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회 이야기(나는 왜 가나안 성도인가)

성서, 원본은 없다

by 까마귀마을 2021. 10. 22.

성서의 원전(原典)에 대한 결론
♣ 원전(原典)은 없다. 수정에 수정을 거듭한 모순 투성이의 복사본 성경이 있을 뿐이다. 성령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기록한 것이 성경이라는 말은 터무니없는 조작이다.
한마디로 말해 Bible의 원전(原典)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예 이 세상에 태어나 보지도 못한 존재다.
그럼 무엇이 있다는 것일까? 모두가 기원 4세기부터 10세기에 걸쳐 생겨난, 무수한 카피(copy-模寫本)들인 것이다. 

5천 5백 종류를 헤아리는 모사본들은 역시 모사를 거듭한 모사본인데다가 내용 또한 똑같은 것이 단 한 가지도 없는 형편인 것이다.
<원전>이란 것들 중에는 모순이 드러나지 않는 페이지란 단 한 페이지도, 제대로 눈에 띄지 않는다. 손으로 베껴 쓸 때마다, 내용이 달리 파악되었고, 그때 그때의 요청에 의해서 고쳐지게 되었던 것이다.
성서의 <원전>에는 얼른 지적할 수 있는 틀린 부분이 얼마든지 나타난다. 가장 중요한 원전인 <시나이 사본>이 역시 바티칸 사본과 마찬가지로 기원후 4세기경에 씌어졌다는 것으로 1844년에 시나이의 수도원에서 발견되었다. 그런데 이 <시나이 사본>에는 수정된 곳이 1만 6천 군데나 된다. 이것은 <저자>들로 보여지는 7명의 교정자들의 손에 의한 것들로 세 번 수정되고 네 번째의 <원전>에 의해 바꿔진 대목도 허다하다. 히브리어 사전을 저술해 낸 일류 전문가 프리드리히 데리츄는 시나이 사본인 이 <원전> 속에 3천 군데나 베낄 때 잘못 쓴 대목을 지적하고 있다.

초기교회 장로들도 <원전>이 날조되었다는 것에 대해서 비록 그 범인에 대한 견해만은 구구했었지만 벌써부터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었다. 그들은 또 성경의 원전에 대해 삽입, 모독, 파기, 개량, 말소 등 이런 말들을 공공연히 입에 담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리스도교 신학자들은 <원전>에 있어서의 날조에 대한 화제가 나오게 될 때 좋은 표정들을 짓지 않는다.
날조자들을 감싸고 나온다거나, 의식적인 변경이니 뭐니 늘어 놓으면서 이들은 신의 진리를 표현시키는 언어, 문장을 만들려는 관심 하에 그렇게 고쳤었다는 등으로 주장으로 버틴다.
날조라는 문제에 대해 쮜리히의 로버트케일 박사의 저서를 넘겨본다.
"같은 대목을 고친 두 명의 수정자들은 각기 정반대의 뜻으로 돌려 놓은 경우도 있다. 이건 그가 소속되어 있는 교파의 독단적 교리 즉, 도그마(교인 들이 지켜야 할 규범) 해석에 따라서 생긴 의도적 변개(變改)다. 하였든간에 산발적인 <교정>에 의해 도저히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텍스트(본문이나 원문)에 혼란이 일게 되었던 것이라 하겠다."
제네바의 산 피엘 주교좌 성당에서 오랜 동안 성직을 맡고 있었던 쟌죠라 신부는 "성경이 전면적으로 영감에 의해 씌어졌고, 하나님이 직접 저술했다고 하는 테제(these)(定立 : 논리를 전개하기 의한 최초의 명제)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
로버트케일 박사는 그의 저서 『현대인의 종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대부분의 신자들은 성경이 애당초부터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존재한 줄로 단정하고 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성경에 들어 있는 내용들이 옛날부터 존재했었다는 식으로 고지식하게 믿고 있다. 그들은 모르고 있다. 초기 기독교 신자는 2백년 동안에 걸쳐 구약성서 이외에는 성경을 갖고 있지 못했었다는 것에 대해서 대개가 알아보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또 구약의 중요부분이 기독교 초기에는 아직 정리되지 못했었다는 사실(예수가 설교의 바탕으로 삼고 있던 이사야서도 기원후 2, 3세기경에 마무리되었다고 주장하는 견해가 지배적이다)에 대해서도 모르고 있다. <신약>의 기술은 아주 천천히 씌어지기 시작했었다.
오랜 세월동안 그 누구도 이 신약문서를 성경으로 쳐주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때와 더불어 이 문서를 신자 단체 내부에서 낭독하는 습관이 생겨났었다. 그러나 그렇게 될 때까지도 그것을 성스러운 책이라 해서 구약과 같이 대우해 주려는 생각은 갖지 않았었다.
기독교 여러 종파들이 싸움질을 시작하기에 이르렀고 이것들을 서로 손잡게 만들어야 할 필요를 절감하게 되었을 즈음에야 비로소 성서로 격상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이렇게 되어 그리스도 사후 2백년이 지나서야 간신히 그 문서를 성서로 간주하게 되기에 이르렀다. 즉 성령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기록한 것이 성경이라는 말은 터무니없는 조작인 것이다. [백남철 편저<코즈믹바이블> 중에서]

♣ 바이블은 모두 필사본일 뿐이다
김용옥 교수의 바이블에 대한 고견을 들어보자.
"바이블(Bible)이란 파피루스, 페이퍼와 통하는 말로서 종이쪽, 문헌이란 뜻이다. 바이블의 구성은 편지와 전기(biography)밖에 없는데, 예수의 전기를 마태, 마가, 누가, 요한으로 가정되는 네 사람이 쓴 것이 "복음서"이고 거기에 「사도행전」이라는 역사기록과 초기에 활약한 사람들의 편지가 더해진 것입니다. 그것들 역시 모두 필사본이며 사도 바울의 편지도 모두 필사본입니다. 예를들어 「에베소서」의 성립과정을 따로 든다면, 바울이 전도여행을 하던 중 에베소라는 데에 가서 교회를 만든 다음 떠나가면서 이제는 너희들끼리 예수찬양하고 살아라 하고 떠나가겠죠.
그런데 바울이 거기에 있을 당시에는 교회가 잘 운영되었지만, 바울이 떠나고 한참 지나니까 개판이 되어 버릴 것이 아닙니까?
몇 달만에 만든 교회니 지금의 터키에 있는 에베소 사람들이 팔레스타인의 나자렛에서 나서 예루살렘에서 죽은 예수라는 사람을 알게 뭐야?
그래서 에베소교회에서는 서로 내가 옳으니 니가 옳으니 쌈박질을 벌이게 되고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메신저가 헬레벌떡 바울이 있는 곳으로 뛰어 갑니다. 그러나 교통이 좋지 않은 당시에 바울이 다시 돌아가서 설교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바울은 "사랑하는 형제들아 사탄의 꾀에 빠지지 마라........." 등등의 내용을 써서 그 메신저에게 건네주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지금의 『성경』 에 있는 「에베소서」가 된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니, 「고린도 후서」니, 「로마서」니 전부 이런 식으로 성립이 된 거예요.
지금 어느 사람이 당시 바울이 직접 쓴 그 편지의 원본을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은 떼돈을 벌테지만 어떤게 사본이고 어떤게 원본인지 알 수가 없는 겁니다. 그리고 그 초기에는 사도들의 이름을 가장한 온갖 위조편지가 많았어요. 그런 편지들의 온갖 사본들을 모아서 A.D. 4세기경에 알렉산드리아라는 데에서 편찬한 것이 바로 『바이블』이에요.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아타나시우스(Athanasius,293∼373)가 한 짓이죠. 그러므로 유실되지 않고 성경27편에 들어간 글들은 아주 재수가 좋은 것이죠."[ 김용옥 <도올선생 중용강의> 중에서 ]

♣ 성경은 원본자체가 번역본이다. 따라서 성경은 예수의 말씀도 하나님의 말씀도 없다.
"성경은 하나님 말씀이 아닙니다. 설사 그것이 하나님 말씀이라 해도 그것은 분명 인간의 말(언어)을 빌린 것입니다. 인간의 말인 이상, 그것은 인간의 말의 구조에 따라 결정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읽고 있는 기독교성서의 원본(지구상의 최초의 기록)은 희랍말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 희랍어로 적은 것입니다.
그러면 그 희랍어 원본이야말로 예수님말씀을 그대로 적어놓은 것이 아닌가? 그러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 아닌가? 이것은 매우 무식한 사람의 질문입니다. 예수는 희랍어를 전혀 몰랐습니다. 예수는 지금은 死語가 되어 버린 아람어라는 토착말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성서의 원본(희랍어)도 예수의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 말씀에 대한 최초의 기록도 단지 예수님 말씀일 것이라고 떠도는 말들을 예수님이 죽은지 4∼50년 경 후에, 그것도 아람어에서 희랍어로 번역하여 적어 놓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전혀 몰랐던 희랍어로 말입니다.
그리고 지금 여러분이 손에 들고 있는 성서는 이러한 최초의 기록에서 수십차의 개정(가감)과 번역을 거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엉터리 번역이 빚어낸 성서의 문제들은 싸구려 엉터리 노벨문학상 수상작품의 번역판들이 빚어내는 문제보다 더 크면 컸지 작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의 집에 있는 성서에도 보통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한글개역판이고 하나는 공동번역판입니다. 그런데 이 두 판의 성경이 똑같은 장 똑같은 절의 기술에 있어서, 문장의 표현이 다를 뿐만 아니라 그 의미가 전혀 다를 때도 있습니다.
도대체 어떤 게 맞습니까? 도대체 어느 쪽이 하나님 말씀입니까?
성경의 한 구절 한 구절이 모두 한 자 한 획도 어김없이 모두 절대적으로 하나님 말씀이라면 도대체 이 어찌된 일입니까? ........
성경에는 예수의 말은 없습니다. 하느님의 말도 없습니다. 그러한 말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여러 나라 말 번역이 있을 뿐입니다. 원본자체가 번역본이니까요. " [김용옥 <고교생을 위한 철학강의> 중에서]

♣ 정경(正經)이 교회를 성립시킨 것이 아니라 교회가 교회라는 조직의 "정통성"의 타당화를 위하여 정경(正經)을 성립시켰다. 성서는 어디까지나 인간이 조작한 틀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초대교회 당시에는 지금 소위 우리가 말하는 정경 대 외경의 구분이 부재했었다. ........
그들(초대교회의 신도)의 사고를 지배한 것은 종말, 파루시아 즉 예수의 재림에 대한 긴박한 기대였다. 사도바울 자신이 자기 생전에 예수가 호령을 치면서 천사들의 소리와 신의 나팔소리를 반주로 하면서 하늘로부터 내려오리라고 확신했고 그 때는 이미 죽은 자들은 다시 살아나고 자기를 포함해서 살아있는 사람들은 그들과 함께 구름에 휩싸여 공중에서 예수를 맞이할 것이라고 믿었다(데전 5:16∼18). 그리고 이 미래 사실이야말로 현재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최대의 위로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바울의 상징적, 은유적, 추상적 이해가 아니다. 예수의 재림이란 그러한 사실의 모습으로 이 시간 이 공간 속에서 현실화되어 일어난다고 확신했고, 후년에 그는 재림 전에 자기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인간적 불안감을 표시하기도 했다(빌 1:20∼25)[류형기 <성서주해> Ⅳ:561] ......

대체적으로 초대교인들은 최저한 AD150년경까지는 긴박한 파루시아(그리스도의 재림)의 기대 속에서 살았다. 즉 자기들이 살고 있는 현세는 단순한 준비과정에 불과했으므로 현세 속에서, 즉 역사 속에서 자기 이름을 남긴다든지 역사 속에서 무엇을 성취해 보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따라서 경전이 일차적 의미를 지닐 수 없었다. 물론 파루시아는 계속 지연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수는 그들이 기다리던 모습으로 오지 않았다. 기다리던 영화는 상연되지 않고 계속 연기공고만 나붙은 것이다.
이러한 지연 속에서 초기 기독교는 파루시아를 비종말론적으로 해석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러한 비종말화는 점차적으로 역사의식의 증대를 가져오고 그러한 역사의식은 교회론으로 종결되게 된다. 즉 하나님의 나라가 교회라는 조직으로서 이 세계 속에서 이미 시작되었다는 선포이다.
교회야말로 천국의 지상에 있어서의 역사적 표증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교회론의 사상적 물줄기의 완성을 바로 우리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카톨릭 교회론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초대기독교 문헌의 정경화는 이러한 교회론의 발전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게 된다. 정경이 교회를 성립시킨 것이 아니라 교회가 정경을 성립시켰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교회라는 조직의 "정통성"의 타당화를 위하여 "정통적" 경전을 구분해 내어야만 할 필요성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하여튼 A.D. 150년 경까지만 해도 예수의  사도나 기존경전의 인물이름을 빌어 무명으로 혹은 가명으로 경을 쓰는 일은 전혀 위작의 나쁜 행위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오히려 권장되었다. ...........

우리는 케리그마(설교: 선포하다), 즉 예수의 수난, 죽음, 부활,승천의 보고, 그리고 그의 행위와 말의 수집이 원래 구전의 전통(oral tradition)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구전은 예수의 언어였던 아람어가 주축이었고 이 구전 자체가 희랍어로 기록되기 이전에 이미 희랍어로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번역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예수를 직접 경험한 사도들이 다 죽고 난 후에는 이 구전을 기록해야 할 필요성이 증대되게 된다. 복음서의 최초의 제작은 이러한 구전의 보존을 위하여 이루어졌고, 또 구전간의 상이에서 오는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서 각 파벌들이 자기들의 구전을 기록하게된다.
그리고 교회의 성립은 교회의 예배와 의례(liturgy)를 위한 기록의 필요성을 증대시킨다. 이러한 조류 속에서 제1세기 말경에는 상당수의 복음서들이 제작된다. 어떤 복음서들은 사도의 이름을 빙자하지 않고 부활한 예수의 직언이라고 하여 그 권위의 우위성을 보장받으려고 하였고 이러한 복음서들은 사도들의 충실한 기록이라고 여겨진 복음서에 대해서 이단으로 간주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이단에 대해서 자기들이 정통이라고 여기는 복음서들의 정통성을 주장하게 되는데 그 정통성의 근거는 사도 저작성(apostolicity)이었다.
이 사도저작성이라는 기준자체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의 애매한 것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기준으로는 분쟁의 결정적 실마리를 찾을 수 없었고 2세기에는 이미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방교회와 알렉산드리아의 소아세아를 중심으로한 동방교회 사이에 정경의 기준에 대한 견해 차이가 심각히 대두되었다.
이러한 견해차이는 2세기 말엽의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3세기의 오리겐(Origen), 4세기초의 유세비우스(Eusevius)등에 의한 신학적 논란을 거쳐 조정과정을 거치는데 당시에 널리 유행했던 히브리인 복음서(Gospel of the Hebrews), 애굽인 복음서(Gospel of the Egyptions), 바나바서(Letter of Barnabas), 12사도 교의서(Didache), 헤르마스의 목자서(Shepherd of Hermas), 바울행전(Acts of Paul), 베드로 복음서(Gospel of Peter), 베드로 묵시록(Apocalypse of Peter), 요한행전(Acts of John), 그리고 도마복음서(Gospel of Thomas) 등등은 여러 분류방법에 의해 외전으로 탈락되는 과정을 겪게 된다.

오늘의 27서가 정경으로 규정된 것은 아리아니즘(Arianism)의 비판에 심혈을 기울였던 기독교정통성의 옹호자인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아타나시우스(Athanasius)에 의해서였다. 라틴교회는 제롬(Jerome)의 영향 하에 아타나시우스의 결정을 받아 들였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하는 성경의 27서 형태는 4세기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 그러나 4세기에 아타나시우스의 권위가 일시에 받아들여졌다고 생각하면 큰 오해다. 그 후에도 계속해서 동 서방교회에서는 기존의 성경을 썼다. 예를 들면 4세기 중엽의 시나이티쿠스 코우덱스판본(Codex Sinaiticlus)은 바나바서와 헤르마스서를 정경에 포함시키고 있다 시리아의 교회에서는 타티안이 편집한 디아테사론(Diatessaron)이 5세기까지 쓰였고,....... 7세기에 내려와서야 비로소 시리아에서는 27서짜리 경전이 쓰여지게 된다. 그 뒤로 1546년에 라틴 벌게이트(the Vulgate)가 인쇄되기까지 텍스트 그 자체는 계속 유동적었다.
마틴 루터는 경전성의 기준을 "사도성"과 "그리스도에게로 귀결되는 것"의 두 척도에 두었는데, 히브리서, 야고보서, 유다서, 요한계시록은 후자의 척도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간주했으나 관습의 권위에 복종하여 이 네 편을 신약의 마지막에다가 포괄시켰다. 이러한 텍스트(설명의 대상이 되는 현상이나 자료)의 역사를 고찰해 볼 때 우리는 현존 텍스트 그 자체에 절대적 권위를 두고 일점일획이 모두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생각하는 성찰되지 않은 통념에서 해방되어야 할 것이다. 동서를 막론하고 성서는 어디까지나 인간이 조작한 틀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 김용옥 <절차탁마대기만성> 중에서]

♣ 15세기 인쇄술이 개발되기 이전의 모든 성경의 판본은 하나도 동일 한 것이 없다. 1,200년경에나 장의 구분이 생겨나고 1,550년경에나 절의 구분이 생겨난다.
" 신약성경의 원저자의 원사본은 현존하지 않는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에 인용된 성구들은 오늘 우리가 알고 있는 성경의 구절들과 거의 일치하지 않는다. 따라서 <신국론>을 번역할 때는 아우구스티누스 자신의 성경지식을 기준으로 해야 하며 우리의 성경지식으로 번역할 수 없다. 이와같이 성경이란 원래 제멋대로인 것이다. 오늘까지 존재하는 사본 중에서 신약 27서 전체를 보전하고 있는 판본은 50종에 불과하며, 15세기 인쇄술이 개발되기 이전의 모든 판본은 하나도 동일 한 것이 없다. 그리고 고판본은 모두 액센트와 쉼표의 표기조차도 없는 글자의 나열에 불과하며, 1200년경에나 장의 구분이 생겨나고 1550년경에나 절의 구분이 생겨난다. 그러므로 고판본의 해독에 있어서 많은 오류가 발생하는 것은 구두점 없는 한문 고전이 갖는 문제점과 대동소이하다." [ 김용옥 <절차탁마대기만성> 중에서]

▣ 성서(Bible)에 대한 결론
성서는 다음과 같은 왜곡의 과정을 거쳤다. 신약성서에 대해 한 번 살펴 보자.
1) 1단계 왜곡(구전): 예수의 육성음(아람어)은 예수의 죽음과 함께 증발했으며, 예수의 말씀이 구두로 전달되던 시대가 최소한 한 세대 (30년)이상 흐른 뒤 서서히 쓰여지기 시작했다. 물론 그 당시의 사람들이 기억력이 좋긴 하지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일점일획의 왜곡도 일어나지 않았을까?
2) 2단계 왜곡(번역): 예수가 구사했던 언어(아람어)는 최초로 희랍어(그리스어)로 쓰여지기 시작한다. 즉 번역의 과정을 거친 것이다. 번역에는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왜곡이 따르기 마련이다. 가령 영어 번역판만 해도 100여 종이 넘는 것은 이러한 왜곡을 적게 하려는 수많은 노력과 몸부림인 것이다.
3) 3단계 왜곡(필사): 이 희랍어로 쓰여진 것조차 원본은 없다. 모두 필사본일 뿐이다. 필사본들은 하나도 동일한 것이 없으며, 필사의 과정에서 왜곡은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바 있다.
4) 4단계 왜곡(취사 선택): 1~3단계를 거쳐 만들어진 5,000종이 넘는 사본들 중에서 어느 것이 가장 예수가 말한 바와 가까운가 하는 것을 원문비평을 통해서 취사선택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또한 약간의 왜곡이 발생한다.
5) 5단계 왜곡(번역):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비평판 그리스어 성서를 대본으로 하여 영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또 왜곡이 일어난다.
6) 기타 왜곡: 고판본은 모두 액센트와 쉼표의 표기조차도 없는 글자의 나열에 불과하며 장과 절의 구분시 많은 오류 발생, 정경과 외경으로 분류하는 과정(예수 사후 200년 이상 지난 후에야 현재의 27서 형태를 갖춤) , 복음서 변조(수정,가감,삭제 편집) 등의 왜곡도 무시할 수 없다.
이상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전혀 일점일획의 왜곡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은 거짓말 내지는 사기(詐欺)에 불과하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이 이러한 거짓말을 합리화하기 위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것이 바로 "성령"의 힘이다. 그러나 과연 성서가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져 일점일획도 틀리지 않는 걸까? 여기까지 글을 읽은 독자들은 누구나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알 것이다.

☞ 한마디로 바이블(bible)의 원전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을뿐더러, 태어나 보지도 못했다. 원본이라는 것 자체가 번역본일 뿐 아니라 복사본이다. 바이블은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수없이 왜곡되었으며[注1], 그러한 결과로 모순과 오류투성이다. 교회라는 조직이 그들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성경만을 정경(正經)이라고 강요하는 것일 뿐이다. 앞에서 언급되었다시피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도 예수의 말씀도 없다. 예수가 말했던 아람어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령에 의해 쓰여졌으며, 일점일획도 틀리지 않다느니 운운하는 것은 한마디로 엄청난 사기(詐欺)이다. 아직도 이러한 사기를 밑천으로 밥먹고 사는 한심한 성직자들이 우리 주변엔 많다. 괴팅겐 대학에서 신약을 강의하는 한스 코첼만 교수는 기독교가 지금까지 생존하고 있는 것은 비판적 성서 연구 결과가 알려져 있지 않은 덕분임을 자인한다. 10억의 그리스도인 중에서 신학 도서관을 기웃거려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심지어 삼위일체나 예수의 신성(神性)과 같은 중요한 교리조차도 몇 차례의 종교회의를 거쳐 찬반투표로 인간에 의해 결정되었던 것이다. 뒤에서 다시 살펴보기로 한다.



[注1] 성서의 현대어 번역에 참여했던 요하네스 레이만 박사의 말을 소개해 본다. "복음사가들은 해석가였지 전기가는 아니었다. 그 여러 세대 동안이 흐르다 보니 모호해져 버린 부분을 밝혀준 것이 아니라, 도리어 명백했던 것마저도 흐려놓고 말았다. 역사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역사를 만들어 버렸다." [코즈믹바이블, p205]
(옮겨온 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