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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이 있는 한시

相見時難別亦離(無題)

by 까마귀마을 2021. 10. 27.

 

 

無題 (무제) 

相見時難別亦難  (상견시난별역난)   만남도 어렵지만  헤어지긴 더 어려워
東風無力百花殘  (동풍무력백화잔)   시들어 지는 꽃을 봄바람 인들 어이하리

春蠶到死絲方盡  (춘잠도사사방진)   봄 누에는 죽기까지 실을 뽑고
蠟炬成恢淚始乾  (납거성회누시건)   초는 재 되어야 눈물이 마른다네

曉鏡但愁雲鬢改  (효경단수운빈개)   아침 거울 앞에 변한 머리 한숨 짓고
夜吟應覺月光寒  (야음응각월광한)   잠 못 이뤄 시 읊는 밤 달빛은 차리

蓬山此去無多路  (봉산차거무다로)   봉래산은 여기서 멀지 않으니
靑鳥殷勤爲探看  (청조은근위탐간)   파랑새야 살며시 가보고 오렴

 

註.

東風無力百花殘 : 봄바람이라도 온갖 꽃이 시들어감을 막을 힘이 없다 곧 어찌 할 수 없다. 꽃을 피게 하는 봄바람의 힘으로도 百花가 지는 것을 막지 못하듯 우리의 이별도 어쩔 수 없다는 뜻이다. 
 春蠶到死絲方盡 : 春蠶(춘잠)은 봄날의 누에, 실을 뽑는 누에는 죽어서야 비로소 실이 끊어지듯 이 몸이 죽을 때까지 당신을 향한 생각을 그치지않는다는 뜻이다. 絲는 思와 重意音으로 일종의 비유이다. 
 蠟炬成灰淚始乾 : 蠟炬(납거)는 촛불, 촛불은 다 타 재가 되어서야 비로소 촛물이 마르듯 죽어서 재가 되기 까지는 눈물이 마를 수 없다는 뜻이다. 촛물을 눈물로 흔히 비유한다.
 淚 : 촟농과 눈물을 뜻하는 중의어이다 
 曉鏡但愁雲鬢改 : 雲鬢(운빈)은 미인의 검은 머리를 푸른 구름에 비유한 말. 새벽에 일어나 거울을 들여다 보며 검은 머리가 세어감을 근심하고 있을까? 
 夜吟應覺月光寒 : 밤에 시를 읊으며 달빛이 싸느랗게 스며드는 것을 느끼고 있을까? 이 두 구는 그리운 여인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시인이 상상하며 읊은 것이다. 
 蓬萊 : 一本 蓬山, 신선이 산다는 蓬萊山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애인이있는 곳을 지칭한다
 多路 : 먼 길. 

 靑鳥 : 西王母의 심부름하는 새, 仙界와 연락하는 새. 여기서는 소식을 전해주는 사람을 말함
 殷勤 : 慇懃(은근)과 같음, 살며시.

 

이상은의 시는 푸르다.
때로는 맑은 물과도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친근하게 다가온다.

지극히 서정적이고 감성적이다.

그러나 넘치지 않는다.

두보도 좋고,
이백도 좋으나
이상은은 그보다 훨씬 더 좋다.
백거이는, '내가 죽어 그대의 아들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 라고 말 했다고 한다.
47세에 불록했다하니, 아쉽고 또 아쉬운 사람이다.

李商隱은 많은 戀愛詩(연애시)를 無題라는 제목으로  썼는데,   당시삼백수에는 이상은의 無題라는 제목의 시가 6수가 실려 있다. 무제는 연모하는 어떤 대상을 중심으로 사랑과 이별의 정을 읊은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것은 그의 연애가 공언할 수 없는 불행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시는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며 만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읊은 것이다.  사랑과 이별은 문학에서 가장 즐겨 다루는 소재 중의 하나이다. 오늘날의 대중가요만이 아니라 과거의 한시도 사람이 만나서 좋아하다가 헤어지는 일을 읊은 경우가 많다.

한편으로는 그의 시가 매우 함축적이고 암시적으로 표현되어 있어 정치적 우의가 담겨 있는 작품으로 해석되기도 하였다. 이상은(李商隱)은 꿈과 상상과 현실을 오고 가며 신화와 전설을 활용하는 등 몽상적이며 신비주의적 색채를 띤 서정시를 지었는데, 그의 복잡한 정치 환경과 생애로 인하여 함축적이고 암시적인 표현들은 역대 비평사에 논쟁거리가 되어왔다.

명말청초 전겸익(錢謙益)은 注李義山詩集序(주이의산시집서) 有學集(유학집) 卷15에서 “이상은(李商隱)의 무제시는 젊은 여인이 읽으면 슬퍼지고, 실의한 선비가 읽으면 비애를 느낀다. "義山無題諸什 春女讀之而哀 秋士讀之而悲”(의산무제제집  춘녀독지이애  추사독지이비)라고 하였는데 무제에 대한 논쟁을 정리한 적절한 설명이라 할 수 있다.

만당(晩唐)의 시인 이상은(李商隱)(812~858)은 서정을 다룬 시가 많은데, 수사를 중시하여 시어가 화려하다는 평을 받는다, 당나라에서는 도교를 숭상하여 사람들이 도관(道觀)에서 도술을 즐겨 배웠다. 이상은도 옥양산(玉陽山)에 있는 영도관(靈都觀)에 가서 도를 배웠다. 이 도관은 현종이 옥진공주(玉眞公主)를 위해 지었기 때문에 궁녀들이 여도사로 많이 와있었다. 이상은은 도관에서 여도사 송화양(宋華陽)을 만나 사랑을 키웠지만 결국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 있었다.

이상은이 지은 무제 6首중 나머지 5首 전부를 아래 올립니다.

 

無題
八歲偸照鏡 (팔세투조경) 여덟살 때 남몰래 거울을 들여다 보았어요

長眉已能畵 (장미이능화) 눈썹을 길게 그렸어요
十歲去踏靑 (십세거답청) 열살 때 꽃놀이 갔어요
芙蓉作裙衩 (부용작군차) 치마에 연꽃을 수놓아 입었어요
十二學彈箏 (십이학탄쟁) 열 두살때 쟁 타는 법을 배웠어요
銀甲不曾卸 (은갑부증사) 손에서 은갑을 놓지 않았어요
十四藏六親 (십사장육친) 열 네살 때 부모님 뒤에 숨었어요

懸知猶未嫁 (현지유미가) 아직 시집 못갔다 생각할까 조심스러웠어요
十五泣春風 (십오읍춘풍) 열 다섯 살때 봄 바람이 왠지 슬펐어요
背面楸韆下 (배면추천하) 그네 아래서 얼굴 돌려 눈물 흘렸어요

無題

昨夜星辰昨夜風,(작야성신작야풍), 어제밤의 별, 어제밤의 바람

畵樓西畔桂堂東.(화누서반계당동). 화려한 누각의 서쪽 둔덕, 계당의 동쪽

身無彩鳳雙飛翼,(신무채봉쌍비익), 내 몸엔 고운 새, 채봉의 쌍 날개 없으나

心有靈犀一點通.(심유령서일점통). 마음에는 신령스런 동물, 영서의 한 점 통함이 있다

隔座送鉤春酒暖,(격좌송구춘주난), 떨어져 앉아 송구놀이, 봄날의 술은 따뜻하고

分曹射覆蠟燈紅.(분조사복납등홍). 편을 나누어 사복놀이 촛불은 붉어라

嗟余聽鼓應官去,(차여청고응관거), 아! 새벽 종소리, 나는 관아에 가야한다네

走馬蘭臺類斷蓬.(주마난태류단봉). 난대로 말 달려가니 흡사 떨어진 쑥과 같아라

 

無題

來是空言去絶蹤,(내시공언거절종), 온다는 말 빈 말이요, 가고는 종적 없고

月斜樓上五更鐘.(월사누상오갱종). 누대 위에 달은 기울고 오경의 종소리 들려온다

夢爲遠別啼難喚,(몽위원별제난환), 꿈에서 먼 이별하여 울어도 대답하기 어렵고

書被催成墨未濃.(서피최성묵미농). 깨어나 글을 쓰려니 마음 바빠 먹물이 짙지 못하네

蠟照半籠金翡翠,(납조반농금비취), 초의 불빛, 금비취 병풍에 반쯤 비치고

麝熏微度繡芙蓉.(사훈미도수부용). 사향 향기, 수 놓은 부용 휘장을 넘어 스미어든다

劉郎已恨蓬山遠,(류낭이한봉산원), 유량은 이미 봉산이 먼 것을 한탄했는데

更隔蓬山一萬重.(갱격봉산일만중). 나는 더욱 봉산 너머 일만 겹 봉우리를 넘어간다

 

無題

颯颯東風細雨來(삽삽동풍세우래) 살랑살랑 봄바람에 가랑비 내리고

芙蓉塘外有輕雷(부용당외유경뢰) 연못가 연꽃 밖에 가벼운 우뢰소리

金蟾齧鏁燒香入(금섬설쇄소향입) 황금 뚜꺼비 자물쇠 물고 향을 태우고

玉虎牽絲汲井回(옥호견사급정회) 백옥 호랑이는 비단실 끌며 물 긷는다

賈氏窺簾韓掾少(가씨규렴한연소) 가씨가 발을 엿보니 한연은 젊었었고

宓妃留枕魏王才(복비류침위왕재) 복비가 베개를 남겼으니 위왕의 재주로다

春心莫共花爭發(춘심막공화쟁발) 춘심에 덩달라 다투어 꽃핌을 다투지 말라

一寸相思一寸灰(일촌상사일촌회) 그리워하는 마음마다 재가 되리라

 

無題

重帷深下莫愁堂(중유심하막수당), 겹겹으로 휘장 깊이 드리운 막수(莫愁)의 방

臥後淸宵細細長(와후청소세세장). 잠자리 든 뒤 깊은 밤은 길기도 해라

神女生涯原是夢(신녀생애원시몽), 무산신녀(巫山神女)의 생애는 원래 꿈이었고

小姑居處本無郎(소고거처본무랑). 소고(小姑)의 거처엔 본래 임이 없었지

風波不信菱枝弱(풍파부신릉지약), 바람과 물결은 마름 가지 연약한 걸 알지 못하고

月露誰敎桂葉香(월로수교계엽향). 누가 시켜 달과 이슬이 계수나무 잎을 향기롭게 했던가

直道相思了無益(직수상사료무익), 그대 향한 그리움 아무리 무익해도

未妨惆悵是淸狂(미방추창시청광). 상관없어요 슬픈 가운데 애정에 눈멀어도

 

李商隱 : (812∼858) 만당(晩唐)의 시인, 자 의산(義山), 호 옥계생(玉谿生).
詩의 시대였던 당나라에서도 후기의 이상은은  복합적이고 함축적인 표현을 많이 사용한 시인으로 유명하며 문구가 아름답고 음조가 멋지더라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시가 많지만 창작 기교 발전에 큰 공헌을 하였다는 평도 받는다.
삭막한 풍경이나 꼴불견 행위를 말하는 殺風景을 처음 나열한 사람이기도 하다.
변려문(騈儷文)의 명수이긴 하였으나, 그의 시는 한(漢)· 위(魏)· 육조시(六朝詩)의 정수를 계승하였고, 唐詩에서는 杜甫를 배웠으며, 李賀의 상징적 기법을 사랑하였다. 
또한 전고(典故)를 자주 인용, 풍려(豊麗)한 자구를 구사하여 당대 수사주의문학(修辭主義文學)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작품에는 사회적 현실을 반영시킨 서사시, 또는 위정자를 풍자하는 영사시(詠史詩) 등이 있으나, 애정을 주제로 한 무제(無題)에서 그의 창작력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이의산시집(李義山詩集) 번남문집(樊南文集)이 있으며, 이의산잡찬(李義山雜纂)도 그의 저작으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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