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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이야기(나는 왜 가나안 성도인가)

믿음과 지혜(智慧)

by 까마귀마을 2026. 3. 28.

한국교회 신뢰도 19%, 신뢰하지 않는다 75.4%  (출처 : 한국교회 신뢰도 또 최저치…국민 75.4% "교회 못 믿어")

우리나라 기독교 신자가 20%쯤 된다고 가정할때 기독교 신자 외는 우리국민 거의가 한국교회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지표다.

길거리에서 커피를, 전단지를 나눠주고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소리, 소리 지른다고 단 1명이라도 전도가 될까? 

버스 정류장에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며 몰려 있는데 한 아줌마가 큰 소리로 기독교를 전도 하고 있다.
"예수를 믿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 당신들은 모두 죄인이고 사기꾼이며 거짓말쟁이라"면서 열변을 토한다.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 하나로 얼떨결에 나도 죄인이고 거짓말쟁이이며 사기꾼에 편입되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거의 외면하듯 반응하지만 그러나 그녀는 마치 수도물을 틀어놓은 것처럼 단정적인 정죄의 말을 끊임없이 콸콸 쏟아낸다. 타종교인도 거기 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무례하게 불교나 다른 종교들은 우상종교라 루시퍼를 따르는 것이라는 말도 더 붙인다. 

이와 비슷한 일은 여기도 있다.

"스님께 예수 믿으라는 신부"( 동영상 : https://youtube.com/shorts/HS0DlsbZDRI?si=tT-k5FeMUjslZ8P4)
여기 댓글들을 읽어보라. 예수믿고 천국가라는 댓글은 폭주하고 있어도 부처믿고 성불하라는 댓글은 찾아보기 힘들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에는 대화나 타협의 여지가 없다. 절대적 믿음만 있다.
타협할 여지가 없는 믿음에는 선언과 선포만 있고 바로 판단과 정죄가 되며 분쟁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분쟁과 험담이 가장 많은 곳이 교회다.
목사가 교역자에 대해 입에 담을수 없는 욕설, 목사와 신도들의 집단 분쟁, 서로 물고 뜯는 일이 천지사방에 널렸다.
정답만 있는 믿음은 폭력적이다.

현재 전쟁중인 중동지역, 나라와 민족간의 분쟁, 이 모두가 자기의 믿음, 내 종교만이 옳다는 오만과 우월감 때문이다.
남의 종교 따위는 우상일 뿐이므로 교화해야 하며 반드시 이겨서 짓밟아야 한다.

누구를 믿으라. 무엇을 믿으라는 것은 아직 잘 모른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잘 모르기 때문에 믿으라는 것이다.
잘 안다면 믿으라는 말이 필요가 없다.
영혼이나 영의 세계에 대해 직접 보거나 잘 안다면 그때는 성찰만으로 족한 것이다.
뭔가를 믿어야만 구원, 천국, 복을 준다는 사람이 집단이 있다면 그는, 그들은 사기꾼이거나, 아니면 그 이름를 이용하여 종교 장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야 한다.

그러나 정작 믿음에 목메는 사람들중 더러는 불확실성에 기초한 믿음의 본질을 알지 못한 채 자기 확신과 신념의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도대처 무엇을 믿는다는 것인가?
믿음으로 천국티켓을 얻었다는 것일까?
예수께서 나를 업고 천국에 들어가 주실 것을 믿는다는 것인가?
그들은 너무나 확신에 차서 말하지만 문제는 그들에게 확실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믿음이란 지혜로 들어가는 입구일 뿐이다.
삯꾼과 교인들은 대부분 입구에 몰려서 다 얻은 냥, 다 아는 냥 떠들어대고 있다.
믿음은 그저 겉 표지일 뿐이지만 기독교인들, 믿음 만능주의자들은 그 겉 표지가 전부인 줄 안다.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게 된다.
차원 높은 신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둠의 영들, 차원이 낮은 저급신들은 자신을 과시하면서 늘 무엇을 강요하고 요구한다는 특징이 있다.

같은 이치로 이단 사이비같은 저급한 종교 일수록 믿어야 한다는 강요가 심하며 성경공부, 세뇌와 가스라이팅에 목숨을 건다.

한번 물었다 하면 자신과 같은 종교노예인 맹신자, 즉 무뇌 좀비가 될 때까지, 십일조와 헌금을 아낌얷이 팍팍 바칠 때 까지 이성을 마비시켜 영혼을 탈탈 털어버린다.

끝까지 밀어부쳐서 무릎을 꿇리고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털어내는 작업이 그들에게는 하늘에 상급을 쌓는 전도요, 지상명령을 수행하는 거룩한 사명이 된다.


믿음은 영계의 입구요, 초입이라면 지혜는 문을 열고 들어 온 것이며 그때부터는 앎과 자기 성찰이 시작된다.
믿음은 말로 들어서 어거지로 믿는 것이라면 지혜는 직접 듣고 직접 봄으로써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혜는 믿음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지만 믿음은 지혜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다.
믿음은 지혜를 포용할 수 없지만 지혜는 모든 종교와 모든 믿음을 포용한다.
믿음의 종교는 언제 어디서나 서로 다투고 분리 분쟁과 전쟁만을 일으키지만 지혜에 이른 사람이나 지혜의 종교는 언제 어디서든 누구와든 서로 화평하려 한다.

이유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고 존중하는 실천적인 삶이 되기 때문이다.


믿음은 시끄럽게 떠드는 것이지만 지혜는 조용하게 관조하는 것이다.
믿음은 단정짖고 선언하는 것이지만 지혜는 선을 이루려 하고 경계하는 것이다.
믿음은 자랑하는 것이지만 지혜는 성찰하는 것이다.

믿음은 판단하는 것이지만 지혜는 물음을 남겨 놓는다.
믿음은 내가 최고 인줄 아는 것이지만 지혜는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배우고 배려하는 자세다.


믿음을 강요하고 가르치는 종교는 하수고 지혜를 가르치고 종교는 고수다.
고수는 하수의 말을 알아듣지만 하수는 고수의 말은 차치(且置)하고 자기의 삶, 자기들의 믿음이 예수의 길인지도  잘 모르고 있다.
그러나 목표는 같다 결국은 신일합일로 나아가는 것이고  나의 성정이 신과 하나됨이다.(메일에서 옮겨온 글을 일부수정)

 

* 믿음(Faith/Belief)이란 

어떤 사실, 사람, 종교적 가치관을 확고한 진리로 받아들이는 심리 상태를 의미하며  주로 기독교에서 예수를 구원자로 인격적으로 신뢰하고 따르는 전인격적 반응을 뜻한다. 객관적 진리인 말씀을 바탕으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을 확신하는 것이지만  악보다 무서운 것은 "자기만 옳다는 믿음"이라는 말도 있다. 관련된 단어는 자기과신, 맹신, 독선이 있다.

 

*지혜(智慧)란 

사물의 이치, 善과 惡, 상황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분별하여 적절하게 처리하는 정신적 능력 또는 삶의 기술을 의미한다. 단순한 지식의 축적(Data)이 아니라, 축적된 지식을 실천적으로 활용하여 올바르게 살아가는 방법이며, 경험과 깨달음을 통해 얻어지는 내면의 통찰력이다. 사람, 사물, 사건이나 상황을 깊게 이해하고 깨달아서 자신의 행동과 인식, 판단을 이에 맞출 수 있는 것을 뜻한다. 우리말로 '슬기'라 한다.

때때로는 자신의 감정적인 반응을 통제하여 이성과 지식이 이성적으로 행동을 결정할 수 있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비슷한 말로는 통찰(insight), 안목(discernment)이 있다.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저서인 형이상학에서 지혜란 '원인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즉, 원인을 이해하는 과학이 모든 것의 출발이라는 것이다. 미지의 자연현상을 이해하는 것이 학문의 출발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두뇌와 직결된 단어이기도 하다. 지능과 뜻은 다르지만 지능이 높을 경우 어떤 이치나 원리의 이해, 지혜를 터득하기 수월하다. 지식과는 상호보완적인 관계다. 지식은 무엇(What)을 아는 것이라면, 지혜는 그 지식을 언제, 어떻게 활용할지(How) 아는 것이다.
고대 근동인들과 기독교인들은 지혜를 매우 중요한 덕목으로 여겼다. 지혜를 의인화한 신이 아테네와 메티스였으며 찰학을 가리키는 용어 philosophy도 '지혜를 사랑한다'는 의미였다. 이는 로마인들도 마찬가지였고, 중세의 기독교에서도 똑같이 지혜는 매우 중요한 덕목으로 중요시되었다. 북유럽에서는 지혜의 신 오딘이 나중에 최고신으로 자리잡기도 하였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모든 덕목의 아버지'로 지혜를 꼽았다.
동아시아에서는 선불교와 도교같이 지혜란 오랜 명상과 수행을 통해 삶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 것과 관련되어 있어 삶의 적절한 체념과 절도를 포함한 것이라면 구미권에서는 지혜란 정확한 정보와 인식을 바탕을 두어 먼저 많은 양의 지식을 얻고 그것을 제대로 정리하여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힘이라고 서로 약간의 차이를 가지고 있다. 좀 더 부가적으로 설명하면 지식과 지혜는 매우 밀접하지만 지식이 많다고 해서 지혜롭다고 귀결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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