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기독교의 기원에 대한 과학의 의문은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시작된다. “예수 그리스도가 정말 살았었는가?” 예수라는 이름을 가졌고, 그리스도라 불렸으며, 19세기 전 팔레스타인에 산 사람이 있으며, 그의 삶과 가르침이 성경에 올바르게 쓰여져 있는 것일까?
그리스도가 신의 아들--인간의 형태를 취한 신 자신--이며, 그가 무한히 넓은 우주에 흩어져 있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무수한 태양들과 그 주위를 도는 세계들의 창조자이고, 자연의 힘은 그의 의지를 따르는 종 일뿐만이 아니라 그의 명령에 따라 그 경로를 바꾸기까지 하였다는 것이 정통파의 사상이지만,
그런 사상은 세계의 모든 개별적인 사상가들, 단순한 신앙보다는 이성과 경험에 의존하는 모든 사상가들, 자연의 통합성을 고대의 종교적 설화의 도전보다 우선하는 과학계의 모든 사람들에 의해 버려진 바 있다.
그리스도의 신성이 버려졌을 뿐만이 아니라, 그가 인간으로서 존재했다는 것도 점점 더 심각하게 의심을 받고 있다.
세계의 가장 능력 있는 학자들 중 여러 명이 그가 살았던 적이 있었다는 것 자체를 부정한다. 그 의문을 다룬 것으로, 대단히 심각하고 그 연구에 있어서 심오하고 철저한 지도적인 문헌들이 모든 국가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그리스도가 신화였다는 확신을 전파하고 있다.
그 의문은 엄청난 중요성을 지니는 것이다. 기독교도뿐만이 아니라 자유사상가들에게 있어서, 이는 가장 심대한 중요성을 지니는 문제이다. 기독교라는 종교는 세계에 있어서 강력한 사실이어 왔고 지금도 그러하다. 좋은 면으로든 나쁜 면으로든, 그것은 수 세기 동안 인류의 가장 뛰어난 에너지를 흡수해왔다. 문명의 발달을 지연시켰으며 인류의 가장 고귀한 사람들 중 일부를 순교자로 삼았다. 그리고 오늘날 지식의, 자유의, 사회와 산업의 진보에, 그리고 인류가 진정으로 한 형제가 되는 일에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이다.
세계의 진보적 세력들은 바로 이 아시아의 미신과 전쟁 중이며, 이 전쟁은 진리와 자유의 승리가 완전해 질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정말 살았었는가?” 하는 질문은 이성과 신앙 사이의 갈등의 뿌리 그 자체에까지 도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판가름 나는가에 따라서, 어느 정도로는, 종교가 세계를 지배할 것인지 혹은 인본주의가 세상을 지배할 것인지가 결정이 된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으로서 세상에 살았다는 증거는 무엇일까? 그리스도의 실재를 증명하기 위해 이용되는 근거들은 신약의 네 복음서들 -- 마태오, 마르코, 루가, 요한복음이다. 이 복음서들은, 그리고 이 복음서들만이 유일하게, 그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그런데 우리는 마태오, 마르코, 루가, 요한에 대해 전혀 조금도 아는 바가 없으며, 복음서들 안에서도 그들에 관해 이야기된 것이 전혀 없다. 게다가, 복음서들 자체도 이 사람들에 의해 쓰여졌음을 주장하고 있지 않다. 그것들은 “마태오의 복음” 혹은 “마르코의 복음”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라 “마태오에 의한 복음,” “마르코에 의한 복음,” “루가에 의한 복음,” “요한에 의한 복음”이라 불린다. 이들 복음서들에 있는 단 한 줄이라도 누가 쓴 것인지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그것들이 언제 쓰여졌는지, 혹은 어디에서 쓰여졌는지에 대해서도 아무도 모른다.
성경학자에 의하면 마르코의 복음이 넷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결론을 내린 주요한 이유들로는 이 복음이 다른 세 복음들보다 더 짧고, 더 간단하며, 보다 자연스럽다는 점이 있다. 마르코의 복음은 동정녀 출생이나 산상설교, 주의 기도, 혹은 기타 그리스도의 있었다고 하는 삶에서 중요했던 사실들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게 없다. 이러한 사항들은 마태오와 루가에 의해 더해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갖고 있는 마르코의 복음은, 원래의 마르코 복음이 아니다. 마태오 복음과 루가 복음의 작가들이 마르코 복음을 필사하고 확대한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마르코도 “원래의 마르코 복음”이라 불리기 보다 이전의 문서를 필사하고 확대한 것이다. 이 원전은 교회사 초기에 사라져 버렸다. 어떤 것이었는지, 누가 썼는지, 어디에서 쓰여졌는지, 그런 것들은 아무도 모른다. 요한의 복음이 비역사적인 문헌이라는 사실은 기독교 학자들도 받아들인다. 그들은 거기에 담긴 것이 그리스도의 삶이 아니라, 그에 대한 해석이며, 그리스도가 어떠해야 했었는가에 대한 이상화되고 미신적으로 꾸며진 그림을 제공해주는 것이고, 크게 보아 그리스의 철학적 사색들로 구성되었음을 인정한다. “공관 복음”이라 불리는 마태오, 마르코, 루가의 복음들을 하나로, 요한의 복음을 다른 하나로 놓으면, 그 둘은 서로 반대되는 극단의 사상을 나타내고 있다.
처음 세 복음과 네 번째 복음의 가르침 사이의 차이는 너무나 완전해서, 예수가 공관 복음에 합치되게 가르쳤다면, 요한이 밝히는 것처럼은 가르칠 수 없었으리라는 점을 모든 비평가들이 인정할 정도이다. 사실, 처음 세 복음과 네 번째 복음에서, 우리는 서로 완전히 다른 두 명의 그리스도들을 만나게 된다. 내가 둘이라고 했던가? 셋이어야만 한다. 마르코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인간이었고, 마태오와 루가에 따르면, 반신이어야 했는데, 요한은 신 그 자신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죽었을 것으로 상정되는 시기보다 백 년 후 이전에, 현재의 형태로, 복음서들 중 어느 하나라도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믿을만한 증거는 아주 사소한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들이 구성된 연대를 고정할 수 있는 아무런 신뢰성 있는 수단도 갖지 못한 기독교 학자들은 자신들의 계산과 추측이 허용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이른 시기를 할당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얻어진 연대조차도 그리스도나 혹은 그의 사도들의 연대로부터는 상당히 동떨어진 것이다. 마르코복음은 70년 이후 언제인가에 쓰여졌고, 루가복음은 약 110년, 마태오복음은 약 130년 이후에 쓰여졌으며, 요한복음은 아무리 빨라도 서기 140년 이후라고 한다. 이 연대들이 추측에 의한 것이며, 가능한 한 이르게 잡은 것임을 상기시키고 싶다. 마태오복음과 마르코복음, 루가복음에 대해 행해진 첫 번째 역사적 언급은 서기 190년 정도에, 기독교의 교부 성 이레니우스(St. Irenaeus)에 의한 것이었다. 복음서에 대한 그보다 이른 유일한 언급은 안티오크의 테오폴리스(Theopholis of Antioch)에 의한 것으로, 그는 서기 180년에 요한복음에 대해 언급했다.
이 복음서들이 묘사하고 있는 채 가장하고 있는 사건들이 일어난 후 백 오십 여년이 지날 때까지 그 복음서들이 쓰여졌음을 밝힐 수 있는 것은 전혀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 그리고 그것이 예수의 존재에 대한 유일한 근거이다. “미신적 종교”의 학식 있는 저자인 Walter R. Cassels는, 기독교의 기원에 대해 쓰여진 것들중 가장 역작인 자신의 한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이 사항에 관한 문헌과 증언들을 철저히 규명한 후,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 후 한 세기 반 동안, 이들 복음서들 중 어느 하나의 것이든, 그것이 존재했다는 명확한 흔적은 조금도 발견하지 못했다.” 어떻게 예수가 죽은 것으로 되어 있는 때보다 백 오십 년이 지날 때까지 쓰여지지 않았고, 믿을만한 증언에 근거하지 않은 복음서들이 그가 실제로 살았다는 증거로서 조금이라도 가치를 가질 수 있겠는가? 역사는 반드시 진짜 문헌들 혹은 생생한 증거 위에 세워져야만 한다. 오늘날 어떤 사람이 백 오십 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의 삶을 쓰려고 시도하면서, 자신의 진술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그 어떤 역사 문헌도 제시하지 않는다면, 그의 글은 역사가 아니라 소설이 될 것이다. 그 안에 담긴 단 한 줄의 진술도 믿을만하지 못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이었다고 생각되며, 그의 제자들도 유대인 어부들이었다고 전해진다.
그가 사용한 언어, 그리고 그의 추종자들이 사용한 언어는, 따라서, 아람어였을 것이다 -- 그것이 당시 팔레스타인에서 흔히 사용된 언어이다. 그러나 복음서들은 그리스어로 쓰여졌다 -- 모두가 그렇다. 다른 언어로부터 번역된 것도 아니었다. 사 백년 전의 에라스무스(Erasmus) 이래로 모든 선도적인 기독교 학자들은 그것들이 원래 그리스어로 쓰여졌음을 주장해 왔다. 이는 그것들이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나, 혹은 초기 기독교도들 중 어떤 인물에 의해 쓰여진 것이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다. 알 수 없는 사람에 의해, 외국어로, 사실을 알았을 것으로 생각되는 사람들이 죽은 후 몇 세대가 지난 후에 쓰여진 외국의 복음서들인 것이다 -- 그리고 그것이 예수가 역사적으로 살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사용되는 증거인 것이다.
게다가 복음서들이 근거가 되기에는 너무 오랜 세대가 지난 후에 쓰여졌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쓰여졌을 원래의 문헌들은 보존되지도 않았다. 이 시기에 쓰여진 복음서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유실되었거나 파괴되었다. 우리가 갖고 있는 가장 오래된 복음서들은 그런 복음서들로부터 만든 복사본들의 복사본들의 복사본들일 것이다. 우리는 누가 이 복사본들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언제 만들었는지도 모르며, 또한 정직하게 만들어진 것인지도 알지 못한다. 가장 초기의 복음서들과 신약의 가장 오래된 현존하는 원고들 사이에는 삼백 년이라는 공백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 원래의 복음서들이 담겨져 있다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처음 몇 세기 동안은 많은 복음서들이 유통되었으며, 그들 중 많은 수는 위작들이었다. 이런 것들 가운데에는, “바울의 복음,” “바르톨로메오의 복음,” “유다 이스가리옷의 복음,” “이집트인들의 복음,” “베드로의 복음 혹은 회상,” “그리스도의 신탁 혹은 금언” 등, 기타 수십여 가지의 훌륭한 작품들이 있었으며, 그들 중 상당수는 여전히 “신약 위경”에서 읽을 수 있다. 무명의 사람들이 복음서를 쓰고서 거기에 저명한 기독교 인물들의 이름을 달아서 마치 중요한 것처럼 보이게 하려 한 것이다.
사도들의 이름으로, 심지어는 예수의 이름으로 작품들이 날조되었다. 가장 위대한 기독교의 교사들은 "신앙의 영광을 위하여 속이고 거짓말 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가르쳤다. 일류 기독교 역사가인 Dean Milman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경건한 사기는 인정되었고 공언되었다.”
Dr. Giles 목사는 다음과 같이 쓴다. “당시 엄청난 수의 책들이 속이기 위한 목적으로 쓰여졌음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Robertson Smith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파벌의 견해에 맞게 창조된, 엄청나게 많은 양의 위조 문헌이 떠돌았다.” 초기 교회는 위조된 종교 저작들로 넘쳐났다. 이렇게 많은 양의 문헌들 가운데에서, 우리의 복음서들은 사제들에 의해 선택되었고 신의 영감을 받은 것으로 불려졌다. 이 복음서들도 역시 위조된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확실한 보장은 없다. 이렇게 물어보자. 만일 예수 그리스도가 역사적 인물이었다면, 그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문헌들을 위조해낼 필요가 있었을까? 실제로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 사람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문헌을 위조해 낼 것을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초기 기독교 위작자들은 기독교 주장의 근거가 약한 것임을 멋지게 증언하는 것이다.
위조된 것이든 진짜이든, 복음서들이 예수의 삶에 대해 뭐라고 하는지 살펴보자. 마태오복음과 루가복음은 그의 계보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일치하는가? 마태오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까지 사십 한 세대가 있었다고 말한다. 루가는 오십 여섯 세대라고 한다. 그럼에도 둘 다 요셉의 계보를 일러주는 체 하며, 둘 다 세대들을 세어 나간다! 이것만인 것도 아니다. 복음사가들은 다윗과 그리스도 사이의 이름들에서, 두 개를 제외한 전부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이러한 무가치한 계보는 신약의 작가들이 자신들의 영웅의 조상에 대해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었는지를 드러내준다.
만일 예수가 살았다면, 그는 반드시 태어났어야만 한다. 그는 언제 태어났는가? 마태오는 그가 헤로데가 유대아의 왕이었을 때 태어났다고 전한다.
루가는 퀴리노가 시리아의 총독일 때 태어났다고 한다. 그가 이들 두 지배자들이 다스리는 동안 태어났을 수는 없는데, 왜냐하면 헤로데는 기원전 4년에 죽었고, 로마 역사에 퀴리니우스로 나오는 퀴리노는 그로부터 십 년 후에 이르러서야 시리아의 총독이 되었기 때문이다. 헤로데와 퀴리니우스 사이에는 헤로데의 아들인 아르켈라우스의 통치 기간이 고스란히 놓여져 있다.
마태오와 루가 사이에는, 따라서, 그리스도의 출생 시기에 대해, 최소한 십 년의 모순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는 초기 기독교도들이 언제 그리스도가 태어났는가에 대해 전적으로 아는 바가 없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브리타니카 백과사전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있다. “기독교들은 메시아가 지구에 나타났던 해에 관해, 서로 다른 근거로 백서른세 가지의 서로 상반되는 의견들을 추측한다.” 생각해보라 -- 백서른셋의 서로 다른 년도들, 그 각각이 그리스도가 세상에 온 해로 주장되고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장엄한 확실성인가!
18세기 후반이 되어갈 무렵, 학식 있는 예수회 수사 Antonmaria Lupi는 그리스도의 출생이 일 년의 모든 달에 할당되었음을 보이는 책을 썼다.
그리스도는 어디에서 태어났는가? 복음서들에 따르면, 그는 습관적으로 “나자렛 예수”라 불렸다. 신약의 작가들은 갈릴래아의 나자렛이 그의 고향이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경주했다. 공관복음들은 그가 생의 삼십 년을 그 곳에서 보냈다고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마태오는 그가 미가서의 예언을 충족시키기 위해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고 선언한다. 그렇지만 미가의 예언은 예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그것은 군사적 지도자의 도래를 예언한 것이지, 신성한 설교자를 예언한 것이 아니다. 마태오가 이 예언을 그리스도에게 적용한 것은 그의 복음이 역사가 아니라 소설이라는 의심을 강화시켜 준다. 루가는 그의 출생이 베들레헴에서 이루어지게 했는데, 그의 어머니가 아우구스투스 시저가 명한 호구조사에 응하기 위해 남편과 함께 그 곳으로 갔다고 했다. 루가가 언급한 전국적인 인구조사에 대한 것은 그 어느 것도 로마 역사에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그러한 인구조사가 정말로 있었다고 치자. 로마의 풍습은, 호구조사가 행해지면, 모든 남성은 자신이 거주하는 곳에서 보고하도록 되어 있었다. 가장 혼자만이 보고를 했다. 그 어떠한 경우에도 그의 아내나, 혹은 다른 피부양인들이 그와 함께 해야 할 필요가 없었다. 이러한 확립된 풍습 앞에서, 루가는 요셉이 호구조사를 위해 나자렛에 있는 자신의 집을 떠나서 두 지역을 건너 베들레헴까지 갔다고 선언한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그는 얼마 있지 않으면 아기를 출산할 자신의 아내 마리아를 대동해야만 했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분명 역사가 아니라 설화이다. 그리스도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는 이야기는 그를 메시아로 삼고 다윗 왕의 후손으로 하기 위해 필요한 부분이었다.
메시아는 다윗의 도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야만 했던 것이다. 그래서 Renan이 둘러가는 방식이라 했던 것에 의해, 그의 출생이 그 장소에서 있었던 것으로 해야만 했던 것이다. 왕도에서의 그의 출생은 명백히 소설적이다.
그의 집은 나자렛이었다. 그는 “나자렛 예수”라 불렸고 생의 마지막 해에 이를 때까지 그 곳에서 살았다고 전해진다. 이제 의문이 생긴다 -- 그 시대에 나자렛이라는 고을이 있었을까? 신학자들이 쓴, 영어권에서 행해진 가장 훌륭한 바이블 참고 문헌인 바이블 백과사전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예수의 시대에 나자렛이라는 고을이 존재했는지를 확실하게 주장할 수 없을 것이다.” 나자렛이라는 고을이 있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그리스도의 생에 관해 가정되는 사실들이 상상에 의한 것일 뿐만이 아니라, 그가 태어나고 어린 시절과 성인기를 보낸 고을이, 우리가 아는 한, 신화의 지도 위에만 존재했던 것이다. 신성한 인간의 실재를 증명하는, 이 얼마나 경이로운 증거인가! 그의 조상에 대해 전적으로 무지하고, 그의 출생 시기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고, 그가 태어난 고을의 존재마저도 심각한 의문을 받고 있다!
예수는 태어난 후, 루가복음에 기록된 단 하나의 사건을 제외하고는 존재가 사라져 버리고, 그가 서른의 나이에 도달할 때까지 우리는 그에 대해 전혀 아무것도 들은 바가 없다. 그가 열 두 살의 나이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학자들과 토론을 하는 것이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는 루가에 의해서만 전해진다. 다른 복음들은 그 토론에 대해 전적으로 아는 바가 없다. 그리고 이 단일한 사건을 제외하면, 네 복음서들은 자신들의 영웅의 삼십 년에 이르는 삶에 대해 깨지지 않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 침묵의 의미는 무엇일까? 만일 복음서들의 작가들이 그리스도의 삶의 사실들을 알았다면, 어째서 그들은 그 삼십 년에 이르는 삶에 대해 전혀 아무 것도 이야기해 주지 않은 것일까? 어떤 역사적 인물의 삶이 삼십 년 동안 세상에 알려진 게 전혀 없을 수 있을까? 만일 그리스도가 신의 화신이라면, 만일 그가 세상에 알려졌던 사람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스승이라면, 만일 그가 인류를 영원한 고통으로부터 끄집어내기 위해 온 것이라면 -- 사람들 가운데에서 보낸 처음 삼십 년 동안의 존재를 기억하는 것이 아무런 가치도 없었을까? 사실은 복음사가들이 사역 전 예수의 삶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던 것이다. 그의 아기 시절과 어린 시절, 그리고 청년기를 창안해 낼 필요가 없었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그들의 목적에 필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루가는 성전 사건을 씀으로써 침묵의 규칙으로부터 오래전에 벗어났다. 성전 학자들과 토론 이야기는 그와 관련된 모든 상황에 의해 신화적임이 증명된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그가 함께 있는 것으로 믿고 예루살렘을 떠났다는 진술, 그가 자신들과 함께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기까지 하루 동안 여행을 했다는 진술, 사흘 동안 찾아 헤맨 후, 그가 학식 있는 학자들에게 질문을 하고 질문에 답변을 하며 성전에 있는 것을 찾아냈다는 진술은 있었을법하지 않은 점이 어마어마하게 포함되어져 있다. 이에 더하여, 그 사건이 삼십 년에 이르는 침묵의 기간에 둘러 싸인 채 루가복음에만 유일하게 나온다는 사실도 있고, 거기에 더 더하자면 다른 작가들 중 어느 누구도 국가의 학자들과 토론을 한 어린 예수에 대해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있으며, 다시 더하자면 지적으로 가장 우수한 사람의 역할을 하는 진지한 사람의 앞에 아기가 나타났다는 있을법하지 않은 사실을 더하면, 터무니없는 이야기라는 사실이 완벽하게 분명해진다.
복음서들은 그리스도의 생에서 삼십 년 동안에 대해 아무 것도 아는 바가 없다. 그 생의 말년에 대해서는 무엇을 알고 있을까? 전도, 즉 그리스도의 공생활은 얼마나 오랫동안 행해졌을까? 마태오, 마르코, 루가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공생활은 약 일 년 동안 계속되었다. 만일 요한복음이 믿을만하다면, 그의 전도는 삼 년에 걸쳐 행해졌다. 공관복음들은 그리스도의 공생활이 거의 전적으로 갈릴래아에서 이루어졌으며, 예루살렘에는 딱 한 번, 죽기 얼마 전에 갔을 뿐이라고 가르친다. 요한은 그리스도의 노동의 장면이라는 면에서 다른 복음사가들과는 절망적일 정도로 의견을 달리한다. 그는 그리스도의 공생활의 대부분이 유대아에서 행해졌으며, 그리스도가 여러 번에 걸쳐 예루살렘에 갔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갈릴래아와 유대아 사이에는 사마리아 지방이 놓여 있다. 만일 그리스도의 전도 중 마지막 몇 주를 뺀 전부가 그의 고향 갈릴래아 지방에서 수행되었다면, 그 전도의 상당 부분이 두 지방이나 떨어져 있는 유대아에서 행해지지 못했음은 분명하다.
요한은 성전에서 환전상들을 쫓아 낸 것이 그리스도의 전도 초기에 일어난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그에 따르는 심각한 결과에 대해서는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전혀 이야기하는 바가 없다. 그러나 마태오, 마르코, 루가는 성전 정화가 그의 전도가 끝날 무렵에 일어났으며, 이 행위로 인해 그에게 사제들의 분노가 쏟아졌고, 그래서 그들이 그를 파멸시킬 방법을 찾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사실들 때문에, 바이블 백과사전은 그리스도의 생에 발생한 사건들의 순서에 대해 복음사가들이 제시한 것은 모순적이고 믿을만하지 않으며, 복음서들의 연대기적 구조는 가치가 없고, 그 사실들은 “복음사가들이 역사적 정확성에 대한 관심이 부재한 채 쓴 것임을 너무나 분명하게 드러내 주는 것일 뿐이다”라고 확인해 주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마태오, 마르코, 루가, 요한은, 그들이 아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상상한 것을 쓴 것이다.
그리스도는 예루살렘에 여러 번 갔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성전에서 매일같이 설교했다고 한다. 열두 명의 제자들이 그를 따랐으며, 열광적인 남자와 여자들의 무리도 역시 그러하였다. 한 편에서 사람들은 그를 위해 호산나를 외쳐댔고, 다른 한편에서는, 사제들이 그와 토론에 임했으며 그의 목숨을 취할 방도를 찾고 있었다. 이 모든 일들은 그가 권력층에 잘 알려져 있었음에 분명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실, 그는 예루살렘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들 중 하나였어야만 한다. 그런데, 그렇다면, 사제들이 그의 제자들 중 한 사람에게 그를 배반하도록 뇌물을 주어야 할 필요는 어째서 생겨났던 것일까? 누군지 모르는 사람, 즉 신분이 불명확한 사람이나 숨어 있는 사람만이 배신을 당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매일같이 거리에 나서고, 매일같이 성전에서 설교하는 사람, 계속해서 대중의 눈에 노출이 된 사람은 어느 때라도 체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모두가 아는 선생을 배신하라고 사제들이 뇌물을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의 배신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예루살렘에서의 그의 공적인 형세에 대한 모든 주장들은 거짓임에 틀림이 없다.
그리스도의 십자가형 이야기보다도 더 있을법하지 않은 것은 없다. 로마 문명은 세계 제일이었다. 로마인들은 지금까지 알려졌던 세계의 변호사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변호사들이었다.
그들의 법정은 질서와 공정함의 전형이었다. 재판도 없이 형이 선고되는 경우는 없었으며, 유죄가 확정되기 전에는 집행자에게 건네지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그럼에도 우리는 무고한 사람이 본시오 빌라도가 판사로 있는 로마 법정에 불려왔으며, 그에 대해 그 어떠한 잘못의 혐의도 제시되지 않았고, 판사가 그를 무고하다고 선언했는데, 군중들이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하고 외쳤기 때문에, 구경꾼들을 만족시켜 주기 위해, 빌라도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고 자기 자신도 무고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채찍질 하라고 내어주었고, 다시 십자가형에 처할 수 있도록 집행자에게 건네주었다는 말을 믿으라는 요구를 받고 있는 것이다! 티베리우스 시저의 시대에 로마 법정의 책임자가 어떤 사람이 무고한 것을 알게 되어 그렇게 선언하고, 그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노력을 경주했다가, 스스로 그를 고문하고, 다시 십자가에 못 박으라며 소리쳐대는 군중들에게 건네주었다는 것을 생각이나 할 수 있겠는가? 로마 법정에서 무고한 것이 드러났는데 그를 십자가형에 처했다? 그것이 문명화된 로마의 그림인가? 그것이 온 세계가 그 법률을 본받은 로마란 말인가? 십자가형의 이야기를 읽을 때, 우리는 역사를 읽는 것인가 아니면 종교 소설을 읽는 것인가? 역사가 아닌 것은 확실하다.
그리스도가 십자가형을 당했다는 이론으로, 기독교의 진화의 처음 여덟 세기 동안, 기독교 예술에서 그린 것은 세계를 구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고통을 받는 양이었지, 인간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해야만 할까? 카타콤의 그림들이건 기독교 무덤이건 십자가에 매달린 인간의 형상은 그려지지 않았다. 모든 곳에 양이 기독교의 상징으로서 그려졌다 -- 십자가를 운반하는 양, 십자가의 발치에 있는 양, 십자가에 매달린 양의 모습이 그것이다. 어떤 그림들은 양이 인간의 머리와 어깨, 팔을 지니고 있고, 손에 십자가를 들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 인간의 형태를 취하는 과정에 있는 신의 양이다 -- 십자가형 신화가 점점 현실적이 되어가는 것이다. 8세기가 끝나갈 무렵, 교황 하드리안 1세는, 6회 콘스탄티노플 종교회의의 칙령을 확정하며, 이후로는 십자가에 매달린 양의 위치에 인간의 형상을 놓을 것을 명했다. 기독교가 고통 받는 구원자의 상징을 발전시키는 데 팔 백 년이나 걸린 것이다. 팔 백 년 동안,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는 양이었다. 그러나 만일 그리스도가 실제로 십자가형에 처해졌다면, 어째서 십자가 위의 그의 자리가 그토록 오랫동안 양에게 찬탈 당했던 것일까? 역사와 이성에 비춰볼 때, 그리고 십자가에 매달린 양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십자가 사건을 믿어야 할 이유가 있겠는가?
그리고 이렇게 생각을 해 보자. 만일 그리스도가 신약이 묘사하고 있는 것과 같은 기적들을 행했다면, 만일 그가 눈먼 사람의 눈에 빛을 주었고, 만일 그의 마법적인 손길에 의해 마비된 몸에 젊음의 활력이 생겨났다면, 만일 죽어서 썩어가던 사람이 그의 명령에 되살아나 다시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면 -- 왜 사람들은 그를 십자가형에 처하고 싶어 했을까? 문명화된 사람들이 -- 왜냐하면 당시의 유대인들은 문명화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 선한 일을 하며 돌아다니는, 용서를 설교하며, 나병에 걸린 사람들을 깨끗하게 고치고, 죽은 사람을 일으키는 친절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을 향해 그토록 강렬한 살의적인 증오를 가졌다는 사실 -- 인류의 가장 고귀한 은인을 십자가형에 처할 때까지 진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다시 묻겠다 -- 이것은 역사인가, 아니면 소설인가?
사실이라고 주장되는 관점에서 보면, 그리스도가 십자가형을 당했다는 설명은 마치 라자로가 되살아났다는 것이 자연의 관점에서 볼 때 불가능한 것만큼이나 불가능하다. 명백한 진실은, 네 복음서들이 역사적으로 무가치하다는 것이다. 그것들에는 모순들, 비현실적인 일들과 기적들, 그리고 터무니없는 일들이 넘쳐난다. 그것들 안에는 진실이라 생각될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도 없는 반면, 거짓임을 분명히 알 수 있는 것들은 상당히 많이 들어 있다.
그리스도의 동정녀 출생, 빵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인 일, 나병을 고친 일, 물 위를 걸은 일, 죽은 사람들을 살린 일, 숨이 끊어졌다가 부활한 일 등에 대한 설명은 이 세상에서 전해지는 그 어떤 이야기들보다도 거짓이다. 복음서들의 기적적인 요소들은 그것을 쓴 것이, 역사는 어떻게 써야만 하는지를 몰랐던, 혹은 자신들이 쓰는 것이 진리이건 아니건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던 사람들이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복음서들의 기적들은 고지식함 혹은 교활함에 의해 날조된 것들이고, 만일 기적들이 날조되었다면, 그리스도의 역사 전체가 상상을 기초로 짜 맞춰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겠는가? 유럽의 최일류 신학자들 중 한 명으로 스위스 취리히의 신약 해석학 교수인 Dr. Paul W. Schmiedel은 바이블 백과사전에서, 복음서들 안에 있는 것들 중 오직 아홉 구절만이 예수가 한 말로 믿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독일 내에서 그리스도가 신화라는 학설을 주장하는 대표자인 Arthur Drews 교수는 이 구절들을 분석해서 쉽게 날조될 수 없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음을 보였다. 이들 구절들이 나머지 구절들만큼이나 비역사적이라는 것은 저명한 영문학자이며 예수가 결코 살지 않았다고 하는 John M. Robertson의 주장이기도 하다.
놀랄만한 폭로를 해야겠다. 신약 자체도 복음서들의 그리스도가 실제 인물이 아니라는 가장 강력할 수 있는 증거를 담고 있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다. 바울의 서간들에 있는 증언은 예수의 생활 이야기가 날조된 것임을 증명한다. 물론, 바울이 실제로 살았다는 것도 확신할 수는 없다.
바울에 관한 구절을 바이블 백과사전에서 보자. “나중에 그려진 바울의 그림은 그 세부 묘사에서 원본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의 용모는 전설에 의해 완성되어졌다. 명백한 사실은 날조에 의해 뒤섞였다는 것이다. 바울은 보다 고도로 발달된 기독교도들로 이루어진 찬양하는 무리들의 영웅이 되었다.” 따라서 기독교 권위자가 바울의 생을 만드는 작업에, 최소한 부분으로나마, 날조가 행해졌음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진실을 말하면, 가장 유능한 기독교 학자들은 바울의 서간들 중 하나를 제외한 모두를 위작이라며 거부한다. 어떤 사람들은 바울은 그것들의 작가가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바울의 존재 자체가 의심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논쟁의 목적을 위해, 바울이 정말로 살았음을, 그가 열성적인 사도였으며, 서간문 전체를 쓴 것이 그였음을 인정하려고 한다.
그러한 서간문들은 열 세 편이 있다. 그들 중 어떤 것들은 길다. 그것들은 가장 오래된 기독교 저술물로 인정되고 있다. 그것들은 복음서들보다도 훨씬 이전에 쓰여졌다. 만일 바울이 실제로 그것들을 썼다면, 그것들은 그리스도가 가르침을 폈다고 되어 있는 예루살렘에 살던 사람에 의해 쓰여진 것이다. 이제, 만일 그리스도의 삶에 대한 사실들이 기독교의 첫 번째 세기에 알려졌다면, 바울은 그것들을 완전히 알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에 속했을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이 예수를 단 한 차례도 본 적이 없음을 시인한다. 그리고 그의 서간문들은 그가 예수의 생애, 업적, 혹은 가르침 등에 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바울의 모든 서간문에는 그리스도의 동정녀 출생에 관한 것이 단 한 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그 사도는 예수가 세상에 온 방식이라 전해지는 경이로운 방식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 이 침묵에 대해, 정직한 설명은 단 한 가지만이 있을 수 있다 -- 바울이 글을 쓸 때에는 동정녀 출생 이야기가 아직 날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복음서들의 상당 부분들이 그리스도가 행했다고 전해지는 기적들에 대한 설명에 할애되어 있다. 그러나 바울의 열세 편 서간문들을 아무리 뒤진다 하더라도, 그리스도가 그 어떠한 기적이라도 행했다는 아주 조그마한 단서조차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바울이 그리스도의 기적들에 익숙했으면서 -- 그리스도가 나병을 치유하고, 말할 수 있는 악령들을 쫓아내고, 눈 먼 사람들의 시력을 회복시켜 주고, 벙어리들을 말할 수 있게 해 주었으며, 심지어는 죽은 사람들을 살려내기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 -- 바울이 이 모든 일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것들에 대해 단 한 마디도 쓰지 못했다는 것이 상상이나 가는 일인가? 다시 한 번, 유일한 해결책은 바울의 서간문들이 쓰여지던 때에 예수가 행했다는 기적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아직 날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바울은 예수의 동정녀 출생과 기적들에 대해 침묵할 뿐만이 아니라, 예수의 가르침에 대해서도 전혀 지식이 없다.
복음서들의 그리스도는 그 유명한 산상설교를 행한다. 바울은 그것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 그리스도는 오늘날 기독교 세계에서 암송되고 있는 기도문을 알려 주었다. 바울은 그것도 전혀 들은 바가 없다. 그리스도는 비유로 가르쳤다. 바울은 그런 것들에 대해 완전히 무지하다. 놀랍지 않은가? 초기 기독교의 가장 위대한 작가이며, 세계에 기독교라는 종교를 세우는데 그 누구보다도 공헌을 한 사람인 바울이 -- 물론, 만일 서간문들의 진위를 믿을 수 있다면 --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해 철저하게 아는 바가 없는 것이다. 열세 편의 서간문에서 그는 예수가 한 말을 단 한 마디도 인용하지 않았다.
바울은 전도사였다. 그는 개종자들을 모으러 다녔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알고 있었으면서 선전에는 그것들을 이용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능할까? 기독교 전도사가 중국에 가서 그리스도의 종교로 개종자를 모으기 위해 수 년 동안 힘들여 고생하면서, 단 한 번도 산상 설교를 언급하지 않고, 주의 기도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비유들 중 하나라도 이야기하지 않은 채, 자신이 섬기는 주인의 가르침에 대해 무덤과 같은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을 수 있는가? 기독교 교회가 수 세기 동안 가르치는 것들이, 바로 그러한 것들이 아니라면 달리 무엇인가? 오늘날의 교회는 동정녀 출생, 기적들, 비유들, 그리고 예수의 가르침들에 대해 끊임없이 설교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어째서 바울은 그것들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을까? 하나의 답만이 있을 뿐이다. 동정녀 출생, 기적을 행한 일, 그리스도의 설교는 바울의 시대에는 세계에 알려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말하자면, 그는 아직 날조되지 않은 것이다!
바울의 그리스도와 복음서들의 예수는 전적으로 다른 두 명의 존재들이다. 바울의 그리스도는 이상과도 거의 같다. 그는 생활 이야기를 갖고 있지 않다. 그는 군중들의 추종을 받지 않았다. 그는 기적을 행하지도 않았다. 그는 설교도 하지 않았다. 바울이 알았던 그리스도는 그가 다마스커스로 가던 길에 환영에서 본 그리스도였다 -- 사람들 가운데에서 설교하고 일한, 살아있는 인간이 아니라 귀신이자 유령이었던 것이다. 이 환영-그리스도, 이 유령과도 같은 단어가, 복음서를 쓴 사람들에 의해 나중에 지상에 도래하게 된 것이다. 그의 아버지로는 성령이 주어졌고 어머니로는 동정녀가 주어졌다. 그는 설교하고, 경이로운 기적들을 행하고, 무고함에도 격렬한 죽음을 맞이했고, 무덤에서 영광스럽게 되살아나 하늘로 승천한 것으로 만들어졌다. 신약의 그리스도가 바로 그렇다 -- 처음에는 영이었다가 나중에는 기적적으로 태어나서, 기적을 행한, 죽음의 지배자이며 죽음이 정복하지 못하는 인간이 된 것이다.
초기 교회의 의견들 중 상당 부분은 그리스도의 물리적 존재의 실재를 부인했다. “기독교의 역사”에서 Dean Milman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그노시스 파는 그리스도가 태어났다는 것, 혹은 그가 죽었다는 것 자체를 부인했다.” 그리고 독일의 훌륭한 교회사가인 Mosheim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초기 기독교의 그리스도는 인간이 아니라 ‘형상’, 환상, 기적 속의 인물, 실재가 아닌 -- 신화였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기적 이야기들은 사실이 아니다. 따라서 기적적인 이야기들이 사실이라 생각되는 것들과 엮어져 있는 문헌은 믿을만하지가 못하다. 왜냐하면 기적적인 요소를 날조한 사람이라면 자연스러운 부분도 쉽게 날조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흔하고 신은 흔하지 않다. 따라서 인간의 전기를 날조하는 일은 최소한 신의 역사를 날조하는 것만큼이나 쉽다. 이런 이유로, 그리스도의 이야기 전체는 -- 신성한 요소뿐만이 아니라 인간적인 요소도 -- 진실이라 간주하기에 타당하지 않다. 기적들이 소설이라면, 그리스도는 신화이다. Dean Farrar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일 기적들이 믿을만하지 않다면, 기독교는 거짓이다.” Westcott 주교는 다음과 같이 썼다. “기독교의 정수는 기적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만일 기적이 불가능하거나 혹은 믿을만하지 않다는 것이 증명될 수 있다면, 그 자세한 역사에 대한 더 이상의 조사는 모두 불필요하다.” 기적들은 믿을만하지 않을 뿐만이 아니라, 자연의 통일성은 그것들이 불가능함을 선언한다. 기적들이 사라졌다. 기적적인 그리스도는 남아 있을 수 없다.
만일 그리스도가 살았다면, 만일 그가 개혁가였다면, 만일 그가 군중의 이목을 끄는 놀라운 일들을 수행했다면, 만일 그가 권력층과 갈등을 빚어 십자가형을 당했다면 -- 그의 이름이 역사에 기록조차 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해야만 할까? 그가 살았던 것으로 전해지는 시대는 학자들과 사상가들의 시대였다. 그리스, 로마, 팔레스타인에는 철학자, 역사가, 시인, 웅변가, 법학자, 정치가들이 있었다. 중요한 모든 사실들은 그것에 흥미를 가진 탐구적인 사람들에 의해 기록되었다. 유대 민족이 배출한 작가들 중 가장 위대한 사람들이 그 시대에 살았다. 그럼에도, 당시의 모든 저작들에는, 예수에 대한 것이 단 한 줄, 단 한 단어, 단 한 글자도 없다. 위대한 작가들이 사소한 중요도만을 갖는 사건들에 대해 광범위하게 저술했지만, 그들 중 그 어느 누구도 지구상에 존재했던 인물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인물 -- 그의 명령에 나병에 걸린 사람들이 깨끗하게 났고, 한 바구니의 빵으로 오천 명을 먹였으며, 말만 하면 무덤도 무시할 수 있고 죽은 사람들에게 생명도 줄 수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단 한 단어도 쓰지 않았던 것이다.
학문적인 저작 “그리스도”에서 John E. Remsburg는 그리스도의 시대 동안, 혹은 그 시대로부터 한 세기 이내에 살면서 저술했던 마흔 두 명의 작가들의 목록을 작성했는데, 그들 중 그 어느 누구도 그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유대민족이 배출한 작가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들 중 하나인 필로는 기독교 시대가 시작되기 전에 태어났고 예수가 죽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기 이후에도 몇 년을 더 살았다. 그의 집은 예수가 설교했고, 기적을 행했으며, 십자가형에 처해졌다가, 죽음으로부터 되살아났다고 전해지는 예루살렘 안 혹은 근교에 있었다. 예수가 이런 일들을 행했더라면, 필로의 저작물들은 그의 생에 대한 기록들을 담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헤로데의 무고한 아이들의 학살이나 예수의 설교, 기적들, 죽음 등이 실제로 일어났다면, 그것들과 친숙했음에 틀림이 없어야 할, 이 시기를 포함하여 유대인들에 대해 썼고 그리스도의 핵심에 근접했던 것으로 전해지는 바로 그 질문들을 논했던 이 철학자는 세계의 구원자라고 전해지는 인물의 이름도, 혹은 그와 관련된 그 어떠한 행동도 언급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첫 세기가 마감되던 해, 유명한 유대인 역사가 요셉푸스는 그의 이름난 저작물 “유대 고대사”를 썼다. 이 저작물에서 그 역사가는 그리스도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고, 요셉푸스가 죽은 후 이백 년 동안 그리스도의 이름은 그의 역사에 등장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인쇄기가 없었다. 책을 퍼뜨리는 것은 필사에 의해서였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가 쓴 것에 첨가하거나 그것을 변동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교회는 요셉푸스가 그리스도를 인식해야만 한다고 느꼈고, 그래서 죽은 역사가는 그렇게 해야만 했다. 사 세기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포함되어져 있는 “유대 고대사” 필사본이 등장했다. “그 때, 대략 이 당시에, 예수라는 현명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를 사람이라 부르는 것이 합당한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는 경이로운 일들을 행했고 진리를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인간들의 스승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주변에는 많은 유대인들과 많은 이방인들이 추종자로 모여들었다. 그는 그리스도였다. 그리고 우리 가운데 있던 주동자들의 제안을 받은 빌라도가 그를 십자가형에 처했을 때, 처음에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은 그를 버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가 사흘 뒤에 다시 살아서 그들에게 나타났기 때문인데, 이것을 포함하여 그와 관련된 수 만 가지의 다른 경이적인 일들에 대해 신성한 예언이 이미 예견한 바 있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딴 기독교인들은 오늘날까지도 사라지지 않았다.”그것이 요셉푸스가 남긴 그리스도에 대한 유명한 구절이다. 이보다도 더 뻔뻔스러운 위조가 행해진 적은 없었다. 이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요셉푸스의 저작물들에 친숙했던 기독교의 교부들은 이 구절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만일 이 구절이 그들이 아는 바대로의 요셉푸스의 저작물들 안에 있었다면, Justin Martyr, Tertullian, Origen, 그리고 알렉산드리아의 Clement는 자신들의 수 많은 논쟁에서 유대인 반대자들에게 이것을 들이대려 혈안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사실, 요셉푸스를 잘 알고 있던 오리겐은 그 작가는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노라고 명확하게 확언하기도 했다. 이 구절은 사 세기 초반, 첫 기독교 역사가였던, 기독교의 교부 유세비우스의 저작물들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그가 바로 그것의 작가라고 믿어지고 있다. 신앙을 위해 사기를 옹호했을 뿐만이 아니라 요셉푸스를 포함하여 여러 작가들의 저작물들에 들은 구절들을 손질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인물인 유세비우스는 이 구절을 “복음적 증명(Evangelical Demonstration)”에서(III권, p.124) 다음과 같은 말과 함께 소개한다. “아마도 우리의 구세주에 관해 내가 이미 만들어 낸 증언들만으로도 충분할 것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에 더하여, 유대인 요셉푸스를 추가적인 증인으로 만드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이 이 구절이 위조되었음을 증명해 준다. 그것은 유세비우스의 문체로 쓰였지 요셉푸스의 문체로 쓰이지 않았다. 요셉푸스는 장황설을 늘어놓는 작가였다. 그는 보다 중요성이 적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광범위하게 썼다. 그리스도에 대한 이 구절이 이토록 짤막한 것은, 따라서, 이것이 거짓된 것이라는 강한 논증이다. 이 구절은 설명을 중단시킨다. 선행한 구절이나 뒤따르는 구절과 아무런 연관이 없으며, 그것의 위치는 그 역사가의 글이 공간을 만들기 위한 개작의 손길에 의해 나뉘어졌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요셉푸스는 유대인이었다 -- 모세 종교의 사제였다. 이 구절은 그가 그리스도의 신성과 기적들, 그리고 부활을 인정한 것으로 만들어 놓았다 -- 다시 말하자면, 독실한 유대인이 기독교를 믿는 것처럼 말하고 있는 것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논리적으로, 기독교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이러한 말들을 요셉푸스가 썼을 가능성은 없을 것이다. 역사와 이성의 모든 논증들은 그 구절이 염치없는 위조임을 결론적으로 증거한다.
이러한 이유로 정직한 기독교 학자들은 누구나, 그것을 첨삭된 것으로써 버려왔다. Dean Milman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것은 많은 추가적인 구절들과 함께 첨삭되었다.” 브리타니카 백과사전을 쓰며, Dean Farrar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요셉푸스가 현재 있는 것과 같은 구절을 전부 썼다는 것은, 제대로 된 정신의 비평가라면 절대 믿지 않는다.” Warburton 주교는 그것을 “비열한 위조이며 매우 어리석은 것이기도 하다”며 비난했다. Chambers' 백과사전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요셉푸스의 유명한 그 구절은 일반적으로 첨삭임이 인정된다.”
로마의 역사가 Tacitus의 “연대기(Annals)”에는 “크리스투스”가 기독교라 불리는 집단의 설립자임을 이야기하는 짧은 구절이 하나 더 나온다 -- “자신들의 죄로 인해 멸시받는” 일단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 말들은 로마의 화재에 대한 Tacitus의 설명에서 나온다. 이 구절에 대한 증거는 요셉푸스의 구절에 대한 것보다 별로 강력하지 않다. 이것은 십오 세기 전에는 그 어떤 작가에 의해서도 인용되지 않았으며, 처음 인용되었을 때에는, 세상에 존재하는 “연대기”는 오직 한 부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필사본은 팔 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었다 -- Tacitus가 죽은 후 육백 년이 지난 후의 일이다. “연대기”는 예수의 시대로부터 거의 한 세기 후인 서기 115년에서 117년 사이에 출판되었다 -- 따라서 그 구절은, 설령 저자가 직접 쓴 것이라 하더라도, 예수에 관한 그 어떠한 것도 증명하지 않는다.
“예수”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William이나 George가 흔한 것처럼 흔했다. 요셉푸스의 저작물들 속에서도, 여러 명의 예수들에 관한 설명을 찾을 수 있다. 하나는 Sapphias의 아들 예수로, 선동적인 선원들의 모임의 주모자였다. 다른 예수는 도적단의 두목으로, 그를 따르던 무리들이 그의 체포 소식을 듣고 달아나 버렸다. 또 다른 예수는 “슬프다, 슬프다, 예루살렘이여 슬프다!”를 외치며 칠 년 동안 예루살렘 주변을 돌아다닌 사람인데, 여러 번에 걸쳐 멍이 들고 두들겨 맞았지만 그 어떠한 저항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예루살렘 함락 때 돌에 맞아 죽었다.
유대의 단어 “메시아”에 해당하는 그리스어인 “그리스도”라는 단어는 사람의 이름이 아니었다. 그것은 직함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이”라는 의미였다. 유대인들은 메시아, 다시 말해 자신들의 국가의 독립을 재건해 줄 성공적인 정치적 지도자를 고대하고 있었다. 요셉푸스는 메시아인척 해서, 많은 추종자들을 끌어 모았고, 정치적 이유로 로마인들에 의해 죽음에 처해진 많은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이들 메시아들, 다시 말해 그리스도들 중 한 명인 사마리아의 예언자가 본시오 빌라도에 의해 처형되었다. 유대인들의 분노가 너무나 커서 빌라도는 로마 정부에 의해 소환되어야만 할 정도였다.
이러한 사실들은 어마어마한 중요성을 지닌다. 기독교의 예수 그리스도가 역사에는 알려져 있지 않은 반면, 그가 살았던 것으로 전해지는 시대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라는 이름을 가졌던 시대이고, “그리스도”라는 자격이 있는 체 하는 많은 정치적 지도자들이 존재했던 시대였다. 그리스도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데 필요한 모든 재료들이 그 시대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고대 국가들에는, 신성한 구원자가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서, 새로운 종교를 설파하고, 기적을 행하며, 인류의 죄에 대한 대속으로 십자가형에 처해졌다가 무덤에서 일어나 하늘로 승천했다고 믿어졌다. 예수가 가르쳤다고 가정되는 모든 것들은 당시 문헌에 있는 것들이다. 그리스도의 이야기에는, Joseph McCabe가 자신의 저서 “복음서의 도덕성의 원천(Sources of the Morality of the Gospels)”에서, 그리고 John M. Robertson이 자신의 저서 “이방인 그리스도들(Pagan Christs)”에서 밝힌 바와 같이, 새로운 사상은 전혀 없다.
기독교인들은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너무나 완벽한 인물인데, 그런 인물이 날조되었을 리가 없다.” 이것은 오해이다. 복음서들은 완벽한 인물을 그리고 있지 않다. 복음서들의 그리스도는 그 인물됨과 가르침에서 수많은 모순을 보임으로써 가공의 인물임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칼을 선호했다가, 선호하지 않았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이야기했다가, 친구를 미워하라고 충고했다. 용서의 교리를 설교했다가 사람들을 독사의 자식들이라 욕했다. 자신을 세상의 심판자로써 선언했다가, 자신은 아무도 심판하지 않을 것임을 선언했다. 자신이 모든 권한을 소유하고 있다고 가르쳤지만, 사람들이 믿지 않는 곳에서는 기적들을 행하지 못하였다. 신으로 제시되며 “나와 나의 아버지는 하나다”라고 공언하는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지만, 십자가의 고통과 우울함 속에서 번민에 차 소리친다. “나의 신, 나의 신,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그리고 환멸을 느끼게 된 그리스도가 죽어가며 외친 것이라 전해지는 이 말들이 두 복음사가들에 의해 부인되었을 뿐만 아니라, 시편 22장에서 인용한 것이라는 사실은 얼마나 기묘한가!
만일 한 인간의 말이 독창적일 수 있는 순간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고통과 절망의 한 가운데에서, 패배와 실망의 짐으로 가슴이 찢어지는 동안, 죽음의 차가운 물결이 헛되이 버려지는 목숨을 영원히 삼켜 버리기 전에 남은 마지막 숨으로 상처받은 영혼의 밑바닥으로부터 비탄의 외침을 내뱉을 때이다. 그러나 임종 때의 그리스도의 입술 위에 머문 것은, 죽어가는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말들이 아니라, 자기 민족의 문헌에서 인용한 말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모순을 지닌 존재가, 인물됨에 있어서 이토록 선명한 비현실성이 존재하는 존재가 실재했을 리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일, 이러한 모든 기적적이고도 불가능해 보이는 특성에도 불구하고, 날조되었을 리가 없다고 한다면, 오델로나 햄릿, 로미오에 대해서는 뭐라 말할 수 있겠는가? 세익스피어의 경이적인 인물들이 무대 위에서 살아 숨쉬지 않는가? 그 인물들의 자연스러움, 일관됨, 인간적 숭고성은 우리의 감탄을 자아내지 않는가? 유대인 영웅 이야기에서 기적적인 일들을 제외하고 보면, 장발장의 인물됨은 그 인간성에 있어서 예수의 인물됨만큼 심오하지도, 고귀하지도, 명료하지도 않으며, 그처럼 풍부하지도 않고, 연민의 감을 자아내는 면에 있어서도 그처럼 미묘하지도 않으며, 영웅적 자질에 있어 그처럼 빼어나지도 않고, 잔인한 운명에 그토록 감동적으로 휩싸이지 않았던가? 그 누가 있어 그 경이적인 사람의 이야기를 숨죽이고 읽지 않을 수 있었는가? 그리고 그 누가 그의 최후의 나날들을 마른눈으로 쫓을 수 있었는가? 그런데도 장발장은 살았던 적도 없었고 죽은 적도 없었다. 그는 실재 인물이 아니라 빅토르 휴고의 눈부신 두뇌에서 탄생한, 인격화된 고통 받는 미덕이었다. Evremonde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Sydney Carton이 스스로 변장한 채 자신의 목을 피에 물든 단두대의 칼날 아래에 놓는 것을 보았을 때 울지는 않았는가? 그러나 Sydney Carton은 실재 인간이 아니었다. 그는 찰스 디킨스라는 천재에 의해 인간의 형태로 화한, 영웅적이고 자기희생적인 인간의 정신이었다.
그렇다, 그리스도의 인물됨은 날조되었을 수 있다! 세계의 문학은 그렇게 날조된 인물들로 넘쳐난다. 소설에 나오는 놀라운 남자와 여자들의 상상 속의 삶들은 영원히 마음에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흥분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리스도가 살지 않았다면 기독교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와 다른 질문을 해야겠다. 르네상스, 종교개혁, 프랑스 혁명, 사회주의 등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운동들 중 그 어느 하나도 한 개인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니었다. 자라난 것들이다. 기독교도 자라났다. 기독교 교회는 가장 오래된 기독교 저작물들보다도 더 오래되었다. 그리스도가 교회를 만든 것이 아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만든 것이다.
복음서들의 예수 그리스도는 실제 인물이었을 리가 없다. 그는 불가능한 요소들의 혼합체이다. 십구 세기 전 팔레스타인에 예수라는 이름의 사람이 살면서 선한 일들을 하며 다니고 그를 존경하는 동료들의 추종을 받았으며, 격렬한 죽음을 맞이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이 사람에 대해, 그가 살아 있을 때에는 단 한 줄도 쓰여지지 않았고, 오늘날 그의 삶과 인물됨에 대해서 세계에 알려져 있는 것들은 전무하다. 이 예수는, 만일 그가 살았다면, 인간이었다. 그리고 만일 그가 종교 개혁가였다면, 그는 세계의 모든 시대 동안 살다가 죽어간 수 많은 그런 사람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세계가 복음서들의 그리스도가 신화였다는 사실, 기독교가 진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과거의 종교 소설들로부터 주의를 돌려 오늘날의 치명적인 문제들에 몰두하고, 우리가 알고 있고 우리가 반드시 도움을 주고 사랑해야만 하는 실제 남자와 여자들의 안녕과 복지의 향상을 위해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경주하게 될 것이다.
(옮겨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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