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曉 (춘효)
春眠不覺曉 (춘면 불각효) 봄잠에 취해 깨어나지 못하는데,
處處聞啼鳥 (처처문제조) 여기저기서 새 우는 소리 들리네.
夜來風雨聲 (야래풍우성) 지난밤 사이에 비바람 소리 들렸으니,
花落知多少 (화락지다소) 얼마나 많은 꽃잎이 떨어졌을까
--- 맹호연(孟浩然)---
새벽녘, 시인은 잠에서 덜 깬 상태로 밖에서 들려오는 새소리와 함께 새롭고 활기찬 하루를 맞이한다. 그러나 퍼뜩 지난밤의 폭풍우가 있었음을 생각해내고 떨어져버린 꽃잎을 아쉬워한다. 여기에서 시인은 봄날의 생명, 그 시작과 끝을 각각 새소리와 꽃잎의 떨어짐으로 대비하여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이를 통해 하룻밤 새 삶과 죽음을 겪은 꽃에 대해 아쉬움을 표현한다.
이 시는 녹문산 은거 시기인 25세에서 35세 사이에 쓴 작품으로, 시인은 봄날의 새벽에 깨어난 순간을 잘 포착하여 연상하고 묘사했다. 작품 속에 화려하고 기묘한 문체나 표현은 없지만 아름다운 정취가 잘 녹아 있다. 풍격은 평범하고 자연스럽지만 깊이가 있어서 구체적인 시어로 표현하지 않아도 독자로 하여금 상상하게 한다. 또한 감각적 요소 중 청각을 활용하여 새소리의 활기찬 삶과 비바람에 떨어진 꽃잎의 죽음을 더욱더 분명하게 대비했다. 이 시에서 보듯, 맹호연은 동진(東晋)의 도연명의 뒤를 잇는 전원시인으로, 전원시를 개척했다고 할 수 있다.
맹호연(孟浩然)
당나라 시인이다, 이름이 호(浩)이고, 자가 호연(浩然)이다. 호북성(湖北省) 양양(襄陽, 현재의 샹판[襄樊])의 소지주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25세에서 35세까지 녹문산(鹿門山, 양양시 양주구 성동에서 남쪽 15킬로미터에 위치한 동진진(東津鎭) 안에 있는 곳으로, 현재 중국 국가 삼림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음)에 은거하며 공부하였다.
이후 여행길을 떠나는데, 양자강 유역을 유람하면서 광범위한 친교를 꾀한다. 그 후 개원 12년인 724년에 낙양에서 벼슬을 구하고자 3년간 머무르지만 얻지 못한다. 40세 때 장안에 거하면서 진사 시험을 보지만 이마저도 급제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때 평생의 친구인 왕유(王維)를 만나게 된다. 이후 왕유의 소개로 현종(玄宗)을 만나지만 관직을 얻지는 못한다. 맹호연의 생활 경력은 비교적 간단하다. 그 때문인지 그의 시 내용 또한 풍부하지 않다. 그러나 그의 산수 · 전원시는 자연스럽고 맑을 뿐만 아니라 시의 정취가 담아하고 아름답다. 그는 작품에서 화려한 수식을 하지 않았고 담담한 어조로 일상의 평범한 풍경들을 시에 담았다. 시집(詩集)으로는 《맹호연집》 4권이 있으며, 263수의 시가 있다.
맹호연은 인물이 훤칠하였고 벼슬을 하지 못하면서도 고관대작들과 사귀었다. 장구령, 왕유, 배비, 노선, 배총, 정천지, 독고책등은 맹호연과 망형지교의 사이였다.한번은 왕유가 맹호연을 궁내로 초청했다. 옛날에 평민은 궁궐 안에 들어갈 수가 없었으나 맹호연은 워낙 발이 넓어 특별히 왕유의 근무처로 불려간 것이다. 왕유는 맹호연과 한참 문학을 논하는데 때마침 공교롭게도 현종 황제가 그곳을 방문했다. 맹호연은 얼결에 책상 밑으로 숨었다. 현종이 눈치를 채자 왕유는 이실직고하고 맹호연은 기어 나와 사죄했다. 그런데 뜻밖에 현종은 벌을 주지 않고 대신 그의 시를 보여 달라 했다. 이때 지은 것이 이 " 歲暮歸南山" (세모귀남산)이란 시라 한다. 현종은 이 시를 읽어 나가다가 승련의 '不才明主棄'란 구절에 이르러 "경이 벼슬을 요구하지 않은 것이지 짐이 언제 너를 버렸는가? 왜 짐을 모함하는가?" 하고 돌려보내라고 호령하고는 나가 버렸다. 이에 돌아와 은둔 생활을 계속했다. 이 시구에 얽힌 고사로 이 시는 더욱 유명해졌다.한번은 산남채방사 양양태수 한조종이 맹호연의 실력을 잘 알아 천자에게 추천하려고 함께 가기로 날짜를 정했다. 그러나 맹호연은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늦어 기회를 놓쳤지만 후회하지 않았다. 그는 구관을 포기하고 장강 회수 오 월 등지를 유람하면서 많은 자연과 산수에 대한 시를 썼는데, 특히 오언시에 뛰어났고, 지금 260여 수가 남아 전한다. 740년에 왕창령이 양양에 찾아왔는데 그때 맹호연은 등창을 앓고 있었다. 그러나 반가운 친구를 만나 한껏 마시고 즐기매 특히 생선을 먹고 병이 더하여 나이 52세에 죽었다
맹호연의 詩 歲暮歸南山(세모귀남산)을 올립니다
歲暮歸南山(세모귀남산) : 세모에 남산으로 돌아가다
北闕休上書 (북궐휴상서) 궁궐에 글 올리는 일 그만두고
南山歸弊廬 (남산귀폐려) 남산 허름한 집으로 돌아왔네
不才明主棄 (부재명주기) 재주 없어 현명한 임금에게 버림받고
多病故人疏 (다병고인소) 병이 많아 친구와도 소원해졌네
白髮催年老 (백발최년로) 흰머리는 늙음을 재촉하고
靑陽逼歲除 (청양핍세제) 봄은 섣달그믐에 가깝구나
永懷愁不寐 (영회수부매) 긴 생각에 근심스러워 잠 못 이루는데
松月夜窗虛 (송월야창허) 소나무에 걸린 달빛 빈 창에 비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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