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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디 가고 떨며 가도

by 까마귀마을 2025. 4. 10.

더디 가고 떨며 가도

 

나는 한 걸음을 내딛기 위해

열 번을 쓰러지고 일어서 가는데

너의 한 걸음은 순풍에 돛 단 듯이

단숨에 열 걸음을 앞질러 가는구나

 

탐욕은 부끄러움이 없으니까

악은 거침없이 막 나가니까

너희는 지상의 법도 없고

하늘의 벌도 모르는구나

 

너흰 지금 망상으로 취해가는구나

너흰 지금 무법으로 무너지는구나

너흰 지금 광기로서 불타가는구나

 

나라야 망하든 말든 내전을 불지르고

국민이 죽건 말건 일상을 파탄내고

특권과 탐욕을 채우면 그만이겠지만

 

우리는 지켜야 할 것을 다 지키면서

한 걸음도 건너뛰지 않는 정직한 걸음이어서

이리 더디고 애타고 힘겨운 전진이구나

 

너희가 망친 나라 우리는 살려간다

너희가 찢은 헌법 우리는 지켜간다

너희가 떨군 국격 우리는 세워간다

 

우리가 이 나라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여기가 우리 삶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이곳이 내 존엄의 전선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더디 가고 떨며 가도

인간의 품격과 사랑의 떨림을 품고

우리 함께 가야만 할 ‘빛의 혁명’으로

겨울 속의 꽃심으로 걸어나간다

 

아아 마음이 사무치면

꽃이 피는 봄

-- 박노해-- 


 

박노해(朴勞解) 

본명 : 박기평(朴基平) 1957년생 
대한민국의 시인, 노동운동가, 사진작가.
1984년 27살에 쓴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은 당시 금서였지만 100만 부가 발간되었다. 

이때부터 "얼굴 없는 시인"으로 불렸다. 

1991년 사형을 구형받고 환히 웃던 모습은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무기수로 감옥 독방에 갇혀서도 독서와 집필을 이어갔다. 

복역 7년 6개월만에 석방된 후 민주화 운동가로 복권되었으나 국가보상금을 거부했다. 

그후 20여년간 국경 너머 가난과 분쟁의 땅에서 평화활동을 펼치며 현장의 진실을 기록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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