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취미 생활/한문서예

누실명

by 까마귀마을 2020. 12. 16.



陋室銘 (누실명) 唐의 劉禹錫 (유우석)

山不在高 有僊則名 (산불재고 유선즉명)
水不在深 有龍則靈 (수불재심 유룡즉령)
斯是陋室 惟吾德馨 (사시누실 유오덕형)
苔痕上綠 艸色入簾靑 (태흔상계록 초색입렴청)
談笑有鴻儒 往來無白丁 (담소유홍유 왕래무백정)
可以調素琴 閱金經 (가이조소금열금경)
無絲竹之亂耳 無案牘之勞形 (무사죽지란이 무안독지노형)
南陽諸葛廬 西蜀子雲亭 (남양제갈려 서촉자운정)
孔子云 何陋之有 (공자운하루지유)

산이 높지 않아도 신선이 있으면 곧 명산이요
물은 깊지 않아도 용이 있으면 곧 신령한 물이다
여기에 이 집은 누추하나
오직 나의 덕으로 향기롭다
이끼의 흔적은 섬돌까지 올라 푸르고
풀빛은 창문의 발을 통해 더욱 푸르르다
덕망있는 휼륭한 선비들과 담소를 나누고
비천한 자들은 왕래 하지 않으니
거문고를 연주하고 금옥 같은 경서(經書)를 펼칠 만하다
음악소리에 귀를 어지럽히지 않고 ,관청 서류로 몸을 수고롭히지 않으니
남양(南陽)의 제갈공명(諸葛孔明)의 초가집 이요
서촉(西蜀)의 양자운(揚子雲)의 정자라
공자가 말하였다.군자가 살고있는 곳에 무슨 더러움이 있으리오!

유우석(劉禹錫)이 지은 누실명(陋室銘)은   중국의 초중어문교과서(初中語文教科書)에도 수록되어 있다.
하지만, 이게 후인이 유우석의 이름을 빌어 지은 위작(僞作)이란 설도 간간히 들린다.

유종원(柳宗元), 백거이(白居易) 등과 더불어 당시 문단의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만21세 되는 793년 유종원과 함께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간다.
개혁세력에 속하여 정치혁신운동에 가담하였다.
하지만 번진(藩鎮)과 환관 등 기득권 세력의 압력에 의해 실패하고 만다.
개혁 주도세력의 지도자인 왕숙문(王叔文)은 피살되고,  유우석은 펌적(貶謫:벼슬자리에서 내치고 귀양을 보내던 일.) 되고 만다.

누실명은 그가 유배되었을 때  지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의 문집 어디에서도 이 작품은 발견되지 않는다.
때문에 앞서도 말하였지만 위작으로 의심받고 있기도 하다.



'나의 취미 생활 > 한문서예' 카테고리의 다른 글

思親  (0) 2021.01.10
거고사추지만계일  (0) 2020.12.25
일심상청정처처연화개  (0) 2020.11.30
飮水思源 掘井之人  (0) 2020.11.22
근심지목풍역불올  (0) 2020.11.13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