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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이 있는 한시

蚌腹隱明珠(방복은명주) 야보도천(冶父道川)

by 까마귀마을 2022. 7. 25.

蚌腹隱明珠(방복은명주) : 조개 속에 진주가 숨어 있듯,

石中藏碧玉(석중장벽옥) : 돌 속에 벽옥이 감추어져 있다.

有麝自然香(유사자연향) : 사향을 지니면 저절로 향기로운데

何必當風立(하필당풍립) : 굳이 바람 앞에 설 필요 있겠는가?

                       -- 야보도천(冶父道川)--

 

 

이 詩는 無常으로 으뜸을 삼는 『금강경』의 가르침을 한마디로 표현한 말이다. 선한 행을 하거나, 고요한 행을 하거나, 인욕행을 하거나, 참선을 하거나, 경전을 공부하거나 모든 불교적 수행이란 어떤 수행을 하더라도, 相을 내지 않는 것으로 써 가장 제일로 삼기 때문이다. 실은 불교적 수행을 떠나서 보통 사람들의 삶도 자신이 잘한 일에 대해서 공치사를 하거나 자랑을 하거나 생색을 내면, 백이면 백 다 비난을 듣거나 욕을 듣게 되어 있는 것이 인간들의 일상사다.

그래서 야보 스님은  “조개 속에 진주가 들어 있듯, 돌 속에 옥이 감추어져 있듯, 사향을 지니면 저절로 향기로운데 구태여 바람 앞에 설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금강경을 통하여 설하고있다.

 

높은 인격과 깊은 수행과 그리고 뛰어난 견해는 굳이 자랑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그와 같은 사람들은 스스로 자랑하지도 않는다. 자랑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아주게 되어 있다. 또한 알아주지 않으면 어떤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한스러워 하지 않으면 또한 군자가 아닌가.”라는 말이 있다. 출세간의 공부란 군자가 되는 공부와 비교할 것이 아니다. 조개 속의 진주와 같고 돌 속의 옥과 같다.

 

​그냥 보기에는 아무 것도 없는 듯하고 어리석은 사람 같아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실은 실력이 없고 공부가 없어 속이 텅 빈 사람들일수록 자기 자신을 더 드러낸다. 바꾸어 말하면 겉치레에 마음을 많이 쓰는 사람일수록 실속도 없고 내용도 없고 공부가 없다. 빈수레가 요란하듯...금강경이  영원한 인류의 교과서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이와 같은 가르침이 있기 때문이다.(옮겨온 글 보완)

 

有麝自然香(유사자연향) : 주머니 속에 송곳은 결국 주머니 밖으로 삐져나올 수밖에 없다는 囊中之錐(낭중지추)와 같은 의미로, 재능과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어딜 가도 결국 그 능력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야보도천(冶父道川)

(父(부)는 男子의 美稱으로 이름으로 부를 경우 보(甫)라고 발음한다)
남송시대의 인물로서 정인계성(淨因繼成)의 법을 이어받아 임제(臨濟)의 6세손이 되었다
야보도천(冶父道川)약칭으로 천선사川禪師라고도 한다.
속성이 적씨狄氏인 (다른 자료에는 秋씨로 되어있기도함)그를 사람들이 그를 적삼狄三으로 불렀다.
곤산昆山(지금의 산동성山東省 제성현諸城縣) 사람이다.
출가 전에는 현청에서 범인을 잡는 
하급관리 포쾌捕快 일을 맡기도 했다.

적삼은 절에 가서 설법을 듣는 것을 좋아했고 참선을 하면서도 지루해하지 않았다.
한번은 설법을 듣느라고 윗사람이 맡긴 일을 잊어버렸는데 일을 소홀히 했다 하여 채찍으로 내려치는 순간 깨달은 바 있었던 적삼은 사표를 내고 출가를 했다.
평소에 적삼에게 설법을 해주던 동재東齋의 겸수좌謙首座는 적삼의 이름을 도천道川으로 바꾸고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전에 적삼狄三으로 불렸으나 
이제 이름을 도천이라 바꿨는데 천川은 곧 삼三이다. ‘삼三’을 바로 세워 ‘천川’이 된 것처럼 그대는 이제부터 해탈의 큰 일을 위 해 바른 길을 가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다시 옛날의 적삼으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도천은 스승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고 정진하였다.

남송南宋 건염建炎초년 (1127)에 구족계를 받은 후에는 제방으로 배움을 찾아 돌아다녔다.
천봉만암天封蹣庵 선사를 참례한 후,가일층 정진하는 것에 대해 묻자
만암선사가 그를 찬탄하였다.
도천이 행각 후에 동재東齋로 돌아오자 승과 속 두 무리의 대중들이 한마음으로 그를 맞고 공경하였다.
사람들은 도천선사에게 《금강반야경金剛般若經》 강의를 요청했고, 도천은 게송을 지어 그들에게 강의하였는데,
이 게송은 지금도 세상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다.
남송南宋 융흥隆興 원년(1163), 수찬修撰 정공교鄭公喬가 야보冶父 (지금의 안휘성安徽省 여강현廬江縣 동북쪽) 에 절을 짓고 도천선사를 초청하여 법문을 열었다. 

그가 남긴 작품은 금강경 송이 유일하다
오동회원에는 이책이 건염(  남송 고종(高宗)의 첫 번째 연호)  초 1127년에 누군가의 요청으로 지어진 것이라고 적혀있다 .
그의 게송은 중국선의 극치를  선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금강경오가해 (金剛慶五家解)의 밥이오면 밥먹고 잠 오면 잠잔다 飯來開口睡來合眠 (반래개구수래합면)은 널리 알려졌다.

 

 

 

그외 야보도천(冶父道川)의 詩


圓中花笑聲未聽 (원중화소성미청)   정원의 꽃들은 웃고 있는데 그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으며
林中鳥涕淚鸞觀 (임중조체루난관)   숲 속에 새들은 울고 있는데 그 눈물이 보이지 않는구나!
竹影掃階塵不動 (죽영소계진부동)   대나무 그림자가 계단을 쓸지만 먼지 하나 일지 않고
月拓淡底水無痕 (월척담저수무흔)   달빛이 못바닥을 뚫지만 물에는 흔적이 없네

금강송 원문에는
借婆衫子 拜婆門 (차파삼자 배파문)  가령 망설이던 흰 윗옷을 집안 할미가 받았더니
禮數周旋 已十分 (예수주선 이십분)  사회적 지위에 상응하는 격식으로 이미 충분히 접대했고
竹影掃階 塵不動 (죽영소계 진부동)  대나무 그림자가 섬돌을 쓸어도 티끌은 움직이지 않고
月穿潭底 水無痕 (월천담저 수무흔)  달빛이 뚫은 못 바닥의 물엔 흔적을 남기지 않았네



遠看山有色(원간산유색) 멀리 바라보니 산에 색이 있는 듯하고
近聽水無聲(근청수무성) 가까이 들으니 물소리가 없는 듯하네.
春去花猶在(춘거화유재) 봄이 갔지만 꽃은 오히려 그대로 있고
人來鳥不驚(인래조불경) 사람이 오지만 새는 놀라지 않네.
頭頭皆顯露(두두개현로) 매번 현묘한 것이 모두 드러나니
物物體元平(물물체원평) 물물의 본성은 모두 둘이 아니네.
如何言不會(여하언불회) 어찌 말하지 않는가?
祗爲太分明(지위태분명) 다만 너무 분명한데도
得道한 분이라, 말이 簡瞭하여 더 보탤 것이 없다. 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 드러난 것과 드러나지않는 것,
형이하학과 형이상학을 깨치니 모두 하나다

 

 

*이 시의 첫 4구절의 작자가 王維 (왕유)라는 주장이 있어 왕유의 詩도 함께 옮겨 봅니다.

 

遠看山有色 (원간산유색)  먼 산을 보는데도 그 모습 분명하고

近聽水無聲 (근청수무성)  물 소리 가까이서 듣는데도 소리가 없다.

春去花還在 (춘취화환재)  봄은 가도 꽃은 오히려 활짝 피어 있고,

人來鳥不驚 (인래조불경)  사람이 와도 새들은 놀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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