泰山不讓土壤 (태산불양토양 )
河海不擇細流 (하해불택세류 )
태산은 한줌의 흙무더기도 사양하지 않으며
강과 바다는 작은 물줄기도 가려서 받지 아니한다
泰山不讓土壤 故能成其大 (태산불양토양 고능성기대)
河海不擇細流 故能就其深 (하해불택세류 고능취기심)
태산은 흙을 사양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능히 그처럼 커질 수(높아질 수)있었고,
강과 바다는 가는 물줄기를 가리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렇게 깊어질 수 있었다.
위의 문장은 <사마천의 사기(史記> 이사열전(李斯列傳)에 나오는 말로서, 이사(李斯)는 초(楚)나라 사람으로 순경(荀卿)을 섬기면서 제왕의 통치술을 익힌 후, 더 큰 뜻을 펼치기 위해 초나라를 떠나 진(秦)나라로 갔다. 마침 진나라 장양왕(莊襄王)이 죽자, 이사는 진나라의 승상 여불위(呂不韋)의 가신(家臣)이 되었다.
여불위는 그를 신임하여 시위관(侍衛官)에 임명하였다. 이후 이사는 진나라 왕에게 유세할 기회를 얻어 큰 신임을 얻게 되어 객경(客卿)의 자리에 올랐다. (객경: 다른 나라 인사를 등용하여 공경(公卿)의 자리에 해당하는 직위를 주는 것)
그런데 한(韓)나라에서 온 정국(鄭國)이라는 자가 논밭에 물을 대는 운하를 만든다는 명목하에 진나라의 인력과 자원을 소비시켜 동쪽 정벌을 포기하게 하려는 음모를 꾸몄다가 발각되는 일이 발생했다. 이 일이 일어나자, 왕족과 대신들은 모든 빈객을 축출하자고 들고일어났고, 이사 역시 그 대상에 들었다. 이에 이사는 상소, 간축객서(諫逐客書 : 내용은 아래 올립니다)를 올려 자신의 뜻을 전했다. 다음은 그 상소문의 끝부분이다.
"신이 듣건대, 땅이 넓으면 곡식이 많아지고, 나라가 크면 백성이 많으며, 병력이 강하면 병사가 용감해진다고 합니다.
태산은 본디 한 줌의 흙도 사양하지 않았으므로[泰山不辭土壤] 그렇게 높을 수 있으며, 하해(河海)는 작은 물줄기라도 가리지 않았으므로[河海不擇細流] 그 깊음에 이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왕은 백성들을 물리치지 않음으로써 그 덕망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국토는 사시사철 아름답고 귀신이 복을 내립니다. 이는 일찍이 오제(五帝)와 삼왕(三王)께 적이 없으셨던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백성을 버려서 적국을 이롭게 하고 빈객과 천하의 인재들을 내몰아 진나라에 공을 세우지 못하게 하고, 다시는 진나라로 들어오지조차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는 '적에게 병사를 빌려 주고 도적에게 양식을 보내주는 격'입니다. 진나라에서 나지 않는 물건 중에 보배로운 것이 많고, 진나라에서 태어나지 않은 인재 중에 진나라에 충성하려는 자들이 많습니다. 지금 빈객들을 내쫓아 적국을 이롭게 하고 백성을 적국에 가게 하면 이 나라는 텅텅 비고 나라 밖 제후들에게는 원한을 사게 되어 뒤늦게 나라를 구하려 해도 늦습니다."
이 상소문을 읽고 진나라 왕은 빈객들을 축출하지 않았다한다.
간축객서(諫逐客書)의 내용
('간할 諫, 쫓을 逐, 손님 客, 문장 書)
"신이 듣기로 관리들이 객경들을 내쫓기 위해 논의를 한다던데 생각해보면 이는 잘못된 일입니다.
옛날 목공께서는 인재를 구해 서쪽으로는 융에서 유여를 얻었고 동쪽으로는 완에서 백리해를 얻었으며, 송나라에서 건숙을 맞아 왔고 진(晉)나라에서 비표와 공손지가 왔습니다.
이 다섯 사람은 진(秦)나라 출신이 아님에도 진 목공께서 그들을 등용하여 스무개의 나라를 합병하고 마침내 서융을 재패했습니다.
효공께서는 상앙의 변법을 채택해 풍속을 바꾸니 백성은 번성하고 나라는 부강해졌으며, 백성들은 부림당하는 것을 즐거이하고, 제후들은 친해지고 복종하며 초나라와 위나라의 군사를 사로잡아 점령한 땅이 천 리에 달하여 지금까지 나라를 강성하게 만들었습니다.
혜왕께서는 장의의 계책을 받아들여 삼천의 땅을 빼앗고 서쪽으로 파촉을 합병하고 북쪽으로 상군을 거두고 남쪽으로 한중을 취하였으며, 아홉 오랑캐들을 포섭하여 언과 영을 제압하고 동쪽으로 성고의 험난함에 의지하여 좋은 땅을 떼어 받아 마침내 여섯 나라의 합종을 깨뜨려서 이들이 서면하여 진나라를 섬기게 하니 공적이 지금까지 베풀어지고 있습니다.
소양왕은 범수를 얻어 양후를 폐하고 화양군을 내쫓아 왕실을 강하게 하고 사사로운 가문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막았으며, 제후들을 잠식하여 진나라가 제업을 이루게 했습니다.
이 네분의 군주는 모두 객경들의 공을 얻었습니다.
이런 일로 보건대 객경이 어찌 진나라에 부담이 되겠습니까!
만약 네 분의 군주가 객경을 물리치고 받아들이지 않고, 선비들을 멀리 하고 중용하지 않았다면, 이는 부유한 나라를 만들거나 이익이 되는 일이 없도록 하였을 것이고, 진나라가 강대하다는 이름도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곤륜산의 옥과 화씨의 옥새를 가지고 명월 구슬을 드리우고 태아를 차셨으며, 섬리말을 타시며 취봉의 깃발을 세우고 악어의 가죽으로 만든 북까지 지녔습니다.
이 여러 보물들은 단 하나도 진나라에서 나지 않았는데 폐하께서는 이를 좋아하시니 어째서입니까?
반드시 진나라에서 나야 되는 것이어야 한다면 야광구슬로 조정을 꾸밀 수 없을 것이고 코뿔소의 뿔이나 상아로 만든 그릇들을 즐길 수 없으며, 정나라와 위나라의 미녀는 후궁에 채울 수 없고 결제와 같은 뛰어난 말로 마구간을 채울 수 없으며, 강남의 금과 주석도 사용할 수 없고, 서촉의 단청으로 채색할 수 없을 것입니다.
후궁을 꾸미고 진열해 마음과 뜻을 즐겁게 하고 귀와 눈을 기쁘게 하는 것도 반드시 진나라에서 나온 것이어야 한다면 완의 진주 비녀와 모난 구슬 귀고리, 아호의 옷과 촉의 장식 비단도 폐하의 앞에 바쳐지지 못하며, 풍속에 따라 우아하고 아름답게 꾸미고 얌전한, 조나라 여자도 폐하 곁에 서지 못합니다.
무릇 물독을 치고 질그릇을 두드리며 쟁을 타고 넓적다리를 두드리면서 목청을 돋우어 노래를 불러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것이 진나라의 소리이고, 정나라와 위나라의 상간, 소, 우, 상, 무는 다른 나라의 음악입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진나라 땅의 물독을 두드리고 질그릇을 치던 음악을 버리고, 정나라와 위나라의 음탕하고 사치스러우며 듣기 좋은 음악을 가져다 쓰고, 진나라의 쟁을 타는 것을 바라지 않고 소, 우를 취하는데, 이는 무엇 때문입니까?
외국의 음악이 마음을 즐겁게 하고, 귀와 눈을 만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 폐하께서 사람을 쓰는데 있어서는 그렇지 아니합니다.
쓸 수 있는지 없는지를 묻지 아니하고, 옳고 그름와 곧고 굽음을 이야기하지 아니하고, 진나라 출신이 아니라면 제거하고 외국의 인사면 내쫓으려 합니다. 그렇다면 중히 여기는 것은 색과 음악과 주옥에 있고, 가벼이 여기는 것은 사람들에 있는 것이니, 이는 천하를 지배하고 제후에 군림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신이 듣자하니 땅이 넓으면 생산되는 양식이 많고, 나라가 크면 사람이 많고, 군대가 강하면 병졸이 용감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태산은 한 줌의 흙더미도 사양하지 않았기에 그 높음을 이룰 수 있었고, 하해는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았기에 그 깊이를 이룰 수 있었으며 왕은 여러 무리를 버리지 아니하므로, 그의 덕행을 밝힐 수 있습니다.
그래서 땅을 동서남북으로 나누지 아니하고, 백성은 외국을 문제로 삼지 아니하고, 사시는 아름다운 것을 가득 채우고, 귀신은 복을 내리는데, 이것이 바로 다섯 제와 세 임금에게 적이 없는 까닭입니다.
지금 백성을 버리면 적국을 돕는 것이고 객경을 물리치면 제후들에게 종사할 것이며, 천하의 선비들을 물러나게 하면 감히 서쪽(진나라)으로 향하지 못하게 하고, 발을 묶어서 진나라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면, 이는 바로 “외적에게 무기를 빌려 주고, 도적에게 양식을 보내는” 행동입니다.
진나라에서 나지 않는 물건이라도 보배라 할 만한 것이 많고, 진나라 출신이 아닌 인재라도 충성하려는 자가 많습니다.
지금 객경을 축출하는 것은 적국을 돕는 것이고, 백성이 줄어들고 적국의 인구가 늘어나면, 안으로는 저절로 비게 되고 밖으로는 제후들의 원망을 사게 되어 나라를 구하고 위태로움을 없애려고 해도 어찌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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