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日庵
(서산대사: 휴정)
深院花紅雨 심원화홍우
長林竹翠烟 장림죽취연
白雲凝嶺宿 백운응령숙
靑鶴伴僧眠 청학반승면
깊은 선원에는 붉은 꽃비 흩날리고
긴 대나무 숲에는 푸른 안개 흩어지네.
흰 구름은 산봉우리에 머물러 자고
푸른 학은 스님과 함께 졸고 있네.
쌍계사 불일암(佛日庵)은 청학봉 중턱에 있는 진각(眞覺1178~1234)국사가 창건한 조그마한 암자다.
송광사 불일암과 이름도 같고 규모도 비슷하여 혼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삼신산 깊은 골짝 불일암에 진달래 붉은 꽃잎은 쏟아지는 비처럼 나부끼고 흔들리는 대 숲은 검푸른 아지랑이 같으니, 산봉우리에는 구름이 머물다가 떠날 줄을 모르고 세상 밖 사람들 찾는 이 없어, 등 넘어 청학동에서 놀러온 청학을 벗 삼아 스님은 졸고 있구나!
쌍계사 주지로 있던 서산대사 휴정(休靜1520~1604)스님이 어느 봄날에 불일암을 찾아 그때의 정경을 시로 남겼다.
*서산대사(西山大師) ; (1520~1604) 조선중기의 고승, 평남 안주 출신.
속성은 完山崔氏이며 이름은 汝信이며 자는 玄應 (현응)이다, 법명은 휴정(休靜). 호는 청허(淸虛). 별호는 白華道人, 西山大師로 불리우며 서산(西山)인 묘향산에 오래 머물러 서산(西山)이라 함.
9세에 어머니를, 10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안주 군수를 따라 한양에 가서 12세에 성균관에 입학함.
15세에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낙방하고 동배(同輩) 여러 명과 함께 지리산을 유람하며 지내다 숭인(崇仁)의 설법을 듣고 여러 경전을 정독하고 다시 부용 영관(芙蓉靈觀, 1485-1571)에게 3년 동안 지도를 받았다.
그 때 그의 나이 18세. 그 3년뒤 21세에 계(戒)를 받음.
그 후 명산 제찰(名山 諸剎)을 찾아다니면서 수도하다가, 어느 날 벗을 찾아 봉성「鳳城(南原)」을 지나가다 우연히 낮닭 우는 소리를 듣고 크게 깨쳐 다음과 같이 게송을 지었다.
발백심비백(髮白心非白) 고인증누설(古人曾漏洩) 머리 세어도 마음 안 센다고 옛 사람 일찌기 일렀더구나.
금문일계성(今聞一鷄聲) 장부능사필(丈夫能事畢) 닭울음 한 소리 이제 듣고 나니 장부의 할 일을 다 마쳤도다.
홀득자가저(勿得自家底) 두두지차이(頭頭只此爾) 문득 자가 것을 깨닫고 나니 온갖 것이 다만 이뿐이로세.
천만금보장(千萬金寶藏) 원시일공지(元是一空紙) 팔만대장경도 본시는 한 장 빈 종이로세.
그 뒤로 관동(關東)의 명산을 두루 편답하니 그 때 나이가 30이었다.
1552년(명종 7)에 새로 부활된 승과(僧科)에 합격하여 대선(大選)이 되고, 3년 후에는 선교양종판사(禪敎兩宗判事)가 되었으나 2년 후에 그 직책을 사양하고 금강산· 지리산· 묘향산에서 수행함.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휴정을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에 임명하니, 그는 묘향산에서 나와 전국 승려들에게 총궐기하는 격문을 방방곡곡에 보내 승군(僧軍)을 평남 순안 법흥사(法興寺)에 집결시켜 여러 곳에서 큰 공을 세움.
임진왜란 7년 전쟁이 끝난 후 79세의 휴정은 그의 제자 유정(惟政)과 처영(處英)에게 모든 일을 맡기고 묘향산으로 들어감. 그 뒤로도 금강산, 지리산, 묘향산 등지를 왕래하며 많은 제자를 이끌었다.
1604년(선조 37) 정월 23일에 묘향산 원적암(圓寂庵)에서 입적함. 세수 85세, 선납(禪臘) 65.
그 날 아침 대사는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눈이 쌓인 길을 헤치고 남여(籃輿 : 주로 산길에 쓰이는 뚜껑이 없고 의자같이 된 가마)를 타고 여러 암자를 마지막으로 돌아보신 후 원적암으로 돌아와 손을 씻고 위의를 갖추고 불전에 분향한 다음 스스로 붓을 들고 조실에 들어가서 그의 자화상에 이렇게 적었다. 즉
팔십 년 전 거시아(八十年前渠是我) 팔십 년 전에는 네가 내이니
팔십 년 후 아시거(八十年後我是渠) 팔십 년 뒤 오늘은 내가 너로다.
하고, 다시 임종게(臨終偈)로써 ( 千計萬思量 紅爐一點雪 泥牛水上行 大地虛空裂 )
억천만 가지 온갖 생각들 불에 떨어진 흰눈 한 조각 진흙 황소가 물 위로 가고 땅과 허공이 꺼져 버렸네.
이렇게 써놓고 고요히 앉아서 입적하였다.
저서 : 삼가귀감(三家龜鑑)·선가귀감(禪家龜鑑)·선교석(禪敎釋)·청허집(淸虛集)·운수단(雲水壇)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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