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위의 구절은 기독교인이 아니라도 세상 사람이 다 알고있는 마태복음 1장 22-23절로 기독교 인들은 산타가 가짜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처녀인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되어 예수를 낳았다는 이 구절은 실제적, 역사적 사건이라는 신념은 절대 굽히려 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예수의 탄생을 700년전 이사야를 통하여 예언 하였고 그 예언이 이루어졌다는 성경의 문자적 해석은 절대적 믿음이고 신념이다. 선지자를 통해 예언하였다는 히브리 성경 이사야 7장 14절을 살펴보면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뉴엘이라 하리라" (한글 개역성경)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구절은 당시 역사적 배경, 이사야서의 전후 문맥등을 살펴보면 예수의 동정녀 탄생과는 전혀 무관한 구절이다. 장차 올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 아니라는 점이다. 구약성경을 읽은 사람은 알겠지만 이사야서를 한번만 읽어 보아도 태어날 아기가 예수를 지칭하지 않음을 바로 알수있다. 내가 처음 성경을 1독하고 30여년 믿음생활을 한 아내에게 이사야서의 이 구절이 예수 탄생의 예언이 아니라고 말한 기억이 있다. 이사야서의 이 구절은 처녀 잉태 자체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고 태어날 아기가 임마뉴엘이 갖는 의미처럼 하나님이 유다왕국과 함께 한다는 뜻이다. 마태복음 기자들이 왜곡한 이 구절은 나 같은 성경초보도 한번 읽고 단번에 알아보는데 목사는 성탄절마다 우려먹고, 믿음 좋다는 일부 교인들은 믿음이 부족 해서라는등 말 같지도 않은 억지를 부리는 그들의 의도가 너무 속보이며, 한편으로 자기가 믿고 싶은 것들을 부정하기 싫어서 억지를 부리는 것 같아 참으로 당혹스럽고 측은해 보이기도 한다.
당시 이스라엘은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 둘로 갈라져 있었다. 유다를 위협하고 있는 아람(시리아)과 북이스라엘의 동맹이 망할 것이라는 예언 가운데 나온 말이다. 실제 아람과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멸망 당한다. 이사야서 7장이 쓰일 당시 역사적 배경은 유다왕 아하스 때에 아람왕과 북이스라엘 왕 베가가 동맹을 맺고 남쪽의 예루살렘을 공격 할때다. 비록 예루살렘은 함락되지 않았지만 유다왕국은 나라가 위태로운 불안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여호와께서 유다의 왕 아하스에게 구원의 징조를 주겠다고 약속하지만 아하스는 징조 구하기를 거절한다. 아하스는 징조 구하는 것이 여호와를 시험하는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사야는 여호와께서 친히 징조를 주실것이라 하며,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뉴엘이라 하리라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 할줄 알때 되면 엉긴 젖과 꿀을 먹을 것이라 대저 이 아이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기전에 네가 미워하는 두왕의 땅이 황페하게 되리라"(한글 개역성경 이사야서 7장 14-16절) * 한글 개역성경도 헬라어 번역을 따라 젊은 여자가 처녀로 번역되어 있다.
이 예언의 구절은 유다 왕국이 아람과 북이스라엘 동맹과 전투를 벌리지 않게 될것을 확신케 하는 내용이다. 쉽게 풀이하면 이사야는 젊은 여자가 곧 임신을 해서 아들을 낳을 것인데 이 때가 되면 지금의 유다 왕국의 정치적 군사적 위협이 사라지게 될것이라는 대목이다. 이 젊은 여자는 많은 성경학자들은 아하스의 부인 "아비"라고 주장하고 있다. 허나 이사야서 8장 3절에는 아하스의 부인이 아닌 이사야의 아내가 아들을 낳는다고 예언 되어 있으며 이름은 "마헬살랄하스바스"로 임마뉴엘과 이름이 바뀌어 있다. 이 아이는 유다의 왕 아하스가 두려워 한 다메색(시리아의 수도)과 사마리아(북이스라엘수도)의 왕이 각각 멸망한다는 여호와의 예언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두 왕이 죽기 전 태어나야만 했다. 실제로 이 아이가 태어나고 철들기 전에 두 나라가 멸망한다는 예언은 성취된다. 이러한 예언은 열왕기하 16장 7-11절에도 나온다. 그렇다면 이 아이는 아람과 북이스라엘 두 왕이 멸망 하기 전 태어나서 성장하여야 하는데 이사야 시대에 아이를 낳은 여인이 마태복음의 기록처럼 어떻게 예수를 낳은 마리아가 될수 있겠는가? 마리아가 이사야 시대에 태어나 아이를 낳고 죽었다가 다시 태어 났다면 모를까 더구나 이 아이도 나이들어 죽었을 텐데 700년이 지나 다시 예수가 될수 있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얘기인가?
이사야는 남자를 모르는 처녀라는 히브리어 "베튤라"라는 단어는 베튤라가 필요한 구절에는 반복하여 사용 하고 있으며 7장 14절에서는 베튤라가 아닌 젊은여자 "알마" 라는 단어를 쓰고있다. 이사야는 베튤라와 알마를 정확히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어 두 단어가 혼돈되이 사용 되었다고는 볼수없다. 히브리어 "알마"라는 단어는 남자를 모르는 숫처녀가 아니라 그냥 젊은 여자 또는 젊은 여인이라는 뜻이다.
마태복음에 따르면 천사가 요셉의 꿈에 나타나 약혼녀 마라아의 임신이 이사야서 7장 14절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의 성취라고 일러준다. 마태복음에 나타난 처녀라는 단어는 70인역 (셉투아진트) 헬라어 번역본이 히브리 성경의 젊은여자 "알마"를 오역한 헬라어 단어 처녀 " 파르테노스"를 그대로 인용 하였다는 설이 유력하다. 셉투아진트라는 뜻은 라틴어 70을 말하며 토라 5경을 뜻하기도 한다. 최초의 헬라어 번역본으로 알려진 70인역 번역이 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정확한 역사적 사료는 남아있지 않지만 이집트 관리 인 "아리스테아스" 편지에 의하면 주전 2세기 무렵 점점 사용하지 않고 쇠퇴해가는 히브리어 대신 당시 제국의 공용어인 헬라어로 된 구약성경이 절실히 요구되고 필요함에 따라 이스라엘 각지파 6명씩 차출된 72명의 율법학자들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히브리어 구약성경중 모세5경을 헬라어로 번역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남아있는 여러 문헌을 분석하면 아리스테아스의 편지 내용과는 달리 일정한 계획하에 이뤄진 번역이 아니라 다양한 지역, 다양한 역사적 배경에서 번역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마태복음이 기록될 당시는 70인역(셉투아진트) 헬라어 구약성경은 토라 5경 (모세5경)만 번역되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이는 마태복음 기자들이 헬라어 70인역 성경의 오역을 따른것이 아니고 히브리서 성경의 "알마"라는 단어가 젊은 여자를 뜻하는 것을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헬라어 처녀라는 단어 "파르테노스"로 왜곡하여 번역하지 않았나 하는 의문에서 벗어 날수없다. 모세5경을 제외한 구약의 다른 문서들은 오랜세월에 걸쳐 체계적이지 않는 방법으로 헬라어로 번역되었으며 많은 오류와 헛점이 있었다고 한다. 현존하는 최초의 헬라어 구약성경 번역본은 시간이 지나면서 수차례의 수정을 거쳐 3세기에야 신학자이자 교부인 '오리게네스" 의해 최종 집대성하고 편집되어 성경의 형태를 갖추게 되는데 최초의 헬라어 번역본과는 많은 변형이 있어 원상태를 회복 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1-2세기 신약성서 저자들은 구약을 인용할때 히브리 성경보다는 셉투아진트 헬라어 70인역을 주로 이용하였다.
결론은 설령 예수 탄생이 성령 잉태의 기적이라 해도 선지자에 의한 예언은 거짓이다. (얼마전 17년간 키운 아들이 목사를 닮아 친자 확인을 해보니 목사의 친자일 가능성 99.9%로 밝혀지자 그 여자는 목사와는 동침한 사실이 없고 성령으로 잉태 되었다는 주장을 하는것을 보아 성령잉태가 있기는 있는 모양 : 중앙일보 2017.10.12.) 마태복음 기자들이 히브리어를 몰라 히브리 구약성경을 읽지 않고 헬라어로 번역된 70인역을 인용 하였을 수도 있지만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서를 한번도 읽어보지 않은 자들이 신약성서를 기록하였다는 얘기는 상상이 되지 않는다. 당시 유대 사회, 종교, 문화가 아무리 헬라 영향하에 있었다 해도 마태공동체는 분명히 유대인들로 이루어진 유대인 공동체다. 그들은 예수를 메시아로 받아 들였지만 율법을 지키는 유대교와 다른점은 하나도 없었다. 당연히 히브리어 구약성경도 읽었을 것이고 이사야서 7장의 젊은 여자가 마리아를 가르키지 않을 뿐 아니라, 메시아적 예언이 아님을 분명 알고 있었을 텐데도, 예수를 메시아로 만들기 위해 이사야서의 젊은여자라는 단어를 처녀로 왜곡하고 메시아 예언을 조작 하여 마태복음에 적용 하였다는 사실은 피할수 없는 사실이 된다. 숭고한 의도와 성령체험적 믿음의 고백이라 해도 거짓과 허위는 밝혀지게 마련이다.
마태복음의 저자들은 임마뉴엘이라는 말에 예수와 동일치라는 의미를 부여 했지만 성경의 이름들은 여호와와 연관된 이름이 많다. 여호수아 : 여호와는 구원이시다. 예레미아 : 여호와께서 세우시다. 엘리야 : 나의 하느님은 여호와 시다.등 그리고 복음서 어디에도 예수의 이름을 임마뉴엘이라 호칭하지 않는다. 가톨릭 백과사전에는 현대신학은 이사야 7장 14절이 그리스도의 동정녀 잉태에 대한 예언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도서 옥성호의 신의 변명
* 아리스테아스의 편지와 70인역 헬라어 구약성경(토라 5경)
히브리어로 기록된 성경은 주전 270년대 최초로 희랍어로 번역되었다. 이를 ‘70인역’이라고 부른다. ‘아리스테아스의 편지’는 ‘70인역’이 번역된 계기와 과정을 자기 동생에게 쓴 편지의 형식으로 기술하고 있는 역사적인 자료이다. 이것이 얼마나 역사적으로 정확한 자료인가 하는데 관해서는 학계에 많은 논란이 있다. 그러나 ‘70인역’에 관한 고대의 유일한 자료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아리스테아스의 편지’는 이집트의 왕 토레미 2세(Ptolemy II, 주전 285-247)가 선왕이 건립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당대 세계 최대의 도서관으로 만들고자 하는 계획으로 시작된다. 도서관장 데메트리우스는 히브리어로 쓰여진 유대인들의 율법서(Lawbook of the Jews, 구약의 ‘5경’을 의미한다)를 희랍어로 번역해서, 도서관에 소장하는 것이 좋겠다고 진언한다. 왕은 좋은 생각이라고 흔쾌히 승낙하고, 왕의 서신을 예루살렘에 있는 대제사장 엘리아살에게 보낸다. 왕의 서신을 갖고 간 두 명의 사신 중의 한 사람이 바로 이 편지의 필자 아리스테아스이다.
서신의 내용은 ‘유대인 율법서’를 희랍어로 번역할 사람을 보내 달라는 것이었다. 대제사장 엘리아살은 왕의 요청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고매한 인격을 갖추고 경건하며 희랍어에 능통한 장로를 12지파에서 각각 6명씩 선발해서, 모두 72명을 보낸다. 72명의 장로가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했을 때, 왕은 기뻐하며 7일 동안 성대한 잔치를 베풀어 그들을 환대한다. 환영 잔치가 끝난 후, 72명의 장로는 바닷가에 있는 작은 섬으로 가서 그곳의 훌륭한 시설에서 번역 작업을 시작했다. 분야를 나누어 번역하고, 번역한 것을 서로 감수하며 일을 진행한 결과, 꼭 72일 만에 모든 번역 작업을 마쳤다. 토레미 왕과 그곳의 유대인 공동체는 번역의 완성을 기뻐했고, 이후로는 이 번역을 수정하거나 가감해서는 안되는 권위 있는 번역으로 최종 승인했다. 번역을 마친 72 장로들은 왕이 하사하는 푸짐한 선물과 함께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다. 이것이 ‘아리스테아스의 편지’의 개요이다. 이 자료에 의거해서 희랍어로 번역된 성경을 ‘70인역’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정확히는 72인이 번역했지만), 번역 작업은 주전 200년대 전반부 토레미 2세 때 알렉산드리아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 정설(定說)이 되었다.
그러나 이 ‘편지’ 내용의 역사적 정확성에 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다. 특히 이 번역 작업이 당시 이집트의 왕이었던 토레미 2세의 주도와 전폭적인 후원 밑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에 대해서는 상당히 과장된 면이 있다고 본다. 그보다는 당시 번성하는 대도시 알렉산드리아에 큰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던 유대인들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알렉산드리아에는 국제교역이나 상업활동으로 크게 성공한 부유한 유대인들이 많이 살았었다. 그곳의 유대인들은 히브리어는 모두 잊어버리고 당시 국제공용어인 희랍어를 사용하고 있었으므로, 희랍어로 번역된 성경이 절실하게 요구되었고,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공동체는 희랍어 번역 작업을 할 수 있는 인적, 경제적 여건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70인역’ 희랍어 번역이 나오자 모든 유대인들은 크게 환영하고 기뻐했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새로운 문제도 생겨났다.
참고 : 성경연구 아리스테아스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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