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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야 너는 어이

by 까마귀마을 2023. 10. 27.

국화야 너는 어이

 국화(菊花)야 너는 어이 삼월동풍 (三月東風) 다 보내고

낙목한천(落木寒天)에 홀로 피었는냐

아마도 오상고절(傲霜孤節)은 너 뿐인가 하노라.

                ----이정보----

 

풀이.

삼월동풍 : 봄바람이 부는 삼월.(평온한 시절)

낙목한천 : 나뭇잎이 다 떨어진 춥고 쓸쓸한 풍경 또는 그런 시절

오상고절 : 서릿발이 심한 속에서도 굴하지 아니하고 외로이 지키는 절개라는 뜻으로, ‘국화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국화야 너는 어찌 삼월 봄바람 다 지나고,

나뭇잎이 다 떨어진 춥고 쓸쓸한 계절에 네 홀로 피었느냐,
아마도 서릿발 속에서도 꿋꿋이 절개를 지 키는 것은 너 뿐인가 하노라.

 

가을이 깊어간다.

결실이 마무리된 벌판은 쓸쓸하고 메마르다. 향랑한 들판, 잎들이 다 진 앙상한 가지는 상념만 더해가는 계절이다. 조락의 쓸쓸함 속에서 찬 서리를 이기고 절개와 지조로 핀 국화를 대하며 조선의 선비 이정보가 지은 "국화는 너는 어이"라는 시조 한수 새겨 본다. 

작가 이정보(李鼎輔)는 이조 영조 때의 문신으로 경종1년에 진사시에 합격하여 이조, 예조판서, 대제학을 역임하였다. 천성이 맑고 곧아 성실하며 아첨을 모르는 선비였다 한다.

이 시조에서도 역시 지은이의 지조와 높은 절개가 잘 엿보인다. 예로부터 국화는 군자절(君子節)의 상징이 되어 왔다. 얼핏 보면 국화를 객체화 하여 그린 듯하지만 ‘너 뿐인가’의 ‘너’는 실은 작가 자신을 나타낸 것이다. 가을에 홀로 피는 국화를 지사(志士)의 절개에 비유하여 기린 노래로 작가가 말년에 벼슬에서 물러나 은거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소동파의 시구 "국잔유유오상지(菊殘猶有傲霜枝)"를 떠올리며 지었다고 한다. 이것은 '국화는 오히려 서리에 오만한 가지를 남겨 가진다.'는 뜻으로, 추운 겨울을 이겨내는 국화의 지조를 나타낸다. 찬서리를 굳건하게 이겨 내어 굳은 절개를 지키고 있는 것은 국화뿐이라 하여 다른 꽃들이 다 져버린 추운 날씨에 홀로 피는 국화의 굳센 의기를 빌어 선비로서 자신의 높은 지조를 노래하고 있다.

 

菊殘猶有傲霜枝(국잔유유오상지) 구절이 들어있는 소식의 詩

 

贈劉景文(증유경문) 유경문 에게 지어주다

荷盡已無擎雨蓋(하진이무경우개) 연꽃 다 져서 비를 떠받쳐줄 덮개 없는데擎 : 떠 받혀주다, 雨蓋 : 우산의 옛 이름 여기서는 연잎을 말함)

菊殘猶有傲霜枝(국잔유유오상지) 국화는 시들었어도 오히려 서릿발이 내린 추위에도 굴하지 않는 가지 남았네 (猶 : 변함없이)

一年好景君須記(일년호경군수기) 일 년 중 좋은 풍광 그대 모름지기 기억하시게 ( 須 : 모름지기)

正是橙黃橘綠時(정시등황귤록시) 바로 등자는 누렇고 귤은 파란 때라네.(正是 : 바로, 橙 : 등자나무, 橘 : 귤)

 

이 詩는 동파전집에 실려있는 칠언절구의 시로 제목이 冬景(동경 : 겨울풍경)으로 되어있는 판본도 있다. 소식이 항주지사로 있을때 지은 시로 친구 유경문에게 준 시이며 연잎은 시들면 사라지지만 국화는 찬 서리에도 가지가 남아있고 겨울에도 오렌지와 귤은 빛을 발하니 살아가면서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말라는 충고의 뜻으로 지은 시이다. 유경문은 장수 집안 출신이지만 승려와 다름없을 정도로 불교의 도가 몸에 벤 사람으로 소식과는 생사를 같이 하는 벗이었다고 한다. 동파집에는 유경문과 관련된 시가 20여편 실려 있다.

 
 

국화꽃

국화의 꽃말은 꽃 색상에 따라 다르다. 평소 많이 사용되는 흰색 국화의 꽃말은 순수, 진심, 무결점, 청결, 정조, 순정등 입니다.

국화꽃은 그 기원이 중국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약 2,500년 전부터 재배되기 시작하였다고 알려지고 있지만 우리나라 산과 들에서 자생하는 종류도 많이 있습니다. 산과 들에서 자라는 야생국화를 들국화로 총칭하지만 하나 하나 분류 하자면 구절초, 쑥부쟁이, 개미취, 산국, 감국, 갯국화, 해국, 금불초등 많은 자생국화가 있습니다.

오래전 부터 국화는 그 아름다움과 향기로 인해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또한 국화꽃은 고요하고 평온한 정신 상태를 상징하기도 했으며, 이런 의미 때문의 문인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있었습니다. 중국에서 발원한 국화꽃은 실학과 함께 한반도로 전파되었고, 고구려 시대부터 국화를 재배하였습니다.

조선시대에는 굳셀 화(固瑟華)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문인들의 수도 없이 많은 시문으로 또 지조와 절개의 상징으로 선비들로 부터 많은 존경을 받았으며 지금도 국가적인 의례및 행사는 물론 사회, 개인의 조사에서 애도의 상징으로 널리 사용되기도 합니다.

일본으로의 전파 역시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졌는데, 일본에서는 국화를 '菊'이라고 부르며 왕실의 상징으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일본의 왕실 문장인 '菊の御紋'은 국화를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서양에는 17세기 프랑스를 통해 처음 소개되었으며, 그 후 유럽 각지와 북아메리카 등지로 널리 퍼져나갔습니다.

서양에서는 주로 화환이나 화분용으로 사용되었으나, 가을의 대표적인 화훼작물로서 인기가 높아졌습니다.오늘날까지도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종류와 형태의 국화가 재배되고 있으며, 그 아름다움과 다재다능함으로 인해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국화꽃은 다양한 종류와 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국화꽃의 매력 중 하나입니다.

각각의 종류는 그 크기, 색상, 형태 등에 따라 다양하게 구분될 수 있습니다.

1).대국: 대표적인 국화의 한 종류로, 꽃이 크고 화려합니다. 보통 가을에 개화하며, 잎은 두껍고 풍성합니다.

2).소국: 작은 크기의 꽃을 가진 국화로서 키가 작아 실내에서도 잘 자라납니다. 다양한 색상을 가지며 봄과 여름에 개화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3).야생화: 야생에서 자란 원초적인 국화로서 견고하고 강인한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4).일본국 : 일본에서 유래된 이 종류는 특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유명하며, 많은 변형이 있습니다.

5).마거릿 : 비슷한 이름 때문에 혼동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서유럽 원산의 다른 식물입니다.

각종 국화 중에서도 아시아 지역에서는 황국(黄菊), 백 굳셀(白固瑟), 천리향(千里香) 등이 널리 재배되며 사랑받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수많은 변종과 품종들이 세계 각 地에서 재배되어 오면서 그 형태와 색상 등이 점차 다양해져 왔습니다.

 
 
국화 옆에서

가을이 깊었다. 절기의 이 길목에선 누구나 한번 쯤 무상(無常)에 사무치게 젖어들기 마련이다.

오곡은 걷히고 잎들은 물들어 조락을 기척한다. 우리도 저렇게 떠나가리라, 상념에 잠겨 걸어온 길을 잠시 돌아다보게 된다.

그러나 가을이 가르치는 건 조락의 무상만이 아니다. 오상(傲霜)의 절개를 깨우치기도 한다. 찬 서리에 벋서서 유향을 피워 올리는 국화의 지조를 보고 세사에 지친 마음을 재우쳐 추스르는 슬기를 배우는 철이다.

봄이 매화의 것이라면 가을을 주재하는 꽃은 단연 국화이다.

누가 뭐래도 은일한 풍류를 논할진대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지나칠 수가 없다. 그가 녹봉(五斗米)에 허리를 굽히다(折腰) 지쳐 전원으로 내려가서 초가집 동쪽 울타리에 국화를 심어놓고(埰菊東籬下 채국동리하) 남산을 바라보며 유유자적하는(悠然見南山 유연견남산) 경개는 바로 소요군자의 최상승 기틀이다.

국화를 다른 이름으로 동리(東籬)라고 부르는 데서도 도연명의 애국을 일품으로 쳤다는 걸 알 수 있다.

국화는 본래 중국이 원산인데 우리나라에는 고려 충숙왕 때 들어온 것으로 '양화소록'이라는 책에 적혀 있다. 이때부터 우리 선조들도 국화를 옆에 두고 그 품향을 즐기면서 국화주나 국화전 등도 빚어 맛보는 세시풍속을 퍼뜨렸던 것이다.

그리하여 국화를 노래한 시가도 많이 생산되었다.

가사문학의 종장으로 받들리는 담양 출신 면앙정 송순의 시조도 널리 애송되는 국화송이다.

풍상이 섞어친 날에 갓 피온 황국화를,

은반에 가득 담아 옥당에 보내오니,

도이야 꽃이온 양 마라 님의 뜻을 알괘라 하는 가구에는 연군(戀君)의 정이 뚝뚝 듣는다.

국화의 절개를 소박하면서도 지극하게 드러낸 손속으로는 이정보를 들 만하다.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 동풍 다 지내고,

낙목한천(落木寒天)에 너 홀로 피었느냐,

아마도 오상고절(傲霜孤節)은 너 뿐인가 하노라.

오랜 인고 끝에 성숙한 아름다움을 이룬 누님의 자태로 국화를 읽어낸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는 현대에 들어 우리의 심금을 가장 절절히 울려준 가창일 것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내 누님 같이 생긴 꽃이여
노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보다.

한데 이 국민시 (國民詩)를 놓고 시인이 일본의 번영을 송축한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은 이가 있어 얼마 전 화제를 모았다. 그는 서정주의 친일 성향에 눈을 들이대고 이 시에 나오는 시어들이 일본의 개국, 황실의 문양, 충성의 서약 등을 상징한다는 논리로 우리의 애송시 하나를 박살냈다. 그 글을 읽어보니 그럴듯한 아귀맞춤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도대체 서정시를 그런 식으로 헤집어서 염장을 쳐도 되는 건지 의문이 들고 서글퍼졌다.

어쨌건 그 덕분에 어려서부터 즐겨 읊던 국화송 한 곡이 덧없이 꽃잎을 산산이 떨구며 내 마음에서 아프게 시들어 가는 상실감에 한참을 젖어있어야 했다.

이래저래 나의 가을은 도리없이 조락과 무상의 손짓으로 마감될 수 밖에는 없나 보다.(2001. 10. 29 한송주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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