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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이야기(나는 왜 가나안 성도인가)

내 안에 계신 하느님

by 까마귀마을 2021. 12. 18.

자기 안에 신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확증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찾고 만나기 위해 인간이 만든 건물(예배당)이나  특정 장소를 찾지 않습니다.

내 안에 있는 신을 밖에서 찾을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 안에 계신 하나님을 무시한 채,

생뚱맞게 인간이 만든 건물로 찾아가서 건물안에 계시다고 하는 하나님(신)에게 예배한다? 무얼 바친다? 하는 것이 넌센스요,

모순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참으로 알게 된 사람들에게는 삯꾼의 예배. 삯꾼의 설교나 선동 또는  몽학선생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시간 낭비요, 가치없는 일이 될 뿐입니다.

이는 대학생이 유치원에 다시 입교해서 유치원 선생에게 다시 배우지 않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다만 아직 그 수준에 이르지 못하여,

진리의 정수를 온전히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 그것을 확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면,

자기 외부에 있는 신, 건물 안에 앉아 계신다는 하나님에게 예배하려 할 것입니다. 

그것도  자칭 신의 대리자라는 자들을 통해서 말이죠.

어느 때는 복음을 전파하면서 제사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직접 하나님을 대면할 수 있다.

"만인이 다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하다가

어느 때는 구약으로 되돌아가서 삯꾼 자신들만 하나님이 세운 종이라고 합니다.

돈. 명예나 십일조를 받아 챙기고 싶을 때는 수천년도 더 된 구약의 제사장(주의종) 탈바가지로 바꿔 쓰고 당당하게 요구합니다.

 

사람 자신이 성전이요,

사람 안에 초의식, 지성소가 있어서 내 안에 신이 계심을 아는 사람들은 진리의 핵심을 잘 알게되고, 모순없는 진리가 주는 온전한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몽학선생이 만들어 둔 교리의 틀,

고대 종교의 틀, 구습의 감옥을 뛰어넘을 수 없는 사람들은,

온통 삯꾼의 잇속 채우는 내용들로만 조직되고 프로그램 되어있는 번잡스런 종교활동을 따라가야 하므로 참자유를 누릴 수가 없습니다.

주일마다 절기마다 찾아가서(세뇌와 삥뜯김의 반복) 제사(예배)라는 미명으로 조련되고 바치고 복 비는 일을 계속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아는 것 만큼, 깨닫는 것만큼 딱 그 만큼의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1. 삯꾼 예배당에 안나가면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는 거짓말.

2, 삯꾼 예배당에 십일조를 안 바치면  복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거짓말.

3,삯꾼 교회당에 바친 헌금은  하나님께 바친 것과 같다는 이런  새빨간 거짓말들은 누가 지어냈을까요?

삯꾼에게만 유리한 새빨간 거짓말이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너무 오랫동안 맹종하고 속아 온 것은, 종교의 영들까지 삯꾼들의 선동과 거짓말에 합세해 거짓 환영과 각종 이적을 행사하여 맹신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평생을 몽학선생 아래에 계신 분들을 보면  연로한 육적인 나이와는 정반대로  영적 나이는 여전히 아이같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영적으로 어린 자들은,

여러 모순들을 분별할 능력이 부족하고 오래 세뇌되어 갇혀버린 관념을 초월하지 못하며 자신의 상태와 믿음을 성찰할 능력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장성한 자들은,

종교, 믿음의 관념체계와 그 허상을 감지하며 내면 깊은데서 오는 의문부호들을 직시합니다.

 

영적으로 어린 자들은 대부분 현세의 기복과 내세의 기복을 위한 욕심이나 고집때문에 신앙생활을 합니다.

복받고 잘 될 것이라는 기복에 대한 환상은 종교를 이용하는 악한 자들이 순진한 자들을 조종하고 이용하기 위해서, 써 먹는 프레임, 당근인 경우가 많습니다.

삯꾼 자신과 자신의 예배당에 최대한 다 바치면서 충성봉사를 다하게 하려고 눈앞에서 흔들리게 매달아 둔 달콤한 막대사탕일 뿐입니다. 

그들,

속임수는 죽음과 먼 미래를 봐도 보일 것이고

과거를 돌아보며 깊이 성찰해도 보일 것이나

그들과 멀리 떨어져서 보면 더 확실하게 잘 보일 것입니다. (가입된 카페에서 옮겨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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