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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이 있는 한시

冬之永夜 (동지영야) 길고 긴 겨울밤

by 까마귀마을 2022. 11. 25.
                      冬之永夜 (동지영야)길고 긴 겨울밤
 

截取冬之夜半强 (절취동지 야반강)  : 동짓달 기나긴 밤 한 허리 베어내어

春風被裏屈蟠藏 (춘풍피이 굴반장)  :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접었다가

燈明酒煖郞來夕 (등명주난 낭내석)  : 화촉동방 술 데워 고운 임 오시는 밤

曲曲鋪成折折長 (곡곡포성 절절장)  : 차곡차곡 펄처내어 굽이굽이 늘리리라

                              ---申緯 (신위)---


*截(절):끊을 절
*半强(반강):절반이 넘게
*屈蟠(굴반) : 구불 구불 구부러지다.
*鋪(포) : 펼치다.

冬至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 버혀 내여
春風 니불 아레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님 오신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 황진이---
*풀이
버혀내어: 베어내어
니불 : 이불
너헛다가 : 넣어두었다가
어론님 : 정든님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하고 잘 알려진 조선시대 기생인 황진이의 시조다.
이 시조의 “어론님”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시 읽기가 다른 양상을 뛰게된다. 에로틱하게 읽으면 ‘어론님’은 ‘통정한 사람을 말한다. (어론+님)의 ‘어론’의 동사 원형은 ‘얼다’이고 이는 ‘성교하다, 교합하다’의 뜻이다. 이런 뜻의 ‘어론님’과 연관시켜 이 시를 읽으면 이 시는 처음부터 끝까지 관능이 출렁이는 시, 이미 성이 무엇인지 아는 한 여인의 성적 욕망이 넘치는 시가 되어버린다. ‘어론님’을 (통정한 사람)으로 읽으면 이 시는, 좋은 시들의 공통된 특징인 의미의 확장 가능성이 어려워진다.
(어른+님)을 정병욱은 님의 존칭으로, 이병기는 정든 임으로, 이호우는 낭군으로, 읽으면서 ‘통정한 남자’란 옛말풀이를 고의적으로 피하는 경우가 다수 한국 고전문학 전공자들의 의견 인듯하다.
김풍기 교수(강원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어학적으로 (통정한 사람)으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작품의 전체적인 맥락으로 보아 황진이가 성적으로 노골적인 표현을 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연구자들이 잘 채택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한다. 의미의 폭이 좁은 남편을 뜻하는 ‘낭군’은 피하고, 어론님을 ‘정든 임’으로 받아들이면서 시를 다시 읽으면 이 시의 서사화는 이렇게 된다.

"임이 오시지 않아 홀로 보내는 한겨울의 긴긴 밤, 임을 향한 사랑과 그리움, 외로움은 쌓여만 갑니다. 이 사랑, 그리움, 외로움이 한겨울 추위에 얼어 못쓰게 되지 않도록 한 뜸 한 뜸 잘라서 봄바람처럼 따뜻한 이불 속에 차곡차곡 개켜 넣어두었다가 정든 임 오신 날이면 밤 내내 이 사랑, 그리움, 외로움으로 이야기꽃을 피우며 정든 임의 사랑을 확인하겠습니다"
어론님’을 ‘통정한 사람’ 보다는 ‘정든 임’으로 하는 게 더 열린 해석일 듯합니다.(옮겨온글)

 

조선 중종, 명종때 활약한 명기 황진이가 지은 시조로 청구영언에 전해지고 있으며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수록되어 있을 만큼 우리에게 친숙하고 잘 알려진 명시조이다. 고전적인 냄새가 물씬 풍겨 더욱 정겹게 다가온다.동짓달의 밤은 길고도 긴데 사랑하는 임은 오시지를 않아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잠을 못 이룬다. 이 밤의 허리를 반으로 잘라 따뜻한 이불 속에 서리서리 모셔 놓았다가 임 오시는 짧은 봄 밤을 길게 늘여 오래오래 정을 나누고 싶다는 지극히 천진하면서도 소박한 감정을 펼쳐 놓았다. 한편으로는 독수공방을 이처럼 희롱하고, 누구려 스스로의 고독과 적막을 위로하는 마음의 품이 서늘하고, 춘풍 이불아래 서리서리 묻어 두었다가 고운님 오신밤에 구비구비 늘려 쓰겠다는 지혜로운 감각이 매혹적이고, 19금 육담이 넌지시 깔려 있지만 운치와 기품이 그런 시비를 가소롭게 만드는 풍류가 속례를 넘어서는 멋진 시조라고 평하기도 한다. 기예에 능한 황진이는 시와 시조를 통하여 뛰어난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특히 그녀의 시와 시조중 사랑에 관한 내용이 많다, 당시 사대부들의 詩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 남여간의 사랑을 표현 함으로서 우리시조에 활력을 불어넣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3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황진이의 이 시조를 정조 시대의 문신이었던 자하(紫霞) 신위(申緯) 선생이 칠언절구의 漢詩(한시)로 번역한 것이 冬之永夜(동지영야 : 길고긴 겨울밤)이다.
형식상 3장을 4구절로 구성해야 하다 보니 원 시조에는 없는 “등불 밝히고 술 데워라는 燈明酒煖(등명주난) 구절이 추가되었다. 이와는 다른 버전에서는 이 부분이 “달 없는 밤 등불 밝히고 라는 有燈無月(유등무월)이라고 되어 있기도 하며 마지막 구절이 曲曲鋪舒寸寸長(곡곡포서촌촌장)이라 다르게 구성되어 있기도 하다 어느 것이 진본인지는 알수 없어도 둘다 황진이가 지은 시조의 원 뜻이나 의미는 크게 바뀌지는 않은것 같다.

申緯(신위) 선생은 정조때(1769 - 1845) 초계문신이며 본관은 平山이며 자는 한수(漢叟), 호는 자하(紫霞), 경수당(警修堂)이다. 詩, 書, 畵 3절로 꼽혔으며 후학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대표작으로 『방대도(訪戴圖)』, 『묵죽도』가 전하고, 글씨는 동기창체를 따랐으며 조선시대 이 서체가 유행하는데 계도적 구실을 하였다. 신위는 없어져 가는 악부를 보존하려 애썼으며 시조 40수를 한시 칠언절구로 번역한 소악부라는 책을 냈는데 40수중 하나가 冬之永夜 (동지영야)이다. 그외 저서로는 『경수당전고』와 김택영이 600 여 수를 정선한 『자하시집』이 간행되어 전해지고 있다.

冬至
동지는 24절기의 하나로 겨울절기 6개중 4번째 이며 1년중 밤의 길이가 가장 긴날이다.
고대인 들은 이날을 태양이 죽음으로 부터 부활하는 날로 여기고 축제를 벌렸으며 태양신에 대한 제사를 올렸다.
중국 周나라 때에는 이날 동지를 설로 삼았는데 이날부터 밤은 짧아지고 낮이 길어지는 생명력과 빛의 부활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고려에서도 신라에 이어 唐의 선명력(宣明曆 : 당나라때 사용한 역법)을 그대로 사용하다 충성왕 원년(1309년)에 와서 원나라 수시력(授時曆 : 원나라 18년에 시행한 역법)으로 바꿀때까지 거의 500년동안 사용한것으로 보아 충선왕 이전 까지는 우리나라도 동지를 설로 지낸 것으로 짐작된다.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동짓날은 亞歲(아세)라 하며 작은설이라고 하였다.
그 유풍은 오늘날에도 전해져 동지팥죽을 먹어야 나이를 한살 더 먹는다는 冬至添齒(동지첨치 添齒 : 나이를 한살 더하다) )라는 말이 전해오고있다.
우리나라의 동짓날 팥죽을 쑤어 먹는 풍습은 고려사에 9개 민간 명절의 하나로 동지가 들어있다고 기록돼 있으며 14세기의 목은집에는 동지날 팥죽에 대한 시가 전해지는 것을 감안하면 동지날에 팥죽을 먹는 풍습이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것 같다. 예날에는 동짓날 팥죽을 쑤어 먼저 사당에 올리고 장독, 곳간, 헛간, 방에 놓아두고, 또 대문과 벽, 곳간에 뿌리기도 하였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팥죽의 붉은 색이 양색(陽色)이므로 액을 막아주고 잡귀를 몰아내는 데 효과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런 풍속이 생긴 최초의 기록은 중국의 진나라 종늠(형초세시기)에 나와 있는데 이 기록에 의하면 共工씨가 재주없는 아들을 두었는데 그 아들이 동짓날에 죽어 역질 귀신이 되었다. 그 아들이 생전에 팥을 두려워 했음으로 동짓날 팥죽을 쑤어 물리쳤다고 한다.
동지는 대체적으로 양력 12월 22 - 23일날 든다.
동지가 음력으로 동짓달(11월) 초승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그믐께 들면 노동지라고 한다. 지역에 따라 애동지 때는 팥죽을 쑤어 먹으면 아이들에게 좋지 않다고 하여 떡을 해먹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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