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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이야기(나는 왜 가나안 성도인가)

기독교에서 구약성경은 ?

by 까마귀마을 2023. 6. 23.

성경에서 구약은 제거 되어야 하는가?

기독교의 시작은 유대교에서 비롯되었다. 예수는 유대교인 이었으며 유대인으로 태어나 유대인으로 살다가 유대인으로 죽었다. 예수를 추종한 유대교의 한 분파가 예수를 메시아라고 부르며 해석 한데서 비롯 되었으며 이들은 탈 유대화 하며 유대교에서 갈려져 나왔다.

그러나 신약성경 목록이 정해지기 2세기 무렵까지 교회에서는 유대교의 경전인 구약성경이 그들의 유일한 성경이었다. 초창기의 초대교회 공동체에서는 구약에 기록된 율법을 지키고 수호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초기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가 유대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 사후(주후 68년으로 추측) 서서히 유대교의 율법준수는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그러면서 예수의 가르침등 구약을 대체할 사도들의 기록물들과 복음서들이 하나 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동안 구약은 이들의 경전이었다.

 

구약은 별도의 경전을 갖지못한 초기 교회에서 교회의 경전으로 인정되었지만 점차 이방인이 늘어나면서 동시에 비판적인 시선을 받기도 했다그 이유는 구약이 철저하게 유대주의적이기 때문이다. 구약속에 수없이 기록된, 이방인에 대한 입에 담기조차 힘든 여호와의 저주들, 지킬수 없는 구약에 기록된 수백가지 유대인의 율법, 공정성을 상실한 여호와의 징벌 등은 정상적인 이성을 가진 사람들에겐 쉽게 받아 들여질수 없었다.

 

따라서 기독교에서의 구약에 대한 논란은 초대 기독교 시절부터 끊임없이 제기 되었으며, 종교개혁 때부터 현대 신학까지 구약이 과연 기독교 경전으로서 자격이 있는지 수많은 논란을 야기 시켜왔다현재까지도 기독교는 구약과 상당한 기간동안 긴장관계에 있으며 아직까지도 구약속의 끔찍한 성경구절을 가지고 의문을 제기하는 신자들에게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을수 없을 것이다.

 

특히 구약의 존재가치에 대해 문제 제기의 불을 당긴 것은 영지주의자로 파문당한 초기 교회의 지도자인  마르시온(Marcion. AD 85~160년경)이었다그는 철저한 반 유대주의자 였다. 초대 교회가 겪어야 했던 성경의 해석자들 가운데서 마르시온의 해석만큼 두려운 것이 없었다다른 영지주의자들은 학파를 건설하는 데 불과했으나, 마르시온은 자칭 정통파 교회를 대적할 만한 독자적인 감독관과 독자적인 정경을 둔 독자적인 교회를 세웠으며, 그 교인 숫자가 한 때 급격히 성장함으로써 자칭 정통파와의 대결에서 누가 최종적으로 승리하게 될지 그 결과가 심히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마르시온은 구약을 완전히 포기하고, 신약성경만을 정경화 시켜서 기독교를 탈 유대화 시키려고 했다.

그는 영지주의자로써 물질세계 자체가 악한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그러므로 이 세상을 창조한 창조주 여호와는 역시 악하거나 무지하다는 영지주의적인 사상을 받아 들였다.

 

마르시온의 주장에 따르면, 구약에서는 율법이 선포되고 신약에서는 복음이 선포되었으며예수는 사랑의 하나님이었던 반면에 구약의 여호와는 복수심에 불타는 열등한 저질 신이라는 것이다그에 따르면 구약은 열등하고 저질 스러운 유대잡신의 율법서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마르시온에게 있어서 이방인들에 대해서 저주와 전쟁, 피의복수 명령을 내리는 배타적인 여호와는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과 동일시 될 수 없다고 주장 했으며, 구약의 여호와는 우주를 창조한 저급한 데미우르고스(Demiurgus : 영지주의에 의하면 인간및 세상 즉 물질을 창조한 저급하고 사악한 신 또는 선하긴 하되 허약한 신)이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알 수 없는 하나님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과격한 바울 주의자였던 마르시온은 구약을 신약의 하나님과는 다른 열등한 신의 율법과 문서로 간주하여 결국 구약 전체를 거부한 것이다. 그가 인정하는 정경은 그에 의해서 변개되어 탈 유대화된 10편의 바울서신(갈라디아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로마서, 데살로니가전서, 데살로니가후서, 에베소서골로새서, 빌립보서, 빌레몬서) 과 복음서 중에서는 누가복음 하나만을 포함한  11권을 정경화 하여 성경으로 인정하였다.

 

그리고 소아시아 출신의 선주였던 그는 복음서에 있는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 그의 막대한 재산을 모두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성경통신대학 제3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교육부 1992년)

 

물론 그는 이단으로 배척받았다. 그러나 정상적인 이성을 지닌 여러분들이라면, 구약 속에서의 무자비한 폭군 여호와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런 주장은 3세기에 와서 마니교(Manichees. 215~277)도들을 통해서 신, 구약의 구분정신이 더욱 확대되기도 했다. 마니교도들은 모세에게 내려진 율법이 참된 하나님이 아니라 '암흑의 왕'이 준 것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윌리스 반스토운 숨겨진성서 3 이동진역 문학수첩 / P.317)

 

그렇다면, 구약은 어떠한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자.

보수적인 기독교 신학자들은 구약의 존재의미를 규명하기 위해 억지 논리를 만들어 왔다이런 보수적인 신학계의 대표적인 세가지 모델은 다음과 같다.

 

첫번째는 약속(Verheissung)과 성취(Erfuellung)모델이다.

신약의 저자들은 구약을 아전 인수격으로 인용하여 예수의 일대기에 끼워 맞췄다.

사실 구약의 내용은 신약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박해받고 있는 유대민족에게 축복을 내려주겠다는 것을 제외하면 예수에 대한 예언이 전혀 없다. 다만, 신약의 저자들이 구약을 왜곡시켜서 인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방식의 문제점은, 예수를 증거하기 위해서 아전인수격으로 인용한 구약의 일부 부분을 제외하고 나머지의 구약들은 존재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두번째는 모형론(Typologie) 모델이다.

로마서 514절에서 아담을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것은 구약의 사건이 모형(模型Typos)으로 간주되고, 그 모형들과 상응하는 원형(原型, Antitypos)이 신약에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모세의 출생시에 일어났던 유아학살과, 예수 출생시에 일어났던 헤롯대왕의 유아학살은 미드라쉬적 서술법으로 연관성이 있다. , 예수의 출생을 모세의 출생과 비슷하게 기록하여, 그가 모세처럼 로마의 압제에 시달리는 유대인들의 구원자라는 전형적인 모형을 빌었다는 것이다그러나 구약 전부를 이렇게 모형론적으로만 해석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점이 제기된다. 또한 구약의 사건을 토대로 본래 가지고 있지 않은 미래적 의미를 도출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점도 생긴다.

 

세번째는 기독론 모델이다.

이것은 예수를 중심으로 구약을 해석하는 방법인데, 이런 해석의 대표자라고 할수 있는 피셔(W. Fischer)는 구약의 모든 내용이 예수를 암시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방법의 창시자들은 바로 영지주의자들 이었다. 이것은 앞뒤 문맥이나 사건의 내용 등은 고려하지 않고 아전인수격으로 구약에 주석을 다는 일이다.

 

이처럼 기독교 신앙에서의 구약의 존재 의미를 파악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유대교 경전에서 비롯된 구약은 상당부분 기독교 교리와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런 점 때문에 기독교 정경으로부터 구약을 제거하자는 마르시온적 태도는 중세기부터 종교개혁과 현대신학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제기되어 왔다.

 

구약에 대한 부정적 입장 가운데 대표적인 신학자들의 주장을 간략하게 기술 해 보면,

독일 개신교 신학자였던 하르낙(A von Harnack. 1851~1930)은 그의 유명한 저서인 '마르시온: 이방의 하나님에 대한 복음'에서 마르시온이 구약의 정경성을 부정하게 된 것은 오로지 기독교적인 하나님 개념의 본질을 자각했기 때문이라고 언급한바 있다. (A. von Harnack / Marcion: Das Evangelium vom fremden Gott, (Leipzig, 1924), 222. H. Graf Reventlow, op. cit., 40)  바울 신봉자였던 마르시온에게 구약은 진리를 반대하고 진리로부터 후퇴케 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고 하르낙은 정의했다

구약은 단지 바울의 안티테제(Antithesis :  반대의견, 반대주장, 대상의 모순을 드러내기 위한 명제의 裏(속)를 말함) )의 형태로, 율법과 복음, 진노와 은혜행위와 믿음, 육과 영, 죄와 의, 죽음과 생명의 강력한 대조를 보인다.[A.Harnack / History of Dogma,] 하르낙은 마르시온의 입장을 두둔하면서 구약을 기독교 정경에서 제거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했다.

 

AD 2세기에 구약을 거부한 것은 오류였다. 당시 핵심적인 교회가 이러한 오류를 수용하지 않은 것은 옳았다. 16세기에 구약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은 그 때까지만 해도 벗어날 수 없었던 당시 종교개혁의 불가피한 조치였다. 그러나 19세기 이후에도 개신교에서 구약을 여전히 정경의 문서로 보존하고 있는 것은 종교와 교회가 불구가 된 결과에서 기인한 것이다.

(A. von Harnack / op. cit., 217. H. Graf Reventlow, op. cit., 40~41) 라이프지히 대학에서 앗시리아학 교수를 역임했고, 브레슬라우 대학, 베를린 대학 등을 거쳐 구약성경의 역사를 중근동 지방의 환경 가운데서 보는 안목을 넓혀 놓았던 델리취 DelitzschFriedrich. 1850 ~ 1922)는 두 권으로 된 '대 사기극'(Die grosse Taeuschung)이라는 저서에서 구약성경에 대해 혹평했다델리취의 주장에 따르면 구약의 역사서들은 역사적 사료로서의 신빙성이 없으며, 여호와는 특정한 민족의 신으로서 도덕적 수준이 너무 낮은 저질스런 신이라고 평가했다. , 여호와만 도덕적 수준이 낮은 것이 아니라 구약속의 선지자들을 비롯한 중요한 인물들은 모두 도덕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으며시편은 도덕적으로 저급한 사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예수는 이런 유대교에 대하여 적대감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여호와를 우주를 창조한 창조신과 동일시한 것은 잘못된 신앙이며, 유대교의 여호와 신앙을 전 세계에 전파한다는 것은 미친 생각이라는 것이다. (H. Graf Reventlow, Hauptprobleme der alttestamentlichen Theologie im 20. Jahrhundert. Ertraege der Forschung Bd. 173 (Darmstadt: Wissenschaftliche Buchgesellschaft, 1982), 36-37.)

 

양식비평을 개척한 독일의 개신교 신학자 불트만RBultmann. 1884~1976) 구약성경은 신약의 전제(presupposition)로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보았으며 구약과 신약의 신학적 불연속성을 주장했다. (R. Bultmann, "The Significance of the Old Testament for the Christian Faith", 14.)

불트만은 구약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구약은 유대인들에겐 계시로 받아 들여졌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구약은 더 이상 계시가 아니다. 교회의 입장에서 보면 이스라엘 역사는 이미 흘러갔고 끝이 났다...(중략).. 즉 이스라엘의 역사는 우리에게 더 이상 계시의 역사가 아니다." ( R. Bultmann /"Die Bedeutung des Alten Testament fuer den christlichen Glauben", Glauben und Verstehen , Tuebingen, 1933="The Significance of the Old Testament for the Christian Faith", B. W. Anderson, op. cit., 31.) 

 

바움게르텔 FBaumgaertel. 1888~1981)에 따르면 구약은 오직 우회하는 방식을 통해서만 기독교인들에게 적용할 수 있으며,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구약의 진정한 의미는 오직 '부정적인 방식'(via negativa)으로만 파악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F. Baumgaertel / Verheissung: Zur Frage des evangelischen Verstaendnisses des Alten Testaments (Guetersloh, 1952), 1~51.)

 

"​구약은 일차적으로 종교에 대한 증언이고, 이 종교는 비기독교적인 종교이고, 구약을 이해함에 있어서 구약은 원래 복음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F. Baumgaertel / "Der Dissensus im Verstaendnis des Alten Testaments", Evangelische Theologie 14, 1954, 312.)

 

"구약은 복음 밖에 있는 종교로부터 온 증언이다. 따라서 구약은 우리에게는 이질적인 종교에서 비롯된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구약은 기독교라는 종교와는 다른 자리에서 생긴 것이다." (F. Baugaertel / "The Hermeneutical Problem of the Old Testament", B. W. Anderson,op. cit., 145.)

 

구약에 대한 부정적 입장은 구약 성경학자들에게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신약성경학자들의 글에서 보다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필 하우어(P. Vielhauer)와 헨센(E. Haenchen)같은 신약학자들은 구약의 근본 진술들은 그 본래의 의도로 본다면 기독교 정경에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P. Vielhauer / "Paulus und das Alte Testament", in: Studien zur Geschichte und Theologie der Reformation(FS E. Bizer), (Neukirchen-Vluyn: Neukirchener, 1969), 33-62.] [E. Haenchen / "Das Alte <Neue Testament> und das Neue <AlteTestament>", in: Die Bibel und Wir, (Tuebingen, 1968), 13-27.)

 

린다스(B. Lindars)는 구약은 바울에게 있어서 그 자체로는 가치가 없다고 평가했다"구약은...(중략)....오직 복음에 이르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재촉하는 종으로서만 가치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중략)....그것도 그 길을 인도하는 것도 결코 아니다" (B. Lindars / "The Place of the Old Testament in the Formation of New Testament Theology", New Testament Studies 23, 1976/77, 86.)

 

제임스 던(James D. G. Dunn)의 견해도 이와 유사하다.

"(신약에) 구약이 인용된 것은 그것이 의도적인 진술이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요약하면 첫 번째 기독교인들은 구약을 독립적인 권위를 가진 것으로 보지 않았고 이 보다는 해석된 권위를 가진 것으로서 그 가치를 부여했다" (James D. G. Dunn/ Unity and Diversityin the New Testament, (London, 1977), 94.)

 

구약은 오늘날 현대인들이 읽기에는 정말로 어처구니없는 배타적인 고대 유대인이 남긴 문서이다.

특히 구약이 저질스러운 이유는, 이방인들에 대해서 전쟁과 폭력을 명령하는 여호와, 이방인들에 대한 저주, 죄를 지은 사람과 관계없는 엉뚱한 사람에 대한 여호와의 혹독한 벌, 사소한 율법을 지키지 않은 사람도 죽여버리는 여호와, 불합리한 율법 , 장애인과 여성에 대한 차별,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서 인륜을 저버리는 행위를 요구하는 여호와 등이다.

 

심지어 독일에서는 성경이 반인륜적이라는 이유로 어린이 금서목록에 올릴 것을 주장하는 변호사도 있었다.

"토픽 -( 변호사 ) 성경은 어린이에게 불량도서: 독일 변호사 2명은 성경이 끔찍하고 인권을 유린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이런 내용이 삭제되지 않을 경우 어린이 금서목록에 공식적으로 올려야 한다는 청원서를 크리스티네 베르크만 가족장관에게 제출했다이들은 일부 학부모를 대리해 제출한 청원서에서 성경이 섬뜩한 일부 내용을 신의 뜻이라고 미화하고 있을 뿐 아니라 대량학살, 인종차별, 유대인에 대한 적대감, 간음자와 동성애자에 대한 잔인한 처형자기 자식 살해 및 기타 외고집 행위 등을 가르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뮌헨 가톨릭교회 관계자는 성경을 어린이 금서목록에 올려야 한다면 역사책이나 신문도 마찬가지여야 한다며 이들의 요구를 터무니없다고 반박하고 이런 문서를 제출한 변호사들은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반박 논평했다. (뮌헨 AFP=연합뉴스)

, 재미있는 기사가 아닌가? 성경이, 특히 구약이 아름답지 못한 것으로 가득찬 것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하르낙은 개신교에서 구약을 여전히 정경의 문서로 보존 하고 있는 것은 종교와 교회가 불구가 된 결과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근본주의자들은 구약을 포기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근본주의자들은 구약이 제거 되면 기독교의 케리그마(kerygma : 기독교에서 자기에게 위탁된 메시지를 권위있게 선포 하는 것.) 상당히 빈곤해질 것이며, 창조신앙도 흔들리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있다. 또한 기독교의 유일신 사상이 흔들리게 되면서, 어느 종교를 믿어도 선하고 올바른 삶을 살면 구원 받을 수 있다는 종교로 변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이슬람교도 이런 교리를 갖고 있다)

이렇게 된다면 복음전파의 걸림돌이 되며 신자들이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두려워 하고 있다그러나 아무리 몸부림 치고 발버둥 쳐도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개신교는 아직도 구약에 미련을 두고 성경의 무오성을 교인들에게 가르치면서, 유대의 민족신에 불과한  여호와의 배타성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며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어째서 유대인 제일주의의 선민사상즉 배타성으로 무장한 구약성경에 아직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가?

 

또한, 비과학적인 창조주의 신앙을 버릴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구약을 버린다면 진화론도 신의 창조섭리로 받아들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충고하고 싶다.

 

필자는 다른 기고(寄稿)에서 예수의 역사적 실존이나 존재자체의 허구성을 주장하기는 했지만, 그가 허구의 인물이던 실존 인물이던 간에 기독교가 배타적이지만 않다면 무엇을 믿던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신약의 내용도 문제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필자는 대체적으로 좋게 평가를 내릴 수 있다.

하지만 구약성경 에서는 정말로 마음에 와 닿는 모든 이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 훌륭한 가르침을 별로 발견하지 못했다. 구약을 읽고 있자면 역겹다는 느낌까지 받는다. 기독교인들이 구약에 대한 미련을 버릴 때, 기독교는 배타성에서 해방되어 진정한 세계종교의 모습을 갖추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옮겨온 글 일부 보완정리)

 

우리가 구약성경이라 하는 명칭은 4세기 말경 신약성경이 기독교의 경전으로 정해지면서 시작된 용어로 기독교 경전의 경계를 구분하기 위해 만들어 진 용어이다,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舊約이란 "옛 계약"이라는 의미의 한자어에서 따온것으로 여겨집니다.

기독교 입장에서는 신약과 구약의 구분이 있지만 구약만을 경전으로 삼고있는 유대교에서는 기독교의 신약성경이 있지도 않고  성경으로 인정하지도  않습니다.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같이 사용하는 구약성경의 내용은 동일하나 교파에 따라 일부 외경을 포함함으로 구성이 서로 달라졌습니다. 유대교에서는 그들이 사용하는  성경을 구약성경이라 부르지 않고  "타나크"라 하며 중립적인 용어로 히브리 성경이라 합니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구약성경 구성을 보면 유대교는 24권, 서방가톨릭은 46권, 동방정교는 50권, 개신교는 39권입니다.

구약성경은 토라(Tanak=Torah,율법), 네비임(Nebiim=Nevi' m, 선지역사), 우케투빔(Kethubim =Keth v m,  문서)로 분류 하는데 첫 글자를 따서 붙힌 명칭입니다.  이 세가지 명칭의 순서는 이런 문서들이 성경으로 채택된 역사적 순서를 말해 주기도 합니다. 구약성경이 유대교의 경전으로 정해지는 과정을 간략하게 알아 보겠습니다.

 

유대교 경전인 구약성경의 정경화 과정은 긴 세월과 여러 단계를 거쳐 이루어졌습니다.

바빌론 유수 이후에 기존에 떠돌아 다니던 전승들이 문서화 되었고, 후대의 편집과정을 거쳐 BC 400년 무렵 오경(Torah)은 오늘날의 형태로 완성 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토라(Torah), 즉 모세 오경은 유대교의 정경으로 가장 먼저 인정 받았습니다.

 

오경의 형성

토라인 오경은 1개 이상의 문서 편집으로 형성된 합성문서이고 오랜기간의 발전과 진화를 거친 종교적 산물입니다.

오경은 어떻게 기록 되었는가는 아무도 명확한 정답을 내릴수는 없습니다. 오경과 아울러 유대 역사나 예언자들의 설교가 언제 문서화 되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학문적 추구를 통하여 얻을 수 있었던 최선의 설명은 율리우스 벤하우젠의 '문서설'입니다.

 

바빌론 유수 이전에 여러 가지 전설과 법률을 모은 것들이 구두(口頭)에 의해 대대(代代)로 전승 되었습니다. 

오랜 기간에 걸쳐 여호수아, 갈렙, 기드온 등의 전설이 민중 속에 계속 인기를 모으 며 이 입 저 입으로 전해졌다. 그 후 유대인의 정체성이 확립되어갈 무렵에는 여러 법률, 다양 한 찬양시, 전설들이 단편적인 문헌으로 하나둘씩 나타났을 것이다.

먼저 남쪽의 유대 왕국에서 고대 유대 역사서가 성립된 것으로 보인다. 그 문서에는 신을 야훼라는 이름으로 불렀으며 야훼라는 말의 첫 글자를 따서 'J문서'라고 부른다. 그 다음으로 북왕 국에서 발생된 것이 'E문서'라고 한다. 이것은 J 문서보다 1세기 이상 늦게 편집 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리고 BC 621년에 유대왕국의 요시야 왕의 대혁명이 일어나게 된다. 그것은 성전에서 발견 된 책을 중심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학자들은 이 책을 현재의 신명기와 대동소이(大同小異)한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 문서를 'D문서'라고 한다.

 

이렇게 D문서가 발견됐을 때는 이미 J, E라고 하는 서사적 역사 문서가 존재하고 있었다고 파악합니다. D문서를 모세가 준 율법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J, E 와 D를 함께 섞고, 모세의 죽음 이전까지의 이야기 속에 삽입되었으며. 이렇게 하여 오경은 점진적으로 진화해 왔습니다.

그 다음 문서가 거룩에 대한 규칙과 원리를 규정한 'H문서'가 등장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사장들에 의해 작성되었던 문서가 'P문서'(제사장 문서)이다. P문서의 특색은 유대민족의 종교적 제도나 절기들의 기원을 말해주는 이야기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해서 5개,혹은 4개의 각각 독립된 문서들이 수집, 편집, 삭제, 첨가의 과정을 거쳐 오경 이라는 오늘날의 문서형태가 되었습니다. 오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은 BC 400년 경에 유대교에서 성경으로 인정 받았습니다.

 

예언서와 성문서의 형성

바빌론 유수 이후에 여러 전승들이 오경으로 묶여 지면서 유대교가 정립 되어가고, 이때쯤부터 예언서와 성문서라 불리는 문서군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네비임(Nebiim), 즉 예언서들(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서, 열왕기서, 예레미야, 에스겔, 이사야, 소예언서)과, 케투빔(Kethubim), 즉 성문서(聖文書)들(시편, 욥기, 잠언, 전도서, 아가, 애가, 다니엘, 에스더, 에스라, 느헤미야, 역대기, 룻기)은 BC 2세기의 마카비 혁명시대와 AD 70년경의 예루살렘 멸망 이후에 유대교의 경전으로 공인되었습니다.

 

예언서의 경우 마카비 시대에 씌여져 과거의 유명한 선지자들의 이름을 빌려 지나간 사건들을 예언인 것처럼 조작이 이루어졌다. 성문서들은 거의 대부분 운문(韻文)들이며, 일부는 역사를 서술한 서사시들이다. 정확한 역사를 말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유대 전설들이 공통적으로 말 해주는 것은 에스라, 느헤미야 시대에 성경의 여러 문서들이 모이고 수집되어 정경화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언서는 전기 예언서와 후기 예언서로 구분되는데, 전기 예언서는 여호수아서, 사사기, 사무엘, 열왕기, 4권의 책을 말하고 후기 예언서는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12 소선지서를 말합니다.

 

성문서는 여러 종류의 책들이 모여서 되었기에 율법서나 예언서처럼 동질적 통일성을 가지진 못했다. 성문서는 민중에게 인기가 높았던 탓에 성경으로 간주되었던 것일 뿐, 율법이나 예언서처럼 전체적으로 또는 공식적 결정에 의해서 정경에 들어오게 된 것은 아닙니다. 그것들은 오랫동안 성경이라기 보다는 종교 문학으로 간주되어 내려 왔습니다. 성문서는 대부분 익명의 책들이어서 그 저작자를 알 수 없기 때문에 과거의 위대한 인물(다윗, 솔로몬, 에스라 등)이쓴 책으로 간주하였습니다.

 

유대교의 경전으로 공인받기까지

대부분의 구약은 히브리어로 기록되어 졌는데, 구약에서 히브리어로 기록되지 않은 부분(에즈라 4:8∼6:18, 7:12∼26, 예레미야 10:11, 다니엘 2:4∼7:28 등)은 아람어로 쓰여졌습니다. 이 아람어는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 점차로 유대인의 구어(口語)로써 히브리어를 대신하게 되었던 방언이었습니다.

 

헬라어 번역본인 70인역에서는 사무엘, 열왕기를 상,하권으로, 소예언서 12편을 각기 1책씩으로 분리하여 편집 했으며, 본래 히브리어로 쓰여진 24권의 책들을 그리스어로 번역하면서 39권으로 재편집 되었습니다.

구약의 정경이 지금의 39권(히브리어 원전에서는 24권)으로 정해진 것은 AD 90년경의 얌니아 회의에서였습니다.

참고로 우리나라 기독교의 구약성경 구성을 보면 개신교는 토라 : 율법서 5권 (창세기 외 4권). 느비임 : 선지서 (여호수아외 20권). 케투빔 : 성문서 (시편외 12권)을 합하여  39권이며. 가톨릭은 개신교의  39권에 토빗기, 유딧기,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마카베오기 상권, 하권 7권을 포함하여 46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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