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우리 친정은 모든 가족들의 행사에 '당연히' 참석하는 문화를 가졌다. 두 분 다 서울에서 먼 부산과 해남 출신으로 성인이 되자마자 서울로 상경해 자리를 잡은 세대라 친척들의 경조사는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는 행사인 셈이다. 나는 대학생이 되어서도, 사회인이 되어서도 모르는 먼 친척의 결혼식에 따라나섰다. 가기 싫어도 '큰 손녀', '장녀'라는 이유로 참석을 요구받았고 가족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에 억지로 얼굴 내비치기를 여러 번.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서야 그 행사에서 자유로울 수 있게 되었다.
그에 반해 시댁의 문화는 달랐다. 결혼 후 시댁 쪽 친척 결혼식에 딱 한 번, 그것도 강원도로 귀촌하신 어머님 아버님 뵈러 간 김에 따라갔을 뿐 누군가의 경조사에 함께 아들 내외를 부른 적이 없으셨다. 신랑에게도 참여해야 하는 가족행사에 대해 물어보면 '부모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신경 안 써도 돼." 또는 "친하지 않은 친적이야."라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얼굴도 모르는 친척의 행사까지 따라다녔던 나는 그 말이 너무 신경 쓰였다.
'어머님께 물어보지 않아도 되나? 가만히 있으면 한 소리 듣겠지?'
'내가 먼저 따라가겠다고 말씀드려야 하나?'
'오빠가 안 간다고 하니 나라도 가야 하는 것 아닌가?'
등등 혼자 머릿속으로 별 생각을 다했다.
유전자 깊숙이 '시댁은 어려운 곳이다'라는 명제가 박혀있는 K며느리에다가 '가족은 무조건 함께'라는 사고를 지닌 집에서 자랐던 경험 탓에 결혼 후 일 이 년간은 혼자 안절부절못했다.
우리 시댁은 나보다 훨씬 더 사고가 열리신 분들이다. 아니 나를 '며느리'로 인지하시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셨다. 꼭 특별한 일이 아닐 경우에는 대부분 아들인 남편에게 연락하셨다. 필요하신 것이 있다면 며느리가 아닌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해결하셨다. 명절이면 2박 3일 내내 음식 하느라 손목이 아프셨던 엄마의 모습과 드라마에서 하도 많이 봐서 인에 박혔던 시댁 문화가 내 결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그에 반해 우리 친정은 '가족'이라는 이름하에 약간의 거리감도 인정해주지 않았다.
"딸 집인데 아무 데나 오면 되지. 내가 너에게 미리 말하고 허락받고 와야 하냐?"
술 몇 잔에 목소리 톤이 높아진 아빠의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욱했던 기억이 문득 떠오른다.
낯설었다. 시부모님들의 거리감이. 결혼 초반에는 내가 뭘 잘못했나 싶었다.
사실 모르는 여자가 아들과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피와 살을 나눈 '가족'이라는 이름 안으로 갑자기 들어왔는데 어떻게 친밀하게 느낄 수 있겠는가.
"엄마 아빠 진료 때문에 서울 올라오신다던데?"
"진짜? 그럼 집 청소 좀 해야겠네."
"왜?"
"진료 아침부터라 전날 올라오실 거 아니야. 우리 집에서 주무시고 가시라고 해야지."
"친구 집에서 주무신다고 했던 것 같은데?"
"왜 시은이도 볼 겸 우리 집으로 오시라 하지."
"며느리 힘들까 봐 그렇지. 부담주기 싫으신가 보지. 눈치도 보이고. 너도 그게 편하잖아."
당뇨가 있으신 아버님은 정기적인 검진을 위해 서울로 오셨고 그때마다 서울에 사는 두 아들 집이 아닌 친구 집에서 주무셨다. 혹여나 오시게 되면 며칠 전에 신랑에게 전화로 먼저 우리의 스케줄을 물어봐주시고 오시게 되면 저녁까지 다 드신 후에 우리 집에 오셨다. 다음 날 아침도 아주 간단하게 드신 후 약속이 있으시다며 오전에 집을 나서신다. 결혼한 지 10년이 넘은 지금도 그러신다. 오히려 내가 더 있다 가시라고 왜 이렇게 바쁘시냐고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릴정도다. 며느리인 내게 거리를 두는 모습이 처음에는 '내가 더 살갑게 굴었어야 했나?'하고 걱정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깨달았다. 시부모님들은 나를 존중해주고 계심을.
나는 건강한 거리를 두고 나를 '며느리'로 대해주시는 시댁이 좋다. 감사하다.
글 :기록하는 양양(글쓰기 노동자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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