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豊樂亭游春(풍락정유춘) 풍락정봄놀이
紅樹靑山日欲斜(홍수청산일욕사) 붉은 꽃 푸른 산, 해는 지려하고
長郊草色綠無涯(장교초색록무애) 긴 들녘 풀빛은 푸르기가 끝이 없네.
游人不管春將老(유인불관춘장로) 노니는 사람들 봄이 가는 건 신경쓰지 않고
來往亭前踏落花(내왕정전답락화) 정자 앞을 오가며 떨어진 꽃잎을 밟는구나.
------歐陽修(구양수) -----
註.
無涯(무애) : 넓고 멀어서 끝이 없음.
游人(유인) : 놀러 다니는 사람. (遊. 游 : 놀유)
不管(불관) : 상관하지 않다.
풍락정(豊樂亭) : 구양수(歐陽脩)가 경력(慶曆) 6년(1046년) 저주(滁州: 현 안휘성(安徽省) 저현(滁県)) 지주(知州)로 있을 때 저주 남서쪽 풍산 아래 맑은 샘물이 솟아나는 부근에 세운 정자.
이 시는 시인 자신이 건립한 정자 풍락정(豊樂亭)에서 바라보는 봄의 정경을 노래 한 7언 절구시다.
봄이 가는 줄 모르고 놀이에만 열중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가는 봄을 아쉬워하는 詩로 3首중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마지막 3번째 시다.(나머지 2首는 아래 첨부) 꽃을 즐기러 나온 백성들은 봄의 꽃 풍경에 취해 짧은 봄이 가는 아쉬움은 잊은 채 땅바닥에 떨어진 꽃잎을 밟으며 봄을 즐기고 있다. 시인은 꽃이 지고, 자고나면 가버릴 짧은 봄이 못내 아쉬웠던 것 같다. 봄이 되면 해마다 보는 풍경이다.
곧 유채 꽃도 만발 할 것이다. 꽃밭에 들어가지 못하게 줄을 쳐 놓지만 꽃밭 안으로 들어가 줄기를 부러트리고 꽃을 짓이기고 밟으며 추억을 만들고 봄을 즐기는 일부 분별없는 사람들의 행동에 꽃에 미안하고 마음 상한 내 마음처럼 시인도 날이 다해 떨어진 꽃 잎이지만 무심히 밟고 지나가는 상춘객에 기분이 많이 언짢았나 보다....
歐陽修(구양수)
중국 송나라(북송, 北宋) 때 정치가, 관료이면서 유명한 문인(文人)이다. 저주(滁州)의 지사로 있던 30대 후반의 나이 때 스스로 자신의 호를 술 취한 노인네란 의미의 ‘취옹(醉翁)’으로 하였다. 아직 젊은 나이의 구양수가 왜 翁이란 글자를 호로 썼을까? 늙어서도 양껏 술을 마시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었나? 구양수는 저주 지사로 있던 시절 취옹정(醉翁亭)이란 정자도 지었다. 구양수는 취옹정기(醉翁亭記)란 산문도 지었으니, 적어도 저주 지사로 있던 시절엔 술을 무척이나 좋아했나 보다. 구양수는 소식(소동파)의 스승일 뿐만 아니라, 소식의 부친인 蘇洵(소순)을 천거해서 등용하기도 했다. 구양수는 소식, 소식의 동생 소철, 소식과 소철의 부친 소순 삼부자 및 왕안석과 함께 문장으로 유명한 당송팔대가에 속한다.
참고로 구양수(歐陽修)는 서예 구양순체를 만든 구양순(歐陽詢)과는 다른사람이다.구양수는 서기 1007년 생인 북송 때 사람이지만, 구양순은 서기 557년 생인 당나라 초기 사람이었다. 두 사람 다 지금까지 글씨체가 전해질 정도로 유명한 서예가지만, 전혀 다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다.
豊樂亭游春
1首
綠樹交加山鳥啼(녹수교가산조제) 푸른 나무 엉킨 속에 산새들 지저귀고
晴風蕩漾落花飛(청풍탕양락화비) 상쾌한 바람 산들 불어 지는 꽃 날리네.
鳥歌花舞太守醉(조가화무태수취) 새는 노래하고 꽃은 춤추고 태수는 취하였으니
明日酒醒春已歸(명일주성춘이귀) 내일 술 깨면 봄은 이미 떠났으리라.
註.
交加(교가) : 서로 뒤섞임. 서로 왕래함.
蕩漾(탕양) : 물결(바람)이 넘실거려 움직임. 漾은 출렁거릴 ‘양’.
太守(태수) : 구양수 자신을 말함.
2首
春雲淡淡日輝輝(춘운담담일휘휘) 봄날 구름 깨끗하고 해는 밝게 비추니
草惹行襟絮拂衣(초야행금서불의) 풀들은 행인의 옷깃 당기고 버들개지는 옷에 스치네.
行到亭西逢太守(행도정서봉태수) 정자 서쪽으로 가 태수를 만나보니
藍輿酩酊揟花歸(남여명정서화귀) 흠뻑 취하여 가마 타고 꽃을 꽂고 돌아가네.
註.
淡淡(담담) : 깨끗함.
輝輝(휘휘) : (햇빛이) 밝게 비침.
絮(서) : 버들개지(버드나무의 꽃).
藍輿(남여) : 가마.
酩酊(명정) : 곤드레만드레 취함.
구양수가 豊樂亭游春을 지은지 30년후 왕안석이 구양수의 시중 일부 시구를 바꾸어 春怨(춘원)이란 제목의 시를 지었다. 구양수의 시나 왕안석의 시 모두 상춘객들이 바닥에 떨어진 꽃을 밝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 하고 있지만 구양수는 1.2구에서는 오직 봄 풍경만을 그리고 있는데 반해, 왕안석은 첫 구부터 자신의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낸다. 또 구양수는 사람들이 떨어진 꽃잎을 밟는(踏花) 데서 가는 봄을 아쉬워할 뿐이지만, 왕안석의 踏花(답화)라는 표현은 단순히 꽃을 밟음이 아니라 자신이 내세운 개혁정책이 반대파에 의해 성과를 내지 못하고 무너짐을 꽃을 밟음으로 봄을 찾는다고 비유하고 있다. 구양수는 당시 보직이 좌천 되어 울적함에 있었지만 그래도 봄을 즐기며 지은 詩고, 왕안석은 벼슬에서 밀려나고 자신의 개혁정책이 난관에 있을 때 지은 시다. 왕안석은 이 외에도 梅花등 많은 시가 전해지고 있다. 구양수는 자신이 황제에게 추천했던 왕안석이 막상 신법이라는 개혁정책을 추진하자(구양수는 왕안석보다 14년 먼저 태어나고 또 14년 먼저 사망했다) 그 실행에 반대하고 관직에서 은퇴하고 만다. 같은 시어(詩語)가 사용되고 있으면서도 시를 지을 때 두 시인의 감정은 무척이도 서로 달랐다.
왕안석의 춘원(春怨) 봄을 원망하다
掃地待花落(소지대화락) 땅을 쓸면서 꽃 떨어지기 기다림은
惜花輕著塵(석화경착진) 꽃잎에 먼지 달라붙을까 안타까워 서라네.
遊人少春戀(유인소춘연) 나들이 나선 사람들 봄을 사랑하는 마음 모자라
踏花却尋春(답화각심춘) 꽃 밟고 다니면서 봄을 찾는다고 하네.
* 王安石
중국 북송의 정치인, 자는 개보(介甫)며 호는 반산(半山)이다. 강서성(江西省) 출신이며, 5~6세 때 시경과 논어를 통달한 천재였고, 보원 원년(1038)에 부친상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력한 끝에 4년 뒤 진사에 급제하여 북송의 시인·문필가로 활약했다. 1069~76년에 신법이라는 혁신정책을 단행한 것으로 유명하다. 중국에 통일제국이 세워진 이래 전례 없는 규모로 단행된 왕안석의 개혁은 비록 항상 기대했던 결과를 낳은 것은 아니었지만, 백성들의 도덕적인 수준을 향상시키고 그들에게 물질적인 풍요를 가져다주며 나가서는 국가를 부강하게 만드는 데 본래의 목표가 있었다. 1058년 왕안석은 송의 인종(仁宗)에게 만언서 萬言書를 올렸다. 이 글은 후에 그가 시행하게 될 정책과 그의 정치이론의 기초를 서술한 것이었다. 1069년 참지정사(參知政事)가 되어 다양한 내용의 개혁정책을 실행에 옮겼다. 개혁의 토대는 방전균세법과 균수법을 토대로 한 재정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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