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夜讀書每以二鼓盡爲節(추야독서매이이고진위절) (가을밤 글 읽다가, 이경을 알리는 북소리에 마침)
腐儒碌碌嘆無奇(부유녹록탄무기) - 보잘것없는 이 몸 특별난 게 없음에 탄식하지만,
獨喜遺編不我欺(독희유편불아기) - 날 속이지 않는 선현의 말씀만을 오직 좋아할 뿐.
白髮無情侵老境(백발무정침노경) - 백발은 무정하게 늙음을 재촉 하지만
靑燈有味似兒時(청등유미사아시) - 등불아래 책 보던 즐거움은 어릴적과 같네.
高梧策策傳寒意(고어책책전한의) - 오동잎 뚝뚝 떨어져 한기를 전해 오고
疊鼓冬冬迫睡期(첩고동동박수기) - 울리는 북소리 둥둥, 자야할 시간을 재촉하는데
秋夜漸長飢作崇(추야점장기작숭) - 깊어가는 가을밤 주린배 채우자니
一杯山藥進瓊糜(일배산약진경미) - 한 잔 산나물 죽으로 경미(쌀로 쑨 죽)를 대신할까나.
-----陸遊----
註.
碌碌(록록) : 평범한, 보잘것없는
髮(발) : 머리카락.
侵(침): 어떤 경계를 넘어 해치거나 핍박한다.
侵老境(침노경) : 원하지 않게 노년에 들어섬을 의미한다.
靑燈(청등): 푸른 불빛. 여기서의 청등은 등불 아래서 독서하는 것을 가리킨다.
味(미) : 맛이나 의미 또는 재미나 즐거움을 뜻한다.
兒時(아시): 어린시절.
策策(책책) :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
疊(첩) : 겹치다.
冬冬(동동) : 둥둥
漸(점) : 점점
瓊糜(경미): 쌀로 쑨 죽.
백발은 무정하여 노년에 들어 섰지만,
푸른 등불아래 책 읽는 재미는 어린 시절과 비슷하다.
歲月은 無心하여 白髮과 함께 나이드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
하지만 불빛아래 책을 읽다 보면.
눈이야 조금 침침 해도,
자신이 노년이고 백발인것 만은 잠시 잊어버린다.
젊은 시절로 돌아 갈수있다면. 긴 겨울밤을 반 토막쯤 뚝 잘라낸들 그다지 억울할 건 없으리라.
책이야 새로운 것이든 오래된 것이든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책을 읽음은 일상으로의 변화와 새로운 지식을 얻고, 젊었을 때의 꿈을 다시 떠 올릴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빠르게 변하는 정보화 사회에서 하루라도 게으름을 피우면 밀려나는 세상이다.
나이 든 사람이 여기에 편승하여 동조하기란 여간 버거운 일이 아니다.
해와 달을 쪼개고 맞추다 보면 잠시라도 늙음도 잊을수 있지 않을까?
비록 몸은 늙었지만 여유와 안정이 있는 유일한 황금기가 지금 내가 서있는 노인시기 일수도 있다.
읽고, 배움은,
고정관념과 아집으로 굳어진 노인의 틀에서 벗어나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세상과 소통 할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 이로 인해 자부심은 커지고 성취감도 배가되어 노년이 더욱 보람되고 즐거울수 있을 것이다.
육유(陸遊, 1125~1210)의 자는 무관(務觀)이고 호는 방옹(放翁)으로 현재의 절강성 소흥시에 해당하는 월주 산음현 출신이다. 남송의 대표 시인 중 한 명으로 우국시인(憂國詩人)으로 오래 존숭되었다.
부친은 육재로 군사관련 일을 맡은 관리였는데 평소 문학에 관심이 큰 장서가이기도 하였다. 부친이 관명에 따라 남방의 물자를 개봉으로 운반하는 도중 회하의 배안에서 태어났다. 유아 시절 금나라가 개봉을 유린해 휘종과 흠종이 북으로 끌려가고 북송 왕조가 무너지는 정강지변이 발생했다. 부득이 일가와 함께 강남으로 피난했다. 집안의 영향으로 일찍이 시문에 재주를 발휘했다.20세때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육유의 사촌여동생인 당완과 결혼했다. 중국은 4촌(친사촌이 아닌 고종사촌)간의 결혼을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보았었다. 당완과 결혼해 금슬이 좋았다. 그러나 모친이 집안 친척인 며느리를 싫어해 부득이 이혼하고 왕씨와 재혼했다. 1153년 진사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했다. 재상 진회의 손자가 차석이 되자 진회는 이를 시기해 최종 시험인 전시에서 육유를 낙제시켰다. 실의에 빠져 고향으로 낙향해 시작에 몰두했다. 34세에 지방 관리가 되어 여러 지방에서 근무했다. 융흥 통판으로 재직 중 장준의 주전론을 지지해 해임되었다. 죽은 장준의 명예를 꾀했으나 금과 남송과의 화평을 비난하는 꼴이 되어 부득이 관직을 떠나게 된 것이다. 4년후 46세에 기주 통판으로 다시 임명될 때까지 고향에서 낭인 생활을 했는데 경제적으로 크게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주전파와 주화파의 갈등속에서 힘든 관직생활을 했다.
1189년 남송 효종이 태자 조돈에게 양위하니 광종이다. 화평파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주전파의 일원인 그는 실직하게 되었다. 예부낭중의 직위에서 탄핵되었다. 관직을 떠나 귀향해 자기 집을 풍월헌(風月軒)이라 짓고 말년에 창작에 전념했다. 죽을 때까지 1만수에 달하는 작품을 남겨 중국 시사상 최다작의 시인으로 평가된다.
진사시험에 실패하고 낙향해 고향에서 실의의 나날을 보내던 중 우연히 야유회에 나온 첫부인 당완을 만나게 된다. 당완은 재혼한 남편에게 청해 육유에게 술과 음식을 보냈다. 이에 감격해 쓴 시가 유명한 채두봉(釵頭鳳)이다. 아래는 시의 마지막 구절이다. “산같은 맹세 아직 남았지만 글로써 전하려니 다할 길 없구나. 말아야지. 말아야지. 말아야지”(山盟雖在 錦書難託 莫, 莫, 莫). 75세가 되는 1199년 육유는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난 당완을 여전히 그리워했다. “혼 끊기고 향기마저 사라진지 어언 40년...”으로 시작되는 오언절구를 남겼다. 그녀에 대한 육유의 사랑의 깊이를 잘 보여준다.
육유의 대표 작품은 역시 우국우민을 노래하는 시에서 많이 발견된다. 북송 멸망 후 고향을 떠나 타지인 남쪽에서 살아야 했던 많은 이주민의 애환을 노래했다. 금수만도 못한 금나라를 이겨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시 곳곳에 스며있다. 이러한 염원을 담은 대표시의 하나가 사지춘(謝池春)이다. “진관의 북녘 땅은 그 어디냐. 지나간 세월 탄식하노나니 또 헛되어 지나갔네.” 시대를 아파하고 나라의 명운을 걱정하는 우국시인의 충정과 한이 처절하게 표출된다. 1177년 지은 관산월(關山月)이라는 시도 중원 회복의 바람을 절절히 묘사하고 있다. “중원에 예로부터 전쟁은 많아서 반역의 귀족들 자손을 못 남겼는데 유민들 죽음을 무릎쓰고 회복을 원하는가”
말년에는 생활이 극도로 어려워져 집안에서 애용한 술잔까지 팔아야 할 처지였다. 권신 한탁주의 천거로 1202년 출사했다. 효종, 광종 실록 편찬의 일이었다. 그러나 1년만에 다시 귀향해 1209년 12월 세상을 떠났다. 한평생 곧게 살아온 그의 삶에서 말년 한탁주와의 인연은 큰 오점을 남겼다. 한탁주는 권력 강화를 위해 주희 등 유학자를 숙청한 경원위학지금(慶元僞學之禁)을 일으킨 간신이었다. 송사 간신전에 포함될 정도로 문제의 인물이었는데 말년에 사는 것이 궁핍해지자 어쩔 수 없는 출사였다. ( 옮겨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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