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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이 있는 한시

김삿갓 (김병연 )절명시

by 까마귀마을 2021. 10. 2.

김삿갓 동복 적벽에서 편히 쉬다

나이가 들어 몸이 노후해진 김삿갓은 전라남도 화순 동복 신석우라는 사람집에 머물게 된다. 며칠 몸을 쉰 삿갓이 어느날
"동복에는 소동파의 「적벽부(赤壁賦)」에 나오는 적벽강(赤壁江) 과 똑같은 강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 강이 여기서 얼마나 떨어져 있지요?"
"적벽강은 여기서 삼 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선생이 적벽강을 구경하고 싶으시다면 따뜻한 날을 택해 제가 직접 모시고 가서 보여 드리겠습니다."
김삿갓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적벽강을 한 번 보고 싶어요. 그러나 나 혼자서 구경하고 싶지, 누구하고 함께 보고 싶지는 않아요.

매우 외람된 부탁이지만, 내일 아침에 나에게 배를 한 척 빌려 주실 수 없으실까?"
김삿갓의 고집으로 다음날 신석우는 어쩔 수 없이 김삿갓 혼자만 배를 타게 해주었다. 배는 조그만 놀잇배였다.

물 위에 둥둥 떠도는 배는 노를 젓지 않아도 흐름을 따라 조금씩 아래로 떠내려 가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밥을 빌어먹기 위해 남의 집 대문을 두드릴 필요도 없고, 잠자리를 구하기 위해 이곳저곳으로 헤매고 돌아다닐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아아, 여기가 바로 나의 안식처였구나!"
배 위에 편히 누워 저 멀리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
하얀구름을 그윽이 바라보고 있자니, 눈꺼풀이 무겁게 감겨왔다. 이제는 눈을 뜨고 있기조차 힘에 겨울 정도로 기진맥진했던 것이다. 그러나 마음만은 그렇게도 편안할 수가 없었다. 돌이켜 보면 기구하기 짝없는 50평생이었다.
혼미한 의식 속에서 자신의 생애를 회고하며 김삿갓은 다음과 같은 마지막 시를 읊기 시작하였다.

 

 赤壁江에서

鳥巢獸巢皆有居 (조소수소개유거) 날짐승도 길짐승도 제 집이 있건만
顧我平生獨自傷 (고아평생독자상) 나는 한평생 혼자 슬프게 살아왔노라.
芒鞋竹杖路千里 (망혜죽장로천리) 짚신에 지팡이 끌고 천릿길 떠돌며
水性雲心家中方 (수성운심가중방) 물처럼 구름처럼 가는 곳이 내 집이었다.
尤人不可怨天難 (우인불가원천난) 사람도 하늘도 원망할 일이 못 되어
歲暮悲懷餘寸腸 (세모비회여촌장) 해마다 해가 저물면 혼자 슬퍼했노라.
初年有謂得樂地 (초년유위득요지) 어려서는 이른바 넉넉한 집에 태어나
漢北知吾生長鄕 (한북지오생장향) 강가 이름있는 고향에서 자랐노라.
簪纓先世富貴門 (장영선세부귀문) 조상은 부귀영화를 누려 왔던 사람들
花柳長安名勝生 (화류장안명승생) 장안 에서도 이름 높은 가문이었다.
隣人來賀弄璋慶 (린인래하롱장경) 이웃 사람들 생남했다 축하해 주며
早晩歸期冠蓋場 (조만귀기관개장) 언젠가는 출세하리라 기대했건만
빈毛稍長命漸奇 (빈모초장명점기) 자랄수록 운명이 자꾸만 기구하여
小劫殘門飜海桑 (소겁잔문번해상) 오래잖아 상전이 벽해처럼 변했소.
依無親戚世情薄 (의무친척베정박) 의지할 친적 없고 인심도 각박한데
哭盡爺孃家事荒 (곡진야양가사황) 부모마저 돌아가셔 집안이 망했도다.
終南曉鐘一納履 (종남효종일납이) 새벽 종소리 들으며 방랑길에 오르니
風上異邦心細量 (풍상이방심세양) 생소한 객지라서 마음 애달팠노라.
心猶異域首丘孤 (심유이역수구고) 마음은 고향 그리는 떠돌이 여호 같고
勢亦窮途觸藩羊 (세역궁도촉번양) 신세는 궁지에 몰린 양 같은 나로다.
南州從古過客多 (남주종고과객다) 남쪽 지방은 자고로 과객이 많은 곳
轉蓬浮萍經幾霜 (전봉부평경기상) 부평초 처럼 떠돌아가기 몇 몇 해던고.
搖頭行勢豈本習 (요두행세기본습) 머리 굽신거림이 어찌 내 본성이리오
설口圖生性所長 (설구도생성소장) 먹고 살아가기 위해 버릇이 되었도다.
光陰漸向此市失 (광음점향차시실) 그런 중에도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가
三角靑山何渺茫 (삼각청산하묘망) 삼각산 푸른 모습 생각할수록 아득하네.
江山乞號慣千門 (강산걸호관천문) 떠돌며 구걸한 집 수없이 많았으나
風月行裝空一囊 (풍월행장공일낭) 풍월 읊는 행랑은 언제나 비었도다.
千金之家萬石君 (천금지가만석군) 큰 부자 작은 부자 고루 찾아다니며
厚薄家風均試嘗 (후박가풍균시상) 후하고 박한 가풍 모조리 맛보았노라.
身窮每遇俗眠白 (신궁매우속면백) 신세가 기구해 남의 눈총만 받다 보니
歲去偏傷髮髮蒼 (세거편상발발창) 흐르는 세월 속에 머리만 희었도다.
歸兮亦難佇亦難 (귀혜역난저역난) 돌아가자니 어렵고 머무르기도 어려워

幾口彷徨中路傍 (기구방황중로방) 노상에서 방황하기 몇 날 몇 해이던고.

 

김삿갓은 여기까지 읊어보다가, 마침내 기운이 다해 입을 다물어 버리고 말았다.
이제는 시를 읊을 기력조차 없어져 버렸던 것이다.
배는 가벼운 바람에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고, 김삿갓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리하여 삼천리 방방곡곡을 두루 살펴보며 수많은 시를 뿌려 놓던 시인 김삿갓은 마침내 전라도 동복 적벽강 범선 위에서 영구 귀천(歸天)했으니, 때는 철종(哲宗) 14년(1863년) 3월 29일이요, 향년 56세였다.

 

김삿갓은

1807년 경기도 양주군 회천면 회암리에서 안동 김씨 김안근과 어머니 함평이씨 사이에서 차남으로 출생
이름 炳然(병연). 자 性深(성심). 호 蘭皐(난고). 1812년(6세)때 선천방어사로 재직 중이던 조부 김익순이 홍경래 반란군에게 投降(투항) 함으로써 조부 김익순은 처형되고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질 때 어머니가 아들들의 장래를 위해 영월 산중으로 들어가 자식들을 공부시키며 숨어 살았다.

 

1826년(20세)때 장수 黃(황)씨 와 결혼, 그해 영월 도호부 백일장에서 시험을 보는데 課題(과제)가 '논정가산 충절사탄 김익순 죄통우천'으로 나와 글을 지어서 장원을 하였는데 역적의 후손임이 탄로 나 장원이 취소되고 병연도 김익순이 자신의 조부임을 알게되었다

 

조상을 모독하여 큰 죄를 지었음을 痛感(통감)하고 하늘 보기가 부끄럽다하여 삿갓을 쓰고 방랑으로 세월을 보내면서
1828년(22세)때 장남 학균을 1830년(24세) 차남 익균을 낳고 다시 출가하여 대지팡이에 삿갓을 쓰고 방랑 생활을 하면서 평안도와 함경도 등 각처를 두루 돌아다니며 부자나 권력자들의 行悖(행패)를 嘲弄(조롱)하는 諧謔(해학)과 諷刺(풍자)하는 시를 남겼다.

 

또한 아름다운 풍경이나 어려운 사람들의 인생사를 시로 엮으며 방방곡곡을 두루 섭렵 1841년(35세) 전라도로 내려와 광주에서  無等山(무등산) 長佛峙(장불치)를 넘어 꿈에도 못 잊어 그리워했던 동복 赤壁(적벽)을 보고  '無等山高松下在 赤壁江深沙上流'  (무등산이 높아하되 소나무 아래 있고 적벽강이 깊다하되 모래위에 흐른다) 시를 짓기도 하였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김삿갓은 적벽강의 놀잇배에서 "적벽강에서"란 시를 남기고 죽었다 하지만 동복면 龜巖(구암) 마을 창원 丁氏(정씨) 童蒙敎官(동몽교관)댁 사랑채에서 머물면서 지내다가 그곳 사랑채에서 한많은 삶을 마감하였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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