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早發白帝城(조발백제성) 아침 일찍 백제성을 떠나며
朝辭白帝彩雲間(조사백제채운간) 아침에 채색 구름 사이로 백제성을 떠나
千里江陵一日還(천리강릉일일환) 천리길 강릉을 하루만에 돌아왔네.
兩岸猿聲啼不住(양안원성제부주) 양 기슭에선 잔나비 울음 그치지 않는데
輕舟已過萬重山(경주이과만중산) 가벼운 배는 이미 만 겹의 산을 지났다네
------李白(이백)-----
註.
早發(조발) : 아침에 출발하다, 떠나다.
白帝城(백제성) : 사천성(四川省) 봉절현(奉節縣)에 있고, 삼협(三峽)중의 하나인 구당협(瞿塘峽)과 접해 있다. 전한말(前漢末)에 공손술(公孫述)이 이곳에서 군대를 일으키며 '백제'라 자칭한데서 유래.
朝辭(조사) : 아침에 떠나다. 辭(사) : 떠나다.
彩雲(채운): 아침 햇빛에 물든 구름. 아침노을.
千里(천리) : 여기서는 백제성에서 삼협, 구당협(瞿塘峽),무협(巫峽),서릉협(西陵峽)등 많은 협곡들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협곡을 지나 강릉에 이르는 천리 길을 말한다.
江陵(강릉): 호북성에 있는 도시.
一日還(일일환) : 하루 만에 돌아오다. 유배되어 가는 도중 사면되었다는 전갈을 받고, 강릉으로 빨리 돌아가려는 작자의 애틋한 심경이 잘 드러나 있다.
啼不住(제부주) : 울음이 머물러 있지 않다. 곧 여러 곳에서 계속 울어대는 것을 뜻한다.
輕舟(경주) : 가벼운 배, 빨리 가는 배. 마음이 가벼우면(기분 좋은 상태) 물살도 빠른 것 같고 배도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萬重山(만중산) : 만겹 산, 수많은 산.
이 시는 서예 작품으로 많이 쓰이기는 하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그렇게 잘 알려진 시는 아니다. 그러나 중국 사람들은 唐詩중 첫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높이 평가하고 좋아하는 시라고 한다. 중국인들이 이 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어려운 시절이 끝나고 동 트는 새아침 처럼 희망에 부푼 이백의 마음이 문화혁명등 어려운 시대를 보내고 경제 개방으로 새로운 나라를 기원하는 중국인들의 마음에 와 닿기 때문이다.
이 시는 이백이 안록산의 난 와중에 영왕 이린의 진영에 가담했다가 역적으로 몰려 지금의 귀주성 동재현(桐梓縣) 경내인 야랑(夜郞)으로 유배를 당해 가고 있는 중 백제성에 들렸을 때 자신이 사면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강릉으로 돌아가면서 이 시를 지었다. 백제성에서 강릉까지는 장강 삼협(長江 三峽)을 지나는 천리길 이지만 하루만에 돌아왔다는 구절로 가족과 고향의 그리움을 7자 글속에 절묘하게 담고있다. 마지막 구절의 가벼운 배는 흘러가는 물결을 따라 겹겹한 수많은 산을 지나 왔다라는 표현으로 하루라도 빨리 고향으로 돌아 가려는 간절함과 죄에서 풀려난 기쁨이 잘 묘사되어 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이 시를 읽는 독자들에게 시인이 느낀 기쁨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다.
아침 일찍 구름에 둘러싸인 백제성을 떠나,
저녁에는 천 리나 떨어진 강릉에 도착하였다.
오는 길에 끊임없이 울던 삼협 강기슭의 원숭이들 울음소리는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듯한데,
내가 탄 가벼운 배는 그 겹겹의 산을 이미 지나왔다.
李白 [701~762]
성당(盛唐) 시인 자 태백(太白) 호 청련거사(靑蓮居士). 두보(杜甫)와 함께 ‘이두(李杜)’로 병칭되는 중국 최대의 시인이며, 시선(詩仙)이라 불린다. 1,100여 편의 작품이 현존한다. 젊어서 도교(道敎)에 심취했던 그는 산중에서 지낸 적도 많았다. 그의 시의 환상성은 대부분 도교적 발상에 의한 것이며, 산중은 그의 시적 세계의 중요한 무대이기도 하였다. 불우한 생애를 보내었으나 43세경 현종(玄宗)의 부름을 받아 長安에 들어가 환대를 받고, 한림공봉(翰林供奉)이 되었던 1, 2년이 그의 영광의 시기였다. 도사(道士) 오균(吳筠)의 천거로 궁정에 들어간 그는 자신의 정치적 포부의 실현을 기대하였으나, 한낱 궁정시인으로서 지위를 감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청평조사(淸平調詞) 3수는 궁정시인으로서의 그가 현종 양귀비의 모란 향연에서 지은 시이다. 이것으로 그의 시명(詩名)은 장안을 떨쳤으나, 그의 분방한 성격은 결국 궁정 분위기와는 맞지 않았다. 이백은 그를 ‘적선인(謫仙人)’이라 평한 하지장(賀知章) 등과 술에 빠져 ‘술 속의 팔선(八仙)’으로 불렸고, 방약무인한 태도 때문에 현종의 총신 고력사(高力士)의 미움을 받아 마침내 궁정을 쫓겨나 長安을 떠났다. 나중에 당도(當塗:安徽)의 친척 이양빙(李陽氷)에게 몸을 의지하다가 그 곳에서 병사하였다. 이태백전집(李太白全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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