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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암 치료 일지

위암 치료 일지 10.

by 까마귀마을 2024. 4. 3.

10. 아산병원 위암 수술및 입원 6일.

23년 12월 20일(수). 이날은 내 일생을 통해 영원히 잊지 못할 날이 될지도 모르겠다.

위암 수술을 받기위해 하루전인 19일 오후 1시 쯤 아산 병원을 내원하여 입원 절차를 밟았다. 곧 병실이 내정 되었다. 112병동 56호실로 다인실이 아닌 1인실이었다. 하루 병실료가 480.000원이라 했다. 하룻밤 잠만 자는데 480.000원 이라니 참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어쩔수 없었다 병실이 없다하니... 침대 하나와  화장실 하나가 있는 4-5평 크기의 평범한 병실이었다. 입원 하자마자 이내 심장 초음파 검사, 심전도 검사, 페활량검사, 흉부 x레이 촬영을 했다. 수술을 앞둔 두려움과 바뀐 잠자리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게다 장을 비우기 위해 먹은 장세척액으로 인해 밤사이 서 너번 화장실도 가야 했기에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수술은 아침 9시쯤 예정되어 있었다.나와 아내는 불안과 두려움 초조함속에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 수술할 환자가 많아서 인지 아니면 아산병원의 규정인지 모르지만 수술할 담당교수와 한번의 대면도 없이 수술이 진행되는 것 같다. 태어나서 백내장 수술외는 병원에 입원하여 수술 이라는 것을 한번도 해본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정상적인 과정으로 이해를 하려 했지만 적어도 어떻게 수술이 진행되며 어떠한 방법으로 수술을 하게 되는지를 사전에 알려 주는것이 불안해 하는 환자는 물론 가족에게 조금의 안심과 위안이 될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친 기대일까?  

초조한 기다림속에 수술 예정시간인 9시를 한시간이나  지나 10시쯤 수술이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10시가 조금 지나 안내자의 도움을 받아 힐체어로 수술실로 갔다. 걸어서 갈수 있다고 했지만 안내자는 힐 체어에 앉기를 권해서 여느 중환자처럼 힐 체어에 앉아 갈수 밖에 없었다. 수술실입구 까지 아내가 따라 왔지만 보호자가 머물 별도의 대기실이 없고 기다릴 때도 없었다. 보호자는 병실에서 대기하도록 시스템이 되어 있었다. 아마도 코로나 이후 달라진 병원 풍속도 인것 같다. 수술실은 기억으로 2층인것 같은데 정확하지는 않다. 수술실은 5-6개가 있었고 수술실이 있는 내부는 굉장히 크고 복도는 매우 넓었으며 사람의 기척이 없이 설렁하고 적막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들어간 수술실은  E실 이었다. 밖의 고요하고 적막한 분위기와는 달리 수술실 문을 들어서자 환한 불빛에 초록색 가운을 입은 10여명의 의료진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수술실 침대에 눕자 한 의료진이 여기 어떻게 왔는냐는 물음과 이름과 생년월일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이내 마취가 되어 그 이후는 아무것도 기억이 없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수술실이 아닌 불이 환하게 켜진 회복실 이였고 많은 사람들이 내 주변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 가운데 아내의 얼굴이 보였다. 나는 무엇인가 해야 하는데 이 사람들이 못하게 하는것 같아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이후 들은 얘기 이지만 내가 소변을 하겠다고 침상에서 자꾸 내려오려 하자 소변줄이 달려 있는 상태라 그냥 누라는 실랑이 였다고 한다. 병실에서 기다려야 하는 아내가 회복실에 온 이유는 내가 계속 침대에서 내려 오려고 고집을 부리자 나를 안정 시키는데는 가족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의료진의 판단때문 이었다  "여기가 어디냐"는 질문이 몇번이고 이어지고 몽롱한 의식속에 나는 5인실의 다인실로 옮겨졌다. 10시쯤 수술에 들어갔으니 수술이 3시간이 걸렸다면 회복하는 시간을 감안하면 오후 2-3시쯤 5인실로 왔을것이라 여겨진다. 코에 산소기가 달리고 다리에는 혈전을 막기위한 움직이는 구동장치가 달렸다. 마취동안 페 기능이 정지되어 쪼그라든 폐를 펴기 위해 길게 심호흡을 계속하였다. 마취로 인해 잠이 들려하면 아내가 깨워 종일 밤 새도록 쉬지않고 심호흡을 하게했다. 코로 들여 마시고 입으로 길게 내시는 심호흡을 계속하며 길고 긴 하루가 지나갔다.

 

저녁에 수술울 집도한 공충식 교수의 회진이 있었다. 수술은 별 어려움 없이 진행되었고 복막은 매우 깨끗하였다는 설명을 하였다. 위의 병변은 내시경과 CT상으로는 조기암으로 판단 되었지만 수술후 위에서 조금은 단단한 혹이 만져졌다고 설명하였으며 자세한 병기는 2주후 조직검사 결과가 나와야 알수 있다고 설명하였다. 위암 가족력이 있어 1년에 한번씩 해마다 내시경검사를 하였고 이번에는 7개월만에 내시경검사를 했지만 조기에 암을 발견 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하루 낮 긴 밤이 지났음은 확실하다. 나도 아내도 잠 한숨 자지 못 하고 뜬눈으로 밤을 새운 길고 긴 하루였다.

다음날 06시부터 물을 먹어야 한다는 통보를 받고 물을 조금 삼켰는데 물 삼킴이 예사롭지 않다. 뭔가 꽉 막혀 삼킬수가 없었다. 

물 한모금 먹는것이 얼마나 큰 은혜이며 고마움인지를 느끼는 순간이다. 76년동안 일어나 목이 마르며 마음껏 벌컥 벌컥 마시는 물 한모금도 이제는 내 마음대로 먹지 못하는 상태다. 

한 숟가락 정도의 물을 입에 물고 꼭꼭 씹어 3-4분의 시간을 두고 조금씩 조금씩 삼켰다. 그리고 10시쯤 간호원이 와서 오늘부터 걷는 운동을 하여야 상처도 빨리 아물고 배안에 찬 가스도 쉽게 빠진다 하여 걷기운동을 시켰다. 소변통,  통증을 덜어주는 마취약물, 링거를 꼽은채 아픈 배를 움켜잡고 걷기운동을 시작했다. 병원 복도를 반 바퀴정도 걸었다. 

쪼그라든 페를 원상태로 돌리기 위해 페활량을 늘리는 기구로 하루종일 심호흡을 했다.

기억이 가물 하지만 저녁에는 미음이 나왔는 것 같다. 배를 가르고 위를 덜어내는 대 수술을 한지 하루 만에 미음이지만 음식을 먹어도 된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지만 수술후 첫 음식으로 미음을 몇 숟가락 먹었다.

 

수술 3일째다.

미음도 흰죽으로 바뀌었고 걸을때 거추장 스러웠던 소변통과 마취약도 제거 되자 걷기가 한결 편해졌다. 아침에 일어나서 그리고 아침을 먹고 점심을 먹고 틈만 나면 병원복도를 걸었다. 마취약을 제거 하였지만 배의 통증은 거의 없었다. 수술을 위해 뚫은 배의 상처들도 잘 아물고 있었으며 폐의 원상회복을 위해 매일 심호흡 운동을 잘한 덕분인지 체온도 정상이며 폐의 산소 포화도도 정상으로 나왔다. 평소에 약간의 고혈압이 있어 약을 복용 했지만 약을 먹지 않아도 혈압도 정상 이었다. 단지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해서 인지 기운이 많이 딸렸다. 죽, 생선, 육고기, 간식으로 빵, 요구르트등 다양한 메뉴의 음식이 제공되었지만 몇 숟갈만 먹고 나면 먹고 싶은 욕망이 아예 사라지고 꼭꼭 오래 씹어 먹는 것도 아직 습관이 되지 않아서 인지 먹는것이 너무 힘들었다.

 

내가 입원해 있는 5인실에 나 외 4명의 입실환자가 있었다. 모두가 위암 환자이고 1명은 이미 수술을 받고 퇴원을 기다리고 있었으며 나머지 3명은 어제 입원하여 수술을 기다리고 있었다. 3명중 2명은 50대였고 1명은 나와 같은 70대였다. 3명 모두 오후에 수술이 있었다. 물론 그들도 수술후 나와 같은 회복절차를 밟고 있었다. 대형병원의 다인실이 다 그렇겠지만 이곳의 5인실도 예외이지 않았다. 커텐 하나를 사이에 두고 병실침대가 붙어있고 보호자가 기거할 폭이 30cm정도의 긴의자 하나가 전부였다. 옆실의 숨소리도 다들리는 상황에서 속삭이듯 하는 얘기지만 보호자와 환자의 소리가 그대로 전달되어 그렇지 않아도 심장의 두근거림으로 인해 신경안정제를 복용하고 있는 나로서는 참으로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한평도 안되는 병실에 사방으로 쳐진 꽉막힌 커텐은 패쇄 공포증 마져 느껴져 참다못한 나는 간호사에게 2인실 신청을 하여 병실을 2인실로 옮겼다. 지금은 2인실도 의료보험이 적용되어 하루 십만원 정도였다. 혹시 이글을 읽고 수술을 하는 환우가 있다면 왠만하면 다인실을 이용하지 말고 2인실을 권유하고 싶다 일주일 정도 입원 해봐야 하루 100.000원이니 별 부담이 되는 금액은 아니다.

 

2인실로 옮겨 이틀째 되는날.

오늘이 12월 24일이니 크리스마스 이브이고 일요일이다. 대부분의 의사들이 쉬는 날인데 내 옆 침상에는 새로운 사람이 입실했다. 40대 후반의 젊은 사람이었다. 일요일과 성탄절로 이어진 연휴라 이틀간은 입원중에 어떤 검사도 할수없을 텐데 왜 입원를 했는지? 그는 대구사람으로 자영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사는게 바빠서 지난 7년간  위 내시경 검사를 한번도 받지 않았는데 최근 체중이 너무 빠져 동네병원에서 위 내시경 검사를 한 결과 식도및 위에서 진행성 암이 의심된다며 큰병원을 가보라고 해서 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우리 아들 또래의 나이라 내가 정말 안타까왔다. 

 

 오늘은 성탄절이고 입원한지 6일째이며 퇴원 하는 날이다.

퇴원을 위해 혈액검사를 이틀에 걸쳐서 두번을 하였다. 염증수치가 조금 올라와 있는것과 요산수치가 경계선에 걸려 있는것을 제외하면 모두가 정상이었다.

가스는 수술 3일쯤 후 나왔고 대변도 어제 보았다. 가스가 나오고 대변을 정상적으로 본다는 것은 수술이 잘 되었고 장이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체중은 2k 정도 줄어 들었다. 통 먹지 못하고 며칠을 링거만 맞았는데도 그렇게 많이 빠지지는 않았다. 아마도 본격적인 체중감소는 이제부터 시작 될거라 예상된다. 

퇴원하기 이틀전 병원의 영양사가 찾아와 퇴원후 먹게 될 음식에 대해 책자를 주며 자세한 교육과 당부를 했다. 

위암 환자에게는 먹는 음식이 제한이 있고 먹는 음식이 빠른 회복에도 영향이 클 것이라는 생각에  암 전문 요양병원에서 일정기간 요양을 하기로 하였으나 어떻게 될지?... 

 

아침부터 퇴원준비를 했다. 보험사에 들어갈 서류를 발급받고 요양병원에서 요구하는 서류도 떼었다. 어제 간호사가 휴대폰에 깔아준 아산병원 웹을 통하여 병원 진료비를 확인 하였더니 3.000.000원 정도였다. 금액중 1인실 입실료 480.000원은 비급여로 되어있었다. 대략 그정도 될거라 예상했는데...그중 암 특례 중점으로 된 5%의 진료비는 약 700.000원 정도로 기억된다. 나머지는 정상적인 의료급여로 처리되어 있었다. 10시쯤 퇴원수속을 밟아 첫 외래 진료일 까지 2주동안 복용할 약을 처방받았다. 담석증 예방약과 소화제, 유산균으로 이미 2-3일전 부터 복용하고 있는 약이다.  아들의 차로 동탄에 있는 아들집으로 이동했다. 퇴원후 암 요양병원에서 한달정도 요양을 하기로 하고 요양병원에 입원신청을 해 놨지만 퇴원하는 당일은 코로나 pcr 검사관계로 입실을 할수없었다. 아들 집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일찍 요양병원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은뒤 입원하기로 하였다.

 

오다보니 세상이 온통 희다. 아마도 어제 밤에 눈이 내렸나 보다. 온 천지는 흰눈이 소북히 쌓여 있었다. 흔히들 겨울들어 처음보는 첫눈을 서설이라 했는데 지금 내가 보고있는 저눈은 분명히 상서로운 눈일 것이다. 앞으로의 여정도 하얀 깨끗함으로 세상을 덮은 저 눈처럼 지금의 온갖 고통과 힘듬은 덮혀 지길 소망했다. 몇 친구들로 부터 성탄 메세지가 들어와 답장을 했다. 전화로 울먹이며 나의 병고를 걱정해준 막내 처제에게도 감사와 꼭 이겨 내려는 의지를 담은 메세지를 보냈다. 아직 샤워는 할수 없었지만 저녁에는 머리를 감고 발도 씻고 좀 편안히 쉬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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