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 향기는/ 설죽
妾貌似殘荷 (첩모사잔하)
郎心如逝水 (낭심여서수)
水逝波無痕 (수서파무흔)
荷殘香不死 (하잔향불사)
제 모습은 지는 연꽃 같고
그대 마음은 흐르는 물 같아요
흐르는 물결은 흔적도 없지만
연꽃 향기는 사라지지 않아요.
설죽은 1550~1600년대 경북 봉화 유곡(닭실마을)에서 여종으로 태어났다. 그녀의 이름은 얼현(孼玄)이고, 자호는 취죽·설창·월련·취선 등으로 알려져 있다.여종의 신분이었지만 어려서 부터 글에 능하고 시문을 잘 지었다 한다.
이 마을의 안동 권씨, 석천 권래(權萊)의 여종이었다가 석전 성로(成輅)의 비첩으로 10여 년 살았다. 이후 전라도 등지에서 기생으로 20년 세월을 보냈다. 46세 이후에는 재상가의 첩으로 지냈으며, 만년에 고향 유곡으로 돌아와 생을 마쳤다.
황진이의 한시가 8수, 매창의 한시가 58수 현전하는데 설죽의 한시는 166수나 전해진다. 그중 연인과 나눈 연시가 20여편이 있음. 위의 시도 그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됩니다.(아래 설죽의 시 몇수를 올립니다)
자신을 연꽃향기에 비유하여 마음속에 있는 연정을 아름답게 드러내고 있네요...
郎君去後(낭군거후) 님 떠나신 뒤.
낭군님 떠나가신 뒤 소식이 끊겨 (郎君去後音塵絶·낭군거후음진절)
봄날 청루에서 홀로 잠드네. (獨宿靑樓芳草節·독숙청루방초절)
촛불 꺼진 사창에서 한없이 우는데 (燭盡紗窓無限啼·촉진사창무한제)
두견새 울어 배꽃도 달도 지네. (杜鵑叫落梨花月·두견규락이화월)
화창한 봄인데 임은 떠나간 뒤 소식이 없다. 청루에서 잠을 청해보지만 잠은 오지 않고 눈물만 흐른다. 우는 것은 혼자만이 아니다. 두견새도 울고 배꽃도 지고 달도 진다.
春粧(춘장) 봄단장
봄단장 서둘러 끝내고 거문고 타는데 (春粧催罷倚焦桐·춘장최파의초동)
주렴에 붉은 햇살 가벼이 차오르네. (珠箔輕盈日上紅·주박경영일상홍)
밤안개 짙게 끼고 아침이슬 흠뻑 내리니 (香霧夜多朝露重·향무야다조로중)
나직한 동쪽 담장 아래 해당화가 울고 있네. (海棠花泣小墻東·해당화읍소장동)
담장 아래 어여쁜 해당화. 이슬을 이별의 눈물, 사랑의 상처로 이해할 수도 있다. 간밤 짙은 안개는 그리움이다. 거문고를 안은 시인의 모습에서 우리는 임의 부재를 알 수 있다.
설죽을 찾아서
조선시대의 여성 시인하면 신사임당, 허난설헌, 황진이, 매창을 떠올린다.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은 사대부 집안의 여성인 만큼 현대에 와서도 제대로 대접을 받은 것이고, 황진이나 매창과 같은 기녀 시인도 유명 인사와의 교류를 통한 일화가 많이 남아있으므로 인해 평가가 활발했다. 하지만 조선 선조 때 승지 조원(趙瑗'1544~1595)의 첩실이었던 이옥봉(李玉峯)이나 경북 봉화 출신 여성 시인 설죽(雪竹)에 대한 연구나 평가는 그들의 신분으로 인한 이유로 이제 막 시작되고 있다.
지난 10월 13일 봉화 닭실 청암정에서는 경상북도 주최로 작지만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이 마을 출신인 설죽의 삶과 시에 대해 이원걸 박사의 집중적인 조명이 있었던 것이다.
설죽은 권벌(權橃)의 손자였던 권래(權來'1562~1617)의 여종이었다고 한다. 권래는 시로 문명을 떨쳤던 권필(權韠)의 인척이었고, 권필은 성로(成輅'1550∼1615'호는 석전)와 절친한 친구였다. 권필과 성로는 송강 정철(鄭澈)에게서 학문을 배운 동문수학의 친구였다. 권필이 광해군 때 필화사건으로 귀양을 가다 울분에 차서 죽자, 석전 성로가 자신의 시를 불태우고 세상을 한탄하며 술로 세월을 보냈다고 하는 것을 보면 그들의 우정을 알 만하다.
상상을 펼쳐본다. 벼슬보다는 시에 뜻이 있어 한평생을 시와 술과 친구와 더불어 사는 풍류객이 바로 성로였다. 성로는 아내와 사별하고 울적함을 달래기 위해 권필의 고향인 닭실에 놀러 갔다. 그곳에서 어여쁘고 재기 발랄한 설죽을 만났다. 그는 첫눈에 설죽에게 반했다. 설죽 역시 감수성 뛰어난 시인이었던 성로가 좋았다. 그들은 나이와 신분을 뛰어넘어 금방 사랑에 빠졌다. 친구의 사정을 눈치 챈 권필은 친척인 권래에게 부탁해 설죽의 신분을 해방시켜 성로에게 시집갈 수 있게 한다. 그들은 서울로 올라와 서호(西湖'현재의 양화나루 근처)에서 십 년을 살았다.
양자강 가에서 취해 지냈어요 (揚子江頭醉幾留)
오늘 홀로 떠난 임 계신 곳 찾아오니 (今日獨尋人去後)
옛 섬엔 백빈향만 가득합니다. (白蘋香滿舊汀洲)
둘의 행복은 석전의 사망으로 인해 10년 만에 끝이 났다. 이때 설죽의 나이가 26세로 추정된다. 이후 설죽의 행적은 호서지방에서 보인다. '해동잡기', '패관잡기' 등의 여러 문헌에서 설죽은 호서 기생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이때 설죽이 지은 시 중의 하나로 '완산 객사에서 피리 소리를 듣고'라는 작품이 있다.
"피리 소리에 원망이 가득 담겼고, .(逐秦龍吟怨思長)
밤중의 창가엔 달이 기울어요, ( 月斜窓外夜中央)
매화곡 연주하지 마세요, ( 遊人莫弄梅花曲)
외로운 저의 애간장을 태우니까요. (獨妾天涯易斷腸 )
설죽이 어떻게 해서 호서의 기생이 되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녀는 약 20년 정도 호서지방에서 생활하다가 한양으로 올라온다. 한양에서도 고향 닭실을 그리워하는 여러 편의 시를 남겼다. 설죽 생의 마지막은 닭실에서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
이원걸 박사에 의하면 설죽이 남긴 시는 놀랍게도 167편이나 된다. 권상원(權商遠)의 시집인 '백운자시고'(白雲子詩稿) 뒤편에 166수, '청장관전서'에 한 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는 다른 조선의 여성 문사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양이다. 또한 그녀의 시는 대부분 깔끔하고 산뜻하다. 앞으로 설죽 시에 대한 연구의 활성화와 함께 설죽을 봉화와 경북의 문화콘텐츠로 활용하는 방안도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대구경북만큼 많은 문화유산을 가진 시'도도 드물다. 어떻게 잘 꿰느냐 하는 것이 바로 후손들의 일이다.
글 : 하응백 문학 평론가(경희대 국어 국문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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