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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이 있는 한시

自嘆(자탄)

by 까마귀마을 2022. 10. 22.

自嘆(자탄)

 嗟乎天地間男兒 (차호천지간남아) 

知我平生者有誰 (지아평생자유수) 

萍水三千里浪跡 (평수삼천리랑적) 

琴書四十年虛詞 (금서사십년허사) 

靑雲難力致非願 (청운난력치비원) 

白髮惟公道不悲 (백발유공도부비) 

驚罷還鄕夢坐 (경파환향몽기좌) 

三更越鳥聲南枝 (삼경월조성남지) 

        ---- (金炳淵) ----


스스로 탄식하다

 

슬프다, 세상의 사나이들아
내 평생을 알아 줄이 누가 있는가.
물 위의 부평초처럼 삼천리에 발자취 어지럽고
글짓고 노래한 사십 년이 허사로다.
청운은 힘으로 이루기 어려워 바라지도 아니하고
백발도 다만 정한 이치이니 슬퍼하지 않는데
고향 돌아가는 꿈에 놀라 일어나 앉으니
깊은 밤, 남쪽지방 새 울음만 남쪽 가지에서 들리네.

                           -- 김병연--

<註>
嗟乎(차호) : 탄식하는 소리.
萍水(평수) : 물 위에 뜬 개구리밥이란 뜻으로, 부평초, 이리저리 떠돌아 다니는 신세 비유.
浪跡(랑적) : 목표 없이 여기저기 떠돌아 다님.
琴書(금서) : 거문고와 서책. 거문고를 타고 책을 읽음. 여기서는 '시를 읊다'로 풀이함.
靑雲(청운) : 푸른구름, 여기서는 높은 지위나 벼슬.
公道(공도) : 떳떳하고 당연한 이치. 여기서는 '자연의 이치'로 풀이함.
越鳥(월조) : 월나라에서 온 새. 공작새의 이칭(異稱)으로, 南客. 火離(화리)라고도 함. 남쪽에 있는 고국을 그리워하여, 남쪽 가지에 둥지를 짓는다고 함.

남쪽 월 지방에서 온새는 나무에 앉아도 남쪽으로 향한 가지를 골라 앉고, 북쪽 오랑캐 땅에서 온 말은 북쪽 바람을 향해 서며, 여우는 수명이 다하여 죽을 때는 자기가 살던 굴을 향해 머리를 둔다고한다
명예와 부를 이루고 일세를 떵떵거리며 산 사람도 죽음이 가까와 오면 고향을 찾는데 부평초처럼 정처없이 떠도는 김삿갓이 고향을 그리워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인지상정이다. 이는 사람이나 짐승이나 자기가 나고 자란곳에 대한 향수이자   귀소의 원초적인 본능이리라.


고향을 떠나 장삼이사로 살아온 70여년, 어느듯 인생길은 저물어 가는 황혼,
아주 어릴때 고향을 떠나 와 돌아가도 반겨줄 사람도, 고향에 대한 추억도 없지만 그래도 고향은 언제나 어머니 품속처럼 푸근하고 따뜻하다. 내 아버지가 자라고 내 할아버지가 태어나고 뼈를 묻은 거제도 바닷가의 조그만한 마을, 까마귀 날고, 낮으막한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 서있고,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가 아늑한, 마음에 평온을 주는 나 태어난 고향, 마음만 먹으면 금방 갈수있는 멀지않은 곳이지만 오늘밤만은 꿈속에서 마음껏 달려 가보리라.


(金炳淵)
김삿갓은 조부를 욕한 사실이 괴로워 밤새 술을 마시다가 새벽녘에 노인이 머물고 있는 주막에 들어 가게 되었는데 그가 죽을 듯이 괴롭다고 토로하자 노인은 이렇게 물었다.
"자네는 백일장에 장원을 한 실력이니 '하천불가고상(何天不可翶翔) 이비아독투야촉(而飛蛾獨投夜燭)' 이라는 말을 알겠지?"
채근담에 나오는 말로써 '넓디 넓은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도 있는데 불나방은 어찌하여 등잔불 속으로만 뛰어 들려고 하는가'라는 뜻이었다.
"예 알고 있습니다."
"그처럼 박식한 자네인데 왜 그 문장에 나오는 불나방처럼 자꾸 등잔불 속으로 뛰어 들려고만 하는가? 넓은 하늘을 자유로이 훨훨 날아다닐 수도 잇는 일이 아닌가?"
김삿갓은 그 말을 듣고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
그렇다, 내가 여기서 주저 앉는다고 해서 내 할아버지의 과오가 씻어지는 것은 아니다. 좀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그 때 가서 내가 할 일을 찾아 보아도 늦지 않다. 그렇게 생각을 고쳐 먹은 김삿갓은 그로부터 며칠 후 하늘을 바라볼 수 없는 죄인이라 하여 테두리가 큰 삿갓을 특별주문하여 머리에 쓰고 방랑길에 나서게 되었다.
공자 말하기를 하늘에 죄를 짓게 되면 빌 곳이 없다 말했습니다. 하늘이 죄를 사해줄 수 있는 마지막 빌 곳이라는 말입니다.
김삿갓은 그런 하늘이 두렵고 또한 자신을 스스로 용서하지 못하고 삿갓을 쓰고 방랑길에 올랐습니다.
그 후로 김삿갓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늙으신 어머니와 처자가 있는 집에 몇 번 들르지 않았으며 도중에 한 두번 그의 자식이 아버지의 귀가를 간절히 애원하였으나 그 때마다 억지스런 이유를 대거나 자식의 눈을 속여 끝내 귀가하지 않았습니다. 57세 때 전라남도 동복(同福)에서 객사하기까지 삿갓을 쓰고 전국각지를 유랑하였으며, 발걸음이 미치는 곳마다 많은 시를 남겼습니다. 후에 둘째 아들 익균(翼均)이 유해를 영월의 태백산 기슭에 묻었다.

그의 한시는 풍자와 해학을 담고 있어, 희화적(戱畵的)으로 한시에 파격적 요인이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이응수(李應洙)에 의해 《김립시집(金笠詩集)》이 간행되었으며 1978년 후손들에 의해 광주(光州) 무등산 기슭에 시비가 세워졌고, 87년 영월에 전국시가비건립동호회 (全國詩歌碑建立同好會)에서 시비를 세웠습니다.(옮겨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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