이라는 무서운 사실
 

작년 올해 아버지를 비롯해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여러번 접했어요

너무나 사랑하는 아버지셨고 돌아가시기 전까지 곁에서 간병하며 매일 눈물 닦으며 보냈는데 어느날 한번의 호흡 후 그 다음 당연히 따라올거라 생각한 호흡이 이어지지 않는 조용한 

멈춤으로 아버지는 천국으로 순간 이동하셨을 때는 그저 멍해서 눈물도 나지 않더군요

의식없이 눈감고 계셨어도 숨 쉴 때는 내 아버지 같았는데 숨이 멈춘 1초 뒤의 모습은 아버지의 모습을 본뜬 마네킹 같았어요

죽음이 먼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눈앞의 일이었죠 그리고 친구가 갔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당장 달려갈 수 없는 먼 곳으로 이사와서 소식만 들었는데 그렇게 밝고 예쁘고 건강하고 바쁘고 즐겁게 살면서 사람들 웃게 만들었던, 이제 50대 갓들어선 친구가 하루밤 사이에 갔어요

후배 역시 30대 한창이고 집에 불러서 밥도 먹여주고 제 아이들도 예뻐해주고 운동이란 운동은 다 좋아하던 에너지 자체였던 친구인데 어이없이 밤사이에 사고로 갔고요..

그러다보니 저도 어느날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긴 저 역시 비가 억수같이 오는 날 반대편에 바퀴 18개짜리 대형트럭이 중앙선 넘어오면서 빗물을 제 차에 퍼부으며 머리카락 차이로 스치고 지나가 죽을뻔한 적도 있고 바다에서 수영하는데 모터보트가 바로 옆으로 지나가 죽을 뻔한 적도 있었고, 차가 폐차될 정도의 대형사고도 있었고…

우울증, 허무함 이런 얘기가 아니라 나에게 남은 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것, 무한하지 않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어요

머리 속으로야 언젠가 죽는다는 거 모르는 사람 없는데 피부로 느껴지는 무서움은 뇌로 아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네요

 

 

3. 다른 이의 평생을 좌우할 수 있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의 무서운 영향력
 

어릴적 중요한 시험을 망치고 거대한 산이 무너져 깔리는 것 같았을 때 아무렇지도 않게 “괜찮아, 그게 뭐라고. 건강이 최고야. 기회는 또 와”라며 그 태산을 동네 야산으로 만들어버리신 

아빠의 한마디

살아보니 어느 순간 집채만하게 느껴지던 것들이 지나고 보면 내 마음 속에서 뻥튀기된 것임을 깨달을 때마다 아빠의 말씀이 떠올라요

제가 큰 교통사고로 일년간 다리도 못쓰고 누워지낼 때 조용히 찾아와 꽃과 책을 전해주고 간 동네분

아이들 어릴 때 청천벽력같은 일을 당하셨는데 같은 동네 사람이라는 것만 알고 뵌 적도 없는터라 그때 저는 모른척 했어요

되갚음 받을 일을 하지 않은 저에게 그분은 제 소식을 듣고 찾아오신거죠

그 어느 방문과 위로보다 이 분의 작은 꽃다발과 책 한권에 무너지고 울면서 평생 감사하며 잊지않고 살기로 했고 이후 친구가 되었어요

말없이 한번씩 오셔서 음식 쓱 들이밀고 가신 그 마음과 행동은 제 인생 매뉴얼에 새겨두었죠

전에도 썼는데 8살 때, 담임선생님이 어린 저를 혼자 버스태워 집에 보내신 덕분에 이후 겁나는 일도 해보면 별 것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망설이거나 두려운 일을 

마주하면 그 선생님을 떠올리며 용기라는 무기를 꺼내씁니다^^

자라면서 누군가로부터 너 왜 이리 살쪘니, 엉덩이가 오리궁둥이네, 넌 웃으면 눈이 안보이는데 쌍꺼풀 수술 좀 하지, 머리가 짱구네…라는 말을 듣고 나는 못난이구나 생각했는데 그런 말만 들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지도 ㅎㅎ

 

하지만 누군가는 같은 저를 보고 와 너 몸 글래머러스하다, 애플힙에 개미허리네, 네 눈은 어쩜 그리 반짝거리니, 두상이 서양인같아서 머리 묶으니 넘 이쁘다, 너는 뭘하든 참 열심히해, 

뭘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본다더니 해냈구나 축하해, 너같이 말해주는 친구는 없었어, 네가 내 친구라서 좋아,…라고 말해주었기에 저는 어떻게 말하며 사는지도 배우고 말의 힘을 몸으로 경험했어요

흔히 내 인생 내가 혼자 판단하고 결정하고 끌어가는 것 같지만 실은 나도 모르는채 타인의 영향력을 비처럼 맞으며 자라기도 하고 꺾이기도 하죠

바꿔말하면, 나도 누군가의 영향을 받지만 나 역시 누군가의 인생에 큰 타격을 줄 수도 있고 한줄기 빛이 될 수도 있다는 것, 참 무서운 일이예요

특히나 아이를 낳아 키운다면 아이의 평생에 그늘을 드리울 수도, 따사로운 햇살을 비춰줄 수도 있으니 말이예요

(글: 82쿡 까막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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