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특정 정당에 소속되어 있지 않으며, 정치와 전혀 무관한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입니다. 아래의 제 글은 특정 후보에 대한 저의 '확신'보다는 '바람'을 담고 있습니다. 물론 그 바람은 무턱댄 것이 아니라 제 나름의 판단에 기초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글을 읽는 당신의 판단은 저와 다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당신의 그 판단에 따라 투표하면 될 것입니다. 저는 제가 지지하는 후보가 아니라 다른 후보가 당선이 되더라도 부디 그가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퇴임할 때 국민들의 진심 어린 박수를 받으며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니 저의 바람과 당신의 바람은 닮아 있습니다. 2022년 3월 9일 우리는 각자의 소중한 바람을 안고 투표소로 향할 것입니다. 그날 뵙겠습니다.
2009년 저는 일산의 연수원에 있었습니다.
5월 23일 그날은 토요일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기숙사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사서 돌아가던 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망소식을 처음 접했습니다.
기숙사로 돌아와 같이 방을 쓰고 있던 선배에게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방에서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고 있던 그는 제가 전한 소식을 듣고 그대로 털썩 주저앉아 한참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유명 연예인의 가십거리를 이야기하는 듯한 톤으로 소식을 전했던 저는 가까운 지인의 사망소식을 들은 것처럼 비통해하는 그를 보면서 무안해졌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뭘 저렇게까지...'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당시 저에게 노무현은 다소 경박했던 실패한 대통령에 불과했으니까요.
그로부터 얼마 뒤 저는 지방의 어느 검찰청에서 검찰실무수습을 받았습니다. 실무수습 첫날, 10여 명의 사법연수생들을 상대로 오리엔테이션을 담당했던 모 검사는 그 자리에서 뜬금없이 자신이 노무현 대통령 뇌물죄 사건의 수사팀에 있었다는 말을 꺼냈습니다. 기수로 보아 해당 수사팀의 말단이었을 그는 실무수습 온 연수생들에게 "비극적인 일이 발생한 건 안타깝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정말로 자신의 부인이 돈 받은 걸 몰랐을까요"라는 질문 아닌 질문을 던졌습니다. 의도나 자리의 성격을 고려할 때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었지만 그 자리에 있던 연수생 중 그 누구도 반발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진실은 알 수 없으니 고인에 대해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된다', '당시 검찰의 행태는 옳지 못했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저 역시 그저 눈치를 살피며 침묵하였습니다.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면, 검사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앉아 있었습니다.
시간이 한참 흐른 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기록들(책, 인터뷰, 영상 등)을 접하고 그를 조금 더 알게 되었을 때, 저는 과거의 위 두 장면이 떠올라서 부끄러웠습니다. 오류와 부족함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는 국민에 대한 '진심'을 가진 정치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그 진심이 국민들에게 가닿기를 바라며 끝까지 노력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심지어 퇴임 후에도 한 명의 시민으로서 그 노력을 계속하였습니다. 물론 이러한 마음과 태도는 정치인 또는 지도자라면 누구나 응당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못한 자들을 훨씬 더 많이 보아왔습니다. 어느 인터뷰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정치는 대의를 말하는 직업인데, 입으로는 대의를 말하면서 그 행동은 자기 개인의 이익을 좇아가고 있을 때, 그런 기회주의적 행태를 보일 때 신뢰가 무너지는 것이죠. 신뢰를 잃은 지도자가 갈등을 조정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거죠. 더욱이 그 사회 사람들의 가치의식과 윤리를 파괴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사람들이 전부 다 이제 힘센 자에게 줄을 서고, 힘센 자 편에 가담하고, 속이려고 하고, 연고를 가지려고 하고... 전부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게 되거든요."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살아 계실 때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많은 오해와 미움을 받았습니다. 특히 소위 말하는 '기득권 세력들' 중 상당수는 그를 증오에 가깝게 미워하고 무시했던 거 같습니다. "정면으로 대드는 놈은 완벽히 굴복시켜야 한다. 그래야 다시는 대드는 놈이 안 나온다." 유시민 씨는 어느 방송에서 일부 정치세력과 언론권력이 그를 그토록 미워하고 결국에는 부숴 버렸던 이유를 이렇게 표현하더군요.
저는 그들이 가졌던 그 커다란 미움과 적개심의 근원에는 '부끄러움' 역시 작용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입으로는 '국민', '대의'를 떠들지만 실제로는 그저 사적 이익을 위해 권력을 추구하고 사용하던 추한 자신들과 대비되는 그를 보면서, 그들은 감정적으로 불편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느꼈던 그 불편한 감정의 실체는 사실 '부끄러움'이었지만,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을 잊은 지 오래된 그들은 '자신에게 느껴야 할 부끄러움'을 '그에 대한 미움과 적개심'으로 왜곡하여 표출하였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일반 개인들 사이에서도 이런 왜곡된 감정표출은 종종 일어나지만, 그것이 힘 있는 자들에 의하여 조직적으로 일어날 때 그 대상의 삶은 무참히 부서져 버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비록 그는 불굴의 의지와 용기로 오랜 시간을 버티며 대통령의 자리까지 올라갔지만,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래서 더욱 철저하게 그리고 끝까지 짓밟힘을 당했습니다. 그가 그 지옥같은 시간의 끝자락에서 지인들에게 하였다는 "정치하지 마라"라는 말은 그래서 더욱 슬프게 들립니다.
그는 "정치하지 마라"라고 하였지만, 후보님은 그가 세상을 떠나고 약 1년 뒤 성남시장에 당선되어 본격적으로 정치인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습니다. 연수원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강연을 듣고 삶의 방향을 수정하였다는 당신은 이제 노무현이 섰던 바로 그 자리에 서서 대선을 치르고 있습니다. 거기서 바라본 세상의 풍경은 어떠한가요. 그리고 지금 후보님 마음속에 가장 크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여전히 처음 정치를 시작할 때 가졌던 그 '진심'인가요.
전투형 노무현. 후보님의 오랜 별명입니다. 그러나 저는 후보님의 그 별명을 좋아하지 않았고 그저 지지자들이 붙인 과장된 정치적 표현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오히려 '추진력은 있지만 다소 과격한 정치인', '도덕성 논란이 많은 정치인', '포퓰리즘 정치인' 등이 후보님에 대하여 제가 가지고 있던 인상에 가까웠습니다. 이는 저처럼 특별히 정치에 관심이 없고 포털의 정치기사는 주로 제목만 보고 스킵하는 평범한 시민들 상당수가 가지고 있을 후보님에 대한 인상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한 인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 계기는 유튜브에서 우연히 보았던 후보님의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토론회'였습니다. 저는 그 영상을 통해 처음으로 후보님이 여러 정치사회 현안들에 대하여 길게 말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토론회 영상 속 후보님은 제가 막연히 생각하고 있던 모습과 많이 달랐습니다. 시종일관 차분한 자세로 그리고 정제된 언어로 자신의 의견을 설득력 있게 개진하는 후보님의 모습은 상당히 인상 깊었습니다. 그 후 저는 삼프로tv , 100분 토론 등 후보님의 토론회, 간담회 영상들을 하나씩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영상들 속 후보님의 '말'은 '자기가 말하고 있는 내용에 대하여 진정으로 고민한 사람의 말'이었습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그렇게 들렸습니다. 이는 단순히 언변이 좋은 것과는 다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후보님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제시한 근거들 중에는 저로서는 그 타당성을 판단하기 어려운 것들도 있었고, 일부 주장들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게 더 중요하게 느껴졌던 것은 그 말들에 담긴 고민의 흔적과 진정성이었습니다.
후보님에게 따라붙는 도덕성 논란들도 뒤늦게 살펴보았습니다. 음주운전 같은 일부 부정할 수 없는 논란들도 있었고, 여전히 의문이 남는 논란들도 있었지만, 상당수 논란들은 거짓이거나 왜곡, 과장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가족사와 관련한 욕설 등 논란 부분은 마음이 아팠습니다. 영원히 상처로 남을 가족 사이의 일이 정치적으로 악용되고 후보님에 대한 부정적 인상의 중요한 축을 이루게 된 현 상황이 후보님에게 얼마나 큰 아픔일지, 저로서는 가늠하기도 어려운 거 같습니다.
상대 진영은 이제 후보님을 공격하기 위하여 누군가의 죽음조차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최근에 후보님이 사람들 앞에서 잠시 마스크를 내리고 "제가 악마로 보이나요?"라고 말하는 영상을 보았습니다. 웃으면서 농담조로 한 말이었지만, 저는 웃을 수 없었습니다. 어떤 이들에게 후보님은 새롭게 나타난 "정면으로 대드는 놈"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후보님을 '욕쟁이'로, '한국판 차베스'로, '아수라의 모델'로, '데스노트를 가진 자'로, 그리고 '악마'로 규정하고 싶어 합니다.
그들의 주장과 달리 저는 후보님이 국민들에 대한 진심을 가진 정치인, 보다 나은 길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정치인, 과오를 인정하고 수정하여 계속해서 발전하는 정치인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지금 제가 가진 후보님에 대한 이러한 인식이 부디 정확한 인식이길 바랍니다. 제가 행사한 한 표에 후회가 없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먼 훗날 어린 제 딸이 자라서 '과거'의 대통령이었던 후보님에 대해 이야기할 때 "아빠가 뽑았던 대통령이야"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저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우리들 모두의 바람일 것입니다.
쓸데없이 글이 길어졌습니다. 후보님의 과거 2017년 경선 연설을 인용하며 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남은 대선일정 동안 건강에 유의하시고, 2022년 3월 9일 그날 반드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 각자가 가진 꿈을 대신 실현해주는 도구일 뿐입니다. 언제나 드렸던 말씀처럼 여러분의 위가 아니라 우리 모두 함께 손잡고 옆에 서서, 국민이 괴로울 때는 제가 앞장서고, 우리 모두 즐거울 때는 뒤에서 뒷바라지하는 진정한 '대리인', 진정한 '공복'의 길을, 뚜벅 뚜벅 흐트러지지 않고, 초심을 갖고 그대로 계속 여러분과 함께 가겠습니다."
( 브런치 NoBoundary님의 글을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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