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로아스터교는 우리들에게 불을 숭배하는 배화교정도로 알고 있을테지만, 사실 기독교의 뿌리부터가 조로아스터교에 근원을 두고 있다. 사실상 이것은 신학계에서도 인정한 정설로 현재의 기독교와 유대교의 사후세계, 천사개념, 메시아신앙등은 바빌론 유수당시에 조로아스터교로부터 유입된 것이다.
그리고 신학계에서는 인정하지 않지만, 조로아스터교에서 파생된 종파중에 하나인 미트라교를 비롯한 비슷비슷한 메시아신앙등은 후에 예수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란 종교를 대표하고 있던 조로아스터교는 이란 지역의 동쪽이나 남 중앙 아시아 지역에서 시작되었다고 추정한다.
전설에 따르면, 대략 BC 1400 년 경 '이란'의 북부에서 양치기를 하던 '조로아스터'(그리스 식 표기, '짜라투스트라-Zarathustra'가 원래 페르시아 발음임)는 40세때 신의 계시를 받고 진리를 선포 하기 위해 하산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조로아스터교는 그 동안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내려오던 여러 이란 종교들을 하나의 사상 체계로 발전시켰다고 평가할수 있다. 조로아스터교는 기본적으로 철저한 일신론을 주장하면서 동시에 엄격한 이원론을 신봉하는데, 이러한 흐름은 후에 영지주의의 강력한 뿌리가 되었다.
역사적으로 북쪽 지역에 있던 이스라엘은 B.C. 722년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하고, 남유다는 B.C. 587년에 바빌론에 의해 멸망당한뒤, 유대인들은 바빌론으로 끌려가서 노예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이른바 바빌론 유수이다.
그러나 바벨론은 신흥 강대국이었던 페르시아 왕 '사이러스'(개역한글판에는 '고레스'로 표기)에 의해 곧 무너졌으며(B.C. 539), 이스라엘 민족의 운명은 페르시아(개역한글판에는 '바사'로 표기)제국으로 넘어갔다.
그들은 피정복자들에게 조로아스터교를 강요했으며, 이사야서 에서는 유대인들에게 막강한 '사이러스'의 통치에 순종 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이사야 44 장에서 '사이러스'왕을 신에 의해 임명 된 목자로 부르며, 45 장에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로 칭하고 있다.
'사이러스'왕 14 번, '다리오' 13 번, '아하수에로'왕과 '아닥사스다'왕은 7 번 씩이나 언급 하고 있다. 또, 학개 2장 23절에서는 여호와가 페르시아 총독 '예룹바벨'을 '그의 택하심을 입은 자'라 부르고 있다.
그리고 페르시아 왕들이 유대 제사장을 임명 했으며, 이사야 66장 21절에는 '마기'들이 유대 제사장으로 행세 하기도 했다. 이렇게 유대인들이 페르시아에게 순종하자, BC 532년 일부 순종 하는 유대인들을 귀환 시켜서 대형의 조로아스터 식의 사원을 짓게 했으며, BC 516 년에 완공되었다.
페르시아의 멸망 후에도 종교, 사상적 영향력은 매우 크게 작용했다. 사실상 구약성서는 페르시아 왕국의 공식 언어인 "아람"어로 씌어진 것이다. 특히 페르시아의 이원론적 사상은 유대 묵시 문학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신약속에서 자주등장하는 '바리새'(Pharisee)인은 원래 '바사' 왕국의 '파스'(Fars)라는 도시 이름에서 나온 것 이다.
인도의 '바사'인 들은 '파씨'(Parsee)라고 불리고, 현대 '이란'의 '파씨'(Farsi)도 여기서 나온 말이다. 이름의 근원에서 보듯이 '바사' 국의 영향에 젖은 자들로 근본 유대주의자들 과 충돌 하였는데, 이 들은 소수로써, '요세푸스'에 의하면 6000 명 이상 넘지 않았다고 한다.
페르시아왕이 유대제사장을 임명했듯이 유대제사장에는 '바사'인 '마기'들이 다수 포함 되어 있었으나, BC 332 년에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이 예루살렘을 정복 하고서 '바사'의 영향력은 현저히 감소되었다. 이 때 부터 AD 73 년까지 종교의 자유가 허용 되었는데, 특기할 것은 이 기간에 '산헤드린'이 창설 되었다. 이것은 유대인 종교 회의로 종교적, 사법적, 형법 구속력을 갖는 기관 이었다. '요세푸스'에 따르면, 이 기관은 두 붕당이 관장하였는데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 이었다고 한다.
한편 천국도 지옥도 갈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중간 상태가 있는데, 선한 행동과 악한 행동을 저울질했을 때에 전체적으로 균형을 이루는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혼합된 지역이라는 뜻을 가진 '하밍스타간'(Hamingstagan)이라는곳이 있다. 이것은 오늘날 천주교가 인정하고 있는 연옥설과 유사하다.
또한 조로아스터교는 마지막 심판이 있을 것이며, 마지막 날에 심판의 책에 기록된 대로 지상 천국에 다시 부활 할 것을 믿었다. 그리고 심판이전에 사망한 사람들은 세상의 역사적인 진행이 끝날 때까지 '잠정적인 상태'(provisional state)로 남아 있다고 믿었었다.
그들은 아후라 마츠다에 의해 이끌어지는 빛의 세력과 '앙그라 마인유(Angra Mainyu)'에 이끌어지는 어두움의 세력이 투쟁하는 과정으로 보았으며, 종국적으로 '아우라 마츠다'가 승리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 때 악은 영원히 파멸 당하고 죽었던 사람들은 다시 부활하게 된다. 조로아스터교는 육체적 부활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고 믿었다. 그들에게 아후라 마츠다가 이 세상을 지배할 궁극적인 역사의 종말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이 있었다.
구원자는 첫 조상과 전 인류의 뼈를 일으켜 세우고 생명과 살을 붙여 주실 것이라고 보았다. 죽은 자는 다시 살아나고 영광 속에서 다시는 파괴되지 않을 육체를 받는다. 구원자에 의해 신성한 의식이 치러지고 마지막 변형과 함께 육체가 부활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유대인들은 누구나 죽으면 '쉐올(She'ol)', 즉 땅 밑의 세계로 가고 만다고 믿었다.
"왕이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라 네가 무엇을 보았느냐 여인이 사울에게 이르되 내가 신이 땅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나이다" [사무엘상 28장 13절] 율법을 거역하고 사무엘의 영혼과 만나 보려고 했던 사울에게 무녀(巫女)가 한말이다.
여기서 언급한 '신(엘로힘)'은 여호와를 가르키는 것이 아니라, 사무엘의 영혼을 가르키는 것으로, 무녀는 사무엘의 영혼이 땅밑(쉐올)에서 올라온다고 말하고 있다. '쉐올'에 대해서 살피면 구약시대의 사후개념은 신약시대와 같이 분명하지 않았다.
구약시대의 성도들은 사후에 의인과 악인이 구분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그것을 확실하게 신학적으로 정립하지는 못했다. 다만 사후에 쉐올(음부)에 들어가는 것으로 생각하였으며, 이 쉐올은 일종의 '지하세계'(underworld)로 인식되었다. 이곳에 들어간 사자(死者)들은 무의식 상태에 있게 되며, 따라서 여호와에게 감사할 수도 없게 된다고 생각했다. (시편 16장10절에도 다윗이 자신의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말도록 호소하고 있다) 히브리인들은 죽은 후 사자가 가서 거하는 곳이 반드시 있다고 믿었으며, 그곳을 가르켜 '음부'(陰府)라고 일컬었다.
헬라어로 번역된 70인역에서는 '하데스'로 번역하고 있다.
구약시대 히브리인의 음부 개념은 다분히 고대 근동인들의 개념과 엇비슷하였다. 즉,의인과 악인 간에 약간의 구별이 있긴 하지만 두 종류의 영혼이 함께 기거하는 어두침침한 지하 세계가 곧 음부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곳에 거하는 자들은 일명 '르바임'(Rephaim)이라고 하는 망령(亡靈)들로서 살아 있을때의 인간 형체가 희미하게 남아있는 '그림자적 존재'라고 이해하였다.
아무튼 이러한 기본 개념하에 구약 성경에서 묘사하는 쉐올의 다양한 개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의인과 악인, 신자와 불신자가 함께 거하는 장소(창37:35;시9:17), 어둡고 그늘진 장소(욥10:21,22;시143:3),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장소(욥10:21),침묵의 장소(시94:17;115:17),
여호와를 찬양할수도 없는 장소(시6:5;88:10-12), 아무것도 알수 없는 세계이며 일도 계획도 없는 장소(욥14:21;전9:5-10),모든 생물들이 필연적으로 들어갈 집(욥30:23),땅밑에 존재하는 장소(민16:30),망각의 장소(시 88:6),
그 곳에 거주는 지상의 비통한 삶보다도 더 가련한 삶(전 9:3-6), 사람의 운명은 짐승의 운명과 다를바 없으며 모두 다 티끌에서 왔다가 티끌로 돌아간다(전 3:18-21).
그리고, 유대인들은 여호와가 이스라엘 백성을 음부에서 구해 낼 날이 있을 것으로 믿었다. 시편기자와 욥의 간구는 바로 이런 소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쉐올의 개념은 헬라적 '영혼불멸'의 관념과는 대립된다. 의인은 죽어서 천국으로 가고 악인은 지옥으로 간다는 것과는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의 생각과 , 모든인간이 죽으면 일단 지하세계로 간후에 여호와가 음부에서 구원 한다는 것과는 다르다.
구약성서의 쉐올표상은 메소포타미아의 지하세계의 신화의 영향을 입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특히 바빌론 유배이후의 문서들, 즉 시편과 제 2 이사야에서(14장 묵시문학편 참조)조로아스터교에 의한 새로운 구원관이 도입된다.
영혼불멸이나 부활을 믿지 않았던 사두개파와는 다른, 페르시아의 영향을 받은 바리새인들이 등장한것도 이때였다. 이런 쉐올의 개념은 '연옥설'이라는 개념으로 아직도 카톨릭에서 인정하고 있다. 요한계시록의 죽은자들의 부활은 그야말로 헤브라이즘이 아니라 철저히 조로아스터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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