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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이 있는 한시

허난설헌의 생애와 시와 그림

by 까마귀마을 2023. 12. 3.

애절한 허난설헌의 생애와 시와 그림

 

견한잡록( 遣閑雜錄 )에 의하면.

婦人能文者(부인능문자) : 부인(婦人)으로문장에 능한 자를 말하자면

古有曹大家班姬薛濤輩(고유조대가반희설도배) : 옛날 중국의 조대가(曹大家)와 반희(班姬), 그리고 설도(薛濤) 등 이외에도 많이 있어

不可彈記(불가탄기) : 이루다 기재하지 못하겠다.

在中朝非奇異之事(재중조비기이지사) : 중국에서는 기이한 일이 아닌데,

而我國則罕見(이아국칙한견) : 우리나라에서는 드물게 보는 일로

可謂奇異矣(가위기이의) : 기이하다 하겠다.

有文士金誠立妻許氏(유문사금성립처허씨) :문사(文士) 김성립(金誠立)의 처(妻) 허씨(許氏 허난설헌)는

卽宰相許曄之女(즉재상허엽지녀) : 바로 재상 허엽(許曄)의 딸이며,

許篈筠之妹也(허봉균지매야) : 허봉(許篈)의 여동생 허균(許筠)의 누이이다.

篈筠以能詩名(봉균이능시명) : 허봉과 허균도 시에 능하여 이름이 났지만

而妹頗勝云(이매파승운) : 그 여동생인 허씨는 더욱 뛰어났다.

號景樊堂(호경번당) : 호는 경번당(景樊堂)이며

有文集(유문집) : 문집(文集)도 있으나,

時未行于世(시미행우세) : 세상에 유포되지 못하였지만,

如白玉樓上樑文(여백옥루상량문) : 백옥루(白玉樓) 상량문 같은 것은

人多傳誦(인다전송) : 많은 사람들이 전송(傳誦)하였다.

而詩亦絶妙(이시역절묘) : 시 또한 절묘하였는데,

早死可惜(조사가석) : 일찍 죽었으니 애석하도다.

*遣閑雜錄(견한잡록 : 조선 중기의 문신 심수경(沈守慶)이 지은 수필집. 자유로운 서술 방식으로, 실기집(實記集)ㆍ야담집(野談集)ㆍ시화집(詩話集)의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다. 개인사에 속하는 이야기도 상당하여, 조선 중기 상층 문화를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된다).

 

그녀는 세 가지의 한을 입버릇 처럼 말했었다고 합니다.

하나는 여자로 태어난 것.

다른 하나는 조선에서 태어난 것.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김성립'의 아내가 된 것.

그녀는 짧은 생에 커다란 아픔 앓이만을 하다가 젊디 젊은 나이에 자는듯이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강릉의 명문가에서 두번째 부인의 둘째 딸로 태어나, 아버지는 경상 감사를 지냈던 동인의 영수이고(화담 서경덕의 제자), 큰 오빠 허성은 이조, 병조 판서를, 둘째 오빠 허봉 역시 홍문관 전한을 지냈고, 홍길동전의 저자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허균 역시 형조, 예조 판서를 지낸 인물입니다.

임금은 동생 허균을 너무나 아끼어 역모에 가담하지 않았노라고 말하라며 울며 애원까지 하게 되지만, 결국 허균은 봉건 사회 타파와,이상 세계 실현에 실패한 것을 슬퍼하며 죽음을 택합니다.

허난설헌의 본명은 초희(楚姬). 별호는 경번(景樊), 난설헌은 호라고 합니다.

(許蘭雪軒, 1563∼1589: 명종 18∼선조 22).그녀는 어릴 적부터 놀라운 글로 찬사를 받아왔으며, 열 살이 좀 넘어 이달에게 시를 배운 뒤 그녀의 재질은 장안에 소문이 났습니다. 아름다운 용모와 재치, 그리고 뛰어난 시재는 바로 그런 명성을 얻는 계기가 되었으며 그녀는 여신동으로 일컬어졌고 서울 양가의 딸들은 그녀와 한번 만나보기를 간절히 소원했다 합니다.
그녀는 여덟 살에 광한전백옥루상량문(廣寒殿白玉樓上樑文 : 아래 전문을 따로 올립니다)이라는 장편 시를 지었습니다. 이 글은 저 하늘의 신선이 산다는 백옥루에 대해 상상을 동원한 내용인데 이 글이 언젠가부터 서울 장안에 나돌아 그녀의 시재는 더욱 인정받았습니다. 

허나 당시의 남녀 구별이 있던 신분제도 하에서 마음에 들지않는 사람을 거부할 수 조차 없었던 사회 속에서의 한과 한탄을 시로 표출하였습니다. 그녀는 미쳐 피지도 않은 나이 15세에 안동김씨 '김성립'과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남편 김성립의 방탕한 생활과 기방 출입은 그녀를 더욱 고독하게 만들고 반면 김성립은  늘 재주가 빼어난 자신의 부인 난설헌에게 열등 의식을 지니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는 늘상 허균의 눈에도 그리 보여 "문리(文理)는 모자라도 능히 글을 짓는 자."글을 읽으라고 하면 제대로 혀도 놀리지 못하는데 과문(科文 : 고려및 조선 과거시험의 문체)은 우수한 자"라고 매형을 평하기도 하였으니 말입니다.

그녀의 결혼 생활은 불행할 수 밖에 없었고, 시댁에서는 밖으로만 도는 아들과 아들보다 뛰어난 며느리를 곱게 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난설헌에겐 딸과 아들이 하나씩 있었다고 하는데 모두 한 해 차이로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그녀는 일찌기 자신이 죽을 것을 알고 있었던 듯,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에 스며들고,

푸른 난새는 채색 난새에게 기대었구나.

부용꽃 스물 일곱 송이가 붉게 떨어지니,

달빛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해라.

 

라는 시를 지은 적이 있는데, 그녀는 27세되던 어느 날 갑자기 몸을 씻고 옷을 갈아 입고서 "금년이 바로 3·9의 수(3×9=27, 27세를 뜻함)에 해당되니, 오늘 연꽃이 서리를 맞아 붉게 되었다"하고는 눈을 감았다 전해집니다

그녀는 죽기 전, 자신의 모든 작품을 태워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하는데 난설헌의 글이 너무 아깝고 억울하여 동생은 모두 태워 버리지는 않았으며 1598년 허균이 정유재란  원정 나온 명나라 오명제에게 허난설헌의 시 200여 편을 전해주어 이 시가 명나라에서 편찬한 조선시선, 열조시선등에 실렸습니다. 그 후 1606년 명나라 사신 종사관 이었던 허균이 명나라 사신 주지번 , 양유연등에게 허난설헌의 시를 전해주었습니다, 주지번은 허난설헌 시집을 읽고 매우 감탄하였으며 시집의 서문까지 지어 1608년 허난설현 사후 19년만에 명나라에서 간행되었습니다, 시집은  장안에 종이가 부족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으며 그 후 일본에서도 간행되어 수많은 여인들의 눈물앗아갔습니다.

난설헌의 시는 "하늘에서 떨어진 꽃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됐다"(열조시집) "당나라 대표시인 이태백을 뒤로 물러나게 한다"(고금야사)는 극찬까지 이어졌다 합니다.  중국의 편집자들이 난설헌의 시를 앞다퉈 실었으니 가히 난설헌 열풍이라고 할 만 하였으며 심지어 훗날 정조마저도 이를 읽고 감탄했다고 합니다.

이후 남동생 허균마저 이이첨의 장기말 노릇을 하다 버려져 오체분시 당했는데 조선에서는 허균의 역모 때문에 애꿎은 허난설헌의 시집도 불태워졌기 때문에 일본을 통해서 동래로  역수입되는 얄궂은 상황이 되었습니다. 중국과 일본 찍고 조선에서 다시 출판된 것이 1692년으로 허난설헌이 죽은지 103년이나 지난 이후입니다.

 

그녀가 만일 평범한 가정 속에서 한 남자의 아내로서 사랑받고 한 집의 며느리로서 대우 받으며 자식들을 그리 떠나보내지 않았다면 이렇게 가슴 저미는, 설움 담긴 글들을 우리는  단 한 편도 보지 못했을 수도 있었을 테지요.

그녀의 남편 김성립은 아내가 죽은 후 재혼하였으나, 아이를 얻지 못하였고 죽은 후에도 본처가 아닌, 후처와 합장하였다고 합니다.. 숨막히는 당시 유교 사회에서 철저하게 버림받고 희생당한, 빼어난 미모와 재능의 소유자인 허난설헌의 아픔이 40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녀의 얼마 전해 지지 않는 몇 편의  시와 그림 속에서 배어 나오는 듯 합니다. 당대의 학자였던 오빠 허봉에게서 '두보의 소리를 네게서 들을 수 있으리라'라는 극찬을 받았던, 시대를 잘못 타고난 불운한 천재 허난설헌의 삶은 곧 남존 여비,여필 종부 등의 유교적 사상과 가치관에 희생된, 한 여인의 슬픔이며  봉건 굴레에서 헤어나지 못해 재주를 마음껏 뽐내지 못한 것은 한국 한시문학사의 불행이고  한 시대의 슬픔입니다. 만약 그녀가 좀더 자유분방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면 아마 훨씬 아름다운 시를 더 많이 남겼을 것입니다.

그녀가 남긴 시를 모아 올립니다.

(중국, 조선시대 문인들과 근래에 와서는 한시를 전공한 우리나라 일부 교수들에 의해서도 허난설현의 시 중 채연곡등 일부가 표절이라는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어 안타까움도 있지만 400년간 이어진 표절논란에도 허난설현은 우리나라 최고의 여류시인으로서 여전히 그 빛을 발하고 있음을 부인할수는 없습니다.)

 

채연곡(采蓮曲): 연꽃을 따며 부르는 노래

秋淨長湖碧玉流(추정장호벽옥류) :가을날 맑고 긴 호수엔 벽옥 같은 물 흐르고

荷花深處繫蘭舟(하화심처계난주) : 연꽃 우거진 곳에 아름다운 목련배 매여 있어요

逢郞隔水投蓮子(봉랑격수투연자) : 임을 만나 물 사이로 연밥을 던지다가

遙被人知半日羞(요피인지반일수) : 멀리 사람들이 알아볼까봐 반나절 부끄러웠네.

 

몽유광상산시(夢遊廣桑山時) 꿈속에 광산산에서 노닐며
碧海浸瑤海 (벽해침요해)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에 넘나들고
靑鸞倚彩鸞 (청란의채란) 파란 난새가 채색 난새와 어울렸구나
芙蓉三九朶 (부용삼구타) 연꽃 스물일곱 송이 붉게 떨어지니
紅墮月霜寒 (홍타월상한) 달빛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해라.

閨情(규정) : 여자의 정

妾有黃金釵(첩유황금채) : 저에게 황금 비녀 하나 있는데

嫁時爲首飾(가시위수식) : 시집 올 때 머리에 꽂았던 것입니다

今日贈君行(금일증군행) : 오늘 그대의 행차에 드리오니

千里長相憶(천리장상억) : 천리 먼 길에 오래도록 기억해 주소서.

 

閨怨(규중의 한)
月樓秋盡玉屛空(월루추진옥병공) 달 비친 누각에 가을은 깊고 옥병풍은 비었는데
霜打蘆洲下暮鴻(상타노주하모홍) 서리 친 갈대밭 물가 저물게 기러기 내려앉는다
瑤瑟一彈人不見(요금일탄인불견) 비파 한 곡 다 타도록 아무도 보이지 않고
藕花零落野塘中(우화영락야당중) 연꽃은 들판 연못 속으로 시나브로 지누나. 

 

 貧女吟(빈녀음) : 가난한 처녀의 노래

手把金剪刀(수파금전도) : 손에 바늘을 잡고

夜寒十指直(야한십지직) : 밤이 차가워 열 손가락 곧아온다

爲人作嫁衣(위인작가의) : 남을 위해 혼수 옷 지을 뿐

年年還獨宿(연년환독숙) : 해마다 독수공방 신세라네.

 

기하곡(寄何谷) : 오빠 하곡에게

暗窓銀燭低(암창은촉저) : 어두운 창에 은촛불 나직하고

流螢度高閣(유형탁고각) : 반딧불은 높은 누각을 날아다닌다

悄悄深夜寒(초초심야한) : 근심스런 깊은 밤은 차가워지고

蕭蕭秋落葉(소소추낙엽) : 쓸쓸히 가을 낙엽만 지네

關河音信稀(관하음신희) : 오라버니 계신 변방에서 소식 없어

端憂不可釋(단우불가석) : 근심스런 이 마음 풀 수가 없어요

遙想靑運宮(요상청련궁) : 아득히 오라버니 계신 청련궁을 생각하니

山空蘿月白(산공나월백) : 산은 비어있고 담쟁이 덩굴에 달빛만 밝다.

 

賈客詞(고객사) : 바다 상인의 노래

掛席隨風去(괘석수풍거) : 돛을 올리고 바람 따라 가다가

逢灘郞滯留(봉탄랑체류) : 여울 만나면 그곳에 머문다네

西江波浪惡(서강파랑오) : 서강의 풍랑이 거세어지니

幾日到荊州(기일도형주) : 몇 일이 지나야 형주 땅에 닿을까.

 

送荷谷謫甲山(송하곡적갑산) : 갑산으로 귀양가는 오라버니 하곡에게

遠謫甲山客(원적갑산객) : 멀리 갑산으로 귀양가는 나그네 우리 오빠

咸原行色忙(함원행색망) : 함경도 고원 길에 행차가 바쁘리라

臣同賈太傅(신동고태부) : 귀양가는 신하는 충신 가태부와 같다지만

主豈楚懷王(주기초회왕) : 귀양보내는 입금이야 어찌 어리석은 초회왕이랴

河水平秋岸(하수평추안) : 강물은 가을 강 언덕에 잔잔하고

關雲欲夕陽(관운욕석양) : 변방 함경도의 산 구름 석양에 물들겠지

霜楓吹雁去(상풍취안거) : 서릿발 찬 바람에 기러기 나는데

中斷不成行(중단불성행) : 중간에서 못가고 돌아 왔으면.

 

夜夜曲(야야곡): 깊은 밤의 노래

玉淚微微燈耿耿(옥루미미등경경) : 옥 같은 눈물 찔금찔금 , 등잔불 깜박깜박

羅瑋寒幅秋宵永(라위한폭추소영) : 비단 휘장 싸늘하고 가을밤은 길기도 하다

邊衣裁罷剪刀冷(변의재파전도냉) : 변방에 보낼 옷 다 짓고 나니, 싸늘해진 가위

滿窓風動芭蕉影(만창풍동파초영) : 바람 따라 움직이는 파초 그림자만이 창을 채우네.

 

 강남곡(江南曲) : 강남에서 부르는 노래

人言江南樂(인언강남낙) : 사람들 강남을 즐거운 곳이라 하지만

我見江南愁(아견강남수) : 나는 강남의 근심을 보았습니다

年年沙浦口(년년사포구) : 해마다 모래벌 포구에서

腸斷望歸舟(장단망귀주) : 단장의 이별하고 고향 가는 배를 보았답니다.

 

春雨 (춘우) 봄비

春雨暗西池 (춘우암서지) 보슬보슬 봄비는 못에 내리고

輕寒襲羅幕 (경한용나모) 찬바람이 장막 속 스며들 제(숨어들 제)

愁倚小屛風 (추의소평풍) 뜬시름 못내 이겨 병풍 기대니

墻頭杏花落 (장두행화락) 송이송이 살구꽃 담 위에 지네.

 

哭子(곡자) 아들 죽음에 곡하다

去年喪愛女(거년상애녀), 지난해에는 사랑하는 딸을 여의고

今年喪愛子(금년상애자). 올해에는 사랑하는 아들까지 잃었네.

哀哀廣陵土(애애광릉토), 슬프디 슬픈 광릉 땅에

雙墳相對起(쌍분상대기). 두 무덤이 나란히 마주보고 서 있구나.

蕭蕭白楊風(소소백양풍), 사시나무 가지에는 쓸쓸히 바람 불고

鬼火明松楸(귀화명송추). 솔숲에선 도깨비불 반짝이는데,

紙錢招汝魂(지전초여혼), 지전을 날리며 너의 혼을 부르고

玄酒奠汝丘(현주전여구). 네 무덤 앞에다 술잔을 붓는다.

應知弟兄魂(응지제형혼), 너희들 남매의 가여운 혼은

夜夜相追遊(야야상추유), 밤마다 서로 따르며 놀고 있을 테지.

縱有腹中孩(종유복중해), 비록 뱃속에 아이가 있다지만

安可冀長成(안가기장성), 어찌 제대로 자라나기를 바라랴.

浪吟黃臺詞(랑음황대사), 하염없이 슬픈 노래를 부르며

血泣悲呑聲(혈읍비탄성). 피눈물 슬픈 울음을 속으로 삼키네.

 

秋恨(추한) : 가을날의 한

縫紗遙隔夜燈紅(봉사요격야등홍) :비단 창문 사이에 두고 등 밝은 밤

夢覺羅衾一半空(몽각나금일반공) :꿈에서 깨어보니 비단 이불 한 곳이 비어있네

霜冷玉籠鸚鵡語(상냉옥롱앵무어) :서릿발은 차갑고 옥초롱에 앵무새 저 혼자 지저귀고

滿階梧葉落西風(만계오엽락서풍) :불어오는 서풍에 섬돌 가득 오동잎이 지는구나.

 

사시사 (四時詞)

春詞( 춘사)

院落深沈杏花雨 ( 원락심침행화우) 뜨락이 고요한데 봄비에 살구꽃은 지고

流鶯啼在辛夷塢 (유앵제재신이오) 목련꽃 핀 언덕에선 꾀꼬리가 우짖는다.

流蘇羅幕襲春寒 (유소나막습춘한) 수실 늘인 장막에 찬 기운 스며들고

博山輕飄香一縷 (박산경표향일루) 박산(博山) 향로에선 한 가닥 향 연기 오르누나.

美人睡罷理新粧 (미인수파리신장) 잠에선 깨어난 미인은 다시 화장을 하고

香羅寶帶蟠鴛鴦 (향라보대반원앙) 향 그런 허리띠엔 원앙이 수 놓였다.

斜捲重簾帖翡翠 (사권중렴첩비취) 겹발을 걷고 비취 이불을 갠 뒤

懶把銀箏彈鳳凰 (나파은쟁탄봉황) 시름없이 은쟁(銀箏) 안고 봉황곡을 탄다.

金勒雕鞍去何處 (금륵조안거하처) 금굴레[金靷] 안장 탄 임은 어디 가셨나요

多情鸚鵡當窓語 (다정앵무당창어) 정다운 앵무새는 창가에서 속삭인다.

草粘戱蝶庭畔迷 (초점희접정반미) 풀섶에서 날던 나비는 뜨락으로 사라지더니

花罥遊絲闌外舞 (화견유사란외무) 난간 밖 아지랑이 낀 꽃밭에서 춤을 춘다.

誰家池館咽笙歌 (수가지관열생가) 누구 집 연못가에서 피리소리 구성진가

月照美酒金叵羅 (월조미주금파라) 밝은 달은 아름다운 금술잔에 떠 있는데.

愁人獨夜不成寐 (수인독야불성매) 시름 많은 사람만 홀로 잠 못 이루어

曉起鮫綃紅淚多 (효기교초홍루다) 새벽에 일어나면 눈물 자욱만 가득하리라.

 

夏詞 (하사)

槐陰滿地花陰薄 (괴음만지화음박) 느티나무 그늘은 뜰에 깔리고 꽃그늘은 어두운데

玉簟銀床敞珠閣 (옥점은상창주각) 대자리와 평상에 구슬 같은 집이 탁 틔었다.

白苧衣裳汗凝珠 (백저의상한응주) 새하얀 모시적삼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呼風羅扇搖羅幕 (호풍라선요라막) 부채를 부치니 비단 장막이 흔들린다.

瑤階開盡石榴花 (요계개진석류화) 계단의 석류꽃 피었다가 모두 다 지고

日轉華簷簾影斜 (일전화첨렴영사) 햇발이 추녀에 옮겨져 발 그림자 비꼈네.

雕梁晝永燕引鶵 (조량주영연인추) 대들보의 제비는 한낮이라 새끼 끌고

藥欄無人蜂報衙 (약란무인봉보아) 약초밭 울타리엔 인적 없어 벌이 모였네.

刺繡慵來午眠重 (자수용래오면중) 수 놓다가 지쳐 낮잠이 거듭 밀려와

錦茵敲落釵頭鳳 (금인고락채두봉) 꽃방석에 쓰러져 봉황비녀 떨구었다.

額上鵝黃膩睡痕 (액상아황이수흔) 이마 위의 땀방울은 잠을 잔 흔적

流鶯喚起江南夢 (류앵환기강남몽) 꾀꼬리 소리는 강남(江南)꿈을 깨워 일으키네.

南塘女伴木蘭舟 (남당여반목란주) 남쪽 연못의 벗들은 목란배 타고서

采采荷花歸渡頭 (채채하화귀도두) 한 아름 연꽃 꺾어 나룻가로 돌아온다.

輕橈齊唱采菱曲 (경뇨제창채릉곡) 천천히 노를 저어 채련곡(埰漣曲)부르니

驚起波間雙白鷗 (경기파간쌍백구) 물결 사이로 쌍쌍이 흰 갈매기는 놀라 날으네.

 

秋詞 (추사)

紗廚寒逼殘宵永 (사주한핍잔소영) 비단 장막으로 찬 기운 스며들고

露下虛庭玉屛冷 (노하허정옥병랭) 텅 빈 뜨락에 이슬 내려 구슬 병풍은 더욱 차갑다.

池荷粉褪夜有香 (지하분퇴야유향) 못 위의 연꽃은 시들어도 밤까지 향기 여전하고

井梧葉下秋無影 (정오엽하추무영) 우물가의 오동잎은 떨어져 그림자 없는 가을.

丁東玉漏響西風 (정동옥루향서풍) 물시계 소리만 똑딱똑딱 서풍 타고 울리는데

簾外霜多啼夕虫 (렴외상다제석충) 발(簾) 밖에는 서리 내려 밤벌레만 시끄럽구나.

金刀剪下機中素 (금도전하기중소) 베틀에 감긴 옷감 가위로 잘라낸 뒤

玉關夢斷羅帷空 (옥관몽단나유공) 그리는 꿈을 깨니 비단 장막은 허전하다.

裁作衣裳寄遠客 (재작의상기원객) 먼 길 나그네에게 부치려고 임의 옷을 재단하니

悄悄蘭燈明暗壁 (초초란등명암벽) 쓸쓸한 등불이 어두운 벽을 밝힐 뿐.

含啼寫得一封書 (함제사득일봉서) 울음을 삼키며 편지 한 장 써 놓았는데

驛使明朝發南陌 (역사명조발남맥) 내일 아침 남쪽 동네로 전해 준다네.

裁封已就步中庭 (재봉이취보중정) 옷과 편지 봉하고 뜨락에 나서니

耿耿銀河明曉星 (경경은하명효성) 반짝이는 은하수에 새벽별만 밝네.

寒衾轉輾不成寐 (한금전전불성매) 차디찬 금침에서 뒤척이며 잠 못 이룰 때

落月多情窺畵屛 (낙월다정규화병) 지는 달이 정답게 내 방을 엿보네.

 
 

冬詞( 동사)

銅壼滴漏寒宵永 (동곤적루한소영) 구리병 물시계 소리에 겨울밤은 기나길고

月照紗幃錦衾冷 (월조사위금금랭) 비단 휘장에 달 비치니 원앙금침이 싸늘하다.

宮鴉驚散轆轤聲 (궁아경산녹로성) 궁궐 까마귀는 두레박 소리에 놀라 흩어지고

曉色侵樓窓有影 (효색침루창유영) 새벽빛 누각에 젖어드니 창에 그림자 어리네.

簾前侍婢瀉金甁 (렴전시비사금병) 발 앞에 시비(侍婢)가 금병의 물 쏟으니

玉盆手澁臙脂香 (옥분수삽연지향) 대야의 찬물 껄끄러워도 연지는 향기롭다.

春山描就手屢呵 (춘산묘취수루가) 손들어 호호 불며 봄산을 그리는데

鸚鵡金籠嫌曉霜 (앵무금롱혐효상) 새장 앵무새만은 새벽 서리를 싫어하네.

南隣女伴笑相語 (남린여반소상어) 남쪽 내 벗들이 웃으며 서로 말하길

玉容半爲相思瘦 (옥용반위상사수) 고운 얼굴이 임 생각에 반쯤 여위었을걸.

金爐獸炭暖鳳笙 (금로수탄난봉생) 숯불 지핀 화로가 따뜻해 봉황 피리를 불고

帳底羔兒薦春酒 (장저고아천춘주) 장막 밑에 둔 고아주를 봄 술로 바치련다.

憑闌忽憶塞北人 (빙란홀억변북인) 난간에 기대어 문득 변방의 임 그리니

鐵馬金戈靑海濱 (철마금과청해빈) 굳센 말 타고 창 들며 청해(靑海) 물가를 달리겠지.

驚沙吹雪黑貂弊 (경사취설흑초폐) 몰아치는 모래와 눈보라에 가죽 옷 헤졌어도

應念香閨淚滿巾 (응념향규루만건) 아마도 향그런 안방 생각하는 눈물에 수건 적시리라.

 
 

遣興(견흥) 흥에 겨워

1首

梧桐生嶧陽 (오돋생역양) 오동나무는 역양산에서 자랐는데,

幾年傲寒陰 (기년오한음) 몇 해나 차가운 그늘을 견디었나.

幸遇稀代工 (행우희대공) 다행이 세상에 드문 악공을 만나,

取爲鳴琴 (촉취위명금) 베어져 소리 좋은 거문고 되었네.

琴成彈一曲 (금성탄일곡) 그 거문고로 한 곡조를 탔건마는,

擧世無知音 (거세무지음) 온 세상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네.

所以廣陵散 (소이광릉산) 이래서 광릉산 옛 거문고 곡조는,

終古聲堙沉 종고성인침) 산에 막혀 물에 잠겨 끊어졌다.

 

2首 鳳鳴朝陽

鳳凰出丹穴 (봉황출단혈) 봉황이 단혈산 단혈을 나오니,

九苞燦文章 (구포찬문장) 아홉 빛깔 깃털이 찬란하여라.
覽德翔千仞 (람덕상천인)
태평성대 하늘 높이 날아올라,
噦噦鳴朝陽 (홰홰명조양)
큰소리로 동쪽에서 울고 있네.
稻粱非所求 도량비소구)
벼와 기장을 바라지 아니하고,
竹實乃其餐 (죽실내도찬)
오직 대나무 열매만 바란다네.
奈何梧桐枝 (내하오동지)
어찌하여 오동나무 가지 위에,
反栖鴟與鳶 (반세치여연) 저 올빼미와 솔개만 깃드는가.

 

3首 端綺
我有一端綺 (아유일단기) 나에게 있는 아름다운 비단 한 필,
拂拭光凌亂 (불식광릉난)
먼지를 털어내니 빛깔도 어지럽죠.
對織雙鳳凰 (대직쌍봉황)
마주보게 수를 놓은 한 쌍의 봉황,
文章何燦爛 (문장하차란)
반짝이는 무늬 어찌나 찬란한지요.
幾年篋中藏 (기년협중장)
여러 해를 장롱 속에 넣어둔 건데,
今朝持贈郞 (금조지증낭)
오늘 아침 낭군께 몸소 드릴 테요.
不惜作君袴 (불석장군고)
그대 바지 만드는 건 아깝지 않고,
莫作他人裳 (모작타인상) 다른 여인 치마감으론 아깝답니다.

 

4首 반달노리개

精金凝寶氣 (정금응보기) 보배로운 기운이 서린 순금으로,

鏤作半月光 (누작반월광) 반달무늬 노리개 예쁘게 새겼네.

嫁時舅姑贈 (가시구고증) 시집올 때 시부모님이 주셨기에,

繫在紅羅裳 (계재홍라상) 붉은 비단 치마끈에 달아두었죠.

今日贈君行 (금일증군행) 오늘 떠나시는 그대에게 드리니,

願君爲雜佩 (원궁위잡패) 낭군께서 정표로 간직해 주세요.

不惜棄道上 (불석기도상) 길 위에 버리는 건 아깝지 않고,

莫結新人帶 (막결신인대) 다른 여인 허리띠엔 아깝답니다.

 

5首 大雅

 

近者崔白輩 (근자최백배) 요즘 최경창 백광훈 같은 어르신이,

攻詩軌盛唐 (공시궤성당) 시를 지어 성당의 경지를 이루셨네.
廖廖大雅音 (요요대아음)
시경에 수록된 쓸쓸했던 대아의 시,
得此復鏗鏘 (득차부갱장)
이에 다시금 금옥 소리를 얻었네요.
下僚困光祿 (하료곤광록)
시인은 낮은 벼슬로 살림이 궁하고,
邊郡愁積薪 (변군수적신)
변방 근무 땔나무 장만이 근심이네.
年位共零落 (년위공영락)
나이도 지위도 모두 다 시들어가니,
始信詩窮人 (시신시궁인) 이제야 시인이 가난한 걸 알겠어요.

 

6首 始信峯
仙人騎綵鳳 (선인기채봉) 신선께서 고운 빛 봉황새 타고,
夜下朝元宮 (야하조원궁)
밤이면 조원궁에 내려오십니다.
絳幡拂海雲 (강번불해운)
붉은 깃발로 바다 구름 떨치면,
霓衣鳴春風 (예의명춘풍)
무지개 빛 옷 봄바람에 웁니다.
邀我瑤池岑 (요아요지잠)
요지봉에서 나를 맞이하시면서,
飮我流霞鐘 (음아류하종)
유하주를 마시라고 권하셨어요.
借我綠玉杖 (차아록옥장)
나에게 녹옥장을 빌려주시더니,
登我芙蓉峯 (등아부용봉)
부용봉에 오르라고 하시더군요.

 

7首 素書

有客自遠方 (유객자원방) 먼 곳에서 온 낯선 나그네,
遺我雙鯉魚 (유아쌍리어)
나에게 잉어 한 쌍을 주네.
剖之何所見 (부지하소견)
잉어 배 갈라 드려다 보니,
中有尺素書 (중유척소서)
비단에 쓴 편지 들어 있네.
上言長想思 (상언장상사)
처음엔 그립다 말씀하시고,
下問今何如 (하문금하여)
나중엔 어떤가 물으셨어요.
讀書知君意 (독서지군의)
편지로 임의 뜻 알고 나니,
零淚沾衣裾 (영루점의거) 눈물만 옷자락을 적시네요.

 

8首 春悲 (봄날의 슬픔)

芳樹藹初綠 (방수애초록) 향기로운 나무 신록이 우거지고,
蘼蕪葉已齊 (미무엽이제)
어린 궁궁이잎 가지런히 돋았네.
春物自姸華 (춘물자연화)
봄철에 만물이 절로 아름다운데,
我獨多悲悽 (아독다비처)
나만 외로이 자꾸만 서글퍼지네.
壁上五岳圖 (벽상오악도)
바람벽 위에 오악도를 걸어두고,
牀頭參同契 (상두참동계)
머리맡에 참동계 경전 놓아두네.
煉丹倘有成 (연단상유성)
장생불사 신선이 되기만 한다면,
歸謁蒼梧帝 (귀알창오제) 선계로 돌아가 순임금 알현하리.

 

感遇(감우) 느낀대로 노래함

1首

盈盈窓下蘭(영영창하란) 하늘거리는 창가의 난초 

枝葉何芬芳(지엽하분분) 가지와 잎, 그리도 향그럽더니

西風一夕起(서풍일석기) 가을바람 잎새에 한번 스치고 가자 

零落悲秋霜(영락비추상) 슬프게도 찬 서리에 다 시들었네. 

秀色總消歇(수색총소헐) 빼어난 그 모습은 이울어져도

淸香終不死(청향종불사) 맑은 향기만은 끝내 죽지 않아

感物傷我心(감물상아심) 그 모습 보면서 내 마음이 아파져

流涕沾衣袂(유체점의몌) 눈물이 흘러 옷소매를 적시네.

 

2首

古宅晝無人(고택주무인) 옛집엔 대낮에도 사람이 없고

桑樹鳴鵂鶹(상수명휴류) 부엉이만 뽕나무에서 홀로 우누나

寒苔蔓玉砌(한태만옥체) 섬돌에는 차가운 이끼 끼었고

鳥雀棲空樓(조작서공루) 빈 누대엔 새들만 날아드누나

向來車馬地(향래거마지) 그 옛날 수레들이 드나들었지만

今成狐兔丘(금성호토수) 지금은 짐승들 사는 굴이 됐구나

乃知達人言(내지달인언) 先賢의 말씀 이제 알 것 같네

富貴非吾求(부귀비오구) 부귀는 억지로 구하는 것이 아니란 것을.

 

3首

東家勢炎火(동가세염화) 동쪽집 세도는 불길이라

高樓歌管起(고루가관기) 기생 끌어안고 풍악소리 요란하다

北隣貧無衣(북린빈무의) 북쪽 이웃 가난하고 헐벗어

枵腹蓬門裏(효복봉문리) 주린 배 움켜지고 초가집에 산다네

一朝高樓傾(일조고루경) 하루아침에 세도가 가세 기울어

反羨北隣子(반선북린자) 도리어 북쪽이웃 부러워하네

盛衰各遞代(성쇠각체대) 성하면 쇠하기 마련이니

難可逃天理(난가도천리) 하늘의 이치 피할 수 없다네.

 

4首

夜夢登蓬萊(야몽등봉래) 어젯밤 꿈에 봉래산에 올라

足躡葛陂龍(족섭갈피룡) 葛陂龍 등에 올라 탔네

仙人綠玉杖(선인녹옥장) 푸른 옥지팡이 짚은 仙人이

我芙蓉峯(요아부용봉) 부용봉에서 나를 맞아주었네

下視東海水(하시동해수) 동해를 내려다보니

然若一杯(담연약일배) 한잔 술처럼 고요히 보였지

花下鳳吹笙(화하봉취생) 꽃아래선 선녀가 피리를 불고

月照黃金罍(월조황금뢰) 황금 술잔은 달을 담았구나.

 

 

 山嵐[산람] 산 아지랑이

 

暮雨侵江曉初闢 [모우침강효초벽] 저녁 비가 강을 엄습하더니 새벽이 비로소 열리고

朝日染成嵐氣碧 [조일염성남기벽] 아침해가 산 아지랑이를 온통 푸르게 물들이네.

經雲緯霧錦陸離 [경운위무금륙리] 피어오르는 구름과 퍼지는 안개가 비단으로 짜이고

織破瀟湘秋水色 [직파소상추수색] 소상강 위에서 헤쳐지며 가을 물빛으로 화하도다

隨風宛轉學佳人 [수풍완전학가인] 바람 따라 천천히 돌며 아름다운 여인인양

畵出雙蛾半成蹙 [화출쌍아반성축] 고운 눈썹을 그려보지만 반쯤은 찌푸려졌네

俄然散作雨비비 [아연산작우비비] 갑작스레 비가 거세게 흩뿌리며 내리더니

靑山忽起如新沐 [청산홀기여신목] 청산이 새로 목욕한 듯 홀연히 일어서누나.

 
 
暮春 (모춘) 저무는 봄
 

煙鎖瑤空鶴未歸[연쇄요공학미귀] 안개는 공중에 자욱한데 학은 돌아오지 않고,

桂花陰裏閉珠扉[계화음리폐주비] 계수 꽃 그늘 속에 구슬 문은 닫혔네

溪頭盡日神靈雨 [계두진일신령우] 시냇가는 온종일 신령스런 비만 내리고

滿地香雲濕不飛[만지향운습불비] 땅에 가득한 구름은 젖어서 날지 못하네.

 

 

染指鳳仙花歌(염지봉선화가) 손가락에 봉선화를  물들이며

金盆夕露凝紅房(금분석로응홍방) 금분의 저녁 이슬은 붉은 방에 엉기니

佳人十指纖纖長(가인십지섬섬방) 미인의 열 손가락은 가냘프고 기다랗다

竹碾搗出捲菘葉(죽년도출권숭엽) 대 맷돌에 찧어내어 배춧잎에 돌돌말아

燈前勤護雙鳴璫(등전근호쌍명당) 등불 앞에 애써 지켜 두 귀고리 울린다

粧樓曉起簾初捲(장루효기렴초권) 새벽에 깨어 단장하고 주렴을 막 걷으며

喜看火星拋鏡面(희간화성포경면) 화성을 기쁘게 보다가 거울을 내던진다

 

拾草疑飛紅蛺蝶(섭초의비홍협접) 풀을 모으면 붉은 범나비 나는 듯 하고

彈箏驚落桃花片(탄쟁경락도화편) 쟁을 뜯으면 복사 꽃잎이 놀라 떨어진다

徐匀粉頰整羅鬟(서균분협정라환) 뺨에 고루 분바르고 쪽진 머리 매만지니

湘竹臨江淚血斑(상죽림강루혈반) 소상강 대나무의 붉은 반점 눈물일런가?

時把彩毫描却月(시파채호묘각월) 때로 눈썹 붓을 잡고서 초승달을 그리니

只疑紅雨過春山(지의홍우과춘산) 춘산에 붉은 비 지나가나 의아할 뿐이다.

 

竹枝詞(죽지사)

家住江陵積石磯 (가주강릉적석기) 우리집은 강릉땅 돌 쌓은 강가에 있어

門前流水浣羅衣 (문전유수완라의) 문 앞 흐르는 물에 비단옷 빨지요

朝來閑繫木蘭棹 (조래한계목란도) 아침이면 한가로이 목란배 매어 놓고

貪看鴛鴦相伴飛 (탐간원앙상반비) 짝지어 나는 원앙새 부럽게 바라보네.

 

遊仙詩(유선시) 87首중 1首

千載瑤池別穆王 (천재요지별목왕) 천년 고인 요지에서 목왕과 헤어져

暫敎靑鳥訪劉郞 (잠교청조방유랑) 파랑새로 하여금 유랑을 찾게 하였네.

平明上界笙簫返 (평명상계생소반) 밝아오는 하늘에서 피리소리 들려오니

侍女皆騎白鳳凰 (시녀개기백봉황) 시녀들은 모두들 흰 봉황을 탔구나.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

허난설현이 8살때 지은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은 1605년 허난설현의 동생 허균이 충청각에서  한석봉에게 부탁하여 목판에 한석봉이 쓴글씨로 1차 간행되었다.

이 목판본은 1606년 우리나라에  왔던 중국 사신 주지번에 의해 중국으로 건너가 1608년 4월에 간행된 난현설집에 실려 있을뿐 글씨나 목판은 찾을수 없고 탁본만 국내에 전한다.

상량문은 집을 지을때 대들보를 올리는상량의식의 글로서 허난설현은 신선 세계에 있는 상상의 궁궐인 광한전 백옥루의 상량식에 자신이 초대 받았다고 생각하며 이 글을 지었다 한다.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 전문 (번역)

보배로운 日傘일산이 하늘에 드리워지니 구름 수레가 색상의 경계를 넘었고, 은빛 누각이 해에 비치니 노을 난간이 미혹된 티끌 세상을 벗어났다. 신선의 나팔이 기틀을 움직여서 구슬기와 궁전을 짓고, 푸른 이무기가 안개를 불어서 구슬나무 궁전을 지었다. 靑城丈人청성장인은 옥 휘장의 도술을 다하고, 벽해왕자도   금궤짝의 묘방을 다 베풀었다. 이는 하늘이 지은 것이지, 사람의 힘이 아니다.


(광한전) 주인의 이름은 신선 명부에 오르고, 벼슬도 신선 반열에 들어 있어서, 태청궁에서 용을 타고 아침에 봉래산을 떠나 저녁에 방장산에서 묵었다. 학을 타고 삼신산을 향할 때에는 왼쪽에 신선 浮丘부구를  붙잡고, 오른쪽에 신선 洪崖홍애를 거느렸다. 천년 동안 玄圃현포에서  살다가 꿈 속에 한 번 인간 티끌 세상에 늦었는데, <黃庭經황정경>을) 잘못 읽어 무앙궁에) 귀양왔다. 赤繩적승 노파가 인연을 맺어주어, 다함이 있는 집에 들어온 것을 뉘우쳤다.

병 속의 신령스러운 약을 잠시 玄石+少현사에 내리자, 발 아래의 달이 문득 계수나무 궁전으로 몸을 숨겼다. 웃으면서 붉은 티끌과 붉은 해를 벗어나 자미궁의 붉은 노을을 거듭 헤치며, 난새와 봉황이 피리 부는 신령스러운 놀이의 옛모임을 즐겁게 계속하였다. 비단 장막과 은병풍에 홀로 자는 과부는 오늘 밤이 지나가는 것을 아쉬워하니, 어찌 日宮일궁의 은혜로운 명령을 月殿월전에까지 아뢰게 할 수 있으랴.

벼슬 맡은 무리들은 몹시 깨끗해서 그 발로 팔색 노을의 관청을 밟으며, 지위와 명망이 드높으니 그 이름이 오색 구름의 전각을 짓눌렀다. 옥도끼에서 차가운 기운이 나니, 계수나무 밑에서 吳質오질이  잠들 수가 없었다. <霓裳羽衣曲예상우의곡>을  연주하자, 난간 가에 있던 素娥소아가 춤을 추어 올렸다. 영롱한 노을빛 노리개와 노을빛 비단이 신선의 옷자락에서 떨쳐지고, 반짝이는 星冠성관은 별빛 구슬로 머리꾸미개를 꾸몄다.

여러 신선들이 모여들 것을 생각해보니, 상계에 거처하던 누각이 오히려 비좁게 느껴졌다. 푸른 난새가 玉妃옥비의 수레를 끄는데 깃으로 만든 일산이 앞서고, 백호가 조회에 참석하는 사신을 태웠는데 황금 수실이 그 뒤의 먼지를 따랐다. 劉安유안이 경전을 옮겨 전하자 두 용이 책상 위에서 태어나고, 姬滿희만이 해를 쫓아가자  팔방의 바람이 산비탈에 머물렀다.

새벽에 상원부인을 맞아들이자 푸른 머리는 세 갈래 쪽이 흩어졌고, 낮에 상제의 따님을 만났더니 황금 (木+人빼고俊)북으로 아홉 무늬 비단을 짜고 있었다. 瑤池요지의 여러 신선들은 남쪽 봉우리에 모였고, 백옥경의 여러 임금들은 북두칠성에 모였다.

唐宗당종은 公遠공원의 지팡이를 밟아 羽衣우의를 三章삼장에서 얻었고, 手帝수제는 火仙화선과 바둑을 두며 온 누리를 한 판에 걸었다. 붉은 누각이 높게 지어지지 않았더라면 어찌 편하게 붉은 깃발을 세우고 조회에 참례할 수 있었으랴.

이에 十洲십주에  통문을 보내고 九海구해에 격문을 급히 보내어, 집 밑에 匠人장인의 별을 가두어 놓게 하였다. 목성이 재목을 가려 쓰고 鐵山철산을 난간 사이에 눌러 놓으니, 황금의 정기가 빛을 내고 땅의 신령이 끌을 휘둘렀다. 魯般노반과 (工,人+눈목빼고睡)공수에게서 교묘한 계획을 얻어내어 큰 풀무와 용광로를 쓰고, 기이한 재주를 도가니에 부리기로 했다.

푸르고 붉은 꼬리를 드리우자 쌍무지개가 별자리의 강물을 들여 마시고, 붉은 무지개가 머리를 들자 여섯 마리 자라가 봉래섬을 머리에 이었다. 구슬 추녀는 햇빛에 빛나고, 붉은 누각이 아지랑이 속에 우뚝했다. 비단 창가에는 유성이 이어지고, 푸른 행랑을 구름 너머에 꾸몄다.

옥기와는 물고기 비늘같이 이어졌고, 구슬계단은 기러기같이 줄을 지었다. 微連미련이 깃대를 받드니 月節월절이 자욱한 안개 속에 내리고, 鳧伯부백이  깃대를 세우자 난초 장막이 三辰삼진에 펼쳐졌다. 비단 창문의 수술을 황금 노끈으로 매듭짓고, 아로새긴 난간의 아름다운 누각을 구슬 그물로 보호하였다.

신선이 기둥에 있어 오색 봉황의 향기로운 누대에서는 기운이 불어나오고, 선녀가 창가에 있어 쌍 난새의 거울 갑에서는 향수가 넘쳐 흐른다. 비취 발과 운모 병풍과 청옥 책상에는 상서로운 아지랑이가 서리고, 연꽃 휘장과 공작 부채와 백은 평상에는 대낮에도 상서로운 무지개가 둘러쌌다. 이에 봉황이 춤추는 잔치를 베풀고, 제비가 하례하는 정성을 펼치게 하였으며, 널리 백여 신령을 초대하고, 널리 천여 성인을 맞이하였다.

서왕모를 북해에서 맞아들이자 얼룩무늬 기린이 꽃을 밟았고, 노자를 함곡관에서 영접하자 푸른 소가 풀밭에 누웠다. 구슬 난간에는 비단무늬 장막을 펼쳤고, 보배로운 처마에는 노을빛 휘장이 나직하게 드리웠다. 꿀을 바치는 왕벌은 옥을 달이는 집에 어지럽게 날고, 과일을 머금은 鴈帝안제는 구슬을 바치는 부엌에 드나들었다.

쌍성의 羅鈿나전 피리와 晏香안향의 銀箏은쟁은 鈞天균천의 우아한 곡조에31) 맞추고, 婉華완화의 청아한 노래와 飛瓊비경의 아름다운 춤은 하늘의 신령스런 소리에 얽혔다. 용머리 주전자로 봉황의 골수로 빚은 술을 따르고, 학의 등에 탄 신선은 기린의 육포 안주를 바쳤다. 구슬 돛자리와 옥방석의 빛은 아홉 갈래의 등불에 흔들리고, 푸른 연과 하얀 복숭아 소반에는 여덟 바다의 그림자가 담겼다. (이 모든 것이 다 갖춰졌지만) 구슬 상인방에 (상량문) 글이 없는 것만이 한스러웠다.

그래서 신선들에게 노래를 바치게 하였지만, <淸平調청평조>를 지어 올렸던 李白이백은 술에 취해서 고래 등을 탄지 오래이고32), 玉臺옥대에서 시를 짓던 李賀이하는 蛇神사신이 너무 많아서 탈이었다. (백옥루) 새로운 궁전에 銘명을 새긴 것은 山玄卿산현경의 문장 솜씨인데, 상계에 구슬을 아로새길 蔡眞人채진인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나는) 스스로 三生삼생의 티끌 세상에 태어난 것이 부끄러운데, 어쩌다 잘못되어 九皇구황의 서슬푸른 소환장에 이름이 올랐다. 江郞강랑의 재주가 다해서 꿈에 오색찬란한 꽃이 시들었고, 梁客양객이 시를 재촉하니 바리에 三聲삼성의 소리가 메아리쳤다. 붉은 붓대를 천천히 잡고 웃으며, 붉은 종이를 펼치자, 강물이 내달리듯, 샘물이 솟아나듯 (상량문) 글이 지어졌다. 子安자안의 이불을 덮을 필요도 없었다. 구절이 아름다운데다 문장도 굳세니, 이백의 얼굴을 대해도 부끄러울 것이 없었다.

그 자리에서 비단 주머니 속에 있던 신령스러운 글을 지어 올리고, (백옥루에) 두어서 仙宮선궁의 장관을 이루게 하였다. 쌍 대들보에 걸어 두고서 六偉육위의 자료로 삼는다.

들보 동쪽으로 떡을 던지네.
새벽에 봉황을 타고 瑤宮요궁에 들어갔더니
날이 밝으면서 해가 扶桑부상 밑에서 솟아올라
붉은 노을 일만 올이 바다를 붉게 비추네

들보 남쪽으로 떡을 던지네.
옥룡이 아무 일 없어 연못 물이나 마시니
은평상 꽃그늘에서 낮잠을 자다 일어나
웃으며 瑤姬요희를 불러 푸른 적삼을 벗기게 하네.

들보 서쪽으로 떡을 던지네.
푸른 꽃에 이슬이 떨어지고 오색 난새가 우는데
玉字옥자를 수놓은 비단옷 입고 서왕모를 맞아
학을 타고 돌아가니 날이 이미 저물었네.

들보 북쪽으로 떡을 던지네.
북해가 아득해서 북극성이 잠기고
봉새의 깃이 하늘을 치니 그 바람에 물이 치솟네.
구만리 하늘에 구름이 드리워 빗기운이 어둑하네.

들보 위쪽으로 떡을 던지네.
새벽빛이 희미하게 비단 장막을 밝히고
신선의 꿈이 백옥 평상에 처음으로 감도는데
북두칠성의 국자 돌아가는 소리를 누워서 듣네.

들보 아래쪽으로 떡을 던지네.
팔방에 구름이 어두어 날 저문 것을 알고
시녀들이 수정궁이 춥다고 아뢰네.
새벽 서리가 벌써 원앙 기와에 맺혔네.

엎드려 바라오니, 이 대들보를 올린 뒤에 계수나무 꽃은 시들지 말고, 아름다운 풀도 사철 꽃다워지이다. 해가 퍼져 (달이) 빛을 잃어도 난새 수레를 어거하여 더욱 즐거움 누리시고, 땅과 바다의 빛이 바뀌어도 회오리 수레를 타고 더욱 길이 사소서. 은빛 창문이 노을을 누르면 아래로 구만리 미미한 (인간) 세계를 내려다 보시고, 구슬문이 바다에 다다르면 삼천년 동안 맑고 맑은 뽕나무 밭을) 웃으며 바라보소서. 손으로 세 하늘의) 해와 별을 돌리시고, 몸으로 구천세계의 바람과 이슬 속에 노니소서.

출전 : <한국의 한시 10. -허난설헌 시집> (1996년 초판5쇄, 1999년 개정증보판1쇄, 허경진, 평민사)

 

 

규원가(閨怨歌)

엊그제 점엇더니(젊었더니) 하마 어이 다 늘거니(늙었는가),

少年行樂(소년행락) 생각하니 일러도(말하여도) 속절없다.(아무 소용 없다.)

늙어야 설운 말삼(말씀) 하자 하니 목이 멘다.

父生母育 辛苦(부생모육 신고)하야 이 내 몸 길러 낼 제,

公侯配匹(공후배필 : 고귀한 사람의 배필이 됨)은 못 바라도

君子好逑( 군자호구 ;군자 호구:군자의 좋은 배필) 願하더니,

三生(前生,今生,來生)의 怨業(원업)이오

月下의 緣分(연분 : 월하 노인이 맺어 준 연분)으로,

長安 遊俠(장안유협 : 장안의 풍류객) 輕薄子(경박자 ; 행동이 경박한 사람)를 꿈같이 만나 있어, 當時의 用心하기(마음쓰기) 살얼음 디디는 듯,

三五 二八(15∼6세) 겨오 지나

天然麗質(천연려질 ; 타고난 고운 얼굴과 고운 마음씨)절로 이니,

이 얼골 이 態度(태도)로 百年期約(백년기약)하였더니,

年光이 훌훌하고 造物이 多猜(다시)하야(시기하여)

봄바람 가을 믈이 뵈오리(베의 올) 북(실꾸리를 넣는 나무통) 지나듯

雪鬢花顔(설빈화안 :고운 머리채와 아름다운 얼굴) 어데 두고

面目 可憎(면목가증) 되거고나.

내 얼골 내 보거니 어느 임이 날 괼소냐?(사랑할 것인가?)

스스로 斬愧(참괴)하니(부끄러워하니) 누구를 怨望하리,

三三五五 冶遊園(야유원 : 기생집)에 새 사람이 나단 말가?

꽃 피고 날 저물 제 定處없이 나가 있어,

白馬 金鞭(백마금편)으로 어데 어데 머므는고.

遠近을 모르거니 消息이야 더욱 알랴?

因緣을 그쳤은들 생각이야 없을소냐?

얼골을 못 보거든 그립기나 마르려믄(말려무나)

열 두 때 김도 길샤(길기도 길 구나) 설흔 날 支離(지리)하다.

玉窓에 심은 梅花 몇 번이나 피어진고?(피고 졌는가?)

겨울 밤 차고 찬 제 자최눈(자국 눈) 섞어 치고,

여름날 길고 길 제 궂은 비는 므스 일고?

三春花柳 好時節에 景物(경물,경치)이 시름없다.

가을 달 방에 들고 실솔(귀뚜라미)이 床에 울 제

긴 한숨 지는 눈물 속절없이 헴만 많다.`

아마도 모진 목숨 죽기도 어려울사.

도로혀 풀쳐 헤니 이리하여 어이하리?

靑燈(청등:푸른 등)을 돌라 놓고

綠綺琴(녹기금 : 푸른 거문고) 빗기 안아,

碧蓮花(벽연화)한 곡조를 시름 좇아 섞어 타니,

瀟湘(소상 : 중국에 있는 강.) 夜雨(야우)에

댓소래 섯도난 듯,(섞여 도는 듯)

華表(화표) 千年에 別鶴(별학)이 우니는 듯.

玉手의 타는 手段(수단) 옛 소래 있다마는,

芙蓉帳 寂寞(부용장 적막)하니 뉘 귀에 들리소니.

肝腸이 九曲하여 구불구불 끊쳤어라.

차라리 잠을 들어 꿈에나 보려 하니,

바람에 지는 잎과 풀 속에 우는 즘생(짐승),

무슴(무슨) 일 원수로서 잠조차 깨오는다?

天上의 牽牛織女 銀河水(견우직녀 은하수) 막혓어도,

七月七夕 一年一度 失期치 아니커든,

우리 님 가신 후는 무슴 弱水 가렸관디,
오거나 가거나 消息조차 끄쳤는고?

欄干(난간)에 비겨 서서 님 가신 데 바라보니,

草露는 맺혀 있고 暮雲(모운)이 지나갈 제,

竹林 프른 곳에 새 소리 더욱 설다(섧다).

세상에 설운 사람 수 없다 하려니와,

薄命(박명)한 紅顔(홍안)이야 날 같은 이 또 있일가?

아마도 이 님의 지위로(까닭으로) 살동말동 하여라.

 

閨怨歌 또는怨婦歌는 허난설현의 대표작중 하나이지만 작자는 허난설헌(許蘭雪軒)과 허균(許筠)의 첩 무옥(巫玉)이라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송계연월옹(松桂烟月翁)의 『고금가곡』과 『교주가곡집』에는 허난설헌이 지은 것으로 되어 있고, 홍만종(洪萬宗)의 순오지에서는 원부가를 무옥이 지은 것으로 전하고 있다.한편, 가사양식에 있어서도 규방가사와 양반가사라는 두 가지 설이 있다. 규방가사의 형성시기를 조선 중종이나 선조 때로 보는 견해는 「규원가」를 규방가사로 분류한 점에 근거를 둔 것이다.

형식은 총 50행, 100구로 이루어졌고, 4음보의 정형성을 보이고 있다. 내용은 조선조 봉건제도 아래서 빈 방[空閨]을 지키며 눈물로 세월을 보내는 버림받은 여인의 한탄을 노래한 것으로, 젊음은 가버리고 이제 늙어 지난 날을 돌이켜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장안의 건달을 남편으로 모시고 살얼음 밟듯이 조심스런 세월을 보냈으나, 자신의 아름다움마저 변해 버리자 남편은 떠나간다. 다음은 떠난 임에 대한 질투와 그리움으로 이미 떠난 임인데도 그가 어느 여인에게 머물고 있는지 안타까워하고, 얼굴을 볼 수 없는 신세인데도 더욱 그리워지는 역설에 시달린다. 시름을 자아내는 데는 네 계절이 모두 다름없다. 특히 빈 방을 지키는 여인의 한이 하루 중 밤이 부각되어 드러난다. 찬 겨울밤, 길고 긴 여름밤, 경치가 시름을 안겨주는 봄밤, 달빛 비치고 귀뚜라미 우는 가을밤이 모두 그녀에게는 슬픔의 시간이 된다. 다음에는 시름을 이기려는 주인공의 처절한 노력이 묘사된다. 등불을 돋우고 거문고를 타다가 잠을 청하여 꿈 속에서나마 현실의 욕구불만을 해소해보려 하기도 하고, 풀숲에 우는 풀벌레에게 자신의 한을 전가시키기도 한다.

홍만종은 『순오지』에서 이 작품에 대해 평하기를, “홀로 지내는 모습을 잘 묘사했으며, 여성다운 향기와 아름다움을 내포하여 비록 옛 문인의 염체(艶體: 부드럽고 아름답게 나타내는 여성적인 시의 문체)라도 이 보다 더 잘 할 수 있겠는가(說盡空閨情境 曲有脂粉艶態 雖古今詞人 艶體何以過此也).”라고 격찬하였다. 이 작품은 한문투의 고사숙어를 많이 쓰기는 하였으나, 애원(哀怨)하면서도 온아한 맛이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허난설헌이 그렸다고 전해지는 그림이다. 크기는 98.8x48.9cm이며, 2018년 4월~7월 기간 국립중앙박물관 서화실에 전시되었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양간비금도

                        낯익은 풍경과 어린 여아의 모습이 한 장의 풍속화를 보는 듯 생생하며 그림을 그린 작가가                                                  허난설현 임을 알수있는 난설현이라는 이름이  쓰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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