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계절은 흐르고, 해는 바뀌어 다시 오늘입니다.
벌써 8년 전이라고 해야 할지, 겨우 8년 전이라고 해야 할지.
날이 아주 무더워지기 전,
벚꽃 진 자리에 철쭉 흐드러지고, 장미가 곧 꽃망울을 터트리려 단장에 한창이던 봄날.
채 피어보지도 못했던 꽃들이 졌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일이 있습니다.
어쩌면 나와는 별 상관도 없는 일인데,
마치 꼭 내가 겪은 일처럼 선명한 일이 있습니다.
꼭 이 계절, 4월만 되면 가슴을 저릿하게 하는 그런 일이요.
어쩌면 상관없는 일이 아니기에 그럴지도 모릅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두 아이를 키우는 제게, 그 일은 언제고 나의 일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조차 미안해
아무 말도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오늘은 꼭, 함께 기억하자고 쓰고 싶었습니다.
남은 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기억하는 것뿐이니까요.
시간은 또 흘러 다시 여름, 다시 가을, 다시 겨울.
그리고 다시 봄으로 연결되겠지요.
매일 생각하진 못해도 결코 잊지는 않겠습니다.
때마다 봄이 오면 더 많이 생각하고, 기억하겠습니다.
지금 매일 저와 눈을 맞추는,
꽃보다 아름다운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요.
남아있는 꽃망울들은 반드시, 무사히 피어나기를 바라면서요.
글 : 진아 (두아이의 엄마이자 고등학교 국어교사)
숨바꼭질
– 송진권--
나는 형이 숨었다고 생각해
옷장이나 문 뒤에 숨어 있다가
예전처럼 갑자기 튀어나와서
휘파람 불며 내 귀를 잡아당길 것 같아
지금도 휘파람 소리가 들리는 것 같고
형의 킥킥대는 웃음소리도 들려
그런데 형, 왜 이렇게 안 나와
못 찾겠어 형, 얼른 나와
설마 의리 없이 우리만 두고
진짜 하늘나라 간 거 아니지
엄마 아빠랑 나만 두고 간 건 아니지
진짜 하늘나라 갔으면
죽어도 다신 형 얼굴 안 볼 거다
난 이제 노란색이 싫어
산수유 유채꽃 왜 이렇게 다 노랑인 거야
달을 봐도 눈물이 나고 리본만 봐도 눈물이 나와
빨리 나와, 형
그렇게 오래 숨어 있으니까 엄마가 또 우시잖아.
- 세월호 추모 시집 <언제까지고 우리는 너희를 멀리 보낼 수가 없다>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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