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벵에의한 개신교는 오직 성경만이 신앙의 규범이며 성경으로서만 구원이 있다고 했지만 이들의 원칙은 그 누구도, 심지어 개신교인들 자기 자신도 지킬 수도 없고 지키지도 않는 원칙이다.
(재화가 삶의 소중한 가치가 되고 평등과 자유의 오늘의 현대 사회에서 개신교인이던 가톨릭교인이던 정경화 된 27권 신약의 규범마저도 제대로 지키며 산다는건 거의 불가능 하다는게 내생각)
오직 성경본문만이 신앙의 규범” 이라는 말씀을 누가 하셨을까? 예수일까?
예수는 신약성경을 쓰지않으셨을 뿐 아니라 쓰라는 지시도 한적이 없으시다.
따라서 이런 말씀을 하실 수 없었다.
아니면 사도들과 성경저자들 일까?
이들은 자신이 쓴 글이 교회의 정경 즉 성경이 될지도 몰랐다.
왜냐하면 신약성경은 주후 319년에 카르타고 회의에서 가톨릭교회의 공인성경으로 인준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약성경에 나오는 성경이라는 단어는 구약성경을 일컫는 것이지 신약성경을 일컫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가르치는 사람은 웃음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즉, 성경저자들이 살아있을 때는 신약성경이 없었을 때이므로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가지고 “오직 성경” 이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사도이후, 1세기부터 칼뱅이전인 16세기까지는 지구상에 교회라고는 가톨릭교회 하나 뿐이었다.(서방교회인 가톨릭에서 분리된 동방교회도 분명히 있었는데도 가톨릭의 이러한 주장은 동방교회가 성경에 대한 이해나 교리가 가톨릭교회와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함)
가톨릭교회는 “오직 성경” 이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그런데 루터와 칼뱅이 처음으로 이런 주장을 하기 시작하자, 트렌트 공의회를 소집하여 그런 주장을 하는 자들을 파문했다.
또한 앞으로도 그런 주장을 하는 자들은 파문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기독교는 말씀만으로 구원 받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런 얘기는 성경본문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근거 없는 가설이다.
개신교는 바로 구원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를 모조리 버리고 말씀(창조주의 말씀과는 무관한, 개인이 자유롭게 해석하는 말씀, 즉, 자기생각)만이 신앙의 규범이고 구원이 있다한다.
하나 뿐인 가톨릭교회는 그리스도라는 포도나무에서 잘려져 나간 죽은가지를 절대로 갈라져 나간 교회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교의를 주장하는 이단자가 나타나면 파문으로 처벌하고 처형하였다.
그런 루터가 파문당한 후 최초로 가톨릭교회라는 포도나무가 아닌 다른 포도나무를 세우기 위해서는 스스로 포도나무(신)가 되어야 했다.
가톨릭교회는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교황은 양때를 이단자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법을 제정하고 우리 안으로 잠입하여 법을 어기는 이단자들(칼뱅과 무리들)을 내쫓고 그것으로도 해결이 안되면 국가권력에 넘겨 엄벌에 처한다.
칼뱅이 가톨릭교회의 권위를 부정하기 위해서 “오직 성경” 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왜냐하면 이로써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에게 성신을 보내시어 계시한 교의를 성문화한 성경이외의 가톨릭교회의 모든 문헌을 부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이지만 본문만 가지고는 하느님의 뜻을 파악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불가능하다. 가톨릭교회의 탄생(성신강림일 주후 33년)은 성경의 탄생(성경으로 공인된 319년)보다 286년이나 이르다.
그 성경저자들의 제자들 즉 가톨릭 교회는 100여권이 넘는 많은 책들 중 27권을 신약성경으로 공인했고, 6세기까지 막대한 양의 성경주해서를 집필했다.
사도들의 제자들인 교황들과 주교들은 12세기까지 1,100년간 사도들이 받은 계시의 내용을 세계공의회를 개최하여 차곡차곡 성문화 해왔다.
12세기 아퀴나스는 그 엄청난 양의 교부들의 주해서와 성인들의 강론집을 소화한 후 그리스도교의 대부의 교의를 철학적으로 증명하는 신학대전을 저술하였다. (500쪽 짜리 큰책 7권 분량)
신학대전은 교회법에 의해 모든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공인된 가톨릭교회의 문헌이다.
따라서 이를 부정하는 것은 사도들이 받은 성신, 즉 하느님을 부정하는 것이다.
칼뱅은 16세기까지 존재하지 않던 완전히 새로운 종교를 만들기 위해 그때까지 세상의 모든 신학자들, 성인들, 그리고 크리스천들이 절대적인 진리로 믿던 신학대전의 일부를 부정함으로써 사도들과 성경저자들의 권위를 부정하였다.
그리하여 칼뱅의 ‘오직 성경설’ 은
“나는 오직 성경 본문만 계시로 인정하지 성경저자들의 성경해석은 인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경저자들의 해석은 틀렸고 나의 해석이 맞기 때문이다” 는 말과 같다.
(개신교 신학생들도 신학대전 중 일부 마음에 드는 부분은 공부하지만 칼뱅처럼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 부분은 배척한다. 신학대전의 교의신학과 윤리신학 부분은 100% 사도들의 가르침이다.)
우리가 성경(거룩한 책)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책은 많은 성경(거룩한 책) 가운데 일부이다.
칼빈은 그 많은 거룩한 책들 중 가톨릭교회가 공인한 구약성경 46권과 신약성경 27권 중, 구약의 7권은 버렸다.
그것은 주님을 죽인 유대인이 한 것을 그대로 따라한 것이다.
구약 39권 중에서도 일부 구절은 버리고 나머지를 출판한 후 그 비공식적인 책을 자기 마음대로 ‘성경’ 이라고 이름 붙였다.
본래 가톨릭교회가 공인한 성경은 73권이며, 칼빈처럼 일부를 선별하여 출판하고 가르치는 행위는 파문의 벌로 엄하게 금지된다.
본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경을 한 구절도 쓰지 않으셨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책으로 출판된 것은 구텐베르크의 인쇄기가 생산된 16세기부터이며 그 전에 필사본은 일반인이 싶게 볼수도 보유할수도 없었고 엄청난 고가여서 부자들이나 주문제작하여 보거나 보유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가톨릭교회가 성경목록을 공인한 319년 카르타고 공의회 이전에는 무엇이 교회의 성경인지 확정되지 않았고, 주후 50년쯤 바울의 서신이 쓰여지기전 까지는 정경을 물론 신약성경은 아직 한권도 집필되지 않았었다.
위의 사실들을 종합해보면, 다음의 결론이 나온다. “성경본문이 신앙의 유일한 규범”이라는 16세기에 탄생한 원칙은 교회사와 신학연구도 깊이 해보지 않은 자들이 어수룩한 사람들을 홀리기 위해 임기응변으로 내뱉은 실언이라는 사실이다.
칼뱅이 신약성경 집필이 시작되기 전인 주후 40년에 태어났으면 성경에 모든 계시가 포함 되어있고 성경에 들어있지 않은 것은 계시가 아니라는 주장을 할 수 있었을까?
그 당시에는 정경화된 신약성경 27권은 단 한권도 존재하지 않았다.
주님께서 성경에 당신의 계시가 다 들어 있으니 그것만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하셨다고 가정해보자.
이 가설이 성립하려면 성경이 존재하지 않았던 순간이 1초도 없었어야 했다.
성신강림일을 교회의 탄생일로 보므로 이날 이미 27권의 성경이 완성되어 공인까지 되어 있었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가톨릭교회는 이날부터 존재하기 시작하였고 계시는 선포되기 시작하여 사람들은 사도들의 설교를 듣고 믿은 후 세례를 받아 구원을 받게 되었는데 “오직 성경에 나오는 것만을 믿어서” 가 아니라 “성경 없이” 그러나 “성경이라는 절대적이 아닌 사도들,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을 통해” 구원 받는 길이 있었다는 말이 되므로 개신교의 “오직 성경설” 은 틀린 주장이 되기 때문이다.
주후 33년 5월 24일 일요일은 가톨릭교회 창립일인 성신강림일이었다.
이 날부터 319년 카르타고공의회 에서 성경이 공인되기까지 크리스천들은 무엇으로 구원 받았나?
318년까지는 신약성경의 정경화 즉 성경이 정리되지 않았으므로 당연히 크리스천들은 ‘오직 성경’ 으로 구원 받은 것이 아니라 ‘오직 사제(가톨릭교회)의 가르침’ 만으로 구원받았다.
성신강림일에 성신께서는 사도들에게 계시진리를 책으로 주신 것이 아니라 영혼에 새겨주셨다.
성경은 사도와 제자들이 썼고 가톨릭교회가 공인한 책이다.
마찬가지로 성경이외에도 거룩하고 영원한 계시진리가 기록된 가톨릭교회가 공인한 책은 수천권이나 된다.
이 문헌들이 제시하는 교의와 계명들은 성경과 같이 구원받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 이후부터 16세기까지는 가톨릭교회만 존재했으므로 모든 크리스천들은 사제(가톨릭교회)가 가르치는 것만을 믿고 행하였지 사제(가톨릭교회)가 가르치는 교의가 가톨릭교회의 방대한 거룩한 책들 중 일부인 성경본문에 있는 내용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으므로 알 필요도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
계시(신앙의 규범)는 사도들의 영혼에 받았으며 따라서 사도들과 그들의 후계자들의 가르침이 신앙의 규범 전부이다.
계시를 받아 쓴 사도들과 그들의 제자들인 교부들의 수 많은 거룩한 책들 중 일부인 27권의 책(신약성경)만 계시가 아니다.
그 27권의 책에는 계시의 일부만 담겨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톨릭교회는 ‘319년부터는 성경이 된’ 계시진리의 모든 내용들은 신약성경이 태어나기 전인 주후 33년 5월 24일에도, 그리고 영원히 세상 끝날까지 완전히 똑같은 한 가지의 뜻으로 해석한다.
반면 16세기부터 생기기 시작하여 21세기에 이르러서는 수만개가 된 개신교는 계시진리를 서로 다르게 가르치고 번복하여 바꾼다.
기독교 신앙이란 무엇을 믿는 것이며 무엇이 기독교 신앙이 아닌가?
계시(신앙의 규범)를 받은 사도들이 가르치는 것과 사도들의 성경해석을 믿는 것이 기독교신앙이다. 반면, 사도들과 성경저자들이 쓴 책(신약성경)에 대하여 사도들의 해석(가톨릭교회의 해석)과 다른 해석을 믿는 행위, 그리고, 신앙의 규범을 전부 계시받은 사도들이 가르쳤고 그들의 후계자들이 2,000년간 똑같이 가르쳤으며 기록되어 공인된 계시의 내용들을 사도들이 쓴 신앙의 규범이 일부 기록된 책(신약성경)에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부하는 것, 혹은 성경에 근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석을 달리하여 그 근거를 받아들이지 않는 행위는 기독교신앙이 아니라 루터와 칼뱅의 사견이다.
루터와 칼뱅은 인쇄술이 개발된 시대에 태어나 성경이 흔하므로 성경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성경저자들도 생각하지 못했던 기발한 원칙을 만들어 가르쳤고 기만당한 불쌍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은 500년 동안 그 가르침이 성경저자들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 개신교도들이여 깊이 생각해보라. “오직 성경(말씀)” 이라는 망언은 주님의 계시가 아니라 가톨릭교회와 주님께 저항하는 자들이 만든 말이다.
(퍼온글을 쉽게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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