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언론인 민들레의 홍순구 시민기자는 얼마전 "국민이 먼저 입니다"다란 책을 들고 다시 정계에 복귀한 전 '국민의 힘' 한동훈 대표를 평하면서 그 제목을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 했다.
옛 우리의 선조들은 공직자를 임용하거니 사람을 평할때 신(身) 언(言) 서(書) 판(判) 네가지 기준을 삼기도 하였다. 사람을 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현재 보여지는 사회적 지위. 가진것, 언행, 행동이 평가의 큰 기준이 되겠지만 결코 잊지 말아야 할것은 그 사람의 과거의 행동이나 언행을 잊고, 무시하고는 제대로 사람을 평가를 할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다.
개와 늑대의 시간,
사람을 평하기 적절한 말인지 바로 느낌이 오지 않지만 책을 평가 하는 제목으로도 전혀 감이 오지 않아서 검색을 통해서 자세히 알아 보았다.
개와 늑대의 시간이란,
프랑스어 Lheure entre chien et loup에서 유래하였으며 중세 시대 프랑스 양치기들 사이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당시 사람들이 보호와 사냥을 위해 개에 의존했던 시기에, 해 질 무렵 빛이 희미해지는 시간대에 멀리서 다가오는 실루엣이 충성스러운 개인지 양과 자신을 헤치는 위험한 늑대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시간적 의미로는 해 질 녘 황혼이나 동이 틀 무렵의 여명으로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시간대를 의미하지만 우리의 일상에서 마주치는 불확실성과 모호함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뜻으로 사용 되었으며, 은유적 의미로는 선과 악, 적과 아군을 구별하기 어려운 모호한 상황, 과도기적 상황을 상징적으로 표현 하기도 한다. 비슷한 말로 황혼기, 과도기, 경계시간, 모호기, 임계점, 전환기등이 있다.
요즘 우리 사회는 선과 악, 상식과 비상식, 불안과 안정,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를 구별하기 참으로 모호하고 어려운 때인것 같다. 저기 달려오는 저 물체가 개인지 늑대인지 구별 할수 없는 혼돈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 상식과 비상식,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무엇을 구별해야 할지 갈등을 겪는 순간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이 사회가 진정으로 개와 늑대를 구분해야 하는 시대임을 잊는다면, 그리고 구분하지 못한다면 우리, 우리사회는 많은 댓가를 치를수도 있을 것이다.

끝을 알 수 없는 지평선으로부터 어떤 동물이 급하게 달려오고 있다.
꾸벅꾸벅 졸던 양치기는 깜짝 놀라 돌과 지팡이를 들고 벌떡 일어나 경계를 한다.
지평선으로부터 달려오는 동물이 양치기 개라면 반겨 안아주면 되지만 개가 아니라 늑대라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양 떼를, 나 자신을 지켜야 한다.
달려오는 짐승이 개인지 늑대인지 분간되지 않는 황혼의 시간,
지금 우리는, 우리사회는 개와 늑대의 시간이다.
사회적 전환기의 최대 비극은 악한 사람의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 끼치는 침묵이었다 : 마틴루터 킹 주니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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